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19화 (119/415)

# 119

119화 각하, 어려운 싸움입니다.(2)

1997년 10월 1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오늘 새벽 6시에 초인종이 울렸고 그 초인종 소리에 은혜가 놀랄까 봐 내가 더 놀랐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그대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청와대 비서실장께서 똥 씹은 표정으로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정장을 챙겨 입고 나와야 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문 앞에서 은혜가 배웅해 줬다.

“밥도 묵었다. 이제 일하자.”

현재시간 오전 8시다. 그리고 경제 분야 정부 사람들이 모두 정자세로 서 있고 그들 역시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다.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군.’

저 경제 분야 정부 관계자들이 내놓은 대책들이 모두 각하에 의해서 무시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아마도 IMF로 가는 것을 각하에게 건의했을 것이다.

“예, 잘 먹었습니다.”

“정말 안타깝지만 네가 한 말 그대로 됐다. 이제 우짤기고?”

“왜 제게 그걸 물으십니까?”

“백범 대표.”

비서실장이 나를 불렀다.

“왜요?”

“무례하십니다.”

“그러게요. 무례한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경제 전문가들을 봤다.

‘저들은 모두……!’

어느 특정 집단과 연결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확보한 청와대 정보들을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게 통보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 나는 득을 꽤 봤다.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이 세일즈맨이 되어 내가 달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홍보해 줬지만 그 이상의 홍보를 저들이 해줬을 테니까.

‘그리고 저들은!’

IMF가 닥치든 말든 상관없다. 그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대비할 테니까. 그런 측면에서 저들은 프락치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저들 모두를 적으로 돌린 상태다.

‘오래는 살겠네.’

저 모두에게 욕을 먹을 테니까. 그리고 대한민국 재벌들에게도 욕을 먹게 될 테니까. 또한, IMF에게도 욕을 먹게 될 확률이 높다.

“각하, 저는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도 못 믿겠습니다.”

“뭐라카노?”

“각하께서는 지금 누구도 믿을 수 있으십니까?”

“으음…….”

“주위를 물려주십시오, 저는 각하와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뒤에 서 있는 경제 전문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니는 니가 하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입니다.”

나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모두 나가 있어라.”

각하께서 말씀하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똥을 씹어먹은 표정으로 변했다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됐제? 이제 말해 봐라.”

대통령 각하께서 나를 뚫어지게 보셨다.

* * *

청와대 본청 건물 밖 으슥한 곳.

“각하께서 지금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백범 대표와 독대하고 계십니다.”

백범이 예상한 그대로 경제전문가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꼭짓점에 바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 일 때문이지?

“예, 그렇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아내야 해.

“현재로는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고 그렇게 후원하는 것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경제 전문가 하나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선을 다해 알아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공된 정보도 진성에게 유익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여튼 경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집단을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 * *

여당 대표실.

“오리무중?”

“예, 그렇습니다. 한호성의 행방도 오리무중이고 전두성 그 조폭 두목의 행방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제 국정원 원장을 거론했던 국회의원이 여당 대표에게 나직이 말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측근도 아닌 사람이 내 측근이 되어 있고 그자의 범법 행위에 대한 도덕성이 내 도덕성으로 변해 내가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지?”

여당 대표는 자신의 선거 보좌관에게 물었다.

“소폭…….”

“소폭이 얼마인데?”

“4% 하락했습니다. 그리고…….”

“김대준 총재의 지지율은 얼마나 상승했지?”

“3% 상승했고 이인제 씨가 1%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JP의 지지율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지지율 4%가 하락했어요. 그런데 핵심 관계자가 오리무중이라고? 나보고 지금 대선에 나가라는 소리입니까? 출마를 포기하라는 소리입니까?”

“반전의 기회가 올 겁니다.”

“어떤 방법으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으음……!’

어제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여당 대표였다.

“그리고 몇 가지 조치를 할 생각입니다.”

“몇 가지 조치가 무엇입니까?”

“태양종금에 세무조사를 지시할 생각입니다.”

“그게 정권 말기에 됩니까?”

“아직은 됩니다. 털어야 합니다. 털어서 그쪽으로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당사자도 못 찾았는데 그걸 해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럽니까?”

“현재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측근 의원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요?”

“결정적인 한 방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준비가 되고 있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주도적으로 전근형 사건을 부각할 계획입니다.”

청와대에서는 외환위기 때문에 긴급회의를 소집하며 백범까지 소환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는데 여당 쪽에서는 오직 대선만 생각하고 있었다.

“전근형 사건이라면……!”

“김대준 총재 쪽에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사건이지 않습니까? 색깔론부터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지역감정도 유발해야 합니다.”

“내가 대선 후보인데 그런 방법까지…….”

여당 대표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아……!”

대통령의 자리는 모든 정치인의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가 되면 자신의 야망에 근접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라도 당선이 되고자 한다.

“전근형 사건을 끄집어낼 때라고 합니다.”

측근 국회의원이 대선 캠프 보좌관을 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대표님.”

대선 캠프 보좌관도 측근 의원과 똑같이 말했다.

“전근형 사건은…….”

전근형은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민국 천도교의 24대 교령을 맡았던 인물이고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신정치국민회의의 고문을 맡았던 인물이다.

문제는 그런 그가 1997년 3월에 갑작스럽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망명을 감행했고 이 사건 때문에 김대준 총재는 다시 색깔론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주기로 했습니다.”

“벌써 진행이 된 겁니까?”

여당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아……!”

권력을 잃는 것을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그리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경제 상태가 매우 악화가 되고 있다면서요?”

부적절한 논의와 보고가 계속되는 것은 자신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을 했는지 여당 대표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예, 그렇습니다. 청와대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통해서는 외환 금융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합니다.”

“아……. 정말 산 넘어 산이군요.”

당연히 외환 금융 위기가 닥치게 되면 그 책임은 여당이 짊어져야 할 부분이기에 선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여당 대표였다.

“그렇습니다. 물론 가능성이 크지 그렇다고 결론이 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도 대선 전까지는 공개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각하께서도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답답합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경제 부분은 어떻게 뒷수습을 해야 할지 캄캄합니다.”

“그 모든 경제 문제를 수습하실 분은 대표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대선에만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각하를 한번 만나셔야 합니다. 경제 부분까지 공개가 되면 이번 대선은 어렵습니다.”

“아……!”

대화의 주제를 돌렸는데 또 자기한테 곤란한 상황으로 흘러가기에 답답할 수밖에 없는 여당 대표였다.

‘젠장……!’

여당 대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알겠어요. 예, 알았다고요.”

* * *

청와대 집무실.

대통령 각하와 나 둘뿐이다.

“됐제? 이제 대책을 말해 봐라.”

“각하, 송구하옵게도 대책이 없습니다.”

“뭐라카노?”

“벌써 10월입니다. 제 짐작으로는 국가 부도까지 10일 남았습니다.”

“아……!”

“지금부터 대책을 준비한다고 해도 어려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대책은 있나?”

“국민을 믿을 수밖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고? 니도 밖에 있는 저것들처럼 국민에게 책임을 지우자는 기가?”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니도 똑같은 놈이다.”

“예, 저도 똑같은 놈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를 끝도 없이 궁금해하면서 자기를 후원해주는 사람들에게 보고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불렀다. 방법을 말해 봐라.”

“각하께서는 이제 임기가 3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각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처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기는 하지…….”

“각하!”

나는 대통령 각하를 뚫어지게 봤다.

“말해라.”

“정권이 교체되는 것까지 감수하실 수 있으십니까?”

“정권이 교체돼?”

“그렇습니다.”

“으음……!”

결국, 대통령도 정치인이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 각하도 온전히 믿을 수가 없는 상태다.

“니는 지금 이 상황을 국민에게 공개하라는 소리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공개를 하고 적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적이라 했나?”

“예, 그렇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국가 지급 불능 상태를 선언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 신용도가 끝도 없이 추락…….”

“가만히 계셔도 국가 신용도는 끝도 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누구보다 잘 구사하지 않습니까? 옆에서 봐왔으니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으면 됩니다. 그리고 IMF와 벼랑 끝에 서서 협상을 진행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할 동안 제가 외국에 나가서 달러를 구해오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있나?”

“지금 당장 제가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으음…….”

내가 진정 대통령 각하를 믿을 수 있게 되면 그때는 나우루공화국으로 날아갈 참이다.

‘거기에 70억 달러가 있다.’

그리고 화교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중국에도 날아갈 참이다. 또한, 유대 자본에게도 손을 내밀어 볼 참이다.

‘러시아도 있지……!’

막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무슨 짓이라고 해볼 참이다.

‘백범 주니어들을 위해!’

아니 이 땅에 태어날 모든 아이들을 위해 망나니처럼 미쳐 날뛰어 볼 참이다.

삐이이-!

그때 밖과 연결된 인터폰이 울렸고 나는 그 소리에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뭐꼬?”

바로 인터폰을 누르며 짜증스러운 어투로 비서관에게 묻는 대통령 각하시다.

-새한국당 대표께서 긴급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뭐라꼬?”

-외환 위기에 대한 대처를 논의하실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가 벌써 대통령이라도 된 줄 아나, 쯧쯧……!”

바로 표정이 어두워지는 대통령 각하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일은 청와대에서는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 각하가 누군가와 단독 면담을 하는데 외부에서 연락해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만큼 대통령 각하의 권위가 바닥을 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안 되는 건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그리고 이번 대선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

‘이 사태를 공개하면?’

정권이 바뀔 확률이 높다. 그러니 누군가가 여당 대표에게 연락한 것 같다.

‘그리고……!’

저 인터폰으로 밖에서 지금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사방의 적이다.

그리고 정치적 역학이 개입되고 대선 상황이 이번 대책에 포함이 된다면 내가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오는 것인가……. IMF!’

그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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