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화 우회상장을 위하여?(2)
1997년 12월 1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백제증권이 부도처리가 됐고 해당 그룹에서 매각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또한, 영업 정지를 당한 다섯 개 종금사들에 의해 은행의 부실화가 가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짜라고?”
“누군가가 백제증권을 인수하고 부실 종금사 다섯 곳을 인수해야 합니다.”
경제수석이 심각한 얼굴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백제증권도 빈껍데기고 다섯 개 종금사도 빚만 득실득실한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그럼 누가 인수를 하는데? 지금이 유신 시대가 아니면 5공 시절이가? 대통령이 맡아주세요. 하면 재벌 총수가 떠안아 주나?”
“죄송합니다. 각하.”
“이런 시국에 자기 살길 바빠 죽겠는데 누가 하노?”
“그렇습니다. 하지만 처리를 해야 합니다. 백제증권은 그렇다고 치지만 다섯 개의 종금사가 파산을 신청하면 그 여파는 1금융권까지 미치게 됩니다. 현재 다섯 개의 종금사에 대출이 없는 은행은 산업수출은행, 단 한 곳뿐입니다.”
“그래?”
“예, 그렇습니다. 달러 보유와 예치금 대비 대출이 가장 적은 곳은 거기 한 곳뿐입니다.”
“산업수출은행보고 떠맡으라고?”
“그게 방법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나라에 산업수출은행 그거 하나 버티고 있는데 거기를 부실하게 만들라는 거가?”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할 때제, 그런데 재벌들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이가?”
“송구합니다.”
“그게 문제다. 나라가 어려운데 돈을 버는 것들이 따로 있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결론을 내고 추진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자. 아니 어떤 결정이라도 내야 하니 해보자.”
이것이 백범이 아는 진짜 IMF 때와 다른 것이다. 백범이 회귀하기 전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IMF의 요구대로 목줄이 잡힌 개새끼마냥 질질 끌려갔지만, 백범이 회귀한 이 대한민국은 나름대로 대비와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
“와?”
“태양종합금융투자가…….”
“거기가 와?”
“대한민국 재벌 그룹 중에 달러 보유 및 재산 보유율이 가장 높은 그룹입니다.”
놀랍게도 경제수석은 대통령에게 백범의 태양종합금융투자를 재벌 그룹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안 되면 금마한테 떠넘기자고?”
“여러 가지 방법과 보상책을 모색해서 이야기를 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백범아, 다른 것들이 다 빼앗아가기 전에 니가 다 차지해라.
대통령은 백범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방법과 보상 대책?”
“예,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경제수석을 빤히 봤다.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겁니다.”
“공적 자금? 공적 자금을 투입할 거라면 고려증권하고 종금사에 직접 투입하면 되잖아.”
“실시했었습니다.”
한 달 전에 3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종금사 지원 대책을 내놓고 종금사 정상화를 실행했었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렇제……. 그랬었제…….”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경제인이 이번 일을 짊어져야 합니다.”
“갑자기 와 금마를 그래 믿노? 내보고는 믿지 말라캤잖아.”
“태양 컴퍼니가 80억 달러를 가진 거대 투자 회사라고 합니다.”
“태양 컴퍼니?”
“예, 그렇습니다. 태양입니다. 태양…….”
“금마가?”
대통령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주재 대사관이 알아본 것으로는 미국 법인인 썬 컴퍼니 즉 태양 컴퍼니의 대표이사가 백범 대표라고 합니다.”
“아…….”
“부르십시오. 부르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자…….”
대통령은 백범의 얼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 *
강남지역 대형 공인중개소 사무실.
“아파트나 상가, 빌딩 중에 좋고 급매로 나온 것 많죠?”
황 부장 아니 백범에 의해 태양토지투자 회사 사장이 된 황 사장은 백범의 지시대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예, 많습니다. 나라가 이 꼴이 돼서 급매물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정도 금액을 낮춰서 내놨습니까?”
“보통 20~30% 낮게 내놨습니다.”
공인중개소 사무실 대표가 태양토지투자 회사 사장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렇게 봅니까?”
“좀 더 기다리시면 가격이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은 아주 못살겠다고 모든 국민이 아우성을 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태양토지투자 회사 황 사장이 담담하게 말하며 백범을 떠올렸다.
-후려쳐서 매입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싹쓸이하세요.
-좀 더 기다리면 부동산 가격은 더 하락할 것 같습니다.
-그럴 겁니다. 하지만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가 국민의 눈물과 서러움을 밟고 우뚝 서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다른 회사나 개인이 구입하게 된다면 더 하락한 금액에 사겠죠. 그걸 막고자 하는 겁니다.
-왜……?
-제 아버지께서 사업을 해도 부끄럽지 않게 하라고 하셨고 저도 부끄럽게 사업할 생각 없습니다. 푼돈 때문에 궁지에 몰린 사람들 등에 비수를 꽂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왕 독하게 마음을 먹었으니 저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등쳐야죠.
-대표님은 정말…….
-이상하죠?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르신 겁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지만 많이 벌지 말고 조금만 법시다.
-예, 대표님.
“정말 다 구입하실 겁니까?”
대형 공인중개소 사무실 대표가 황 사장에게 물었고 그제야 회상에서 깨어나는 황 사장이었다.
“다 매입합니다. 지금 나온 급매들 우리 회사가 다 매입합니다. 그리고 다른 중개소에 나온 급매물들도 모두 제게 가져다주십시오.”
태양토지투자 회사 황 사장의 말에 대형 공인중개소 사무실 대표는 입이 쩍 벌어졌다.
“예, 알겠습니다. 아마 몇 년 후면 3~4배로 뛸 겁니다.”
“그렇겠죠…….”
* * *
IMF 금융 지원 감시단의 단장실.
“환율 제한 폭 철폐,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완전 개방, 은행에 대한 민영화까지는 통과시켰습니다.”
IMF 금융 지원 감시단이라면 감시단의 목적에 맞게 대한민국 정부가 IMF가 지원한 자금을 똑바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감시해야 하는데 단장실에서는 딴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큰 것을 얻은 거지.”
IMF 금융 지원 감시단은 그들이라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비영리병원의 영리법인화입니다. 의료 서비스는 단언컨대 대한민국보다 미국의 의료 서비스가 더 뛰어납니다.”
이들은 병원을 놓고 서비스 사업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맞아, 문제는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제도야.”
“그들 중에 대형 보험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대한민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겠습니다. 제가 보고를 드린 것처럼 곧 100세 시대가 닥칠 것이고 결국 미국의 병원 사업 시스템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그 법을 통과시킨 후에 일본과 중국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만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리고 저작권 보호법도 강화해서 특허 사용에 대한 특허료 지급도 강화하는 것을 추진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네.”
“예, 감사합니다.”
“모든 일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있나?”
“현재로는 없습니다.”
“없겠지, 걸림돌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이 이 꼴이 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예, 그렇습니다. 단지 조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뭔데?”
“이 구간을 보십시오.”
보고자가 분석 자료가 담긴 서류를 내밀었다.
“이 시기에서 환율이 다시 하락했습니다. 1,890원까지 상승했던 환율이 1,720원까지 하락한 구간입니다.”
“그렇군……. 이유가 뭔가?”
“태양종합금융 회사가 보유한 달러를 이용해 부도 직전의 그룹과 회사에게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환율이 안정됐습니다.”
“그럼 걸림돌이잖아.”
“……예, 그리고 현재…….”
“현재 뭐?”
단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CIA의 정보 제공에 의하면 미국 현지 투자법인인 썬투자의 최대 주주가 백범이라는 사람이고 대한민국인이라고 합니다.”
“그래?”
“거기다가 썬투자의 지주 회사가 태양종합금융투자라고 합니다.”
“썬투자가 보유한 자금이 얼마지?”
“100억 달러 이상으로 예상됩니다.”
“개발도상국들은 애국심이 특별하지?”
“그렇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똘똘 뭉치고?”
“들의 역사에 따르면 그렇게 움직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대책을 마련해.”
“예, 알겠습니다.”
바로 대답하는 보고자였다.
* * *
미국 뉴욕 외곽에 있는 저택 비밀 회의실.
“유일한 걸림돌은 썬 투자입니다.”
노인 하나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단언하듯 말했다.
“경제가 완벽하게 무너진 대한민국에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노인이 대답했다.
“국외 자본 투자 제약의 철폐를 통해서 은행을 차지하고 민간영리병원을 설립하고 주식시장의 외국 자본 비율 제한을 철폐시킨 이 마당에서 뭐가 그리 걱정이 됩니까?”
그때 론스타에서 파견된 중년의 남자가 노인들에게 말했다.
“걱정할 것이 없다?”
“예, 그렇습니다. 결국, 썬 투자도 종합투자금융 회사입니다. 저희가 상대하겠습니다.”
“썬투자의 대주주가 한국인이야, 그리고 블랙홀 그룹과 같은 라인이지.”
“미국인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미국인이면 된다?”
“그렇습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썬투자의 대표가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 시민권자가 된다면 다 해결이 될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가 과연 그렇게 할까?”
“대한민국 내부에는 그들이 말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 참 많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제안해서 거부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의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미소를 머금었다. 이건 다시 말해 대한민국 각 계층에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 참 많다는 소리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썬투자는 미국 현지 설립 법인입니다. 세금은 미국에 내야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최대 주주가 대한민국인이 아니라 미국 국적자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있습니까.”
“없지. 추진해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론스타에서 파견 나온 중년의 남자가 대답하고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장악하고 주식시장을 통해 대기업의 주식지분을 확보하면 그 자체가 자본 식민지가 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의장님.”
이 회의에 참석한 노인 한 명이 자본 식민지라는 말을 꺼낸 다른 노인에게 의장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것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물론입니다.”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기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과거에는 영국에 있었고 그전에는 스페인에 있었소. 그때마다 우린 핍박을 받았고 괄시를 당했소. 우리가 가진 힘은 돈입니다. 자본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과거 일본 버블 경제를 무너트렸고 이제는 대한민국의 자본경제를 점령하고 중국으로 진출하는 겁니다.”
이 회의의 의장은 단호하게 말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작이 은행의 민영화입니다. 아시겠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론스타에서 파견된 중년의 남자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