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108화 두 사람?(3)
전두성 부장은 경감 장태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쉽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경찰이 그럼 안 되는 건데.”
“예, 경찰로는 최악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대표님의 손위 처남께서 운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비리 경찰이었던 놈이 사건을 담당했으니…….”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지는 순간이다.
“하여튼 증거들 확보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저는 이번 일을 모두 전두성 과장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전면에 나설 수는 없다.
-외조를 적극적으로 할 때 괜한 구설에 휘말리지 말게.
대법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 알고 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마무리만 제가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저는 이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빚 갚으러 가야 하거든요.”
* * *
끝순 할매의 사채 사무실.
“할매, 빚 갚으러 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의 부동산을 찾으러 왔다.
“누구 마음대로 빚을 벌써 갚아?”
“아버지의 땅을 잡히고 사업을 하려고 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신경이 자꾸 쓰이네요.”
“형편이 확 풀렸다고?”
“예, 그렇습니다.”
나는 끝순 할매를 보며 웃으며 들고 온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전부 무기명 채권입니다.”
내 말에 끝순 할매는 미소를 보였다.
“네가 이런 귀여운 짓까지 하네~”
“고마우시죠. 그럼 이제 차용증 주십시오. 그리고 내일 바로 근저당설정 해제해 주시고요.”
“녀석 성격 정말 급하네.”
“빚은 빨리 갚은 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여기 있다.”
끝순 할매가 내가 쓴 차용증을 내게 내밀었다.
“장 비서.”
그때 끝순 할머니가 옆에 아무 말도 없는 남자를 불렀다.
“예, 어르신.”
“라이터하고 항아리 하나 가지고 와.”
“예, 알겠습니다.”
장비서라는 남자가 밖으로 나갔고 바로 항아리와 라이터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 놨다.
“찢지 말고 태워, 나는 내 앞에서 내게 쓴 차용증을 채무자가 태울 때가 제일 기분이 좋더라.”
“그러십니까?”
“서로에게 좋은 일이 생긴 거잖아. 채무자는 빚 갚아서 좋고 채권자는 돈 받아서 좋고. 그런데 기간이 너무 짧네.”
“제가 투자를 제대로 받았거든요.”
하여튼 아버지의 땅으로 사채를 썼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사채를 오늘 갚았다. 물론 이것도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갚은 거지만 곧 12월이다.
-지시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환율이 960원까지 상승했습니다.
오기 전에 환율 확인 직원에게 보고를 받았다.
‘이제 시작이 됐다.’
분명한 것은 내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30억 달러가 아니라 300억 달러가 내 수중에 있었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막았을까?’
내게 질문하는 순간이다. 사실 나는 그랬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인간은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활활 잘 타네.”
“할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쯧쯧, 당장 인연 끊을 놈처럼 말하는군.”
“제가 할매께 사채를 빌릴 일은 없을 겁니다.”
“이놈아, 호언장담하는 거 아니다.”
“그렇기는 하네요.”
사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끝순 할매가 사채를 빌려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조비가 그렇게 나를 귀인으로 포장한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주자주 찾아와서 맛난 것 사드리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앉아.”
“예.”
“갈 때 무기명 채권 챙겨 가라.”
“투자자로 변하시려고요?”
“네놈이 귀인은 귀인인 모양이다. 그 돈 내가 투자를 하마.”
“수익률은 많이 못 드립니다.”
이제는 처지가 바뀐 상태다.
“알았다. 완전 입장이 변했다는 거군. 하여튼 그 돈 깨끗한 돈으로 만들어 줘.”
“돈세탁은 싫은데요.”
“그런 놈이 왜 무기명 채권으로 가지고 왔어?”
“현금 들고 오기 무겁잖습니까.”
“하하하, 하하하,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냐? 돈세탁 부탁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손자 손녀 있고 네 녀석이 비가 말한 그대로 귀인이니 투자를 하고 싶다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제부터는 세금 내시고 사시겠네요.”
“그래 볼 참이다. 그러니 가지고 가.”
“예, 할매. 투자 계약서는 여기 있습니다.”
내 말에 할매가 나를 빤히 봤다.
“이 망할 놈이 처음부터 돈 깊을 마음은 없었군.”
“하하하, 제가 귀인 아닙니까, 귀인!”
끝순 할매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여튼 이렇게 아버지의 땅으로 받은 사채는 갚았고 그 사채만큼 투자를 받는 투자 계약서를 작성했다.
“연 수익 이율 10%면 엄청나게 생각해 드리는 겁니다.”
“다른 투자자들은 20%잖아.”
“그 투자자들은 1년 만기 계약 갱신이고요. 할매는 제가 하도 고마워서 20년 만기 계약 갱신입니다.”
“20년 만기?”
“예, 제가 말씀을 드렸듯이 대한민국은 크게 한 번 휘청할 겁니다. 그래도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고 최악의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한 후에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낼 겁니다. 물론 서민들은 그 여파에 20년 이상 힘든 삶을 살겠지만, 경제가 안정되면 금리는 하락하게 될 겁니다.”
“그래?”
“아마 제 판단으로 20년 후에는 아파트 담보 대출을 기준으로 하면 2~3%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10%의 수익을 약속해 드리는 것은 할매를 엄청나게 생각해 드리고 있는 겁니다.”
“네놈이 말을 할 때마다 낮도깨비 같은 소리처럼 들리는데 이상하게 믿어지네.”
“정말이라니까요. 경제는 상식입니다. 뭐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주식 투자도 상식이고 부동산 투자도 상식입니다.”
“그게 상식인데 왜 사람들은 돈을 잃어?”
“욕심이 많으니까요. 안 될 것에 욕심을 부리니까 망하는 겁니다.”
“어린놈이 나한테 인생을 가르치고 있네, 내가 오래 살기는 한 모양이군. 호호호!”
“할매.”
“왜?”
“돈 많으시면 저한테 투자하시고요. 그러고도 남으시면 진성전자 주식이나 사두시고요. 그래도 남으시면 내년 3월부터 강남 부동산이나 매집하십시오.”
“너한테는 이미 투자를 했으니 네 말대로 진성전자 주식이나 사야겠다.”
“사실 거면 저를 믿고 절대 파시지 마세요.”
“진성이 휘청한다는 소리구나.”
“대한민국 모든 그룹이 휘청할 겁니다.”
물론 삼성이 IMF 외환 위기에서 제일 피해가 적었다. 아니 엄청난 이득을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른 기업이나 그룹들은 난리가 났지만, 삼성은 득을 본 것이 너무 많으니까.
“하여튼 알았다. 네 녀석이 장가만 안 갔으면……!”
“손녀라도 소개해 주시게요?”
“그러게 말이다. 우리 손녀는 나를 닮아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쁘고 배운 것도 많아.”
그렇다면 절대 예쁜 손녀는 아닐 것 같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빨리 결혼을 했습니다.”
“호호호,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맙다.”
“저 이제 갑니다.”
나는 무기명 채권이 든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태양종합금융 회사 회의실.
개인적인 일은 앞으로 전두성 부장이 모두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사업에만 몰두해야 할 시점에 돌입했다.
“7월 2일을 시작으로 바트화가 폭락했습니다.”
박태웅은 내 지시 때문에 블랙홀 그룹의 대표가 되어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
그래서 꿩 대신에 닭이라는 생각으로 스카우트를 한 금융 및 경제 전문가들을 이용해 투자 방향을 잡고 있는데 박태웅을 미국에 괜히 남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오늘부터 바트화 매집에 돌입합니다.”
대한민국에는 25억 달러의 자금이 존재한다. 물론 그중 20억 달러는 나우루공화국에서 장기적으로 대여를 받은 자금이고 5억 달러는 서민들에게 투자를 받은 투자금이다.
“예, 알겠습니다.”
내가 지시한 것을 수행하느라 헉헉거리는 전문가들이다.
‘전문가는 무슨 얼어 죽을!’
그저 박태웅이 그리울 뿐이다.
“참 인도네시아 루피화 매집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1997년 8월 14일에 인도네시아 루피화가 폭락했고 나는 8월 20일에 국제전화로 인도네시아 루피화 매집 지시를 내렸다.
“3000만 달러까지 매집했습니다. 또한, 폭락한 인도네시아 채권도 헐값에 매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국가가 경제위기에 닥치게 되면 제일 먼저 폭락하는 것이 환율이고 그다음이 그 국가가 발행한 채권이다. 그리고 이렇게 채권을 헐값에 매집하는 투자 방식은 유대계 금융이 주로 하는 짓이다.
‘폭락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폭등으로 반등하지.’
너무 많이 떨어지면 다시 오르는 법이니까. 거기다가 인도네시아는 태국과 다르게 지하 및 해양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니 당연히 채권을 매집해 두는 것이 좋다.
“얼마나?”
“7000만 달러까지 채권을 매집했습니다.”
“목표액은 돌파했군.”
“그렇습니다. 대표님.”
사실 이제는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
‘아직 1억 달러가 남았군.’
23억 달러는 그대로 두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 23억 달러가 12월 말이면 4배가 될 것이고 내년 3월이 되면 내게 대출금 없는 56억 달러가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끝순 할매의 빚도 갚았으니 나우루공화국의 빚도 갚을 생각이다. 그리고 온전히 내 돈으로만 투자할 생각이다.
“추가로 보고할 사항이 있습니까?”
“대후 그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대후요?”
“예, 그렇습니다.”
이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기업가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더 많지만 말이다.
‘보유한 달러 때문이군.’
잘하면 큰 것을 하나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곳은 연락이 온 곳이 없습니까?”
“한성 해운에서도 연락이 오긴 했습니다.”
한 마디로 두 곳은 곧 외환 위기가 닥칠 거라는 것에 대해 감을 잡은 것 같다.
‘은행장님께서 잘도 정보를 흘리고 계시는군.’
하지만 내가 진짜 연락을 받고 싶은 곳은 진성 그룹이다.
“대후 그룹부터 미팅 잡으시고 한성해운도 미팅 잡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다음 주에 차례로 미팅을 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오늘 회의는 끝을 내겠습니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니들이 내게 뭐라 캤나?”
대통령은 경제 수석과 경제 관련 고위 공무원을 보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다.
“송구합니다. 각하.”
“아무 일 없다고 했나? 안 했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벽하게 달라…….”
“니는 닥치라.”
변명하던 경제수석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대통령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어쩔 기고?”
“한국은행 총재, 이제 어쩔 겁니까?”
경제 수석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고 대통령은 한국은행 총재를 보며 물었다.
“금융 시장 안정 및 대외 신인도 제고 대책을 수립하겠습니다.”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확인한 무능한 정부였다.
“어떻게?”
“우선 종금사에 5억 달러 외화 자금 긴급지원을 검토 중입니다.”
“세금으로 뭐 하자는 겁니까?”
“현재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각하.”
“이 모든 것이 외국이 달러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기 때문이지 않소?”
“결국, 그렇습니다.”
“나라에 달러가 없어서 이런 거니까, 비굴해도 돈을 빌려와야지.”
“예?”
“경제부총리가 일본에 가서 도와달라고 하세요. 우리가 휘청거리면 일본도 흔들릴 테니까.”
그래도 가장 확실한 해결책을 찾아낸 대통령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경제부총리가 바로 대답했다.
“일본에 달러를 빌릴 때까지 이 사태에 대해서는 비밀로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경제 수석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니는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다.”
“예, 각하…….”
경제 수석은 완전하게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상태였다.
‘백범 갸가 하는 말을 믿었어야 했는데……!’
이 순간 대통령은 백범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으음……!”
그저 안타깝기만 한 대통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