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110화 오늘은 핑계가 참 좋다?(2)
서울 외곽 어느 러브호텔.
백범과 은혜가 한강 고수부지로 티코를 몰고 가고 있을 때 전두성 부장은 박태수를 데리고 어느 러브호텔로 왔다.
“이거 불법 아닙니까?”
박태수가 전두성 부장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따라오지 말고 공부하라니까.”
“이럴 줄은 몰랐죠.”
“그럼 유부남인 내가 러브호텔에 무슨 이유가 있어서 왔겠어?”
전두성 부장과 박태수는 꽤 친해진 상태였다.
“유부남은 러브호텔 오면 안 되는 것은 아니죠.”
“뭐 그렇기도 하네.”
전두성 부장은 백범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평상시에 그렇다는 것이고 이런 임무를 따로 지시받았을 때에는 전두성 부장의 경호업체에서 백범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경호업체는 그의 부하들과 특전사나 안기부 출신 퇴직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건 다시 말해 한강 고수부지로 향하고 있는 백범을 경호원들이 원거리에서 경호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대표님은 특급 호텔에 가끔 가시니까. 하하하!’
어떤 면에서 전두성은 백범이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40대가 되고 10년을 넘게 산 부부는 부부라기보다 동지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으니까.
“누굴 잡으려고 이러세요?”
“망할 년이 하나 있어.”
전두성 부장은 법정에서 위증한 이명희를 떠올리며 몰래카메라의 설치를 끝냈다.
“그런데 이런 소형 카메라가 다 있네요.”
박태수는 전두성 부장이 설치하는 몰래카메라가 정밀한 소형이라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이게 CIA에서 쓰는 거다.”
“정말요?”
다시 한번 놀라는 박태수였고 그런 박태수를 전두성 부장이 뚫어지게 바라봤다.
“왜, 왜요? 저도 이게 비밀이라는 것쯤은 알거든요.”
“뻥이야~”
“헐……!”
“설치 끝났다.”
전두성 부장은 박태수에게 말하고 휴대전화를 꺼내 바로 차종만에게 전화를 걸었다.
“참 별것을 다 하시네요.”
“그러게. 하하하!”
따르릉, 따르릉!
한참이나 벨이 울렸지만, 차종만은 전두성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미친년이랑 같이 있군.’
어느 순간부터 전두성 부장은 백범처럼 이명희에게 적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두성 부장이 자신보다 어린 백범을 존경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딸깍!
그리고 1분 정도가 지난 후에 전화가 연결됐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차종만은 전두성 부장이 지급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기에 바로 전두성이 전화를 건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베르사체 702호 특실입니다. 차종만 씨 이름으로 예약해놨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혹시……!
“작전입니다. 5억을 받고 하는 일입니다.”
-예…….
“증언 확보하세요.”
-그럼 동영상은……?
차종만은 바로 감을 잡고 전두성에게 물었다.
“위에서는 당신 뒤통수밖에는 안 보입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뚝!
전두성 부장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대표님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닐까요?”
“무슨 문제가 생기는데?”
“이거 불법이잖아요.”
“오토바이 날치기였던 주제에 불법을 왜 따져?”
“저 개과천선 했습니다.”
“그래 너는 개과천선해라. 그러니까 앞으로 따라다니지 마. 나는 대표님을 위해서 일하고 대표님 모르게 일한다. 이거 대표님은 몰라.”
“아……. 완전 홍콩 누아르 영화네요.”
“누아르?”
“보스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알면서도 모르고 모르면서도 모르고.”
“태수야.”
그때 전두성 부장이 박태수를 불렀다.
“예, 삼촌.”
박태수는 전두성 부장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나는 어둠이야. 꼭 필요한 어둠이지. 내가 대표님 대신에 상대하는 것들은 나쁜 것들이지.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제 생각이 중요한가요?”
“한 명이라도 나를 이해해 줬으면 좋을 것 같아서.”
전두성 부장의 말에 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삼촌 편입니다.”
정말 제대로 친해진 전두성 부장과 박태수다.
“하지만 제가 경찰이 된 후에는 이러지 마세요. 조카한테 삼촌이 잡히면 서로 쪽팔리잖아요.”
“십팔 색깔 크레파스 같은 조카 새끼, 하하하! 알았다. 나가자.”
“예, 삼촌.”
하여튼 착착 준비는 진행되고 있었다.
* * *
으슥한 한강 고수부지.
우린 티코를 타고 으슥한 한강 고수부지로 왔다.
“판사님, 겁나시죠?”
“예?”
나는 내 아내 은혜를 오늘만큼은 판사님이라고 불러주고 있다.
모의재판도 재판이고 모의 판사도 판사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은혜는 판사라고 자신이 불릴 때마다 기뻐하고 있다.
‘내가 당신 꼭 판사 만들어 드립니다.’
각오를 다시 다져본다.
“제가 남편이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이라면 무섭겠죠?”
“당연하죠. 이렇게 으슥한 곳까지 왔으니까요.”
“그러니까요. 아까 변호사가 제출한 카드 사용 명세서를 보니까 강간 피해 여성은 사건 현장까지 오는 동안 2번이나 차에서 내렸어요. 내린 곳에서 커피도 샀고 담배도 샀죠.”
“아, 그러네요.”
“판사님, 다시 말해 여기까지 믿고 따라왔다는 거죠. 자발적으로 왔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현장 검증 및 강간 피해자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재현이라고요?”
“예.”
나는 은혜를 보며 엉큼한 눈빛을 보였다.
“조사관님……. 왜 저를 그렇게 보시죠……?”
“으음……. 저는 법원 조사관이죠.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피해 여성은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런 좁은 차 안에서 강간범이 여자가 입고 있는 몸에 꽉 끼는 청바지를 강제로 벗기면서 강간까지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그래서 재연을 해보자는 겁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은혜가 나를 보며 눈을 흘겼다.
“강간 피해자 여성처럼 알면서 여기까지 따라오셨네요.”
“호호호, 그렇게 되나요?”
은혜도 싫지 않다는 눈빛이다. 하지만 차 안에서 주변을 본능적으로 둘러봤다.
“여기 아무도 없습니다.”
“정말 없겠죠?”
“그렇다니까요. 그러니 재현 한번 해보자고요.”
“반항하면 아플 건데…….”
“그러니까요.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재판장님.”
나는 은혜를 야릇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고 은혜도 나를 바라봤다.
“시작하세요. 조사관님.”
“판사님은 청바지만 꽉 잡고 계시면 됩니다.”
“예, 알았어요.”
내 아내 은혜가 청바지를 꽉 잡았다.
“저는 준비 됐어요.”
“그럼 시작합니다.”
나는 바로 강간범으로 돌변해 은혜를 덮쳤는데 좁은 공간 때문에 몸을 편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건 불가능이야, 흐흐흐!’
* * *
20분 동안 나는 강간범이라는 생각을 하며 은혜의 청바지를 벗기기 위해 낑낑거렸지만 끝내 벗겨내지 못했다. 나는 은혜가 입은 청바지를 벗기기 위해 낑낑거리며 구슬땀을 흘렸고 은혜도 벗겨지지 않기 위해 낑낑거리느라 온몸이 땀에 젖어서 티코의 창문은 하얀 김이 서려 있었다.
“휴우……!”
정말 여자가 입은 청바지 벗기는 것이 힘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불가능할 줄 나도 몰랐다.
“아……!”
은혜도 힘이 들었는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불가능하죠?”
“휴……. 진짜 불가능하네요.”
“판사님, 이게 핵심입니다. 강간 피의자로 몰린 남자는 강간을 시도하는 상태인데도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네요, 검사가 제출한 증거 사진에서 여자의 몸에는 상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요. 최소한 여성이 반항했다면 남자는 손목이라도 잡고 제압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손목에 피멍 자국이 들고 상처가 생기죠. 사실 정말 남자가 짐승으로 돌변하면 폭력을 가해서 여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 후에 강간했겠죠.”
“반항하지 못할 상황이었을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판사님.”
“수면제를 먹였든지 아니면 흉기로 위협을 했던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피해 여성의 증언은 일관성이 있고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진술했다고 하셨죠?”
“그랬죠?”
“그러니까요. 수면제를 먹고 기절한 상태라면 여기까지 온 것도 몰라야 하고 강간 당시를 정확하게 증언할 수 없습니다. 또한, 흉기를 사용해서 위협했다는 증언도 없습니다.”
“아하! 여자가 무고했네요.”
“그럴 확률이 아주 높을 것 같습니다. 판사님.”
“정말 그럴 확률이 높을 것 같네요. 조사관님.”
“강간은 물리적 강제성 때문에 여자의 몸에 또 남자의 몸에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몸에는 특별한 상처가 없으니 이건 합의로 이루어진 성관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판사님은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하지만 무고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강간 피의자로 몰린 남자가 무죄를 선고받으면 무고죄로 고소를 하겠죠. 그때 검사가 밝혀낼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추리력이 대단하세요.”
“여기까지가 판사님의 조사관이고요. 저는 이제 당신의 남편이 되겠습니다.”
나는 은혜를 보며 말했고 바로 은혜의 손을 잡고 내 쪽으로 당겼다.
‘여기까지 왔으니, 으흐흐!’
나는 은혜를 보며 야릇한 상상을 시작했다.
“여기서 청바지 벗기가 너무 힘든데…….”
“아아앙!”
나도 모르게 은혜에게 앙탈을 부렸고 은혜는 내 앙탈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알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겨우 이 좁은 차 안에서 겨우 청바지를 벗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린 모두가 생각하는 그것을 하느라 다시 티코의 창문에 수증기가 잔뜩 끼게 했다.
* * *
사법연수원 모의재판장.
“판사인 제가 강간 피해자에게 몇 가지 질문하겠습니다.”
판사는 재판에서 거의 질문을 하지 않지만, 피의자나 피해자에게 질문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도 않다.
모의판사가 된 은혜의 말에 사법연수원 교수들이 은혜를 봤다.
“피해자.”
“예, 판사님…….”
피해자 임무를 수행하는 여자는 사법연수원 소속 서기였다.
“피해자께서는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을 하시는데 왜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죠?”
“예?”
“제가 아직 질문이 남았어요.”
“그 좁은 곳에서 강간 피의자가 강제로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를 벗기고 강간까지 성공하는데 어떻게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나요?”
“그, 그건……!”
“강간이라면 피해자는 반항을 했어야 했죠. 그럼 최소한 이렇게 손목이라도 멍 자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판사 임무를 수행하는 은혜가 자기 손목을 피해자 역할을 하는 여자에게 보여줬다.
“아……!”
이 탄성은 사법연수원 교수들이 터트리는 탄성이었다.
“해 봤네……!”
“그러게요.”
“열혈이야, 열혈!”
“아니죠, 꼴통입니다. 꼴통!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사법연수원 교수들이었다.
“본 판사는 검사 측과 변호사 측 모두 판결을 위한 증거와 주장이 부족한 이유로 휴정을 명합니다. 검사 측과 변호사 측은 다음 재판 때까지 판결을 내릴 수 있는 확실한 증거와 주장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모든 모의재판은 끝이 났다. 당연히 사법연수원 교수들이 파놓은 트릭을 모두 돌파했기에 은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판사는 범죄를 증명하는 위치가 아니라 판단하는 위치다. 하지만 은혜는 열린 사고로 판단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 그 범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은혜가 판사의 자질보다 검사의 자질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는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