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11화 (111/415)

# 111

111화 망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1)

1997년 9월 27일, 태양종합금융투자 사장실.

“으아 억……!”

어제는 한강 강턱에서 정말 제대로 무리한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딱 한 번만 더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쑤신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대표님.”

내 앞에는 전두성 부장이 서 있다.

“그러게요. 너무 피곤하네요.”

“요즘 부쩍 무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됐네요.”

“그런데 어제……?”

“예?”

“어제는 왜 고수부지에 그리 오래 계셨습니까?”

내가 까먹고 있던 것이 있었다. 전두성 부장과 전두성 부장이 창업한 경호 회사에서 내 경호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냥 드라이브를 갔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전두성 부장은 그렇게만 대답했지만, 그 한강에서 무슨 역사(?)가 만들어졌는지 짐작하는 눈빛이다.

‘아……!’

살짝 창피해지는 순간이다. 물론 경호원들이 티코 안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짐작했을 것 같다.

‘티코가 흔들렸지……!’

티코가 그래서 티코인 것이다.

“참 대표님께서는 즐겁게 사시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두성 부장이 주머니에서 파스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비밀입니다.”

“저는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 * *

“정말 대한민국이 망할까요?”

전두성 부장이 내가 좀 창피해하는 것을 느꼈는지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제 곧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몰릴 거고 그것 때문에 나는 돈을 벌게 될 겁니다.”

“아……!’

김 비서, 박태웅 블랙홀 그룹 대표 그리고 전두성 부장은 내가 IMF 금융 위기를 예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일 때문에 요즘 부쩍 씁쓸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23억 달러가 아닌 230억 달러가 있다면 막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업은 국가를 위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돈도 벌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서민들도 고단하게 만들지 않을 방법이 있었다면 나는 그것을 택했을 것이다.

“자책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 참입니다. 제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미 동남아시아 지역은 외환 위기의 태풍이 몰아친 상태다. 태국의 바트화와 인도네시아의 루피화가 폭락한 상태고 나는 폭락의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된 시점에서 매수를 시작했다. 또한, 이 시점에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인도네시아에서 발행한 국가 채권을 헐값에 매입했다.

‘인도네시아는 발전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시아 국가라고 치부하기에는 인도네시아가 가진 지하자원 및 해양자원이 너무 많다. 하여튼 그 나라들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나는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다.

“증거 자료 확보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녹음했군요.”

“예, 그렇습니다. 차종만이 녹음한 내용입니다.”

“들어 봅시다.”

“예, 대표님.”

틱!

전두성 부장이 녹음기를 켰다.

-오억이네~

이명희의 목소리로 추측이 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증거금이야.

-증거금?

-스위스 비밀 은행에서 자금을 찾으려면 증거금이 필요하거든.

-그래?

-응, 딱 오억이 부족해. 5억만 더 확보하면 200억을 스위스 은행 비밀 계좌에서 인출할 수 있어, 그런데 5억이 부족하네…….

차종만의 목소리가 들렸고 한숨을 쉬는 소리도 들렸다.

-5억이면 되는 거야?

-되는데 우리 자기는 신경 안 써도 돼, 내가 구해 봐야지.

-정말 5억이면 되는 거지?

-혹시 돈 구할 데 있어?

-돈 구할 데는 없는데 돈 줄 사람은 생각났어. 호호호!

-돈 줄 사람? 그게 무슨 소리야? 로또라도 맞은 사람을 알아?

-호호호, 로또는 내가 맞았지.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자세하게 말해.

-옛날에 내가 안 좋은 일을 당할 뻔했다가 횡재를 했어.

-무슨 횡재를 했는데?

차종만은 은근슬쩍 이명희가 모든 것을 말하게끔 유도하고 있었고 이명희는 흥이 났는지 손위 처남이 자신을 구해 줬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술술 말해 줬다.

-와, 우리 자기 쌍년이네.

-뭐라고?

-하하하, 정말 제대로 세상 물정 아는 여자라고.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나는 합의나 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3억이나 줬네, 그러니 나라고 어쩔 수가 있겠어.

-누가 줬는데?

-한호성의 아버지.

-그래?

-응, 국회의원이더라. 역시 권력이 있으면 돈도 있더라. 호호호!

-따르릉, 따르릉!

그때 누군가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해. 우리 자기야.

-우리 자기는 나 아닌가?

-둘 다 우리 자기지, 호호호!

딸깍!

-자기 무슨 일이야.~

이명희가 코맹맹이 소리가 들렸다.

-나야 당연히 자기 보고 싶지. 그래도 어쩌겠어, 가장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나라도 옆에 있어 줘야지.

틱!

녹음한 내용이 끝났는지 전두성 과장이 녹음기를 껐다.

“여기까지입니다.”

“증거는 확보했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이거 터트리면 우리가 승산이 있겠죠?”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재판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당사자에게 양심선언을 받아내야겠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전화 온 사람이 남편인 것 같은데 참 불쌍하군요.”

“불쌍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전에 보고를 드릴 때 말씀을 드린 것처럼 맞바람입니다. 장소만 다를 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정말 망할 집안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여튼 수고하셨습니다.”

“예, 대표님.”

“저는 이 모든 일을 전두성 부장에게 맡기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제는 정말 바쁠 것 같습니다.”

곧 IMF다.

그러니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다음 주에 대후도 만나야 하고 한성해운도 만나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 이제 투자한 풋옵션 투자 만기가 3일 남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한호성 과장은 숨이 턱턱 막히고 있을 것이다.

* * *

대후증권 한호성 차장의 사무실.

“미치겠네……!”

백범이 예상한 그대로 한호성 차장은 컴퓨터로 한국 경제 동향을 파악하면서 두려움에 부르르 떨어야 했다.

“달러가 1,000원까지 올랐고……!”

주식은 연일 계속 폭락하고 있다.

“젠장!”

지그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는 한호성 과장이었다.

‘내 전 재산을 꼬라박았는데……!’

백범이 투자한 풋옵션 만기가 이제는 3일이 남은 상태였고 이 상태로 진행이 된다면 자신은 알거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확인한 한호성 차장이었다. 여기서 한호성 차장이 나쁜 놈이라는 것이 또 하나 밝혀지는데 자기 아버지의 재산은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쌍방울 그룹이 부도 처리가 됐습니다.]

틀어놓은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쌍방울 그룹이 부도 처리가 됐다는 뉴스를 한호성 차장이 듣고 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망, 망했다……!”

분명 자기가 3일 후에 망하리라는 것을 직감한 한호성 차장이었지만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그였다. 그리고 이 순간 한호성 차장은 백범의 얼굴만 떠올랐다.

“아……!”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다.

“차장님…….”

그때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여직원이 한호성 차장을 불렀다.

“왜!”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한호성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왜요?”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요?”

“예, 그렇습니다.”

그때 여직원 뒤에 있던 이명희가 앞으로 나오며 한호성 차장을 보며 웃었다.

“안녕히 계셨어요? 차장으로 승진하셨네요.”

“너, 아니 당, 당신은…….”

“저 보니까 반가우시죠.”

“무슨 일로 왔, 오셨습니까? 나가 보세요.”

한호성 차장은 여직원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직원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예, 차장님.”

여직원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고 이명희는 거만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한호성에게 다가가 의자에 다리를 꼬며 앉았다.

“저를 보면 반가워하셔야죠? 쫑날 인생 구해드렸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차장님, 머리 좋으시잖아요.”

“뭐라고?”

“저 돈 필요하다고요.”

“이, 이게 미쳤……나…….”

“제가 미쳐 보여요?”

이명희가 한호성 차장을 노려봤다.

“미친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진짜 한번 보실래요?”

“뭐, 뭐라고?”

“나 5억 필요해요. 주실 거죠?”

“그때 3억을 줬잖아.”

“그 돈 다 썼어요.”

“이, 이게, 이게 정말……!”

한호성 차장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꼴이었다.

“그러니까, 왜 저를 건드리셨어요. 저 급해서 그러니까, 3일이면 되죠?”

이명희가 3일이라고 말했고 3일이라는 말에 한호성 차장의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3일 후라……!”

“차장님, 저 콩밥 먹을 돈도 없어서 교도소 가서 콩밥 좀 얻어먹을 생각이 자꾸 드네요.”

“정말 이럴 겁니까?”

“당연히 이러려고 왔잖아요. 3일 드릴게. 콩밥 좋아하시면 입금하지 마시고.”

이명희가 쪽지에 적은 자기 계좌를 내밀었다.

“그리고 앞으로 저 다시 보면 웃으세요. 찾아온 사람 기분 나쁘게 인상 쓰지 말고요.”

“왜 갑자기 나타나서 이러는 건데?”

“말씀드렸잖아요. 돈 다 썼다고. 호호호!”

이명희의 협박에 한호성 차장은 이명희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참 의원님은 계속 의원님이시죠?”

“알아들었으니까 그만해.”

“감사합니다. 땡큐~”

* * *

1997년 10월 2일,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사장실.

며칠 전에 쌍방울 그룹이 최종 부도 처리가 됐고 어제 외환 시장은 개장과 동시에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하면서 40분 만에 원·달러 환율이 1일 변동 폭 상한선인 1,200원까지 상승해 사실상 거래 중단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오늘 내 앞에는 대후 그룹 재무이사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지금은 1,320원쯤 되겠군요.”

대후 그룹 재무담당 이사는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에게서 나에 대한 정보를 제공 받았을 것이다.

‘진성이 오라고 흘린 정보인데……!’

속 빈 강정 대후 그룹부터 나를 찾아왔다. 물론 급한 곳에서 먼저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태양 그룹은 종금사 아닙니까.”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가 그룹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그렇죠. 종금사죠.”

“달러 대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없이 급할 대후 그룹일 것인데 재무담당 이사는 다른 종금사를 대하듯 나를 대하고 있다.

‘망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아직 진짜 위기를 위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서류상으로 보고자들이 위기라고 하니 위기인 줄 생각만 하는 것이고 실감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달러 대출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달러를 환전해 가신다는 것도 아니고 대출이라고 하셨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죠. 어떤 담보를 제공하실 생각이십니까?”

미팅을 하기로 약속했으니 이야기는 들어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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