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121화 나만 어려운 싸움이군(2)
판교 과자 공장 창고 뒤편.
“아……!”
백범 부친은 조비가 김찬 할아버지를 그렇게도 아끼며 옆에 붙어 딸처럼 때로는 어린 아내처럼 대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듣게 됐고 탄성을 터트렸다.
“믿기 힘드시죠?”
“그렇군요……!”
백범 부친은 반신반의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안 믿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조비 씨가 더 많지……!.’
99개를 가진 사람이 1개를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러려고 서울에서 이 판교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옆에서 돌봐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전부이십니까?”
“예, 전부예요.”
“그래도 사람들이 참 이상하게 볼 겁니다.”
“저는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때 은철이 백범 부친을 찾아 창고 뒤로 왔다.
“어르신, 좀 와보셔야겠습니다.”
“뭔데?”
백범의 부친은 은철과 선희와 같이 지낸 지 꽤 지났기에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제가 천연 과자 납품 신청서를 몇 군데에 보냈는데 백화점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나를 찾아? 사장은 은철 군이잖아.”
“그래도…….”
“사장이 알아서 해요.”
“그래도 옆에서 좀 도와주십시오. 제가 혼자 상대하기 너무 벅찹니다.”
은철의 말에 백범의 부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자고.”
* * *
판교 본가 정원 앞에 설치해 놓은 정자.
선희의 배가 불러오면서 백범의 부친은 판교 본가 앞마당을 모두 천연잔디로 깔았고 태어날 아이가 편하게 뛰어놀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곧 태어날 아이가 천연잔디가 깔린 곳에서 뛰어놀려면 2~3년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천연잔디가 깔린 앞마당에 넓은 정자까지 설치해 놓은 상태다. 그리고 그 정자에 [바른 먹거리]에 관심을 가진 미도파 백화점 과장이 판교까지 찾아와 앉아 있다.
“좀 드셔 보세요. 사과 식초로 만든 홍초입니다.”
“홍초요?”
“음료수처럼 먹을 수 있는 식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에 희석을 시켜서 마시는 겁니다. 마시는 식초의 이름을 홍초로 정했다네요.”
“오……!”
미도파 백화점 납품 계약 담당 직원은 천연 과자인 각종 말랭이 때문에 왔는데 이 홍초도 꽤 히트 상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셔 보세요. 사장님이 개발한 겁니다.”
미도파 백화점 과장에게 사과 홍초를 권하고 있는 백범의 모친은 은철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아드님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아들 아닌데…….”
“아, 그렇습니까?”
“따지고 본다면 사위예요, 사위. 호호호!”
“임자, 별소리를 다 하고 있네.”
백범의 부친이 살짝 핀잔을 줬지만, 백범의 모친은 그저 웃을 뿐이다.
“호호호, 말씀 나누세요.”
백범의 모친이 그렇게 말하고 저만큼 떨어져 있는 선희에게로 갔다.
“어때요?”
선희가 바로 백범의 모친에게 물었다.
“마시고 좋아하는 것 같았어.”
미도파 백화점 납품 계약 담당 과장에게 홍초를 권하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선희였다.
“사과로 술이나 독한 식초만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이렇게 마시는 홍초도 좋을 것 같아요. 호호호!”
“그러게, 우리 선희는 너무 머리가 좋아.”
백범 모친의 말에 선희는 웃을 뿐이었다.
원래 되는 집은 이런 법인 것이다.
* * *
“샘플로 받은 바른 먹거리 과자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중산층 이상을 겨냥해서 판매한다면 히트 상품이 될 것 같습니다.”
TV에서는 대한민국이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세뇌를 시키듯 연일 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들의 55%가 자신은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것과 함께 안전한 음식에 대한 구매층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납품 계약을 체결하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선 사과 말랭이와 고구마 말랭이를 각각 3만 봉지씩 납품을 받고 싶습니다.”
미도파 백화점 과장이 3만 봉지에 대한 납품을 말했고 은철은 입이 쩍 벌어졌다가 애써 흥분을 감추고 그를 봤다.
“감사합니다. 대금 지급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까?”
“당연히 어음 결제죠.”
“어음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미도파 백화점 과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희는 현금 결제만 합니다.”
“하하하, 요즘 누가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합니까, 우리 백화점에 납품되는 모든 제품은 다 어음으로 결제합니다. 짧게는 3개월짜리 어음이고 길게는 6개월짜리 어음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1년짜리도 있고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희는 현금 결제만 할 겁니다. 물건 가지고 가고 어음이라는 종이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젊은 사장님, 사업 처음이시죠?”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현금을 고집하면 그 어느 백화점에도 납품하기 어렵습니다.”
“아, 그런가요.”
은철은 이해했다는 눈빛을 보였고 미도파 백화점 납품 담당 과장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구나 하는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제가 납품업체인 바른 먹거리를 서울로 부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납품 의향서에 적어 놓은 그대로 무공해 생산 설비가 구축되어 있는지, 또 진짜 무농약 재료들을 쓰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직접 내려왔습니다.”
“그 부분은 100% 확실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계약하시죠? 아시다시피 미도파 백화점은 물품 판매에 자신이 있습니다.”
미도파 백화점 납품 계약 담당 과장이 은철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모두가 어음 거래를 해도 저희는 현금 결제만 합니다. 그 방식이 아니면 계약 못 합니다.”
“정말입니까?”
미도파 백화점 납품 계약 담당 과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예, 그렇습니다. 제 형님께서 대출도 받지 말고 현금으로만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예? 형님이 누군데요?”
“제 매형이 백범 대표입니다.”
은철의 말에 백범 부친은 그냥 미소만 보였다.
“정말 어음 거래로는 납품 안 하실 겁니까?”
“예, 안 합니다. 못 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괜한 걸음을 했군요.”
바로 인상을 찡그리는 미도파 백화점 납품 계약 담당 과장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고집을 부리시면 어디에도 납품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판로가 개척되지 않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미래는 부도밖에는 없습니다.”
충고인지 저주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말을 남기고 그는 횅하니 사라졌다.
“잘하네.”
백범 부친은 은철에게 그렇게 말하고 미소를 보였다.
“어음 거래라도 시작해 볼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요.”
“벌써 저기 멀리까지 갔네. 결정했으면 후회하지 마. 은철 사장 밑에는 은철 사장만 바라보고 있는 10명의 직원이 있잖아.”
“그러니까요. 10명의 직원 월급을 줘야 하는데…….”
현재는 백범 부친의 자금으로 바른 먹거리가 운영되고 있었다.
“국내에서 못 팔면 외국에 팔면 되는 거지.”
더 엄청난 소리를 하는 백범 부친이었다.
“외, 외국이요?”
“그래, 일본도 좋고 미국도 좋고 우리 과자가 좋으면 어디든 팔 곳이 없겠어. 하하하!”
백범 부친의 말에 은철은 그저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여당 대권 주자인 여당 대표가 대통령 각하의 집무실로 들어오면서 나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나에 대해 보고를 받았구나.’
나는 바로 한호성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저와 한호성을 찾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이 순간 전두성 부장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하하하, 제가 누구보다 숨바꼭질을 잘하거든요. 6개월 정도 저 보기 힘드실 겁니다. 그리고 경호는 아무 문제가 없게 따로 지시해놨습니다.
하여튼 전두성 부장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대표, 나는 이번 경제 위기를 국민에게 발표할 생각인데 대표께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오?”
대통령 각하께서는 여당 대표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에 외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말하고 그 사실을 국민에게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당 대표는 바로 인상을 찡그린 후에 나를 노려봤다가 다시 대통령 각하를 봤다.
“각하……!”
“의견을 말해 보십시오.”
“왜 이곳에 저 사람이 앉아 있습니까?”
여당 대표는 자신과 대통령이 만나는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 자체를 불쾌해하는 눈빛이다.
“백범 군은 내가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해야 할 자리입니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앉아 있으라고 했소. 내가 대표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으음…….”
내가 있기에 쉽게 말을 하지 못하는 여당 대표다.
“이 자리에서 나눈 말들은 모두 비밀로 유지가 될 겁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여당 대표는 나를 다시 한번 째려본 후에 대통령을 봤다.
“각하, 대선이 코앞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송구하지만 측근도 아닌 사람이 제 측근으로 둔갑을 해서 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보고를 받은 부분은 모두 날조된 것이고 야당의 정치공작입니다. 그리고 그 정치공작을 뒤에서 꾸민 사람이 바로 저 친구입니다.”
나를 완전히 적으로 찍었다는 투로 말하는 야당 대표다.
‘당신하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겠구나……!’
그저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다.
-내가 전화를 해놓을 테니까, 니가 김대준 총재를 찾아가라.
대통령 각하께서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대표께서는 공개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저도 보고를 받았지만 당장 막을 방법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각하께서 기자 회견을 통해 외환 위기가 닥칠 거라고 발표를 하시면 대량 인출 사건이 발생할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대통령 각하께서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봤다. 마치 너도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눈빛이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여당 대표가 나를 봤다.
“됐어요.”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 자리는 말을 아껴야 할 자리다.
‘소귀에 경을 읽겠군.’
아무리 말을 해줘도 귀에 들리지 않을 것 같다. 여당 대표는 지금 오직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을 테니까.
“각하, 외환 위기가 닥쳐도 결국은 다음 정권이 해결해 나가야 문제입니다. 그러니 각하께서는 비밀리에 IMF와 협상을 지시하시면 됩니다.”
“정말 그것이 대표의 생각이오?”
“예, 그렇습니다. 지금 아무런 대책이 없는데 발표까지 하면 혼란만 가중시킵니다.”
“제가 한 말씀만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됐다니까요.”
바로 나를 제지하는 여당 대표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노릇이나 하려고 청와대에 불려 온 것 아닙니다.”
“뭐라고요?”
여당 대표가 나를 노려봤다. 여당 대표는 뭐 저런 것이 다 있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