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34화 (134/415)

# 134

134화 빛과 어둠의 공존?(1)

이신의 고택 별관 다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내 앞에 나라고 정의하기 싫은 내가 앉아 있기에 나는 지금 딱 거울을 노려보고 있는 기분이다.

사악하게 늙어버린 악당.

영웅이 되고 싶어 했던 젊은 청년의 추악한 말년의 모습을 나는 보고 있다. 그리고 이신도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백범…… 이라고 합니다.”

떨린다.

내가 오늘의 마음을 버린다면 저 추악한 모습으로 변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는다.

“어리신 분의 행보가 참 소란스럽디다.”

이신이 내게 말했다.

나는 누구보다 이신을 잘 안다. 내가 이신이었으니까. 아니 내가 나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손해를 봤군.’

이신의 대한민국의 흑막이라면 흑막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모든 추악한 일들에 관여하며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사나운 승냥이……!’

그리 욕심 많은 존재가 외환 위기의 기회를 포착 못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고 나는 내가 가진 기억을 더듬어 이 시절의 이신의 행보를 떠올려야 했다.

‘똑같다!’

회귀하고 영혼이 백범의 몸에 이입된 후 걸었던 행보를 이신은 똑같이 걸었었다.

은밀히 달러를 매집했고 종금사들이 파산했을 때 그중의 몇 개를 차명으로 사들여서 저축은행으로 바꿔놨다. 그리고 그 저축은행 중 또 몇 개를 이용해 금융 사기로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했었다.

그게 전부겠는가?

폭락한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을 싹쓸이해서 부동산 재벌로 등극했고 강남 부동산값의 폭등을 조장해 막대한 이익금을 챙겼다.

‘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다 쓰려고……?’

그러고 보니 이신은 돈을 쓸어 담기는 했지만 어디에 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아귀다.

지옥에서 살아야 하는 굶주림에 아우성을 치는 아귀 말이다.

그런 아귀가 바로 이신이다.

살아있는데 지옥에서 사는 존재.

그게 이신이다.

‘너도 뜨거웠던 날이 있지 않았냐……!’

이신은 내게 말했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와 나는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다.

-짧은 인생, 영원 조국을 위해! 조국의 총탄이 되어 빨갱이들의 심장에 꽂히자.

내가 이신이었을 때 자신의 중대원들에게 열변을 토하던 외침이 내 뇌리에 떠오른다. 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쥔 그의 젊은 날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영웅이 되고 싶었던 청년이 어떻게 괴물이 됐을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 변곡점이 어디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젊은 영웅이 추악하게 늙으면 이신이 되는 것이다.

“어르신……!”

나는 착잡한 어투로 이신에게 말했다.

“어르신?”

“예, 어르신, 제 소란스러운 행보 때문에 어르신께 손해를 많이 끼쳐드린 모양입니다.”

내가 이신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나를 상대해야 한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싫어하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 기억들을 이용해서 그와 공존하면서 IMF 위기를 극복하고 돌파하고 저항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순간이다.

‘새로운 세상……!’

그래 맞다.

이신이 원한 것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결심의 시작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아무런 보상도 대우도 받지 못했던 자신의 소대원들에게서 시작이 됐다.

그랬다.

그랬던 것이다.

“어린 분께서 내게 손해를 끼치기는 했소. 이도야.”

“예, 대부님.”

아무 말 없이 나와 이신을 보고 있던 이 실장이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얼마더냐?”

“1조 원입니다.”

“어리신 분께서…….”

“백범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어르신.”

“이름을 불러 달라?”

“그렇습니다.”

“왜요?”

이신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아끼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신은 이도와 또 한 명의 양자라고 할 수 있는 이숙만 이름을 부른다.

‘어떤 면에서는 이숙을 이도보다 더 아끼지.’

그래서 나는 이신에게 내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다.

“그것이 부르고 불리기 편하지 않습니까?”

“나는 함부로 누구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어리신 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어리신 분.”

이신이 나를 불렀다.

“예, 어르신.”

차마 대부라고 부를 수 없다. 그 누군가밖에 되지 않는 존재가 이신을 대부님이라고 불렀을 때 이신은 분노한다. 그래서 가장 비슷한 말로 그를 부르고 있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내 손해를 어떻게 만회해 주시겠습니까?”

눈빛이 달라지는 이신이다.

“어르신, 어르신도 아시는 것처럼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약탈 자본이 이미 이 나라에 들어와 있습니다. 과거에 제물포 항구에서 일본군이 들어온 것처럼, 압록강을 건너 중공군이 밀려 내려온 것처럼 이 나라를 집어삼키기 위해 밀려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 누구의 나라?”

이신이 인상을 찡그렸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신에게 대한민국은 조국이 아니라 그저 이용할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젊은 날 목숨 바쳐 싸웠던 모든 이들의 나라입니다.”

처음으로 이신이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나는 지금 그의 아픈 곳만 찌르고 있다.

“그런 나라는 이제 없소.”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누가?”

“저와 이 실장이 만들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지켜보시게 될 것입니다.”

“나는 허풍쟁이는 싫어합니다.”

“제가 한 말이 모두 허풍처럼 들리십니까? 제가 한 행동 때문에 어르신께서는 몇 주 만에 1조의 이익을 가지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달러를 사셨겠지요. 2,500원 이상 예상을 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현재 1,720원입니다. 제 행동 하나에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게 달러를 환전한 45개의 기업이 도산하지 않았습니다.”

“으음……!”

“17억 달러입니다. 더 악화가 되는 것을 막은 자금이 고작 17억 달러입니다.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10억 달러, 20억 달러?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그 달러가 다시 이 나라를 외환 위기에서 또 약탈 자본의 마수에서 건져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겁니다.”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나라가 흔들릴수록 나는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소. 주식이 폭락하고 경제가 흔들리게 되면 부동산도 폭락하지, 그 폭락에서 나는 이익을 챙기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할까?”

“소탐대실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참 잘하시는구려.”

“욕먹으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돈을 버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부질없는 짓이오.”

“그러십니까? 그렇게 마음을 닫아버리신 겁니까?”

나는 이신을 자극하고 있다.

“어리신 분, 내가 왜 마음을 닫았다고 생각을 하시오?”

“누구에게나 뜨거운 젊은 날은 있지 않았겠습니까?”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나라를 위해서 같이 손을 잡자는 설득으로는 절대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하라의 꽃과 김찬!’

내가 가지고 온 패는 두 가지다. 그 두 가지의 패를 적절하게 꺼내야 한다.

“내 젊은 날은 꽃잎 떨어지듯 떨어져 버렸소. 내게 어리신 분의 망상을 말하지 말고 이익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오.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달러 때문인 것 같으니 그 달러를 받아가려면 망상이 아닌 현실의 이익을 말씀하시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손해를 본 1조 이상부터 시작해야 할 겁니다. 그게 가능하시겠습니까?”

여전히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이신이다.

“어르신, 제가 당장 어르신의 이익을 도모해 드리지는 못하지만 제가 혼자 움직였을 때 어르신께서는 앞으로 3조 이상의 손해를 더 감수하셔야 합니다.”

“뭐라고?”

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이신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3조의 이익을 올리지 못하게 되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째서?”

“제가 개인 자격으로 또 태양종합금융투자 법인의 이름으로 외국에서 70억 달러의 사모 펀드를 유치할 생각입니다.”

“하하하, 망상이 지나치시군요. 누가 대한민국에 그리고 그대에게 그 막대한 자금을 빌려준단 말인가?”

“제가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파악도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내 말에 이신이 이 실장을 봤다.

“백범 대표가 나우루공화국이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보고했던 작은 섬나라?”

“예, 그렇습니다. 그 이후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서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로 20억 달러, 국외 법인으로 7억 달러 이체되었습니다.”

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이 실장이었다.

“허허허, 어리신 분이 정말 수완이 좋고 그 수완에 부자가 되셨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70억 달러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솔직해지겠습니다. IMF가 대한민국에서 외국 자본의 투자를 자유롭게 만든다면 저는 이익입니다. 또한, 사모 펀드가 은행을 차지할 수 있게 길을 연다면 그 역시 저는 이익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소탐대실입니다. 대한민국은 파이가 너무 작습니다. 이 좁은 땅에서 아웅다웅할 것이 아니라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제게는 앞으로 70억 달러가 생깁니다. 이미 4조 8천억 원과 3억 달러도 있습니다. 제가 못 할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와 손을 잡으라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집구석 단속부터 해야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집구석? 하하하!”

“예, 그렇습니다. 집구석입니다. 아무리 지랄 같은 집구석이라고 해도 남이 들어와서 깽판을 치게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막을 겁니까?”

살짝 눈빛이 변하는 이신이다.

“저는 IMF 1차 실무자 협상을 지연시킬 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밀리에 입국했다는 것을 공개할 겁니다.”

“바라시는 결론을 말씀하지 마시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을 말씀하시오.”

“IMF 비밀 조사단은 국제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오늘 3시에 1차 실무자 비밀 협상을 진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협상은 진행되지 못할 겁니다. 쥐 꼴이 되어 뛰쳐나와야 할 테니까요.”

“뭐라고?”

“국제호텔이 불에 탈 겁니다.”

내 말에 이 실장이 놀란 눈빛으로 이신을 봤다.

“대부님…….”

“왜?”

“백범 대표는 국제호텔그룹의 최대 주주입니다.”

이 실장의 말에 이신이 나를 빤히 봤다.

“허허허, 허허허, 망나니짓을 하시겠다?”

“그렇습니다. 국민들 모르게 IMF 조사단이 입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은 현 정부를 불신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당 대표에게서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겠습니까? 저는 다음 대통령이 임명한 IMF 협상의 실무자 자격으로 협상에 참가하게 될 것입니다.”

내 말에 이신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포부가 남다르시군.”

“예, 그렇습니다.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제 집구석에 다른 것들이 설치는 꼴을 저는 못 보겠습니다. 어르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백범 대표.”

처음으로 이신이 내 이름과 직책을 불렀다.

“예, 대부님……!”

나는 이신을 보며 이신을 대부님이라고 불렀고 이신은 나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백범 대표, 그대는 그대의 조부처럼 망상가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제 조부님을 아십니까?”

내가 가진 기억에는 이신과 백범의 조부에 대한 연관성 있는 기억이 없다.

‘없는 것인가? 지워진 것인가?’

이신의 영혼과 백범의 영혼이 융합해 새로운 영혼이 만들어진 순간 두 영혼의 기억 중 일부가 /소멸했다는 것을 나는 짐작하고 있다(소멸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백범 대표, 그대는 조부의 묘역에 몇 번이나 가보셨소?”

“바빠서 자주 못 갑니다.”

“오늘의 헌화는 들국화이오.”

나를 빤히 보며 말하는 이신이다.

‘안다. 둘이 안다……!’

그런데 나는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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