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37화 (137/415)

# 137

137화 불청객?

판교 본가.

이신과 함께 판교 본가로 내려왔고 이신은 당장에라도 김찬 할아버지에게 달려갈 것 같더니 먼발치에서 그를 보고 돌아섰다.

“잘 사는군……!”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이신이다.

“찾으시는 분이 맞습니까?”

알면서도 묻는다.

“고맙다.”

내 질문에 고맙다는 말로 대신했다.

“맞군요.”

“그나저나 네 아버지는 한결같구나.”

“제 아버지도 아십니까?”

“만난 적은 없지.”

이신이 고개를 돌려 멀리서 김찬 할아버지와 웃고 계신 아버지를 잠시 보다가 돌아섰고 이 실장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탔다.

‘혹시……!’

아버지의 행운은 이신이 만들어준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그런 거였어!’

처음부터 이신은 우리 집안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백범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강북 재건축 사업에서 재건축 업자들이 아버지를 먼저 찾아와 3억을 제시했던 때가 떠올랐다. 원래 재건축 업자들은 한 푼이라도 보상금을 깎으려는 족속들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러지 않았다.

그런 후에 아버지가 일산 땅을 구입해서 농사를 지으시고 그러다가 몇 년 후에 일산이 개발됐다.

“범아, 무엇을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지?”

내가 차에 타서 생각에 잠기자 이신이 내게 물었고 그는 이제 내 이름을 불렀다.

“처음부터 도와주신 겁니까?”

내 물음에 이신이 잠시 나를 봤다.

“그렇군요, 저희 집안의 행운이 작은할아버지의 도움이 있었군요.”

“네 아비는 한결같은 사람이니까. 정말 성님을 꼭 닮은 것은 네 아버지.”

“출발하겠습니다. 대부님.”

이 실장이 말했고 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왜 도와줬을까?’

은혜를 입었거나 조부에게 죄를 지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튼 네 아비에게 정말 고마워해야겠다. 김 상사는 내가 안 돌봐주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옆에 젊은 여자도 하나 있고, 허허허!”

조비를 말하는 것이다.

“이도야.”

“예, 대부님.”

“젊은 애들은 다른 목적이 있지 않겠냐?”

나는 오는 길에 김찬 할아버지에 관해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김찬 할아버지가 아이가 됐지만, 순천 염전의 주인이라는 사실도 말해 줬다.

“제가 신경을 쓰겠습니다.”

“범이 말로는 김 상사가 아이가 됐다고 하니 마음 다치지 않게 멀리서 신경을 써줘라.”

“예, 알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신을 보며 말했다.

“왜?”

“돈은 그 젊은 여자가 더 많습니다.”

“그래?”

“예, 조비라고 청담동에서 알아주는 무속인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딴생각이 있어서 접근한 줄 알았는데 전생을 떠올렸답니다.”

“못 믿을 소리만 하는구나.”

“임신도 한 것으로 압니다.”

“허허허, 그래?”

“예, 그러니 그냥 지켜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그래야겠구나. 이도야.”

“예, 대부님.”

“애가 태어나면 유전자 검사부터 해봐라.”

역시 의심 많은 이신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 태어난 아이가 김 상사의 아이라면 나 죽거든 이도 네가 돌봐줘라.”

“예, 알겠습니다. 대부님.”

“이제는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거겠지…….”

자신이 진 빚이 있기에 도왔다는 투로 말하는 이신이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느껴졌다.

* * *

여당 대표실.

3일이 지났다.

IMF 비밀 조사단이 은밀히 입국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온 천하에 밝혀졌다.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것 때문에 여당 대표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그와 함께 대통령의 지지율도 6%까지 하락했다.

“극단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조 의원이 여당 대표에게 말했다.

“첩첩산중입니다. 틀렸어요. 이번 대선은 틀렸습니다.”

여당 대표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결국, 현 정부가 국민을 속인 겁니다. 그 포화를 대표님께서 맞고 계신 겁니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뭡니까?”

여당 대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 의원에게 물었다.

“대통령 각하를 탈당시키는 겁니다.”

“각하를?”

여당 대표는 놀란 눈빛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미 국민은 대통령 각하를 등졌습니다. 선거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각하의 탈당을 종용하셔야 합니다.”

“으음…….”

“그래도 아직은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계십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럴까요?”

“예, 보수층의 지지율이 단단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백범 대표를 만나셔야 할 때입니다.”

“우선 쉬운 일부터 풉시다.”

여당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내를 버리겠다고?”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대선을 위해서 탈당하라고?”

“예, 송구합니다.”

“해야지, 하라고 하면 해야지.”

대통령은 순순히 여당 대표의 말을 들어줬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이번 대선에 꼭 이기기 바랍니다.”

“예, 반드시 승리하여 정권을 유지하겠습니다.”

“내가 요즘 머리가 마이 아파요.”

“예, 각하.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여당 대표가 묵례하고 돌아섰고 자기 뜻대로 됐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이게 토사구팽이지, 으흐흐!’

* * *

1997년 11월 7일, 백범의 아파트 거실.

[대통령께서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서 새한국당을 탈당을 하시고 무소속으로 전향하여 오늘 오후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새한국당 탈당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무여당 체제에 돌입하게 됐습니다. 무여당 체제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일로…….]

나와 은혜는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은혜는 내 무릎 위에서 잠든 상태다.

‘결국, 토사구팽을 당하셨군.’

여당 대표의 강요에 의해서 무소속을 선언하셨을 것이다.

[이번 대통령의 탈당 이후 새한국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습니다. 이는 지난 국제호텔 화재 사건으로 인해 IMF…….]

모든 것은 정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대선에 집중된 상태다.

-네놈의 짓 때문에 IMF 조사단이 철수를 했다.

각하께서는 내게 전화를 하셨다.

-네놈 짓이지?

-저 아닙니다.

-입술에 침 발라라.

-죄송합니다.

나는 각하에게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결국 IMF로 가야겠지……!’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IMF가 다시 입국할 때는 괘씸해서라도 더 큰 요구를 할 것 같다.

‘대비해야지……!’

이미 이 실장을 통해서 이신의 12억 달러를 스위스 은행에서 미국 블랙홀 그룹 법인 계좌로 입금받은 상태다.

-입금 완료했습니다.

이 실장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국의 닷컴 버블에 투자할 겁니다. 그리고 최대한 단기 수익을 올릴 겁니다.

이신의 12억 달러를 박태웅 대표가 운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식 투자가 아닌 투기로 단기간에 수익을 올릴 계획이다. 그래서 나는 단기간에 오를 주식을 미리 알려준 상태다.

-곧 미국, 월드컴과 MCI 통신사가 엄청난 대규모의 합병을 선언할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박태웅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렇게 예측하십니까?

이 말은 일주일 전에 해준 말이다.

-IT 열풍이 대규모 인수합병을 만들어 낼 겁니다. 아마도 미국 역사에서 최대 규모의 합병 발표가 될 것 같습니다.

-예측력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박태웅 대표는 예측력이라고 했지만 내가 미래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투자하세요. 12억 달러로 최대 다섯 배의 수익을 올려야 합니다.

-5배면 투자가 아닙니다. 그건 도박적 투기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절대 손해를 보면 안 됩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에게 투자받은 돈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하여튼 이신의 자금은 미국 IT 버블에 투자가 됐다. 그리고 어느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때 사모 펀드 형태로 한국에 유입시킬 것이고 그 시기는 IMF가 나를 위해 모든 외환 투자 제약을 철폐하게 만든 후일 것이다.

‘IMF는 내 사냥개다.’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나는 지금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왜냐고?

거대한 괴물과 싸우고 있으니까.

딩동, 딩동, 딩동!

그때 요란하게 초인종이 울렸고 나는 바로 인상을 찡그리며 내 무릎에서 잠들어 있는 은혜를 봤다. 은혜가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밖에 써 붙였는데!’

확 짜증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누가 왔나 봐요…….”

잠에서 깬 은혜가 내게 말했다.

“그러게요.”

“나, 신당동 할매 떡볶이~”

요즘 부쩍 먹고 싶은 것이 많아진 은혜다.

“바로 사서 올게요.”

은혜의 입덧과 먹거리 제공을 위해 나는 리스트까지 꾸렸고 120개 업체가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강제(?) 영업을 위해 나는 꽤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지만, 돈을 버는 것은 다 이럴 때 쓰려고 버는 것이라서 하나도 아깝지 않다.

딩동, 딩동, 딩동!

다시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바로 다녀올게요.”

“예, 백범 씨.”

은혜가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바로 외투를 챙겨 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백범 대표……!”

아파트 현관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여당 대표였다.

“쓰여 있는 것 못 보셨습니까?”

“뭐라고요?”

“이렇게 쓰여 있잖습니까.”

[초인종 절대 금지. 문 두드림 절대 금지. 부탁드립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현관문에 붙인 문구를 가리켰고 여당 대표는 내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자기가 이렇게 직접 찾아왔는데 문 앞에 세워두고 있냐는 눈빛이고 그저 나를 괘씸해서 하는 눈빛이다.

“아……. 못 봤소.”

“안 보셨겠죠. 대선 때문에 표만 보이실 테니까요.”

“으음…….”

여당 대표는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백범 대표님, 대표님께서 백범 대표님을 이렇게 찾아오셨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여당 대표를 따라온 국회의원이 내게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백범 대표, 우리 이야기 좀 합시다.”

여당 대표가 찾아온 것은 모든 언론이 나를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출마 의사가 전혀 없다. 하지만 여전히 13~15%의 지지를 받고 있기에 지지 선언을 해주길 바라서 찾아온 것이다.

‘역시 표만 보고 머리를 숙이는구나…….’

정치 역학만 존재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요.”

“바빠요?”

“신당동에 가야 합니다.”

“거기는 왜 갑자기 가는 겁니까?”

여당 대표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조심히 문을 닫았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네요.”

“뭐, 뭐라고요?”

여당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 아내가 임신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미리 전화를 주시고 오셨으면 좋았을 것을…….”

“으음……!”

여당 대표가 불쾌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저는 대표님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백범 대표……!”

“저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신의 지시를 받은 그 중년의 남자는 총풍 사건을 언론에 터트리지 않았다.

-가장 치명적인 순간이 왔을 때 공개가 될 겁니다.

이 실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입니까?”

여당 대표가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물론 지금은 그럴 생각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당 대표는 계속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야당과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언젠가는 야당에서도 내게 지지 선언을 요구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야당을 지지할 참이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확보할 참이다.

“오늘은 정말 본의 아니게 죄송합니다.”

“떡볶이 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여당 대표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대표님, 저는 아무나 함부로 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보다 지금의 떡볶이가 더 중요합니다.”

내 말에 멍해지는 여당 대표와 그 측근들이고 측근들의 일부는 기자들을 대동하지 않고 왔다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는 눈빛이다.

“제 아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졌습니다.”

“뭐라고요?”

“아이가 대한민국의 미래 아닙니까.”

또 한 번 멍해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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