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화 빛과 어둠의 공존?(3)
“죄송합니다.”
쉽게 넘어오지 않는 이신이다.
“잠시 이야기나 들어보십시다.”
세계 최고 부자라는 말에 살짝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입니다. 온통 모래뿐이죠. 저는 그 사하라 사막에 꽃을 피울 생각입니다.”
잠시 관심을 보였던 이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직설적인 설명을 좋아합니다.”
나를 빤히 보는 이신이다.
“죄송합니다.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의 황폐한 사하라 사막 부지를 사들여서 녹지로 만들 겁니다. 그리고 옥토가 된 그곳을 가진 것이라곤 석유와 모래밖에 없는 중동 국가에 나눠 판매할 생각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국제 기획 부동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신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된다고 할 때 불가능이 만들어집니다.”
“어떻게 사막에 녹지를 만들어 옥토로 만든다는 거야?”
내가 하는 말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이신이 내게 처음으로 반말을 했다.
“홍해가 있습니다.”
나는 이신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하하하, 몽상가, 망상가, 철부지군.”
다시 한번 나를 정의하는 이신이다.
”다 좋은데 무슨 돈으로. 설마 내 돈으로?
이신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첫 시작은 그렇게 될 겁니다. 나우루공화국에서 70억 달러를 빌릴 생각입니다.”
빌린다는 것은 나우루공화국의 국부 펀드를 국제 핫머니 시장으로 이끌겠다는 소리다.
“나우루공화국이라……?”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12억 달러.”
“사하라 사막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은 가난하죠. 그리고 정치가 썩었습니다. 그러니 충분히 쓸모없는 사하라 사막을 제게 팔 겁니다.”
“팔아준다고 해도 어떻게 지키지?”
핵심을 찍어내는 이신이다.
“방법이야 찾아보면 많지 않겠습니까? 하여튼 그렇게 그들에게, 아니 전 세계에서 쓸모없다고 판단이 되는 사하라 사막을 사서 홍해와 바다를 이용해 수로를 건설할 겁니다.”
“건설이라고 했나?”
이제는 내가 완전히 반말을 하는 이신이다.
“그렇습니다. 몽상가적 발상이지만 대한민국 건설 경기는 활성화가 될 것입니다. 수로가 완성되면 그 수로를 통해 사하라 사막을 초지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건설 회사를 설립하겠군.”
“그렇습니다.”
“상장을 할 것이고?”
“당연하죠. 해외 투자도 이끌어낼 것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판도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 몽상가적 프로젝트가 10년 안에 성공을 하게 된다면 중국 고비 사막 프로젝트를 시작할 생각입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겠다는 건가?”
“꿈을 제시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겁니다. 사기가 아닙니다.”
“진짜로 그렇게 하겠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그리고 아랍 국가에 판매할 생각입니다. 100배 이상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일이야. 12억 달러에 70억 달러? 그 정도로는 시작도 못 할 일이네.”
“제가 언제 82억 달러로 시작한다고 했습니까?”
나는 이신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럼?”
“저는 82억 달러 중 32억 달러를 미국 닷컴 열풍에 투자할 겁니다. 5년 안에 32억 달러는 1000억 달러가 될 겁니다.”
나는 이신에게 자신 있다는 눈빛을 보였다.
“블랙홀 그룹도 자네 소유지?”
“그렇습니다.”
“엄청난 존재로 변해 있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 집안에 도둑들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막아야죠. 같이 막고 지켜내고 차지하시겠습니까?”
“하하하, 결국 나처럼 악당이군. IMF를 모든 규제를 푸는 사냥개로 쓰겠다는 소리군.”
“그럴 생각입니다. 저와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내 말에 이제는 고민하는 눈빛을 보이는 이신이다.
“어르신, 어르신도 뜨거웠던 젊은 날이 있지 않았습니까?”
“국제호텔에 불이 난다고 했지?”
내 물음에 이신은 딴소리를 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럼 IMF 조사관들이 튀어나오고 자네가 준비해 놓은 기자들에게 발각이 되겠지?”
“대한민국이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번 대선의 변곡점이 되겠어. 그러니 내가 막을 생각이 없다면 치명타를 날려야겠어.”
“예?”
“밖에 있나?”
이신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예, 대부님.”
이 실장은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지금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이 실장의 목소리가 아니다.
“들어오게.”
그와 함께 조심히 문이 열렸고 중년의 남자가 들어와 이신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보게.”
“예, 대부님.”
“내가 결정을 했네. 내가 면회는 자주 감세.”
“감사합니다. 대부님.”
중년 남자가 이신에게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뭐지……?’
어떤 치명타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인데 문뜩 이 시기에 총풍 비리 사건이 터진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시게, 가서 공명정대한 세상 한번 만들어 보시게.”
“예, 알겠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이신에게 묵례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자네에게 말했지, 치명타를 날려야겠다고. 아마 세상 사람들은 총풍이라고 말할 거야.”
놀랍다.
내가 혹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총풍 사건이 이신을 통해서 터지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 기억도 없다!’
나는 이신에 대한 많은 기억이 소멸한 것 같다.
“자네와의 호칭을 정리해야겠군.”
이 말은 이신이 내 제안을 수락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됐다.
“예, 어르신.”
“성님의 손자이니 앞으로 범이라고 부르지.”
“예, 감사합니다.”
“사업적 파트너로 빛과 어둠이 공존하게 될 것이야. 범이 네가 이도에게 밤에도 반짝이는 별이 있고 달도 뜬다고 했지?”
“그랬습니다.”
“내가 너희 둘의 달이 되어 주마.”
눈빛이 변하는 이신이다. 그리고 그 눈빛에는 살기도 감돌고 있다.
“범아.”
“예, 조부님……!”
나는 이신을 조부라 불렀다.
“조부라……. 그래, 조부지. 내가 대한민국에 실망한 것처럼 너도 나를 실망하게 하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이도를 배신하지 마라.”
이건 경고다.
“친구를 배신할 일은 없습니다.”
나는 이신에게 말하고 이신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배신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이신의 눈빛이 변했다.
‘뭔가 있다……!’
그게 무엇인지 지금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언제냐?”
이신이 내게 물었고 나는 시계를 봤다.
“지금입니다.”
“쥐새끼들이 어떤 표정인지 궁금하군. 하하하!”
* * *
국제호텔 스위트룸 IMF 비밀 실무자 1차 협상장.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비밀리에 입국했습니다. 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IMF 실무자 대표가 신임 경제수석에게 말했다.
-늦춰라. 벌벌 겁먹을 것 없다.
신임 경제수석은 대통령이 한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지의 표현이 불합리하고 강압적인 요구가 된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신임 경제수석의 말에 IMF 비밀 조사단 단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실 신임 경제수석의 견해 표명은 한 마디로 자신들을 불러놓고 딴소리를 하는 꼴이었다.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소?”
“그렇습니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요구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합의점이 찾아진다면 그때부터 공식 협상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으음……!”
“처음 입국 요청을 했을 때와 지금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핫머니가 갑작스럽게 빠져나갔지만 환율은 안정세를 찾았고 추가로 부도처리가 되는 기업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신다면 제가 각하께 보고를 드리기 곤란하십니다.”
“왜 갑자기 딴소리합니까?”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은 모두 각하의 의중이십니다. 그리고 사실 대선 시즌입니다. 각하께서도 합리적인 요구사항을 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신임 경제수석의 말에 IMF 조사단 단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러면 곤란합니다.”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에에에에엥. 에에에엥!
오후 5시 30분이 됐고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에에에에엥!
“뭐야?”
IMF 비밀 조사단 단장은 갑작스러운 비상벨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4층에서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투숙객께서는 호텔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대피해 주십시오.
스피커에서 한국어로 비상 대피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고 신임 경제수석의 표정도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거?”
“불이 난 것 같습니다.”
“문틈에서 연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피하셔야 합니다.”
보좌관의 말에 신임 경제수석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피하셔야 합니다.”
신임 경제수석이 조사단 단장에게 말했고 그도 놀란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쫘아악, 쫘아아악!
그 순간 천장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굵은 물줄기가 뿜어졌고 그 물줄기들이 신임 경제수석과 IMF 비밀 조사단을 쥐새끼 꼴로 만들었다.
“이런 젠장!”
“불이야!”
“불이야-!”
“모두 대피하십시오.”
밖에서는 불이라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그 소리에 사람들은 더욱 겁을 먹었다. 그리고 정신이 나간 것처럼 호텔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대피를 시작했다.
* * *
국제호텔 건물 밖.
백범의 계획대로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호텔 건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물에 흠뻑 젖은 신임 경제수석과 외국인들을 발견하고 우르르 달려들어 에워쌌다.
“신임 경제수석님,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옆에 있는 외국인들은 누구입니까?”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IMF와 비밀리에 협상을 시작한 겁니까?”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신임 경제수석은 공황에 빠지기 시작했고 IMF 비밀 조사단 단장은 옆에 있는 통역관에게 통역을 받아 듣자마자 인상을 찡그렸다.
“현 정부가 국민을 속인 겁니까? 대한민국은 IMF로 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게……!”
이렇게 백범에 의해 비밀리에 진행이 됐던 IMF 비밀 실무자 협상은 만천하에 공개가 됐고 그와 동시에 청와대의 보도 제한 요청을 거부한 모든 언론사가 일제히 현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은 창밖으로 보며 백범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미 그는 IMF 비밀 실무자 회담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국제호텔 화재 사고 때문에 만천하에 밝혀졌다는 것을 보고 받은 상태였다.
“고얀 놈……!”
대통령은 백범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졌다.
‘금마는 누구도 못 막는 망나니구나. 하하하!’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모든 비난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상태지만 외환 위기의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흡족해하는 대통령이었다.
‘나중에 자서전을 내면 되지…….’
그리고 그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그저 무능한 대통령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은 대통령이었다.
정말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대통령이었다.
* * *
이신의 고택 별채.
“대부님.”
이 실장이 돌아왔다.
“차가 준비됐습니다.”
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봤다.
“범아, 부축해라.”
“예, 조부님.”
자신이 없던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이 실장이 직감했다.
“이도야.”
“예, 대부님.”
“너도 나를 부축해야지.”
“아,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이 실장은 이신을 부축했다.
“이렇게 쭉 가는 거다. 그래, 범이 말처럼 도둑놈에게 빼앗기지 말고 우리가 다 차지하자.”
이신이 내 편이 되어 준 것은 이게 진짜 목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