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145화 끝내 IMF로 간다(3)
1997년 11월 29일, 라스베이거스 특급 호텔 스위트룸.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사기 위해 미국 최고의 도박 도시인 라스베이거스까지 날아온 나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소유한 존 터너라는 미국인을 만나고 있다.
“서명 절차만 남았습니다.”
박태웅이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소유자인 존 터너에게 말했고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3억 달러 이상을 주고 살 이유라도 있습니까?”
존 터너가 내게 물었다.
“미국의 중심이니까요.”
“의외의 대답이신 것 같습니다. 아시안은 과시욕이 엄청나다고 하더니 그 말이 정답인 모양입니다. 하하하!”
존 터너의 말이 살짝 거슬린다.
“그렇죠. 아시안은 과시욕이 남다릅니다. 그리고 저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그리고 이름 있는 것을 좋아하죠. 서명하시죠.”
15억 달러다.
기존 가치를 기준으로 3억 달러를 더 주고 사는 것이다. 한 마디로 존 터너로서는 횡재 그 자체다.
“하하하. 좋습니다. 사인해야죠.”
내가 라스베이거스로 날아오기 전에 이미 실무자 협상을 통해서 15억 달러에 합의를 끝낸 상태다. 그래서 우린 매각 계약서에 사인만 남겨 두고 있다.
스스슥, 스스슥!
존 터너가 양도 계약서에 서명했고 나는 15억 달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주인이 됐다.
“당신이 내게 3억 달러의 행운을 가져줬으니 앞으로도 나는 당신의 행운을 빌겠소. 하하하!”
3억 달러 이상을 벌었기에 저리 기뻐하는 것이다.
“존 터너.”
나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불렀다.
“왜 그러시오?”
“제 행운을 빌어주실 것이 아니라 제 행운과 함께하시지 않겠습니까?”
“뭐라고요? 하하하!”
“저와 블랙홀 그룹에 대해서 알아보시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존 터너는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3억 달러를 투자하시겠습니까?”
“투자라?”
“예, 그렇습니다. 혹시 블랙홀닷컴을 이용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소.”
존 터너는 거부이니 블랙홀닷컴을 직접 이용해 보는 것보다 비서에게 지시를 했을 수도 있고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아는 눈빛이지.’
그가 나를 직접 만나려고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매각하는 것은 금융 대리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3억 달러로 블랙홀닷컴에 투자하라는 겁니까?”
블랙홀닷컴은 투자를 받을 이유 자체가 없는 성공할 기업이다.
“블랙홀닷컴은 향후 10년 안에 세계 최대의 온라인 전자 상거래 사이트로 성장할 겁니다. 그래서 절대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왜 블랙홀닷컴을 거론하신 겁니까?”
처음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존 터너다.
“온라인으로 물품이 거래되면 오프라인으로 배송을 해야 합니다. 그 배송 회사에 투자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운송 회사에 투자하라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아니 블랙홀 그룹은 페덱스를 잡을 자신이 있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내 제안에 존 터너가 아주 크게 웃었다.
“블랙홀 그룹이 세계 최대의 운송 회사인 페덱스를 능가한다고 하셨소?”
“그게 목표입니다.”
“목표는 누구나 그렇게 잡을 수 있지, 나는 지금 딱 타이슨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타이슨?
세계적인 권투 선수다. 그리고 이제는 곧 한물갈 선수기도 하다.
‘이빨만 조심했어도…….’
그는 분명 핵 주먹을 가졌던 권투 선수였지만 결국 어느 순간부터 핵 이빨로 더 유명해졌다.
“타이슨을 압니까?”
“압니다. 권투 선수죠. 저도 권투 좋아합니다.”
“타이슨이 말했죠, 누구나 링에 오르기 전까지는 다 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그 계획은 자기한테 처맞기 전까지만 생각하던 계획이라고.”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자기에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렇소. 노 땡큐.”
존 터너의 행운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여튼 좋은 만남이었고 좋은 거래였습니다.”
나는 존 터너에게 악수를 청했다.
“여긴 라스베이거스요. 백범, 당신의 행운에 도전해 보시오.”
“카지노에서?”
“그렇소. 다들 라스베이거스에 행운을 기대하면서 오니까. 하하하!”
맞는 말이다.
‘너는 라스베이거스까지 와서 진짜 행운을 놓친 거다.’
하여튼 나는 15억 달러를 써서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소유자가 됐다.
* * *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안.
“정말 카지노 게임을 하시려고요?”
박태웅이 황당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행운에 한번 도전해 봅시다.”
나는 이미 만 달러를 환전한 상태다.
“카지노 도박은 불법입니다.”
“그 역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박태웅에게 말하고 환전한 칩을 들고 블랙잭 테이블에 앉았다.
“박태웅.”
나는 그에게 호칭을 생략했다.
“예…….”
내가 카지노에 왔다는 자체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도박을 알아야 도박장의 주인이 됩니다. 카지노를 알아야 카지노의 주인이 되죠.”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대표님.”
“이런 카지노에서는 호칭이 필요 없습니다.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때?”
“형이라고요?”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다면 형이 아우를 너무 부려먹고 계신 겁니다.”
“그런가? 하하하!”
“플레이어들은 배팅해 주십시오.”
이 블랙잭 테이블은 맥시멈이 없는 테이블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천 달러짜리 칩을 배팅했고 모든 플레이어가 배팅을 끝내자마자 딜러가 패를 돌렸고 두 번 연속 패해서 몇 분 만에 2천 달러를 날렸다.
“오늘은 대표님께서 행운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그러게.”
세 번째 판이 됐고 딜러가 플레이어들에게 카드를 돌렸다. 내 첫 카드는 2였고 그다음 카드 역시 2다.
‘2군, 벨제붑!’
블랙잭은 악마의 숫자 21을 만드는 게임이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2라는 숫자는 악마인 벨제붑을 의미한다.
‘마왕 루시퍼와 동일시되기도 하는 대 악마……!’
파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악마의 숫자가 내 앞에 놓여 있고 같은 숫자가 나오면 카드를 찢을 수 있고 추가로 카드를 더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딜러가 나를 봤고 나는 손가락을 이용해 카드를 분리한다는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바로 딜러가 내게 카드를 한 장 더 줬는데 2였다.
“또 2네요.”
박태웅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악마가 강림하셨군.”
“정말 블랙잭 게임을 잘하십니까?”
“잘하고 못하고가 어디에 있겠어. 게임의 확률은 50대50이야. 사실 인생은 원래부터 50대 50의 확률이지.”
“항상 쉽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딜러가 나를 봤다. 그리고 나는 다시 카드를 찢는다는 시늉을 손가락을 통해서 했고 딜러는 카드를 분리한 후에 내게 다시 카드를 줬다.
“또 2입니다.”
나는 지금 4장의 카드를 받았고 모두 2다. 그리고 그 넉 장을 모두 분리했다. 이렇게 했기에 나는 4천 달러를 베팅한 것이다.
* * *
“다섯 번째 카드는 9를 받았습니다.”
기존 2의 카드에 9가 붙었으니 최고의 상황이고 블랙잭 게임에서는 더블을 칠 기회가 왔다.
‘딜러가……?’
현재 딜러의 카드는 14다. 모든 면에서 내가 엄청나게 유리한 상황이라는 소리다.
‘딜러 버스트……!’
사실 블랙잭 게임은 딜러의 카드가 버스트 되는 것을 유도하는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호~”
“대단해.”
“플레이어가 정말 유리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더블!”
내가 더블이라고 말했고 딜러가 카드 한 장을 내게 줬고 받은 숫자는 9였고 20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졌다.
“와!”
구경꾼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하여튼 현재 악마가 강림했는지 20, 19, 19, 20이 만들어졌고 모두 더블을 쳐서 8,000달러를 베팅했다.
“이거 잃으시면 호텔로 직행하실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길 확률이 높은 상태다.
블랙잭은 21을 만드는 게임이고 21에 가까운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니까.
“딜러 카드 오픈.”
딜러가 말하며 나를 봤고 모든 구경꾼이 숨을 죽였다.
14!
현재 딜러의 카드는 14다. 이제부터 오픈되는 카드가 8, 9, 10 이상이면 내가 승리하고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카드에서는 10 이상의 카드가 제일 많다.
“15…….”
A 카드는 1이 될 수도 있다.
“16……!”
블랙잭 딜러는 17이 되면 카드를 더 받을 수 없다. 그리고 17 이전이면 계속 카드를 받아야 한다.
“한 장 남았습니다.”
나는 긴장하지 않고 있는데 박태웅과 구경꾼들이 숨을 죽이며 긴장하고 있다.
“21!”
딜러가 5를 오픈시켰고 21을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나는 3판 만에 만 달러를 잃은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
그렇게 만 달러를 잃고 나는 호탕하게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도박은 나쁜 겁니다.”
“액땜했다고 칩시다.”
사실 내게 만 달러는 큰돈이 아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은 만 달러가 아주 큰돈이지만 말이다.
“그러셔야죠. 더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을 했습니다.”
“도박과 게임의 차이가 뭔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멈출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 투자와 투기도 딱 그 차이다.”
내 말에 박태웅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800만 원을 날렸군.’
현재 환율은 1달러당 1,890원이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면 1890만 원을 딱 10분 만에 잃은 꼴이다.
“갑시다.”
“예, 형님.”
우리는 카지노 입구 쪽으로 걸었다.
때그르륵!
그때 내 앞에 1달러짜리 코인이 굴러왔고 내 발 앞에 부딪혔다가 멈췄고 나는 허리를 숙여 1달러짜리 코인을 주워서 앞을 보았다. 거기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Is it your money?”
싱글벙글하는 것이 슬롯머신으로 돈을 좀 딴 모양이다.
“You picked it up. It's your money.”
한마디로 자기가 돈을 땄으니 내게 선심을 쓰겠다는 것이다.
“Thank you.”
이래서 어느 나라든 잘생기고 봐야 한다.
‘내가 좀 생기기는 했지. 하하하!’
나는 미소를 보이며 박태웅을 봤다.
“1달러가 생겼네.”
“그걸로 뭐하시게요? 1달러로 만 달러를 되찾을 방법은 없습니다.”
“행운의 여신이 나를 보고 웃었잖아.”
예쁜 금발이었다. 딱 봐도 카지노에 처음 온 것 같고 처음 와서 저렇게 많이 딴 것 같다.
‘불행이 시작되겠지.’
카지노에 방문한 사람 중 가장 행운아는 처음 방문했을 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을 잃고 다시는 카지노에 오지 않는 사람이니까.
“미련이 남으시는 모양이네요.”
“슬롯머신 한 번 당길 수 있는 코인이 생겼으니까.”
나는 박태웅에게 그렇게 말하고 1달러짜리 코인을 슬롯머신에 넣고 힘껏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다리 리링, 디리리링!
틱, 틱……. 틱!
빵파라르르 파파방, 빵파르르르르 빠방!
요란한 소리도 울렸고 사방이 번쩍번쩍 플랫쉬가 터지기 시작했다.
“대, 대표님, 이, 이게 뭡니까?”
“잭팟……!”
잭팟이 터졌다.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모두가 나를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얼, 얼마입니까?”
“저기 천장 꼭대기에 쓰여 있잖아. 하하하!”
나야말로 진정한 행운아인 것이다.
“아……!”
천장 꼭대기에 붙어 있는 간판에 기록된 액수를 보고 박태웅의 입이 쩍 벌어졌다.
“7천…… 9백…… 8십…… 4만……. 2천 삼백 2십 2달러 32센트!”
아마도 이 카지노에서 가장 큰 잭팟을 터트린 것 같다.
“대표님…….”
“형이라니까.”
“거의 8000만 달러입니다.”
“일시금으로 받으면 4500만 달러 정도일 거야.”
“정말 카지노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이런 카지노를 나우루공화국에 만들 생각이거든. 하하하!”
하여튼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오늘부터 불행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끝내 IMF로 가게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