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127화 돈이 좋은 이유?(2)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가 준비해 놓으신 것을 보고 본가로 돌아왔는데 양들이 대형 트럭에 실려 도착해 있었다.
“저건 또 뭡니까?”
나는 오늘 계속 놀라고 있다.
“이왕지사 손자랑 손녀들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입을 것도 준비해야지. 양을 몇 마리 키워 볼 생각이다. 그리고 캐시미어가 더 부드럽다고 해서 염소도 키워 볼 생각이다.”
“아버지는 정말……!”
오버의 화신이라고 말할 뻔했다.
“놀랍지?”
아버지는 나를 보며 씩 웃으셨다.
“예, 아버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거위도 곧 들어올 거다.”
“거위는?”
“내 손자 손녀들 겨울에도 입을 옷을 만들어야지.”
“아, 아버지 곧 목화도 재배하실 것 같네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요즘 100% 순면이 순면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범아.”
“예, 아버지.”
“내 얼핏 들으니까, 너 돈 많이 벌었다고 들었다.”
“예, 그렇습니다.”
4조 8천억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 거기다가 미국에 설립해 놓은 블랙홀 그룹은 더 엄청날 것이다.
“그럼 약속을 지켜야지, 네 할아버지께서 보고 계신다.”
“아……!”
아버지는 선우 재단 설립을 잊지 않고 계셨다.
“왜 돈을 버니까, 욕심이 생기냐?”
“그건 아닙니다.”
“살다 보면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다.”
요즘 부쩍 사자성어를 많이 쓰시는 아버지시다.
“그렇죠.”
“모든 일이 잘될 때 더 베풀어야 하는 거다. 그러려고 돈 벌겠다고 한 거잖아.”
“예, 준비하고 있습니다.”
“평생 준비만 할 것은 아니지?”
“물론입니다.”
“언제?”
“내일 당장 선우 재단 설립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야 내 아들이지, 그리고 내가 고기랑 농산물이랑 보육원이랑 양로원에 가져다드리다 보니까 없이 사는 사람이 참 많더라.”
“예?”
“돈 벌어서 뭐하겠냐? 그런 사람들 돌보며 살아야지.”
“아, 그렇죠……!”
“믿으마.”
아버지의 말씀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이다.
“예, 아버지. 선우 재단과 함께…….”
“왜?”
“손녀 이름을 지어주시면 재단 이름으로 정하겠습니다.”
“손녀 이름?”
“그래, 지어놨다.”
하여튼 철저하게 준비하신 아버지시다.
“우리 손녀 이름은 백화경이다.”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안 됩니다.”
“왜?”
“아버지 혹시 김구 선생님의 따님들 이름 중에 하나 고르신 것 아닙니까?”
내 말에 네가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을 보이시는 아버지시다.
“그래, 네 이름이 백범이니 네 딸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화경이라면 백범 김구 선생님의 차녀로 셋 따님 모두가 단명하셨습니다.”
“아……!”
아버지는 이름까지만 알아보신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다른 이름이 좋겠습니다.”
이름 때문에 같은 운명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명한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따라서 내 딸(?)에게 지어주고 싶지 않다.
‘솔직하게 딸인지 아들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조비가 딸이라고 그래서 모두가 딸이라고 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네……!”
“다시 잘 지어주십시오.”
“그럼 백희가 어때?”
“백희요?”
나도 외자인데 내 딸까지 외자로 지으시는 아버지시다.
“그래, 즐거울 희,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버지 그러지 마시고 백은희가 어떻습니까?”
“은희?”
“예, 아버지 며느리처럼 공부도 잘하라고 은 자를 붙여서 백은희 어떻습니까?”
자식 이름을 두고 아버지와 조율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백은희라?”
“예.”
“그러지 말고 범은이 어때?”
“예?”
“며느리 이름의 은 자와 네 이름의 범자를 넣어서 범은이 어때?”
“백범은? 딸 이름에 범자가 들어가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평생을 따라다닐 이름이다.
‘범은이는 절대 안 돼.’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아버지가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지신 얼굴로 변하셨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아버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버님 저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으니 은혜의 목소리다.
“우리 며느님,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셨어요? 하하하!”
며느리의 목소리만 들어도 기쁘신지 밝은 표정으로 변하셔서 웃으시는 아버지시다.
-혹시 이름은 지으셨나요?
“지금 범이랑 마무리하고 있어.
-마무리요?
“혹시 며느리가 생각해 둔 이름이 있어요?”
-저는 아버님께서 지어주시는 이름이면 좋아요. 그래도 꼭 말씀하라고 하시면…….
“말해 봐요.”
-관순이 어떠세요? 백관순, 유관순 열사 이름을 따서…….
여기서 밝혀진 것 하나가 있다.
나나 아버지나 그리고 사법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한 은혜까지 작명 센스는 없다는 사실이다.
“절대 안 됩니다. 그분이 훌륭한 독립운동가지만 관순이라는 이름은 너무 촌스럽습니다.”
내 말에 아버지가 나를 빤히 봤다. 물론 유관순 열사의 이름이니 촌스러움으로 반박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며느리가 하자잖아.”
“그래도 안 됩니다.”
“며느리가 그렇게 하자면 하자는 거지.”
“나중에 관순이가 원망한다니까요.”
“그래, 관순이. 딱 부르기도 좋잖아.”
아버지는 은혜가 말하니 그대로 하시겠다는 표정이다.
“안 되는데…….”
정말 울고 싶은 순간이다.
‘백관순? 너무 촌스럽잖아……!’
하지만 아버지는 확고해지신 눈빛이다.
“우리 며느님.”
-왜 백범 씨가 싫어하나요?
“그건 중요하지 않고 우리 손녀 이름은 관순이로 정했어.”
태어날 손녀를 위해서 그 많은 것을 준비하신 아버지시지만 이름 때문에 손녀에게 원망 꽤 들으실 것 같다.
‘이제 방법은 딱 하나다!’
딸이 아닌 아들이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이름을 바꿀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내 말이 이렇게 무시를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백관순…….’
하여튼 그렇게 앞으로 태어날 백범 주니어의 이름은 백관순으로 정해졌다. 물론 시간이 있으니 바꿀 기회는 충분할 것이다.
* * *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비서실.
남녀 비서 두 명이 무엇인가 엄청난 것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지 그 표정이 심각했다.
“모든 확률에 접근해야 해요.”
“그렇죠. 대표님께서 제대로 조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이런 조사까지 하니까 재미가 있기도 하네요.”
“그러게요. 저도 이런 조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하하!”
“한 비서님, 집중하실 때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닭발은 빼야 합니다.”
놀랍게도 백범은 두 비서에게 임신했을 때 그리고 입덧이 시작되면 즐겨 찾은 음식 리스트를 종합해 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 리스트가 완성되면 그 음식을 만드는 가게들을 인수해 한 건물에 위치해서 영업하도록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그러네요. 닭발은 평상시는 좋아해도 임신하면 거의 꺼린다고 하더라고요. 태어날 아기가 닭살 피부가 될 수도 있다는 미신 때문에 꺼린다네요.”
“그렇죠, 그리고 리스트에 족발은 빼죠.”
“입덧을 시작했을 때 족발이 먹고 싶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누가요?”
“우리 엄마가요.”
“그럼 100%네요. 지은 씨 어머니께서 지은 씨 임신하셨을 때 족발을 많이 드셔서 콜라겐 섭취를 많이 하셔서 피부가 좋으신 모양입니다.”
“저한테 지금 작업 거시는 건가요?”
지은이라는 비서가 한 비서에게 물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제 피부가 좋기는 하죠.”
“오늘 저녁에 야근하시죠?”
“야근이요? 저랑 같이 식사하시면서 이 리스트 완벽하게 작성하셔야죠.”
“호호호, 그럴까요?”
사랑은 어디에서도 꽃피는 법이다.
하여튼 백범이 부친이나 백범이나 오버의 화신인 것은 확실했다.
* * *
조비의 집.
“왜?”
나는 아버지에게 서울로 올라간다고 말씀을 드리고 바로 조비를 찾아왔다.
“정말 딸이야?”
“내 신빨이 많이 떨어졌지만 딸이야.”
“아들이어야 해.”
“너도 남아선호사상에 물들었니?”
“그게 아니라 오늘 태아의 이름이 정해졌는데 관순이로 정해졌어.”
“관순? 이름 좋네, 잠깐만 보자……!”
조비가 바로 한자로 백관순을 적었다. 그리고 찬찬히 한자로 적은 이름을 살폈다.
“백 관순……!”
조비가 만약 이름의 운명이 좋다면 정말 태어날 아이의 이름이 백관순으로 굳어질 확률이 100%다.
“세상이 이름을 널리 떨칠 이름이고 만백성이 우러러 존경할 이름이네. 왜 이렇게 이름이 좋지?”
조비도 이름 풀이를 하더니 놀랍다는 눈빛으로 변했다.
‘당연하지……!’
태어날 아이의 이름이 백관순이면 선우 재단 다음으로 설립될 재단의 이름이 관순 재단이 된다.
관순 재단은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들 그리고 노인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기부재단이 될 것이니 조비가 말한 것처럼 만백성 아니 국민이 존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저런 이름 풀이가 나온 것이다.
“정말이야?”
“왜 이름이 싫어?”
“싫은 것보다 촌스럽잖아.”
내가 보기에는 조비의 신빨이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럼 백태아라고 적고 클 태 아이 아로 적고 이름 풀이 좀 해봐.”
“왜?”
“해주라.”
내 말에 조비가 다시 한자로 백태아로 적고 이름 사주풀이를 위해 한자를 뚫어지게 봤다가 놀란 눈빛으로 변했다.
“이름 풀이 사주가 똑같지?”
“으으응……!”
왜 이러냐는 눈빛을 보이는 조비다.
“관순이든 태아든 그 이름으로 자산 기부 재단을 설립할 거야.”
“아, 그래서 이런 풀이가 나온 거구나, 그런데 너 돈 많이 번 모양이다?”
“벌기는 많이 벌었지.”
“그래도 백태아보다는 백관순이 더 좋아.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서 존경까지 받게 될 이름이니까. 태아는 좋은 사람을 못 만나.”
“태아는 그냥 내가 해본 소리고.”
“하여튼 백관순이 제일 좋아. 물론 나중에 사주랑 맞춰서 다시 이름 풀이를 해야겠지만 요즘이야 사주를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니잖아.”
“그건 무슨 소리야?”
“배를 째면 사주는 바꾸기 쉽다고.”
“미쳤니? 어떻게 소중한 내 아내의 몸에 칼을 대?”
내 말에 조비가 눈을 흘겼다.
“아이고 팔불출아, 이 천하의 팔불출아, 쯧쯧!”
“하여튼 안 돼.”
“그건 두 분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고요. 백관순 이름 자체로 빛나. 그러니까 촌스럽다고 말해 봐야 소용이 없어.”
그때 조비가 묘하게 씩 웃었고 뭔가 살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냐?”
“뭐가?”
“너냐고.”
“뭐가…….”
조비가 슬쩍 말꼬리를 흐렸다.
“은혜 씨 다녀갔지?”
정말 놀라운 것은 사법 시험까지 수석으로 합격한 은혜가 무속인 아니 무속인이었다가 은퇴한 조비를 만나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은혜가 임신했다고 알리기 위해 본가에 왔을 때, 어머니와 은혜가 잠시 사라졌을 때가 떠올랐다.
“말해 줄 수 없어.”
“너지?”
“애 떨어질 뻔했네.”
“너, 너 혹시……?”
내 물음에 조비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