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109화 오늘은 핑계가 참 좋다?(1)
다음 주에 대후 그룹과 한성해운을 만나기로 했다.
‘대후 그룹은 팽 시키고!’
한성해운은 빨대를 꽂아볼 생각이다. 사실 대후 그룹은 재계 서열 4위지만 속 빈 강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한성해운은 재계 서열은 낮지만, 알짜 중의 알짜다.
-한성해운에 대해서 분석하십시오.
나는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소속 기업 분석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예, 알겠습니다.
-한성해운 총수 일가가 어떤지도 파악하시고 그 집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다 파악하세요. 분석가들이 판단하지 마시고 모든 첩보와 정보를 수입하세요. 판단은 제가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왔고 내 아내 은혜는 모처럼 나보다 일찍 퇴근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기다리면서 법률 서류들을 살피고 있었다.
‘판례 연구인가?’
나는 아내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뭡니까?”
“사건 분석 토론회와 함께 모의재판이 있어서요.”
“아, 그렇군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모의재판이라고요?”
“예, 백범 씨, 제가 판사가 됐어요.”
나를 보며 웃는 은혜다. 모의재판인데 그 재판에서도 판사가 됐다는 것에 저렇게 웃는 은혜를 보니 안타깝고 내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축하합니다. 오늘 파티라도 해야겠네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너무 고민스러운 부분이 많아서요.”
“어떤 사건인데요?”
“강간 사건이에요.”
나는 속으로 왜 하필 강간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왜 그러세요?”
“어떤 사건인데요?”
강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별로 달갑지 않지만, 은혜가 판사가 됐다고 저렇게 좋아하니 조금이라도 사건 해석을 돕고 싶어졌다.
“같이 탄 티코 차량에서 운전자인 남성이 여성을 강제로 강간한 사건이에요.”
강간이라는 것이 강제적인 성관계를 의미하지만 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은혜다.
“저 사진들은 뭐죠?”
“모의 검사가 제출한 증거 사진들이에요.”
“아!”
모의재판인데 제대로 준비를 한다는 것이 놀랍다.
‘사법부 많이 발전했네.’
이렇게 사법연수원에서는 우수하게 가르치고 고민하게 하는데 왜 현장에 나오면 판사들과 검사들이 멍청해지는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모른다는 표현은 문제가 있다.
‘권력에 휘둘리니까.’
그 권력자의 의중에 의해 판결이 달라지니까. 그래서 멍청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제가 좀 봐도 되나요?”
“원래 재판에서는 안 되지만 이건 모의재판이니 보셔도 되네요. 그럼 오늘만 제 법원 조사관이 돼주시겠어요?”
“하하하, 그럴까요. 그럼.”
나는 은혜가 펼쳐 놓은 법률 서류들을 봤고 모의 검사와 모의 변호사들이 모의 판사인 은혜에게 제출한 각종 증거물을 유심히 살폈다.
“이 사건의 핵심은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원고인 여자는 강력하게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나는 몇 장의 사진을 보고 이 사건의 핵심을 간파했다. 그리고 이런 모의재판을 준비시킨 사법연수원 교수들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들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숨겨 놓은 트릭들이 너무 많군.’
이 모의재판은 아마도 판사의 자질과 판단력 그리고 사고력을 확인하고자 준비된 과정일 것으로 판단이 된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모의 검사도 또 변호사도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백범 씨.”
“예?”
“무엇을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을 하세요?”
“사법연수원 과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사실 놀랐어요. 그리고 저는 몇 가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가요?”
“피고인이 강력하게 무죄를 호소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증거들을 확인하고 있어요.”
은혜가 이러는 것은 손위 처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예, 백 명의 피의자를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형님 때문입니까?”
내 말에 은혜가 나를 빤히 봤다.
“그것도 있고요…….”
말꼬리를 흐리는 것은 자기도 개인적인 생각을 사건에 반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은혜 씨, 제가 은혜 씨 공부하실 때 옆에서 주워듣고 본 것으로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오로지 증거로만 판결을 내린다는 겁니다. 모든 결정을 내리는 판사는 감정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반대로 생각을 해요. 공부만 잘했던 사람들이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는 대한민국이라서 판사는 감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처음으로 은혜와 내가 의견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그런가요?”
“이런 말을 제가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200만 원을 훔친 피해자가 7년을 선고받고요, 200억을 횡령한 재벌도 7년을 선고받은 후에 특사로 풀려나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나는 이 순간 내 아내 은혜가 판사로 임용이 된다면 법원에 제대로 된 꼴통 하나가 탄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건 그거고요. 이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은혜에게 물었다.
“모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과 원고인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는데…….”
내 아내 은혜가 말꼬리를 흐리며 한 장을 사진을 힐끗 봤다. 그리고 그 사진은 나도 검사가 제출해야 하는 증거가 아니라 변호사가 피해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증거 사진이라고 생각이 들었었다.
“뭔가 이상하네요.”
이제는 내 의견을 제시할 때다.
“이상한 부분이 있나요?”
“제가 오늘은 심은혜 판사님의 법원 조사관이지 않습니까?”
“호호호, 맞아요. 조사관이세요.”
“그래서 말입니다. 판사님, 몇 가지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발견한 것이 뭔가요? 조사관님.”
“티코는 너무 내부가 좁잖아요.”
“그렇죠. 소형 자동차이니까.”
“이 사진을 보니까, 여성 피해자가 몸에 꽉 달라붙은 청바지를 입었네요. 추행 사건이 아니고 강간 사건이라면서요?”
“맞아요. 강간 사건이에요.”
강간 사건의 핵심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완전 삽입이 되어야 가능한 범죄다. 그것이 실패하면 강간 사건 범죄가 성립되지 않고 다른 곳에 삽입하면 유사 강간이 된다.
“그러니까, 이상하죠.”
“뭐가요?”
아직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눈빛을 보이는 은혜다.
“아직 시간이 늦지 않았으니까, 판사님, 조사관인 저와 함께 현장 검증 나가보실래요?”
“현장 검증이요?”
“예, 서류로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 직접 가셔서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을 조사관인 저는 추천해 드립니다.”
나는 은혜를 보며 말했고 내 아내 은혜는 재판 놀이가 즐거운 모양이다. 그리고 자신이 판사라고 불리는 것이 행복한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이제 6시네요. 빨리 서두르면 현장을 만들 수 있겠네요.”
“예?”
“밥도 먹어야 하잖아요. 가요.”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얼떨결에 은혜도 나를 따라서 일어났다.
‘으흐흐……!’
오늘은 무척이나 재미가 있을 것 같다.
* * *
유명 백화점.
나는 제일 먼저 강간 사건 현장을 만들기 위해 백화점으로 은혜를 데리고 왔다.
“여긴 왜?”
“판사라면 피해자도 되어 봐야 하고 가해자도 되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현장 검증 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백화점 점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공손히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모두 명품이고 대충 현금으로 계산하면 1억이 넘는다. 물론 1억이 넘는 이유는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 때문이다.
그리고 은혜도 나 때문에 명품을 입는 명품녀가 된 상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착용하는 그런 닳고 닳은 명품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아는 사람들만 알아서 챙겨 입는 그런 진짜 명품을 나는 은혜에게 구입해 줬다.
“청바지 좀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제 와이프의 몸에 꽉 끼는 청바지로 부탁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백화점 점원이 대답했고 은혜가 나를 봤다.
“왜요?”
“꽉 끼는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피해자랑 같은 상태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판사님.”
“아, 그러네요.”
그렇게 해서 은혜는 꽉 끼는 청바지를 사서 입었는데 명품을 입을 때와 또 다르게 매력이 느껴지는 은혜다.
‘청바지 핏이 정말 환상적이네.’
골반과 허리의 비율이 정말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리고 꽉 끼는 청바지라 은혜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정말 잘 어울리세요.”
백화점 점원도 은혜의 몸매를 보고 감탄한 눈빛이다.
“감사합니다.”
우린 그렇게 청바지를 구입하고 백화점을 급하게 나왔다.
“이제는 하나만 더 준비하면 되네요.”
“뭐가 또 남았나요?”
나는 집에서 나올 때 현장 조사를 하자는 엉뚱한 소리로 은혜를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바로 백화점으로 와서 청바지를 샀고 또 다른 곳으로 은혜를 데리고 가고 있다.
“소형차가 그 사건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판사님, 조사관인 제 생각으로는 소형차와 몸에 꽉 끼는 청바지가 핵심입니다.”
“그런가요?”
무엇인가 짐작이 된다는 눈빛을 보이는 은혜다.
* * *
“이 티코, 바로 구매할 수 있죠?”
자동차 판매점으로 은혜를 데리고 온 나는 차 딜러에게 즉시 구매를 요구했다.
“바로라고 하셨습니까?”
“예, 바로 구매하고 싶습니다.”
“바로는 좀…….”
“여기 전시용 차가 있는데 안 됩니까?”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할인 옵션 다 필요 없고 현금 구매하겠습니다. 전시용이라서 할인해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값을 주고 지금 즉시 구입하겠습니다.”
“왜 이러시는지?”
“제 판사님께서 조사하실 사건이 있다고 하시네요.”
“아, 판, 판사님…….”
차 딜러가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은혜를 봤다.
“얼마입니까?”
“438만 원입니다.”
차 딜러가 내게 말했고 나는 바로 지갑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꺼내 차 딜러에게 내밀었다.
“잔돈은 됐습니다.”
62만 원이 잔돈이 되는 순간이었고 내 말에 자동차 판매자가 다시 입어 쩍 벌어졌다.
‘졸부는 이래서 편하다.’
부자의 개념이 무엇일까?
어떤 것을 구입하거나 어떤 음식을 먹을 때 가격표를 보지 않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일반인이 부자나 졸부의 길로 접어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감 잡았네, 으흐흐!’
오늘은 내 아내 은혜의 모의재판을 돕는다는 핑계로 짜릿한 순간을 만끽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은혜는 몸소 강간 피해자의 심정을 느끼게 될 것이고 모의재판에서 강간 피해자가 일반 시민을 무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는 은혜를 위해 아니 솔직하게 나를 위해 티코를 구입해서 바로 티코를 끌고 자동차 판매점 앞까지 나왔다.
“와……!”
나를 따라 나온 자동차 딜러가 내가 세워 놓은 차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롤스로이스를 처음 본 모양이군.’
내가 타는 차는 롤스로이스다.
“롤스로이스 처음 보세요?”
“예, 처음 봅니다. 그런데 저렇게 좋은 차를 두고 왜 이런 소형차를…….”
“정원이 너무 넓어서 집에서 쓰려고요.”
나는 자동차 딜러를 보며 농담을 했는데 내 말을 믿는 눈치다.
“아……!”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저 아파트에 삽니다.”
“아, 진담인 줄 알았습니다.”
“하여튼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돈이 많다고 사람을 깔볼 필요는 없다. 돈은 그저 인생을 좀 더 편하게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도구에 불과하니까.
“아, 아닙니다.”
하여튼 이렇게 티코를 밖으로 끌고 나와 내 아내 은혜를 태운 후에 나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한강 쪽으로 차를 몰았다.
‘오늘 흐흐흐!’
그리고 보니 오늘의 짜릿함은 핑계가 참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