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129화 우리 소주 한잔합시다(2)
동교동 김대준 총재의 자택.
“또입니다. 또!”
권 의원은 흥분한 표정으로 김대준 총재에게 말했다.
“이건 분명 정치공작입니다. 북한에서 동의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권 의원,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이제는 그냥 공명정대하게 대선을 치를 수가 없게 됐습니다.”
“어쩌시려고요?”
“음모에는 음모로 맞서야 합니다.”
“으음……!”
김대준 총재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대통령 후보가 되면 대통령 당선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여당 대표 아들의 병역 의혹을 문제 삼을 겁니다. 총재님은 그렇게만 아시면 됩니다.”
“권 의원……!’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확립하실 때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자신들이 권력을 잡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그것 자체부터 문제적 발상일 것이다.
“으음……!”
하여튼 김대준 총재도 안 된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 * *
미국 블랙홀 그룹의 회의실.
새벽이지만 박태웅 대표이사는 블랙홀닷컴을 아마존닷컴보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새벽까지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대대적인 광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 1초라도 빠르게 배송하고 있고, 또 수수료도 무조건 아마존닷컴보다는 낮게 책정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존닷컴의 주식이 하락하겠군요.”
박태웅 대표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1억 달러를 아마존닷컴 주식에 투자한 상태고 그에 따라 유통 주식의 35% 그리고 총 주식의 20%를 보유하고 있는 블랙홀 그룹이니까.
“그렇습니다. 흡수 합병을 위해서는 고사시켜야 합니다.”
“그게 계획이니까, 계속 밀어붙이시오.”
“예, 알겠습니다.”
“큐브는?”
“사이트가 오픈됐고 현재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관심 사항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중역 하나가 말했고 박태웅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아마존닷컴을 제외한 모든 온라인 전자 상거래 사이트를 박스 하나에 넣어 광고하십시오.”
“아!”
“아마존닷컴도 흔들고 온라인 전자상 거래를 이용해 접속하려는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십시오.”
“기발하신 아이디어입니다.”
미국 현지 중역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박태웅의 말에 모든 중역이 박태웅을 바라봤다.
“예, 말씀하십시오.”
“모든 사람은 남에게 과시하기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은 과시욕이 강한 동물이니까요.”
“그래서 과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큐브에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홈비디오를 찍어서 올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까 합니다. 그를 통해서 큐브의 검색 엔진 서비스의 인지도를 더 높일까 합니다.”
놀라운 발상이었고 이것은 한참 후에 개발이 될 유튜브보다 몇 년은 빠른 행보였다.
“와……!”
“정, 정말 대단하십니다.”
“바로 소프트웨어 개발팀에게 개발을 지시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트 공간의 이름은 뭐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월드 TV라고 합시다. 큐브는 인터넷 세상의 중심이 될 겁니다. 나는 사실 파급력 차원에서는 블랙홀닷컴보다 큐브가 더 대단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저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큐브를 더욱 활성화해야 하고 블랙홀닷컴은 반드시 아마존닷컴을 흡수해야 합니다. 그와 함께 이베이의 지분을 더욱 확보하여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블랙홀닷컴에서 진행하는 전자책 판매 서비스는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이 사업도 몇 년이나 앞서서 진행이 되는 사업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제안한 사람은 당연히 백범이었다.
‘정말 백범 대표님이 대단하시지……!’
박태웅은 백범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개발까지는 끝냈습니다. 유명 소설 저작권자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 전송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독점 전송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시절에 박태웅은 백범의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전자책 서비스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때 중역 하나가 박태웅에게 말했다.
“뭡니까?”
“책은 이동할 수 있지만, 컴퓨터는 그게 어렵습니다. 또한, 노트북은 아직 그 정도의 용량을 저장하기에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단말기를 개발해야겠군요.”
박태웅의 말에 모두가 입이 쩍 벌어졌다.
“현재 기술로는 쉽지 않습니다.”
“쉬운 일만 해서 어떻게 세계 1위 그룹이 되겠습니까?”
“아......!”
“장기 계획으로 추진해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유명 기성작가의 책을 전자책 서비스를 실시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좋아하죠, 세계문학전집과 세계동화전집부터 출간하시고 유명작가들과 계약하십시오.”“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 추가적으로 신인 작가들을 발굴해서 전자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전자책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진행합시다.”
사실 98년에 이미 누보미디어라는 미국의 업체가 최초로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았고, 상반기 당시 로켓e북 런칭 이후 하반기 무렵, 업체 40여 곳이 모여 전자책에 관한 1차 표준을 만들어냈다. 그런 측면에서 블랙홀 닷컴은 그들보다 1년이 앞서서 전자책 서비스에 돌입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혹시 생각해 둔 신인작가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누구죠?”
“영국 신인 여성 작가입니다.”
“신인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동화 같은 마법 이야기인데 많은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투고가 들어와서 검토를 해보니 이건 됩니다.”
이 부분이 백범이 살았던 대하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일과 다른 부분이다. 동화 같은 마법 이야기를 다락방에서 쓴 여성 작가는 1996년에 이미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책을 출간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책을 출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그 여성 작가를 만납시다.”
“예, 바로 추진하겠습니다.”
젊은 중역이 대답했고 박태웅은 백범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문화콘텐츠를 확보해야 합니다. 컴퓨터에서 하드웨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소프트웨어이듯 문화콘텐츠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겁니다.
‘옳은 말씀이시지. 하하하!’
박태웅은 천재다. 그리고 그런 천재를 항상 엄청난 영감으로 흥분하게 만드는 사람이 백범이었다.
***
동두천에 있는 부대찌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고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 손님은 없었다.
“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식당으로 들어서자 전에 봤던 식당 주인이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식당 주인을 따라 내실로 들어갔고 정말 아담한 내실에 이 실장이 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내가 도착하자 이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예.”
“아저씨.”
“예, 실장님.”
“소주 몇 병하고 부대찌개 좀 더 주십시오.”
“예, 준비해 놨습니다.”
식당 주인은 그렇게 말하고 내실 밖으로 나갔다가 바로 소주와 부대찌개 추가분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소주를 마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실장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나한테 실망했군.’
이 실장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내가 그 엄청난 제안을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제 와서 그 제안을 먼저 꺼냈으니 너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구나 하고 바라보고 있다.
“제게 실망하셨군요.”
“실망까지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주를 마시자고 하셨으니 받으십시오.”
이 실장이 내게 술을 권했다.
탁!
소주병을 내려놓고 이 실장이 나를 봤다.
“왜 마음이 바뀌었습니까?”
“숨넘어가겠군요. 한잔 마시고 이야기합시다.”
내 말에 이 실장이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가요?”
이 실장이 앞에 놓인 잔을 들고 마셨고 나도 이 실장이 따라준 소주를 마셨다.
탁!
나는 잔을 내려놓고 이 실장을 바라봤다.
“이 실장님.”
“예, 말하십시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 다 보고를 받으시죠?”
이신은 그런 존재다. 그런 정보를 먼저 독점해서 돈을 벌고 권력자를 정한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권력자에 편승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 그게 궁금하십니까?”
“내일 IMF 총재가 비밀리에 대한민국에 입국합니다.”
내 말에 이 실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으음…….”
“아시고 계셨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백범 대표께서 아신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저도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가 대한민국에 입국하면 제국주의 선두에 섰던 선교사처럼 약탈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각종 규제를 제거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거대한 외국 자본이 대한민국의 국부를 다 가지게 될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다 알겠다는 눈빛인데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 실장이다.
“정말 모르십니까? 이 실장님께서 모시는 분의 적이 내일 당장 입국한다는 소리입니다.”
“백범 대표님.”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고 하셨죠?”
“그랬습니다.”
“이제는 감당해 볼까 합니다.”
“왜요?”
이 실장이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밖에서 들어와서 안에 있는 것을 다 털어가겠다는데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왜 백범 대표가 하겠다는 겁니까?”
이 실장의 말에 나는 이 실장을 뚫어지게 봤다.
“친구가 도와주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으니까.”
“친구……?”
“아시겠지만 내가 참 못된 놈입니다. 예측력이 좋아서 이런 엄청난 외환 위기가 닥칠 거라고 예상하고 달러를 매집했습니다. 돈 벌 만큼 벌었습니다. 아니, 아주 많이 벌었습니다. 4조 8천억을 단 몇 개월 만에 벌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이 실장에게 말했고 그를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요?”
내가 4조 8천억이나 가지고 있다는 말에 이 실장은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말해주는 것에 더 놀란 것 같다.
“친구랑 이렇게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때는 그 돈은 필요가 없습니다.”
“친구라……!’
“도와주세요. 가는 길이 달라도 비겁하게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 실장과 내가 가는 길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빛이라면!’
이 실장은 이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둠이 될 것이다.
“비겁하기라……?”
“모시는 분을 뵙고 싶습니다.”
찰나의 순간 친구라는 단어에 이 실장이 먹먹해졌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나는 이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짜고짜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목숨을 거셔야 하는 일이고 계셨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실장도 내가 서 있는 곳이 빛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 실장님, 밤이라고 그냥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달도 뜨고 별도 뜨고, 나는 이 실장님이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별은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어 줄 테니까요. 모두에게는 각자의 몫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이 실장이 나를 빤히 봤다.
“결심하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약속도 했고요.”
“무슨 약속을 했다는 겁니까?”
“제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제 자식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입니다. 우린 우리끼리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을 이 실장에게 해줬다.
“으음……!”
“친구로서 부탁드립니다.”
“나는 친구로서 말리고 싶습니다.”
“친구라면 같이 가 주십시오. 그럼 제가 참 많이 든든할 겁니다.”
나는 소주병을 잡고 이 실장에게 내밀었다.
“잔 받으세요. 아직까지는 친구 아닙니까.”
내 말에 이 실장이 잔을 내밀었다.
“친구죠. 좋습니다. 성북동으로 모시겠습니다.”
드디어 이 실장의 결심을 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