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135화 빛과 어둠의 공존?(2)
오후 3시 30분 정부청사 건물 안.
청와대 신임 경제수석이 외환 위기 대책 본부장으로 임명이 됐다. 그리고 그는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비밀리에 입국한 IMF 조사단과의 1차 실무자 협상을 위해 국제호텔로 가기 위해 정부청사에 있는 대책 본부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다.
-최 수석
-예, 각하.
-반드시 비밀 협상으로 진행해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늦춰라. 내 임기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야 하지 않는다.
-국가 위기 상황입니다. 각하.
-안다. 그건 내도 알제. 그래도 늦춰라.
-……예.
신임 경제수석은 그때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대통령의 지시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다고 대답했다.
“갑시다.”
신임 경제수석이 복도를 걸으며 다른 실무자들에게 말했다.
“수석님.”
그때 그를 보좌하던 한국은행 통화정책 담당 박 팀장이 신임 경제수석을 불렀다.
“왜?”
“청사 밖에 기자들이 쫙 깔렸습니다.”
통화정책 담당 박 팀장의 말에 신임 경제수석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갑자기?”
“정보가 흘러나간 것 같습니다.”
“이런……!”
신임 경제수석은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한국은행 통화정책 담당 박 팀장의 물음이 물었고 신임 경제수석은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비밀협상으로 진행해야 한다.
다시 대통령이 한 말이 떠오르는 그였다.
“기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로는 대략 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극비 정보가 흘러나갈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박 팀장은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신임 경제수석에게 잘못했다고 말했다.
“됐습니다. 공식 협상도 아니고 공식 협상을 준비하는 비밀 실무자 조율단계입니다. 그러니 아니라고 해요. 아닙니다. 아닌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때 아무 말도 없던 경제부수석이 신임 경제수석을 봤다.
“강력하게 부정하셔야 합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데 뭐를 더 강력하게 부정합니까? 그냥 한번 만나는 겁니다. 갑시다.”
신임 경제수석은 그렇게 말하고 정부청사를 나섰고 그가 정부청사에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에워쌌다.
“신임 경제수석님, 건국 이후 최대의 외환 위기가 닥쳤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통화정책 집행에 문제가 다소 발생해서 그 여파로 갑작스럽게 환율이 급등했지만, 현재 점차 환율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1,896원까지 상승했다가 다소 하락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되면 외환 위기 아닙니까?”
“아니라니까요.”
“IMF 비밀 협상단이 입국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기자 하나가 신임 경제수석을 보며 소리쳤고 그 소리에 모든 기자가 IMF를 거론한 기자를 봤다.
“이봐요, 그런 헛소리를 어디서 들었습니까?”
“그건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기자들이 찌라시를 듣고 내게 질문을 하니 답답합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IMF로 가는 겁니까?”
IMF를 거론했던 기자가 집요하게 신임 경제수석에게 물었다.
“모두 잘 들으십시오. 대한민국은 절대 IMF로 가지 않습니다. 환율이 안정세로 돌아섰고 수출은 여전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IMF로 가야 합니까? IMF는 절대 없습니다. 가지 않습니다.”
신임 경제수석은 강력하게 말하고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사라졌다.
“진짜 IMF가 입국했답니까?”
이제는 기자들이 IMF를 거론했던 기자에게 묻기 위해 모여들었다.
“정말이냐고요?”
“왜 그걸 나한테 물어요, 취재하세요. 취재를.”
IMF를 거론했던 기자는 피식 웃고 사라졌다.
* * *
이신의 고택 별관 다실.
“제 조부님을 아십니까?”
“압니다. 내가 성님이라고 불렀던 분이지.”
이신이 내게 말했지만 내가 가진 이신의 기억 속에는 이신이 말한 기억이 없다.
‘사라진 기억이다.’
만약 내게 이신이 말한 그 기억이 존재했다면 지금의 담판은 다른 국면으로 진행이 됐을 것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구나……!’
이신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할 것 같다.
“그, 그렇습니까?”
“그랬답니다. 내가 이렇게 늙은 퇴물이 됐지만 그래도 성님과 뜨거웠던 적이 있소.”
“독립운동까지 하셨습니까?”
“까지?”
내 말에 이신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변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나 물어봅시다. 조부를 닮아 망상가라서 선우 재단과 관순 재단을 설립한 것입니까?”
선우 재단 이야기를 꺼내면서 김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이신이 먼저 선우 재단 이야기를 꺼냈다.
“1조 원이나 기부하겠다고 발표를 했던데 정말 그럴 겁니까? 한 푼이라도 더 있어야 백범 대표가 말하는 국가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르신, 저는 이제부터 솔직해지겠습니다.”
대부님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다시 어르신이라는 호칭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부와 호형호제를 하던 사이라면!’
이신과 나는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솔직?”
“예, 그렇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울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질 기회가 생긴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어르신을 찾아온 것은 제가 다 차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라를 살리는 영웅의 모습을 취하기 위함입니다.”
“진심이오?”
“예, 그렇습니다. 국부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애국이지 않습니까.”
“백범 대표는 백범 대표의 조부와는 좀 다르다는 말씀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선우 재단은 올바른 의지로 세워졌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말씀을 드린 것처럼 제 부친과의 약속이었고 작은 우연이 만든 인연 때문에 선우 재단 설립 시기를 앞당겼습니다.”
“작은 우연에 의한 인연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여수에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염전 노예로 사시던 할아버지를 구해드리고 식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랬나요?”
“예,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또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6.25 참전 용사로 훈장까지 받은 분이라고 하더군요.”
내 말에 이신의 눈빛이 달라졌다.
“으음……. 참전 용사가 염전 노예가 됐다. 그렇지, 이런 대한민국이었지……!”
대한민국을 증오하는 눈빛을 보이는 이신이다.
‘증오가 오늘의 이신을 만들었다.’
이것까지는 나는 알고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김 상사라고 불리더군요.”
“김 상사?”
이신의 입장에서는 흥분할 수밖에 없는 단어다.
“왜,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으음, 아, 아닙니다.”
처음으로 이신이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우 재단의 발족을 앞당겼는데 그 일이 여당 대표의 공격을 막는 대비책이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백범 대표…….”
“예, 어르신.”
“그 김 상사의 이름이 뭡니까?”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 상사라는 말이 나오자 이 실장의 표정도 달라졌고 한없이 궁금한 눈빛을 보였다.
“혹시 이름을 압니까?”
“예, 압니다. 김찬 할아버지십니다. 안타깝게도 모진 구타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아이가 되셨습니다.”
“뭐라고 했소!’
목소리가 커지는 이신이다.
“대부님……!”
이신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 실장이 이신을 불렀고, 이신은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작은 신음을 터트리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어르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선우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부터 빛의 자리에 서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러면서 제가 다 차지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친구와 손을 잡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르신.”
“나를 이제 대부님이라고 부르지 않는군…….”
“제 조부와의 인연이 있다고 하시니 제가 어찌 어르신을 대부님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내 말에 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드릴 수는 있소. 하지만 나는 망상가가 아니오. 망상을 위해서 돈을 쓸 수는 없소.”
다시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이신이다.
“아이가 되신 김찬 할아버지께서 그리되시고도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하시더군요.”
“그, 그랬습니까?”
나는 집요하게 김찬 할아버지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 말은 이신이 자신이 지휘하는 소대원들에게 해줬던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진 이신의 기억은 한국전쟁 이전의 기억이 없다. 그전의 기억은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렇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셨지만, 가끔 젊은 저의 심장을 뛰게 하시는 말을 참 많이 하십니다. 일전에는 짧은 인생 영혼 조국을 위해라고 외치시더군요. 가끔 그렇게 정신이 나가실 때가 있는데 그때가 되면 저를 소대장 동무라고 부르십니다. 참 가여우신 분입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데 그렇게 소대장 동무라는 분을 그리워하십니다.”
내 말에 이신이 바르르 떨었다.
“백범 대표…….”
“예, 어르신.”
“내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겠소?”
걸려들었다.
“예?”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소.”
“정말입니까?”
이신이 나를 보고 있기에 놀란 척을 했다.
“그 사람 어디에 있소?”
“그것이…….”
“이도야.”
“예, 대부님.”
“차를 준비해라. 바로 가봐야겠다.”
“예, 알겠습니다.”
이신이 이렇게 서두를 줄은 예상 밖이다.
“어르신, 제 부탁에 관한 결정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 일과 이 일은 다른 일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백범 대표의 부탁보다 이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십니까?”
“그렇소.”
“그럼 차가 준비될 때까지 제가 사업 이야기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에는 성공했다.
“꼭 해야겠소?”
김 상사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할 소리를 이 자리에서 다 할 참이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가진 두 번째 사람과 세 번째 사람을 만드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이신이고 세 번째는 이 실장이다. 하지만 그 둘이 합쳐도 첫 번째를 넘어서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저입니다.”
나는 이신을 보며 웃어 보였고 이신은 내가 정말 포부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생각을 하는 눈빛이다.
“집안 단속이 끝나면 바로 세계 진출입니다.”
“좋소이다. 무슨 사업이오?”
“어르신, 이제는 말씀을 놓아주십시오. 제 조부님과 호형호제를 하셨던 분이시니 제게는 작은할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백범 대표, 과거의 인연으로 나를 묶으려고 들지 마시오.”
다시 냉정함을 찾는 이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