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07화 두 사람?(2)
“법의 질서가 공명정대하게 바로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숙부님 정말 오해 없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회사 전력분석실에서 나온 분석입니다. 이번 대선에 정권이 바뀔 거라고 합니다.”
“정권이 바뀌는 부분과 법의 질서가 바로 서는 부분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마음으로 아끼시는 은혜와 저를 조금도 부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주시지 않는 대법관님이십니다. 이런 대법관님께서 대법원장이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대법원장이 되면 법의 질서와 공정성이 바로 선데?”
“최소한 정권에 굴복하지는 않으실 것 아닙니까.”
내 말에 인상을 찡그리는 대법관이다. 어떤 측면에서 나는 지금 법원을 돌려 까고 있다. 그것을 짐작하기에 이러는 것이다.
“개인적인 문제만 보고 법원 전체를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네.”
“예, 그러겠습니다. 모든 일은 되실 분이 되셔야 합니다. 대법관께서 대권 주자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유혹을 뿌리치시고 법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위해 평생을 바친 숙부님께서 대법원장이 되신다면 서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드린 말씀이십니다.”
“못 들은 거로 하겠네.”
“진흙에 발을 담그지 않고서는 연꽃을 따지 못합니다.”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네.”
맞는 말이다.
“그렇습니다. 기회가 오시면 거부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내게 기회가 올까?”
“기다려 보면 알 것 같습니다.”
“뭐 그렇기는 하군, 그건 그렇고 자네는 정말 은혜를 위해 너무 열심히 외조하는군. 내가 대법원장이 되고 은혜가 판사만 될 수 있다면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이러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솔직하군.”
“은혜도 판사로서 공정하게 법을 판단할 겁니다. 하지만 정도만 밟고 가기에는 이 세상이 혼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숙부님께서 든든히 지켜주신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모든 판사는 형식적으로는 직책을 떠나 판사 그 자체를 존중한다. 물론 그 속을 보면 이익과 실리를 위해서 법원 정치를 펼치는 존재들로 넘쳐나지만 말이다.
‘은혜는 그런 것을 못 하지.’
그러니 휩쓸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법관에게 은혜를 지켜달라고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내 양심이 허락하는 부분까지 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나도 사실 은혜가 훌륭한 판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네. 그 일이 조카 자네에 의해 처리가 되기를 바라네. 그것 말고는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은혜에게 거는 기대가 크군.”
“예, 그렇습니다.”
“왜 여자 법무부 장관이라도 만들고 싶나?”
농담을 내게 건네는 대법관이다.
‘원한다면 그 이상입니다.’
내 아내 은혜가 법무부 장관 아니 대통령을 원한다면 최대한 공정한 방법을 통해서 만들어줄 참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 내가 먹었던 마음을 접은 상태다.
‘내 아내가 원해야 한다.’
내가 이 실장을 만난 후 많은 것을 포기했을 때 이 부분까지 생각해 둔 것이다.
“숙부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나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네, 주변이 깨끗하다면 못 될 것도 없지.”
나보다 은혜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대법관이었다.
“그렇군요……!”
“자네가 은혜를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네. 하지만 구설에 휘말리지 않게 노력하게.”
“예, 알겠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대법관에게 머리를 숙였다.
* * *
고급 룸살롱 앞.
술에 취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주차장으로 걸어왔고 이 남자는 이명희에게 빨대를 꽂은 사기꾼이었다.
“좋네, 흐흐흐, 돈이 좋아~”
사기 친 돈을 유흥비로 쓰고 있는 사기꾼이었다.
“멍청한 년을 제대로 물었어. 히히히!”
“차상옥 씨.”
그때 전두성 부장이 남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사기꾼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뭐지……?.’
이것만 봐도 타고난 사기꾼이라는 것을 전두성 부장은 직감할 수 있었다.
“본명을 불러드릴까? 차종만, 종만아, 존만아, 내가 부르고 있잖아.”
전두성 부장은 차상옥의 본명인 차종만을 불렀고 그제야 인상을 찡그리는 차종만이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안기부 비밀 요원이시라고요? 전직 대통령 비자금을 관리하신다고요. 남산 한번 같이 가십시다.”
전두성 부장의 말에 차종만은 바로 튀려고 했지만 전두성 부장이 뒷멱살을 잡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누, 누구십니까?”
“남산에서 왔어, 시절이 어떤 시절인데 전직 대통령 비자금으로 사기를 쳐.”
“남, 남산이라고요.”
“차에 탑시다.”
전두성 부장은 자신을 남산에서 왔다고 말하고 차종만에게 차에 타라고 지시했다.
“저, 저는…….”
“탑시다.”
전두성 부장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차에 탈 수밖에 없는 차종만이었다.
“죽,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고 다닌 것이 아니라…….”
“됐고요, 남산 가서 이야기합시다.”
“아……!”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차종만이었다.
* * *
남산 인근에 있는 사무실.
이곳은 5층짜리 건물을 내가 구입한 건물이며 전두성 부장이 내 사람이 된 이후에 바로 구입해서 구조 변경을 끝낸 곳으로 영화에서나 나오는 안기부 조사실 비슷하게 꾸며 놓은 상태다. 그리고 나는 옆방에서 안대를 쓰고 덜덜 떨고 있는 차종만을 지켜보고 있다.
“차종만 씨.”
전두성 부장이 내게 전화를 했고 나는 바로 이곳으로 와서 사기꾼 차종만 앞에 앉아 있다. 차종만은 지금 안대가 씌워져 있는 상태다. 안대를 벗는다고 해도 나를 볼 수가 없다.
‘보이지 않으면 더 두렵지.’
나는 지금 전두성과 함께 차종만에게 공포를 주입하고 있다.
“……예.”
“안기부 비밀 요원이라고 떠벌리고 다닌다고요.”
전두성 부장이 차종만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제가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멍청한 그것들이 지레짐작하고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그래요?”
차가운 말투로 일관하고 있는 전두성 부장이다.
“예, 정말입니다.”
“사기꾼인 것은 확실하고 전직 대통령 비자금 관리자라고 말하면서 사기를 친 것은 확실하잖아.”
살짝 목소리를 높인 전두성이고 차종만은 그 섬뜩함에 살짝 움츠리는 모습이다.
“그, 그게…….”
“안대 풀어드릴까? 내 얼굴 이미 봤잖아.”
“저, 저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자기가 내 얼굴을 보면 더 위험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똑똑한 놈들이 더 쉽게 당하는 법이지.’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요?”
“예,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바로 빌기 시작하는 차종만이다.
“잘 생각했습니다. 제 얼굴을 기억하면 큰일 나니까.”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해야겠어.
나는 저곳과 연결된 인터폰을 누르고 말했고 안대를 쓰고 있는 차종만은 내 목소리의 위치를 파악하려는 듯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두리번거렸다.
-차종만 씨,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우리랑 같이 비밀 작전 한번 합시다.
“누, 누구십니까?”
-알 필요 있나?
“죄, 죄송합니다.”
물론 나는 목소리까지 음성변조를 한 상태다.
-이명희라는 여자에게 빨대를 꽂았죠?
이런 폐쇄적인 공간에서 반말보다 존댓말을 섞어서 말할 때 상대는 더 두려움을 느낀다.
“그, 그게……!”
-차종만 씨는 운이 없었네요.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여자인데 빨대를 꽂았으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여자에게 얼마나 더 빨아낼 수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그 여자가 이런저런 일로 특정 정치인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안대 풀어드려.
내 말에 전두성 부장이 바로 차종만의 안대를 풀어줬고 차종만은 기겁한 눈빛으로 전두성 부장을 봤다.
-당신이 얼마를 사기를 치든지 상관이 없어.”
“예?”
-그 여자를 거덜을 내놓으면 돼.
“아……!”
-그리고 우린 안기부도 아니야. 하하하!
내 말에 다시 멍해지는 차종만이다. 그리고 차종만은 지금 내가 한 말을 좋은 머리로 해석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안기부가 아니어야 하거든.
나도 그렇고 전두성 부장도 우리가 안기부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건 사기의 수법 중 하나다. 사기꾼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저 호구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사기를 치기 더 쉬워진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 여자를 거덜을 내놓는 것이 당신 임무야.
“예, 알겠습니다.”
-전달해요.
내 음성에 전두성 부장이 통장 하나를 차종만에게 내밀었다.
“확인합시다.”
전두성 부장이 나직이 말했다.
“예?”
“액수 확인하라고.”
차종만이 바로 통장 내역을 확인했다.
“헉!”
5억이 들어 있는 통장이다.
-이명희만 알거지로 만들어 놓으면 그 돈은 당신 거야.”
내 음성에 차종만은 전두성을 빤히 봤고 전두성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기요, 그러니까, 제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이명희를 거덜 내 놓는 것까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차종만이다.
-증언 몇 가지를 확보해야겠어.
“예?”
* * *
“아……!”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서 차종만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궁금한 것이 많은 눈빛이군.
“죄송합니다.”
-궁금한 것이 뭡니까?
“안기, 아니 그곳 소속이면 여당에게 이로워야 하지 않습니까?”
-정권이 바뀔 조짐이 심상치가 않아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
-이인제 지사도 대권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표가 자꾸 쪼개지고 있는데 저쪽은 하나로 뭉쳐지고 있고 답답해.
“아, 그러시군요.”
-줄을 바꾸려면 공헌한 것이 있어야 하니까.
정말 오는 첩보영화 한 편 찍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순간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아시겠죠.
“예, 알겠습니다.”
-내연의 관계이니 자연스럽게 증언을 확보해서 녹음하면 됩니다. 당신이 불법적으로 녹음한 것은 법적 효력이 없지만 내가 넘겨받으면 불법이 아니라 편법이니까.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대충 감을 잡은 차종만이다.
-명심하실 것은 우리가 항상 당신 지켜보고 있다는 겁니다. 짐작했듯 우린 당신을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 돼.
“예, 물론입니다.”
* * *
내가 있는 사무실.
나는 여전히 다른 방에서 온갖 생각을 하고 있는 차종만을 보고 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전두성 부장이 옆 사무실에서 건너와 내 앞에 서 있다.
“이렇게 하실 필요까지 있으십니까?”
전두성 부장이 내게 물었다.
“증거들은 여러모로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는 네 사람의 파멸을 모두 원합니다.”
“네 사람이라고 하셨습니까?”
“증거들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하고 경제적 파탄에 직면하게 되면 스스로 양심선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은 이명희를 거덜을 내놓고 경찰 경감으로 승진해서 승승장구를 하는 장태복을 파멸시킬 참이다. 그리고 이명희가 한호성 차장을 협박하게 만들 참이다. 그런 과정에서 한호성 과장은 풋옵션 투자 실패를 통해 알거지가 될 것이고 그때 내가 등장할 참이다.
“양심선언이라……?”
“스스로 죄를 자수하게 할 겁니다.”
가진 자가 가장 비참한 순간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다시 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일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목을 치는 꼴을 보겠군.’
그리고 이 일은 아마도 이번 대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참, 장태복 그 인간의 약점은 찾았습니까?”
“예, 찾았습니다.”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