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화 각하, 어려운 싸움입니다.(1)
은혜가 임신했다.
‘큰일 날 뻔했네.’
그 작은 티코에서 야릇한 카섹스 때문에 은혜와 실랑이했던 것이 떠올랐고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부터는 항상 조심조심해야겠다.
‘무리한 섹스도 금지.’
나는 나를 세뇌하고 있다.
은혜도 연수원 생활에서 발생하는 과로도 금지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은혜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아니 은혜의 입을 통해서 내 주니어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은혜 씨.”
“예, 백범 씨.”
“저는 은혜 씨가 정말 고마워요.”
“저 혼자 만든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고마우세요? 호호호!”
은혜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에 한없이 행복한 눈빛이다.
“참,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어요. 백범 씨한테 제일 먼저 말해주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은혜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휴대전화에 전자파 있습니다.”
“예?”
“전자파는 산모의 몸에 안 좋습니다.”
“예에?”
왜 이렇게 오버를 하냐는 눈빛이다.
“전자파는 무조건 안 좋습니다. 과로도 안 좋고요. 매연도 안 좋고요. 내일부터는 위층으로 가서 태교에만 전념하셔야 합니다.”
“아……!”
정말 내가 오버를 하고 있다는 눈빛을 보이는 은혜다.
“다행히 위층은 편백과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마감을 해서 친환경입니다.”
“너무 오버를 하시는 것 아닐까요?”
“오버라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는 제가 따로 찾아뵙고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요.”
“예, 그럽시다. 참, 잠깐만요.”
나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은혜에게 멀찍하게 떨어져서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백범 씨가 이렇게 오버하시는 모습은 처음 봐요. 호호호!”
그래도 내 오버가 싫지 않은 은혜의 반응이다.
따르릉, 따르릉!
딸깍!
-예, 대표님.
김 비서도 나 때문에 휴대전화를 두 대를 쓰고 있다.
“내일은 알다시피 청와대에 들어가야 하니까, 저를 픽업하러 오지 마시고요. 벤츠사에 직접 문의해서 대형 버스 한 대 사십시오.”
-벤츠사라면 자동차 만드는 그 벤츠사죠?
“그렇습니다.”
-벤츠에서 대형 버스도 만듭니까?
“만듭니다. 최대한 빨리 수입할 수 있게 문의하시고요. 방탄 기능을 추가하고 내부는 캠핑카처럼 개조해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대표님, 무슨 일 있습니까?”
혹시나 해서 내게 묻는 김 비서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여튼 외부의 충격에도 내부에 탑승한 사람은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안전에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내부는 항상 안락하게 개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기청정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해 달라고 하십시오.”
-그, 그게 가능할까요?
“돈을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강력하게 요구하세요.”
-아……!
내가 그렇게 요구를 해도 벤츠에서 그 요구 조건을 들어줄지 의문이라는 생각을 탄성으로 표현하는 김 비서였다.
“꼭 그렇게 요구하세요.”
-예, 강력하게 추진을 해보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뚝!
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헐……!”
내 통화를 들은 은혜는 그저 멍해질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또 모르잖아요.”
“저 혹시 버스 타고 출근하라는 건가요?”
“예, 버스 타고 출근하셔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안전버스를 타고 출근하셔야 합니다.”
“너무 오버하시는 것 같아요…….”
괜히 내 눈치를 보는 은혜다.
‘오버라고요?’
아직 내 오버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고기와 채소는 어쩌지?’
은혜가 먹는 모든 음식은 농약 한 방울 안 들어간 친환경으로 준비해야겠다.
‘아, 젠장, 미리미리 준비해놓을 것을 그랬다.’
내 머릿속은 닭은 며칠 만에 크고 돼지는 또 며칠 만에 크고 송아지는 바로 잡아서 저장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선은 중금속 덩어리지.’
그렇다면 이제부터 은혜가 먹게 될 생선은 아예 치어일 때부터 따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지?’
정말 나는 제대로 오버를 하고 있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오버가 너무나 행복하다.
“백범 씨,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세요?”
“하하하, 아닙니다. 참……!”
이제는 진짜 은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예?”
“은혜 씨.”
나는 은혜의 앞에 앉아 은혜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주니어가 어떤 아빠를 원할까요?”
내 말에 은혜가 나를 빤히 봤다.
“또 무슨 결정을 하실 일이 있으시군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아빠가 되니까, 은혜 씨와 우리 주니어가 원하는 아빠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딱 이대로가 좋아요. 너무 오버하지 마시고요. 호호호!”
“그래요?”
“그래도 모두가 존경하는 백범 씨가 우리 콩알이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존경하는 저라는 말이군요.”
“예, 콩알이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럼 저는 그런 아빠가 되고 그런 남편이 되겠습니다.”
“항상 그런 분이시잖아요.”
사실 요즘 살짝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라의 위기를 이용해 암달러 환전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찾아온 기회를 포기할 수 없기에 이 상황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
“알겠습니다.”
“저는 백범 씨가 원하는 그대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백범 씨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저는 그런 백범 씨를 응원할게요.”
나를 보며 웃는 은혜다.
“은혜 씨.”
“예, 백범 씨.”
“저 내일 청와대 갑니다.”
“청와대라고요?”
은혜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봤다.
“아, 놀라지 마세요. 놀라실 일 아닙니다.”
지금은 임신 초기다.
절대 안정이 필요한 시기라는 소리다.
“예, 놀라지 않을게요.”
“대통령 각하께서 저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저는……!”
나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고 은혜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 각하의 대안이 되어 드릴 생각입니다.”
“정치인가요?”
은혜는 혹시나 내가 정치에 입문하냐는 물음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봤다.
“저는 정치할 생각은 지금은 없습니다. 단지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해답을 드릴 일이 생겼습니다.”
거의 처음으로 은혜에게 내가 하는 일을 말해 준 것이다.
“해답이라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지금은 아실 필요가 없는 일이고요. 대통령 각하께서 제 대안을 듣고 결정을 내리시면 그때 말씀을 드릴게요. 지금 중요한 것은 첫째도 안정, 둘째 은혜 씨의 안정입니다.”
“예, 알겠어요.”
“그러고 저는 백범 주니어에게 부끄럽지 아빠가 그리고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되겠습니다.”
“지금도 그런 분이세요.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이 정말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럴 것이다.
나는 시간도 없고 바빠서 내가 장학금을 주는 학생들을 불러서 줄 세워서 사진을 찍고 생색내기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돈 몇 푼에 자존심을 팔라고 강요할 시간이 없다.’
모든 기부에는 목적이 존재하지만 나는 그 목적보다 중요한 것이 은혜의 행복감이고 만족감이다. 그러니 그 가여운 아이들에게 돈만 주면 된다.
“그런가요?”
“예, 그래요. 우리 백범 씨처럼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어요. 당신은 그 학생들의 미래가 되고 있거든요.”
“그렇군요. 그 학생들의 밝은 미래를 제가 만들어줘야겠습니다.”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다.
‘몹시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
그리고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한 싸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내 전생에서 피의 능선 전투가 떠올랐다.
‘고지를 점령했지만……!’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전투였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남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훈장이었다.
‘그래도 간다!’
이제는 그 길로 가야 하니까.
“저는 당신을 믿어요.”
나를 보며 다시 웃는 은혜다. 그리고 나는 은혜를 위해 웃었다. 앞으로도 항상 이렇게 은혜를 위해 웃을 것이다.
* * *
동교동 김대준 총재의 자택 응접실.
“이 사진을 보십시오.”
권 의원이 한호성 차장이 양심선언 기자회견장에 찍힌 사진을 김대준 총재에게 내밀었고 여당이 찾아낸 것처럼 권 의원도 전두성 부장을 사진 속에서 찾아냈다.
“이 사람이 누굽니까?”
“전두성이라는 전국구 조폭입니다.”
“그래요?”
김대준 총재 대선 캠프에서는 여당 대선 후보의 측근인 한 의원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환호성을 터트렸었다.
“그리고 이 사람도 보십시오.”
권 의원은 전두성 부장 옆에 있는 김 비서도 찾아냈다.
정말 찍히지 말아야 할 사진이 찍힌 것이다.
“이 사람은…….”
“백범 대표의 비서실장입니다.”
“그렇군요.”
김대준 총재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이렇게 되면 백범 대표가 여당의 표적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전두성이라는 사람의 과거 전적 때문에 백범 대표를 몰아붙일 겁니다. 그리고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하게 될 겁니다.”
권 의원은 정확하게 판단해 보고하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 의원의 아들이 직접 양심선언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철새인 한 의원이 토사구팽을 당하겠군요.”
“그럴 겁니다. 아마 국회의원직 박탈까지 임시국회에 부칠 것 같습니다.”
“동의를 해줘야겠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쪽이 먼저 전두성을 찾아서 대선이 끝날 때까지 숨겨 놔야 합니다. 여당 쪽에서는 어떻게든 전두성을 찾으려 할 겁니다.”
권 의원을 말에 김대준 총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한호성도 찾겠군요.”
“그렇습니다. 현재 둘은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그래요?”
“총재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범 대표가 총재님을 뒤에서 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억측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렇지요, 내 잊지 않을 겁니다. 역시 그분의 손자입니다. 그분께서는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셨고 그 손자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숨어서 싸우고 있군요.”
정말 제대로 억측을 시작하는 김대준 총재와 권 의원이었다.
“그러니 총재님께서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내가 보호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꼭 대선에 당선이 되셔야 합니다.”
권 의원의 말에 김대준 총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습니다. 모두를 위해 내가 꼭 이번에는 대통령이 되어야겠습니다.”
당선 의지를 다지는 김대준 총재였다.
* * *
여수 새우잡이 멍텅구리 배 위.
한호성은 봉고차에서 연봉 1억에 20년 장기 근로계약을 어쩔 수 없이 체결해야 했다.
“아……!”
자신의 현재가 너무도 갑갑한 한호성은 한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 멍텅구리 배에는 이미 차종만도 근무(?)하고 있었고 선희의 두 오빠도 완벽하게 이곳 생활에 적응해 개과천선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기가 한 대리가 근무할 곳입니다.”
전두성 부장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휴우……!”
자신에게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호성은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20년 동안 연봉 20억이면 대한민국 중견 기업 대표 연봉이라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그렇겠죠……!”
자포자기한 한호성이었다.
“근무를 잘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선장.”
한호성에게 말한 후 전두성 부장은 멍텅구리 배의 선장을 불렀다.
“예, 부장님.”
“6개월 치 식량하고 부식 준비했지?”
“예, 그렇습니다. 추가 부식은 운반선을 이용해 보충받는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잘했네.”
전두성은 멍하니 육지 쪽을 봤다.
물론 이곳에서는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
“나도 여기서 6개월 머물 거니까, 그렇게 알면 돼.”
“부장님도 말씀입니까?”
“나 찾느라 정신이 없을 거야. 하하하! 낚시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야겠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장님하고 과장님은?”
“아, 두 분 말씀입니까? 제대로 사람이 되고 계십니다. 이제는 완벽하게 적응했고 열심히 새우를 잡고 계십니다.”
“뭐해요? 일해야죠. 내 연봉이 얼마인데 놉니까? 새우 잡읍시다. 내가 여수 수산 지점장이야.”
선희의 큰 오빠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소리쳤다.
정말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은 안 변하는데……?’
전두성 부장은 선희의 큰오빠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고 갑판 구석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차종만을 봤다.
‘뒈질 정도로 맞았구나.’
이곳에서 반항은 곧 폭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