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16화 (116/415)

# 116

116화 각하께서 부르신다니까요!

대후증권 빌딩 앞.

내가 한호성과 빌딩에서 나오는 순간 몇 대의 차들이 급하게 내 앞에서 정차했고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차에서 내려서 내 앞으로 뛰어왔다.

“백범 대표.”

놀랍게도 내 앞에 선 사람은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비서실장님?”

“예, 저입니다. 뭐 이렇게 바쁘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각하께서 급하게 찾으십니다. 가시죠.”

“각하께서 왜?”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시잖습니까.”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것을 들은 한호성은 더욱 기겁한 눈빛을 보였다.

“바로 가셔야 합니다.”

“저 그럴 수 없습니다.”

“뭐, 뭐라고요?”

대통령이 부른다는데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나를 보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어처구니가 없는 눈빛을 보였다.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바쁩니다.”

“대통령 각하의 호출이십니다.”

“약속을 잡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게 망나니짓을 하고 있다.

“백범 대표, 대통령 각하께서 백범 대표를 부르십니다.”

“제가 바쁩니다.”

-저녁에 뵐게요.

이 순간 은혜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호성의 일도 마무리를 해야 했다.

“백범 대표, 지금 장난할 때가 아닙니다. 각하께서 노심초사하시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제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럼 할 수 없죠. 강제로 모시겠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에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들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 뒤에 있던 전두성 부장이 내 앞으로 나섰다.

“납치입니까?”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납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몇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은 전두성 부장의 말에 황당한 눈빛으로 변했다.

“뭐, 뭐라고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러니 국민이 권력이다. 그 권력이 가기 싫다고 하시잖습니까.”

“미치셨어요?”

비서실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전두성 부장에게 말했다. 사실 그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나도 당황스럽다.’

나는 전두성 부장을 봤다.

“비키십시오. 이러시면 공무 집행 방해입니다.”

분명한 것은 청와대의 권위가 많이 떨어지긴 떨어진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전두성 부장이 제대로 내게 충성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표님께서 바쁘시다고 하시잖습니까.”

“됐고, 모셔!”

전두성 부장이 했던 말이 너무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말이 통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한 청와대 비서실장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청와대 직원들이 전두성 앞으로 나왔다.

‘이러다가 싸움 나겠네.’

진짜 이 자리에서 싸움이 나면 해외 토픽감이다.

부르릉!

그때 세 대의 봉고차와 두 대의 자동차가 급하게 내 쪽으로 달려와 급정차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렸는데 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손에는 골프장에서나 쓰는 대형우산이 각각 들려 있었다.

‘이게 뭐, 뭐냐······?’

나마저도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전두성 부장이 내게 말했다.

“혹시 저, 저 사람들 제 경호원들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전두성 부장이 내게 대답하고 청와대 직원을 둘러싼 내 경호원들을 봤다. 그리고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우산 펴!”

전두성 부장이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30명이 넘는 내 경호원들이 일제히 검은 우산을 펼쳤다.

‘일사불란하네······!’

길을 가다가 멈췄던 사람들은 이제 우산 안쪽을 볼 수 없게 됐다.

“백범 대표, 뭐 하자는 겁니까?”

청와대 비서실장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정말 물리적인 충돌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말씀드렸잖습니까, 각하께서 급하게 찾으신다고요.”

“목소리 좀 낮추세요. 이 안이 안 보인다고 안 들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

바로 인상을 구기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이런 일이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을까?’

절대 권력에게 이렇게 대항하는 존재는 4·19혁명이랑 5.18 민주 항쟁밖에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다.

“실장님.”

“예, 백범 대표.”

“각하께서 저를 부르신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다급히 보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도 오늘 꼭 처리할 일이 있습니다. 왜 저를 찾으시는지 짐작이 됩니다.”

“그러니 지금 가셔야 합니다.”

“저는 못 간다니까요.”

“백범 대표.”

“서민들이 듣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해외 토픽감이잖습니까.”

“아…··· 허허허!”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기까지 했다.

“각하께 전화 한 통 하십시오.”

“뭐, 뭐라고요?”

“제가 통화하겠습니다.”

“정말 미치셨어요? 진짜 망나니입니까?”

“전화하세요.”

못 가겠다고 이미 말했다. 그러니 나도 이제는 가기 싫다. 그리고 내 아내 은혜가 저녁에 내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호성의 일도 처리해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청와대 아니 백악관이라도 나는 못 가겠다.

“아······!”

비서실장은 탄성을 터트린 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 1번 버튼을 눌렀다.

따르릉, 따르릉!

딱깍!

-왜 이렇게 늦노?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버럭 소리를 지르시는 각하시다.

‘그만큼 초조하신 모양이군.’

초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죄송합니다. 각하. 백범 대표가 각하께서 전화를 받아주시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무슨 개똥 같은 소리고? 바꿔라.

“예, 각하.”

청와대 비서실장은 각하께 대답하고 나를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본 후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각하, 전화 받았습니다. 백범입니다.”

-니는 내가 오라카면 퍼뜩 올 일이지 왜 전화질이고.

“죄송합니다. 각하, 제가 정말 오늘은 바빠서요.

-......

대통령이 부르는데 바빠서 못 가겠다는 소리에 각하께서는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니, 니 미쳤나? 내 대통령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 저를 왜 부르시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 요청한 차관을 거부당하지 않으셨습니까?”

-니, 니 그걸 어찌 알았는데?

“지금 당장 손을 내밀 데는 일본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퍼뜩 온나. 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각하, 지금 제가 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대책을 마련해서 내일 아침 일찍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없는 대책이 내일 아침에 만들어지나?

각하께서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모든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진짜제?

“예, 각하······!’

나는 진퇴양난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에서 IMF를 극복할 방법이 있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각하께서 이렇게 나오시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또 없다.

-내일 아침에 꼭 온나.

“예, 알겠습니다. 각하. 비서실장 바꾸겠습니다.”

나는 대답하고 휴대전화를 비서실장에게 건넸다.

“받아보십시오.”

“으음······!”

청와대 비서실장은 전화를 받으며 나를 째려봤다.

“전화 받았습니다. 각하.”

-니는 갸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일 날이 밝으면 바로 델꼬 온나.

“예?”

-알았제!

“예, 알겠습니다.”

뚝!

각하께서 전화를 끊었고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변한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를 봤다.

“백범 대표······.”

“예, 이런저런 일로 죄송하게 됐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면 실세라면 실세다. 물론 현재 각하의 지지율이 18%까지 하락한 상태지만 그래도 청와대 비서실장은 비서실장이다.

‘IMF가 닥치면 6%까지 하락하지.’

별생각이 다 드는 순간이다.

“강북 그 아파트에서 그대로 사시죠?”

“예?”

“내일 해가 뜨자마자 모시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내 말에 다시 한번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예.”

그렇게 대한민국 역사에서 밝혀지지 않을 초유의 사태를 대충 수습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해 놓은 호텔로 가기 위해 차를 탔다.

* * *

달리는 자동차 안.

“전두성 부장님······!”

나는 전두성 부장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예, 대표님. 차종만은 고용 계약서 그대로 지사로 발령을 냈습니다.”

내가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줄 알고 대답하는 전두성 부장이다.

“그게 아니고요, 왜 그랬습니까?”

“예?”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것 아시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같이 함께 타고 있는 한호성도 한없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전두성 부장을 봤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죠?”

“제게 연봉을 주시는 분은 대표님이십니다.”

“아······!’

이보다 완벽하고 황당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공무 집행 방해라면 공무 집행 방해였습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대표님께서 범죄자도 아니고 청와대라고 해서 강제 소환을 당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국민을 즉시 소환할 권한이 있습니다. 물론 동원령이 발동됐을 때의 일이지만 말입니다.”

“동원령이 발동되지 않았지 않습니까. 지키는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따르는 사람도 똑같습니다. 머리에 생각이 많으면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냥 지키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명쾌한 대답이다.

“그런데 아까 그 말씀은 어디서 들은 말입니까?”

나는 미래에서 봤던 변호인의 영화 대사인 줄 알았다.

“아, 그거 말입니까? 태수가 헌법 공부한다고 중얼거리던 것을 어깨너머로 들었습니다.”

“태수가 왜 헌법을 공부한답니까?”

“깨요...? 요즘 꿈을 더 키웠습니다.”

“예?”

“검사가 되고 싶답니다. 그러니 저보고 나쁜 짓 하지 말고 살랍니다.”

“아, 그렇군요.”

하여튼 오늘 제대로 황당한 순간이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각하, 하루라도 더 늦기 전에 이 사태를 수습하셔야 합니다.”

경제 부총리가 창밖만 보고 있는 각하를 보며 말했다.

“해졌다……!”

각하께서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예?”

“부총리는 당신 해결책 있나?”

“지금으로서는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입니다."”

“국민은 우짜고?”

“각하, 국가를 위해서 국민이 겪을 고통은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그리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각하…….”

“한국은행 총재.”

“예, 각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저도 현재로는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쯤이면 재벌들은 다 알고 있겠제?”

“아직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송구합니다. 각하.”

“그라고, 와 자꾸 내랑 니들이랑 국가가 잘못했는데 책임은 국민한테 지라고 하노, 지랄하고 자빠졌다.”

“각, 각하…….”

“내 지금 혀를 깨물고 뒈지고 싶다. 국민이 무슨 죄가 있노…….”

“해외여행 자율화가 되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해외여행을 나가고…….”

“닥치라. 쯧쯧, 해가 졌다고 하늘이 부끄럽지도 않나!”

“송구합니다. 각하…….”

“오늘 해가 졌지만, 내일 해가 뜬다. 해가 뜨면 갸가 온다.”

놀랍게도 대통령은 백범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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