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15화 (115/415)

# 115

115화 망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5)

“백범 대표님,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한호성 차장의 눈빛은 변해 있었다.

“이 신체 포기 각서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시고 쓰셨죠?”

내 말에 겁을 집어먹는 한호성 차장이었다.

“예, 압니다.”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백범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 이제 2시간 후면 알거지가 됩니다. 그리고······.”

한호성 차장은 내 손에 들려 있는 신체 포기 각서를 보며 다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게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맞아요. 나는 한호성 차장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한호성 차장께서 해주시면 내가 살려드리고 또 아무 걱정 없이 살게 해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아, 기업들에 대한 내부 정보가 수집되어 있습니다. 그걸 원하십니까?”

역시 못된 놈은 못된 놈이다.

“됐고, 나는 한호성 차장이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기를 원합니다.”

“예?”

“정말, 내가 누군지 한 번도 알아보지도 않은 모양이군.”

“무, 무슨 말씀입니까?”

“나 백범이야, 내 아내의 이름이 심은혜고 내 아내의 오빠 되시는 분의 이름이 심철수야.”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한호성 차장은 모르겠다는 눈빛을 내게 보이고 있다.

‘진짜 모르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순간이다.

그리고 역시 맞은 놈은 평생 기억을 해도 때린 놈은 잊어버린다는 진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몰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며칠 전에 이명희가 다녀갔지?”

그 순간 이제야 내 손위 처남이 심철수라라는 것을 알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한호성 차장이다.

“그, 그렇, 그렇다면 이, 이 모든, 모든 것이······!’

기겁했는지 말을 더 더듬는 한호성 차장이다.

“잘 들어, 자기 아버지까지 알거지로 만든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과거를 반성하고 양심선언을 하는 거야.”

“아······!”

“총 날린 금액이 70억쯤 되겠지?”

“젠, 젠장······!”

“어떻게 할까? 이 신체 포기 각서 김 사장에게 돌려줄까?”

“그래서요?”

“죄를 반성하고 자수해.”

“그럼 내가 모든 것을 다 없던 것으로 해줄게, 알다시피 나는 돈 많아.”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고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왔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2시간만 기다리면 되겠군요.”

김 비서 뒤에는 전두성 부장도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내게 모든 일을 처리했다는 눈빛을 보였다.

“아직은 자유의 몸이니 기다리라고 하세요. 아직 이야기 안 끝났습니다. 참, 기자 회견장 준비 끝났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한호성 차장의 부친 이름으로 기자 회견을 준비해 왔습니다.”

한호성의 아버지는 4선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대선 출마를 발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자를 모으기는 쉬울 때다.

“아······!”

김 비서의 말에 한호성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럼 저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김 비서가 내게 묵례를 하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아직 판단이 안 서지?”

“내가 그걸 말하면 아버지의 정치 인생도 끝이야.”

내게 반말을 하는 한호성이다. 이건 반항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자신이 의지할 것은 국회의원인 자기 아버지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거절?”

“젠, 젠장······!”

“고민스러울 거야. 그 고민까지 내가 해결해 줄게.”

나는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이거 들으면 고민이 싹 달아날 거야.”

나는 바로 녹음기를 틀었다.

-그러니까 몇 년 전에 국회의원의 아들이 나를 겁탈하려고 했거든······.

녹음기에서 이명희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목소리에 기겁한 표정으로 변하는 한호성 차장이었다.

* * *

고속도로를 달리는 봉고차 안.

봉고차는 이미 여수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고 그 봉고차 안에는 차종만이 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자기 좌·우측으로 산만한 덩치의 남자 둘이 앉아 있기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차종만이었다.

“5억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예?”

“이거 당신이 5억 받고 사인을 한 거 아니야?”

덩치가 큰 남자가 차종만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당신, 사인 맞지?”

“사인은 맞는데······.”

“자기가 사인 한 것도 몰라? 고용 계약서잖아.”

“예?”

차종만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전두성이 내민 서류가 떠올랐다.

-사인합시다.

전두성은 항상 차종만에게 지시형으로 말했다.

-이게 뭡니까?

-5억은 이미 드렸고, 그에 따른 고용 계약서입니다. 형식적인 거고 1년에 1억 연봉으로 5년 근무한다는 아주 형식적인 서류입니다. 그러니 차종만 씨는 사인합니다.

-이런 것도 합니까?

-합니다. 자금이 집행되는 일이라서 철저하게 서류처리를 해야 합니다.

-대포통장으로 받은 돈인데······?

-그럼 우리가 대놓고 줬다고 발표를 해야 합니까? 알만한 사람이 왜 이래요? 사인합니다.

-아, 그렇기는 하군요. 예, 사인하겠습니다.

차종만은 고용 계약서를 대충 읽고 서명을 했었다.

-이제 차종만 씨는 여수 수산에 고용된 직원입니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고용 계약서······!”

이제야 그때가 떠오르는 차종만이었다.

“5년 동안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랍니다.”

덩치 큰 남자가 차종만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내가 무슨 일을 해요?”

“돈은 이미 다 받아 먹어놓고. 형님, 이 새끼 웃긴데요?”

그때 아무 말도 없던 남자가 덩치 큰 남자에게 말했다.

“형님이 뭐냐? 과장님.”

“아, 과장님. 죄송합니다, 형님.”

“또 형님이란다. 우리 개과천선했잖아. 우린 여수수산 직원이야.”

“아, 맞습니다.”

“차종만 씨, 일하기 싫으세요?”

덩치 큰 남자가 차종만에게 물었다.

“나는 일하겠다고 서명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래요? 나는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고용 계약서에 보면 자발적인 퇴사를 원하면 계약금의 3배를 배상하면 된다고 적혀 있네요.”

“뭐, 뭐라고요?”

“여기 적혀 있네. 이거 변호사 공증까지 받은 겁니다.”

“이런 시발······!”

차종만은 고용 계약서를 낚아채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새우잡이 어선에서 5년 동안 숙식을 제공 받으면 열심히 일한다······!”

정말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들을 이제야 찾아낸 차종만이었다.

“이런 젠장······!”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어, 나도 1년에 1억씩 받는 연봉이면 새우잡이 어선이 아니라 무인도에서 모래만 퍼먹고 살아라 해도 살겠다. 하하하!”

“이, 이건, 이건 사기야!”

차종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꼭 이러더라, 돈 받을 때는 고용계약서 꼼꼼하게 읽지 않고 꼭 이제 와서 이러더라.”

“과장님.”

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과장이라고 불리는 남자를 불렀다.

“그렇지. 내가 과장이지.”

“그냥 저 웃긴 새끼를 팰까요?”

“패?”

“예, 여기서 패나 배에서 패나 패는 것은 똑같잖습니까.”

남자의 말에 차종만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를 팬다고요?”

“맞을만한 짓을 하면 맞아야지.”

과장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연봉 1억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만큼의 무게와 책임이 있지 않겠어.”

“아······!”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차종만이었다.

“차종만 씨, 계약을 파기하고 싶으시면 15억 위약금 내시면 됩니다. 차 세울까요?”

과장의 말에 차종만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돈 없죠?”

“예······.”

“그럼 몸으로 때우세요.”

“아······!”

“5년만 죽자고 일하면 됩니다. 하하하!”

이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차종만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기꾼의 말로일 것이다. 그리고 차종만은 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여수로 끌려가서 새우잡이 어선을 타야 했다.

* * *

대후증권 한호성 차장이 사무실.

-그래서 나를 강간했던 새끼랑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멍청한 놈이랑 바꿔서 증언했지. 어쩌겠어, 내가 똑바로 증언해도 국회의원을 어떻게 이기겠어? 돈이라도 챙겨야지. 호호호!

틱!

나는 녹음기를 껐다.

“이,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걸 공개할까? 이게 공개가 되면 자수가 아니고 그냥 당신은 범죄자가 되는 거고 또 알거지가 되는 거야. 물론 교도소부터 다녀와야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게 끝일까? 출소 후에 김 사장이 두부 사서 기다릴 거야.”

내 말에 한호성 차장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내게 왜 이러는 겁니까?”

“속죄할 기회를 준 거잖아.”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최후의 반항을 시작하려는 한호성이었다.

“범죄자지. 이거 큰 범죄야, 국회의원 면책 특권도 적용이 되지 않는 형사 범죄라고.”

“아······!”

“이제 결정합시다. 옵션이야 되돌릴 수 없지만 내가 좋은 일자리 알아봐 줄게.”

“뭐, 뭐라고요?”

“잘못된 투자로 날려야 할 돈은 날려야겠지만, 사채로 빌린 20억은 내가 갚아주겠어. 그리고 연봉 1억짜리 일자리도 줄게. 어때? 다른 방법 없잖아. 결론은 같다. 자수하던가? 아니면 체포가 되던가? 둘 중 하나야.”

“백, 백범 대표님······.”

“말해, 나 바쁜 사람이야.”

“하겠습니다. 제가 지난날의 죗값을 모두 뉘우치고 양심선언을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일이 다 끝나가고 있다.

“정말 사채는 대신 갚아주시는 겁니다.”

“물론입니다. 나 돈 많아요. 당신 때문에 더 많아졌고, 하하하!”

“그리고······.”

“일자리?”

“예, 연봉 1억짜리 일자리도······.”

“물론이지, 나는 사실 내 아내가 판사가 되기 위해 이러는 거니까. 손위 처남이 무죄라는 것만 밝히면 돼.”

“아······!”

마지막 탄성을 터트린 한호성이 온몸을 다시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떨다가는 젊은 나이에 풍 오겠네. 쯧쯧. 갑시다. 기자회견 해야지.”

“......예.”

내 말에 한호성은 겨우 대답했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휘청거렸다.

“아······.”

“봐, 죄짓고 사는 거 아니다.”

“예, 알겠습니다.”

* * *

이명희의 집.

이명희와 하태현이 서로 죽일 듯 싸웠기에 집은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헉헉······!”

“흑흑흑, 내가 못 살아, 흑흑흑!”

하태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이명희는 피해자라도 되는 듯 서럽게 울고 있었다. 물론 둘은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그 개새끼야!’

이 순간 이명희는 차종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모텔이 기억이 났고 섹스를 할 때 정상위만 고집했던 차종만을 떠올린 이명희였다. 그제야 자기가 차종만에게 빨대를 꽂혔다는 생각까지 드는 이명희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명희는 자기를 패느라 숨까지 헉헉거리는 하태현을 봤다.

“너도 바람피웠잖아.”

울던 이명희가 하태현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도 피웠잖아.”

“피차 쌤쌤이잖아.”

죽일 듯 싸운 후라서 그런지 약간은 진정이 된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너 나랑 이혼할 수 있어?”

이명희가 하태현에게 말했다.

“이혼······.”

“이혼도 못 하잖아.”

“아, 시발······!”

“나 내일이면 5억이 들어와.”

“5억?”

“우리 그 돈으로 다시 시작하자.”

“5억이 어디서 생기는데?”

하태현의 물음에 이명희는 당연히 한호성 차장을 떠올렸다.

“그건 몰라도 되고, 중요한 것은 다시 5억이 생긴다는 거야.”

“아파?”

5억이라는 말에 다른 생각이 드는 하태현이었다.

‘저거 죽으면 5억은 내 거잖아, 보험이나 많이 들어놔야겠다.’

하태현은 딴생각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개 패듯 팼는데 당연히 아프지.”

“......미안해······!”

5억 때문에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하태현이었고 역시 망할 집은 망할 이유가 있는 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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