# 149
149화 우회상장을 위하여?(3)
1997년 12월 3일, 청와대로 향하는 자동차 안.
-니 마침 전화 잘했다. 좀 온나.
-예?
-와서 이야기하자. 참, 와 전화했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잘됐다. 와서 니 할 이야기하고 내 할 이야기 좀 들어라.
-예, 각하……!
어제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다. 아마 IMF로 시급한 이때에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 수 있는 경제인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이런 시절이 아니었다고 해도 대통령에게 직접 면담을 요청할 수 있는 경제인은 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골치가 아프시겠지……!’
무엇인가를 내게 떠넘기려고 부르신다는 생각이 든다.
‘주고받는 관계지…….’
따지고 보면 대통령 각하와 나는 그런 관계가 된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적들을 내가 속여야 한다는 것이다.
‘변절자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다.
* * *
텍사스에 있는 사모 펀드 론스타의 책임 투자 매니저 사무실.
“우리의 목표는?”
“외환은행입니다.”
비밀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중년의 남자가 사모 펀드 론스타의 책임 투자 매니저에게 보고했다.
“허락하셨나?”
“예, 그렇습니다.”
“됐군.”
책임 투자 매니저는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외환은행을 차지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국동건설이라는 회사부터 손에 넣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국동건설?”
“예, 그렇습니다.”
백범만이 아는 미래에서 국동건설은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경기성장과 함께 크게 성장한 굵직한 건설기업이었다.
상장기업이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며 국동건설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이 영업 상황이 악화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을 겪게 되고 그에 따라 1998년 1월에 당좌 거래가 중지되면서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와 함께 회사정리법에 따라 회사 정리 절차 및 재산 보전 처분이 결정되어 12월부터 법정 관리를 시작했는데 이후 론스타 펀드에 매각된다.
“국동건설은 대한민국 중견 건설기업입니다.”
“그렇겠지, 조세 부담이 신경이 쓰이는군.”
“이번에는 벨기에가 어떻습니까?”
“좋지, 하하하!”
“예, 추진하겠습니다.”
“그다음은?”
“태양전자입니다.”
“태양전자?”
“예,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론스타 펀드와 백범의 태양 종합금융투자 그룹이 맞서게 되는 순간이다.
“부실한가?”
“우량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럼 어렵지 않나?”
“어떻게 흔드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스미스.”
“예, 보스.”
스미스라는 남자는 책임 매니저를 보스라고 불렀고 이 보스라는 의미는 적대적 인수합병을 많이 하는 CEO들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다.
“자네가 대한민국으로 가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국동을 시작으로 태양을 넘어서 외환은행까지 인수해서 이익을 극대화한다.”
“예, 알겠습니다. 국동건설은 KC holdings S.A.를 통해서 주식을 인수하고 사채는 FE investment L.L.C를 통해 인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제게 말씀을 하신 것처럼 조세 부담이 적은 벨기에에 있는 둔 KC홀딩스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전략을 취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최종적으로 1500억 이하로 국동건설 주식의 95퍼센트 이상을 확보하고 추가로 1300억을 이용해서 국동건설이 발행한 회사채를 모두 인수하겠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익을 실현해 보이겠습니다.”
스미스가 구체적으로 자기 보스에게 설명했다.
“좋아.”
스미스의 보고 핵심은 국동건설 자본인수에 1500억 원, 부채인수에 1300억 원 총 2706억 원을 투자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론스타의 스미스는 국동건설 회사채의 상환하는데 1300억을 사용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모든 부채까지 정리하고 지분을 확보하는데 1500억만 쓰겠다는 소리고 회계상으로 깔끔해진 국동건설의 자산을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헐값에 인수해서 비싸게 매각해 폭리를 취하고 벨기에 법인으로 실행하는 것이니 대한민국에는 세금 한 푼 내지 않겠다는 소리인 것이다. 한마디로 시작부터 먹튀를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럼 다음 주에 바로 출국하겠습니다.”
“천천히 세심하게 살펴,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니까, 으흐흐!”
“예, 알고 있습니다.”
론스타 펀드의 스미스는 사악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니 생각은 어떠노?”
대통령 각하께서 내게 물으셨고 경제수석이 나를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각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왜 저입니까?”
“백범 대표, 무례하십니다.”
경제수석이 나를 제재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대통령 각하. 백제증권은 부실기업이고 현재 그룹에서 매각 절차가 진행이 되고 있지만 누구도 인수하려고 하는 회사가 없습니다.”
“안다…….”
“거기다가 영업 정지를 당한 다섯 개의 종금사까지 태양종합금융투자가 인수하라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 각하께서 제게 떠넘기시는 겁니다. 물론 은행의 부실화를 막으셔야 하지만 저로서는 쉽게 말씀을 드리기 곤란합니다.”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백제증권이고 다섯 개의 종금사 중 하나이다.
‘내가 인수하겠다고 말하려고 왔는데…….’
대통령 각하께서 먼저 제안을 해주시니 이제는 내가 얻어갈 것이 많을 것 같다.
“안 되나?”
“그 회사들은 빚이 너무 많습니다.”
나는 바로 대통령 각하 앞에서 인상을 찡그렸고 내 반응에 경제수석은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는 눈빛을 보이고 있다.
“공적 자금을 투입해 줄게.”
“공적 자금이라고 하셨습니까?”
“하모, 니한테 그것들이 싼 똥을 치워 달라는 소리는 아니다. 물론 결론은 치워 달라는 소리지만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줄게.”
“제가 꼭 인수를 해야 합니까?”
“니가 안 하면 3개 은행이 부실화가 가속된다. 어디라고 했제?”
대통령 각하께서 경제수석에게 물으셨다.
‘저 사람은 일 좀 하는군.’
아마도 경제수석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환은행, 주택은행, 서민은행 세 곳입니다.”
경제수석이 대통령 각하에게 말하고 나를 잠시 봤다가 대통령 각하를 다시 봤다.
“제가 백범 대표에게 몇 마디만 해도 되겠습니까? 각하.”
“해라.”
“예, 각하.”
경제수석이 나를 봤다.
“백범 대표, 뉴스를 통해서 금융권의 정상화를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IMF와 합의를 했습니다.”
“강요를 당하신 거겠죠.”
“IMF와의 협상에서 백기 투항했다고 저와 경제부총리를 질타하고 싶으신 겁니까?”
“누구라도 그때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을 겁니다.”
“말씀이라도 고맙소. 금융권 정상화라는 미명이지만 결국 은행의 민영화가 추진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국내 기업은 금산 분리 정책에 의해서 은행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외국계 사모 펀드는 다릅니다. 저들은 그것을 노린 겁니다.”
금산 분리 정책이란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워칙을 말한다.
“금산 분리 정책에 의하면 종금사는 은행을 인수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저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행스럽게 태양 그룹은 태양전자와 퀸 화장품, 나눔종자를 자회사로 두고 있지만 계열사까지는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각각 다른 법인이죠.”
“그러니까요.”
“많이 생각하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지금은 부담스럽겠지만 결국 태양종합금융이 민영화가 진행이 되는 은행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기회에 대한 기회비용이 너무 과다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각하께서 공적 자금을 투입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여기까지가 각하께서 할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으음…….”
“제 생각으로는 은행이 민영화에 착수가 되면 외국 자본에 의해 점령을 당하게 될 겁니다. 경제인이시니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회사는 지분을 누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지배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공적 자금은 얼마까지 투입 가능하십니까?”
이익을 얻을 때다.
“1조 원까지 투입할 예정입니다.”
“1조 원이면 5개 종금사가 가진 빚의 40퍼센트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채권 은행과 협조하시는 좋은 방향을 이끌어내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임 경제수석과는 다른 경제수석이다.
“대통령 각하.”
“생각해 봐라.”
“오래 생각해도 달라질 것이 없지 않습니까.”
“안 되겠나?”
“합니다. 각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내 말에 대통령 각하는 안도하는 눈빛을 보이셨다.
“그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백범 대표, 각하께서 하실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경제수석이 바로 나를 제지했다.
“공적 자금을 바로 투입해 달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대통령 각하.”
“와?”
내가 무엇을 요구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런지 살짝 긴장하는 눈빛을 보이는 대통령 각하시다.
“제가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인마가 뭐라카노?”
대통령 각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는데 경제수석은 내가 말한 것에 대한 의도를 알겠다는 눈빛을 찰나의 순간 보였다.
‘저 인간을 믿어도 될까?’
이 부분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각하께서도 아시는 것처럼 제 아내는 사법연수원생입니다.”
“안다.”
“내년 1월에 미국 하버드 로스쿨에 교환 학생 형태로 파견이 됐으면 합니다.”
“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빛으로 다시 물으시는 대통령 각하시다.
“제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미국은 미국 본토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미국 시민권자가 됩니다.”
“니, 지금 뉴스에서 나오는 원정 출산을 하겠다고 대통령한테 말하는 기가?”
대통령 각하께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셨다.
“예, 그렇습니다.”
“이 자슥이, 정말 안 되겠네!”
“각하, 고정하십시오.”
내가 말하기 전에 경제수석이 대통령 각하를 진정시켰고 나는 그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지금 고정하게 됐나?”
“고정하셔야 합니다. 백범 대표는 모두를 속이자는 겁니다.”
“모두를?”
“예, 그렇습니다. 태양 컴퍼니는 미국 현지 법인입니다. 그 컴퍼니의 최대 주주가 백범 대표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국인이죠. 미래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겠지만 지금 당장에는 원정 출산을 통해 국민적 질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멀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백범 대표는 미국 시민권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나라를 버리겠다는 거잖아.”
“모두를 속이자는 겁니다. 백범 대표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 외국계 투자입니다. 은행이 민영화가 됐을 때 백범 대표의 자금은 외국 자본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뭐라고 할 수 없게 됩니다.”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경제수석이다.
“그런 기가?”
“아들인지 딸인지 병원에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들이 태어나면 군대 보내기 싫어서요.”
“이 자슥이 정말!”
“그렇게 보여야 합니다. 가진 놈이 나라를 버리고 미국인이 됐다고 질타를 받아야 합니다.”
“으음…….”
“저는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서 나눈 대화가 밖으로 절대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알았다.”
잠시 생각을 하던 대통령 각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예,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니는 앞으로 욕 디지게 먹을 기다.”
“감내하겠습니다.”
나는 대통령 각하에게 다부지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