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06화 (106/415)

# 106

106화 두 사람?(1)

1997년 9월 13일, 전두성 부장의 독립 사무실.

나는 3일 전에 귀국했고 이틀 동안 내 아내 은혜와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오늘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빌딩이 아닌 이곳으로 출근했다.

‘이제 시작해야지.’

손위 처남의 사건도 이제는 처리해야 할 때다. 그래서 나는 나우루공화국에서 먼저 귀국하는 전두성 부장에게 법정에서 위증해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꾼 절대적 역할을 수행한 두 사람의 소재를 파악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오늘 아침, 이인제 경기 지사가 새한국당 탈당과 함께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김대준이 대통령이 되는 일에 지대한 공을 한 사람을 꼽으라면 이인제 경기도 도지사일 것이다. 여당의 표를 쪼개 놨으니까. 하여튼 나는 아침이면 뉴스를 통해 대한민국 정치 경제 분야가 흘러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를 준비한다. 물론 그 뉴스를 완벽하게 믿지는 않는다.

현재의 언론은 국민이 듣고 싶은 소리만 그리고 권력자들이 허락한 것만 보도하는 존재로 전락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과 저 뉴스들을 비교하며 판단한다.

틱!

나는 주요 뉴스를 확인하고 TV를 껐고 내 앞에는 전두성 부장과 박태수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공부 좀 되냐?”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시간 얼마 안 남았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 허비하지 말고 가서 공부나 해. 네가 나를 위해서 해줄 것은 지금 공부뿐이다.”

“예, 알겠습니다.”

박태수가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대표님께서 바로 이곳으로 출근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돈은 벌 만큼 번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엄청난 투자도 끝내 놓은 상태고요.”

내 말에 전두성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업들은 성과를 낼 겁니다. 하지만 형님의 문제는 시간이 제 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때가 됐기도 하고요. 조사 끝냈습니까?”

지금은 1997년 9월이다. 이제 위기론이 슬슬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물론 지금은 대한민국이 외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은 아닐 것이다. 대선 시즌이고 나는 김대준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의 여당은 곧 힘을 잃게 될 것이고 그때가 오기 전까지 형님의 무죄를 입증할 많은 준비를 끝내놓아야 한다.

“예, 그렇습니다.”

“보고 받겠습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위증을 한 사람은 두 명입니다. 간호사 출신 이명희와 현재에도 경찰인 장태복입니다. 장태복은 현재 경감으로 승진한 상태입니다.”

“이명희는?”

“간호사를 그만두고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남의 인생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잘 먹고 잘산다는 소리군요.?”

“예,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파멸시켜 줘야죠.”

나도 모르게 살기가 내뿜고 말았다. 아무리 내 아내 때문에 착하게 살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이런 것까지 참으면 호구다.

‘착한 것과 호구는 다르지.’

그것들이 위증 후 인생을 망쳤다면 내 분노가 조금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두성 부장은 두 연놈이 잘 먹고 잘산단다.

남의 집안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놓고 자기들은 승승장구를 한다니 그냥 둘 수 없는 일이다.

“파멸이라고 하셨습니까?”

“인간적으로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내 말에 전두성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파고들 부분은 확인을 끝냈죠?”

“예, 그렇습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현직 경찰을 그것도 경감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일반인인 이명희를 먼저 건드리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이명희부터 시작하시죠?”

“그 미친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내가 거친 말을 쏟아내자 전두성 과장은 의외라는 눈빛을 보였다가 다시 담담해졌다.

“의외죠?”

“예, 대표님이 이런 모습은 처음입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이러면 안 되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보고를 드린 것처럼 이명희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고 보고를 드렸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결혼 생활 문제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명희가 한호성 차장 사건에서 위증을 했던 것은 짐작건대 돈 때문일 것이다.

“우선 그 사건 이전에 이명희의 경제 상황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간호사 출신 이명희는 그때 신용불량자 직전이었습니다.”

“결혼했다면서요?”

“평범한 회사원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할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바람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집안도 제대로 막장이군요.”

“그렇습니다.”

“쇼윈도 부부라는 소리군요.”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찍은 사진이면 충분히 협박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맞바람이라면 서로가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그런 작전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 부부들은 서로를 잘 속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명희에게 협박할 수 있다는 거군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과 함께 이명희의 정부에 대해서 주목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가 누구죠?”

“투자 사기꾼입니다.”

“빨대를 꽂혔다는 소리군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는 순간이다.

“예, 그렇습니다.”

“그 사기꾼이라는 남자는 어떤 플랜으로 사기를 치고 있습니까?”

“전직 대통령 비자금입니다. 자신을 안기부 전직 요원으로 소개하고 이명희에게 접근했습니다.”

이 순간 나도 모르게 하늘은 죄를 짓는 악인에게 벌을 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빨렸습니까?”

“현재 조사한 것으로는 5억을 뜯긴 것으로 파악이 됐습니다.”

“쯧쯧, 몸 주고 돈 뜯기고 난리도 아니군요.”

“대표님의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딱 그런 상태입니다.”

“그럼 두 가지를 다 이용합시다.”

내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전두성 과장이다.

“불륜 증거 확보하시고요. 빨대 꽂은 사기꾼 신병 좀 확보하십시오.”

“단순한 방법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빠른 방법으로 갑시다.”

“예, 알겠습니다.”

전두성의 대답을 듣고 나는 시계를 봤다.

‘오늘 대법관님을 뵙기로 했지.’

손위 처남을 위해 대법관을 만나기로 했다. 물론 손위 처남의 일을 상의할 생각은 없다.

“저는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언제 제가 그 사기꾼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내일이면 충분합니다.”

납치 비슷한 것을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물론 강제성은 없을 것이다. 이미 그 사기꾼은 이명희를 작업 중이니 그 사실을 밝히겠다고만 말해도 전두성 부장을 따라나설 수밖에 없고 내 앞에 오게 될 테니까.

“그럼 내일 봅시다.”

* * *

대법관의 자택 응접실.

대법관의 취미는 바둑이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가 내 결혼식 주례를 서준 주례이기 때문이고 정권이 곧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아내를 위해서 대법원장이 되어줘야 할 사람이고 그다음으로는 법무부 장관이 되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대법관과 3판째 바둑을 두고 있고 2판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졌고 한 판은 겨우 이긴 것처럼 바둑을 두고 있다.

‘져주기도 어렵고 아슬아슬하게 이기기도 어렵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법관을 봤고 2대1이니 이번 판은 아슬아슬하게 져야겠다.

“요즘 기부 사업에 열중한다고?”

이곳에 오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고 은혜를 위한 인맥 형성을 위해 자주자주 시간이 날 때마다 방문하고 있다.

“자랑할 정도는 못 됩니다.”

“자랑하려고 기부하나?”

“하하하, 그건 아닙니다.”

“내 듣기로는 규모가 상당한 거로 알고 있고 그 정도의 기부금이라면 자랑하고 다녀도 되네.”

나를 보며 웃는 대법관이시다.

“그럼 앞으로는 대법관님 말씀대로 자랑하고 다니겠습니다.”

“하하하, 농담도 부쩍 늘었군. 이번 판은 아슬아슬하게 이길 참이군.”

툭!

대법관이 돌을 내려놨다.

“표가 났습니까?”

“백범 자네랑 바둑을 두면서 내 실력이 늘었어, 그리고 자네가 엄청난 실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 아슬아슬하게 져주기도 힘들지 않나?”

“죄송합니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나?”

오늘은 대법관이 나를 불렀기에 이곳에 왔다.

“제 아내의 일 때문입니까?”

“그래, 내가 그래도 자네랑 은혜 결혼 주례를 선 사람이야, 그러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적절하게 도움을 줄 수도 없고 해서 그래서 불렀네.”

“물론입니다. 은혜도 저도 대법관님의 명예에 흠집을 내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내 말에 대법관이 나를 빤히 봤다.

“이보게 백범.”

“예, 대법관님.”

“그 대법관 소리는 질리도록 듣고 있네. 그러니 앞으로는 그냥 숙부라고 불러.”

나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표현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숙부님.”

“나를 숙부라고 생각을 한다면 내가 하는 말을 오해 없이 듣기 바라네.”

“물론입니다.”

“좋네, 은혜는 처음부터 판사가 되고 싶어 했지! 그래서 안타까워서 자네를 불렀네.”

“아……!”

“자네가 나서서 은혜의 판사 임용을 포기시키게. 집안일 때문에 판사 임용에 탈락하고 은혜가 상처를 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네.”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마디로 자기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대법관인 것이다. 그만큼 대법관은 공명정대한 사람이다.

“좀 서운하지, 자네가 내게 들인 공이 얼마인데 말이야.”

“아닙니다. 안 되는 일은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법관님.”

“말하게.”

내가 따로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눈빛이다.

“저는 제 매형의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생각입니다.”

“재심 청구?”

“예, 그렇습니다. 다행스럽게 사법연수원 연수 기간이 2년이지 않습니까? 저와 은혜에게는 아직 1년의 세월이 남아 있습니다.”

“나도 그 사건을 살펴보기는 했네. 안타까운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한민국 법원은 증거와 증인의 증언을 판결의 원칙으로 하네.”

“그 위증자의 위증을 번복시킬 생각입니다.”

“금전적으로?”

대법관이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금품이나 강요에 의한 증거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네.”

“하지만 양심선언이 있잖습니까.”

“양심선언?”

“예, 그렇습니다.”

“백범.”

“예, 숙부님.”

“세상은 그렇게 정의가 구현되지 않네.”

“저 역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누군가에게 희망을 버리라는 소리를 못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에게는 희망을 버리라는 소리를 더 못합니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네, 하지만 은혜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이지.”

“제가 잘 처리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숙부님.”

“내게 따로 할 말이 있나?”

“저를 조카로 생각하시기에 숙부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다네. 자네를 처음 봤을 때는 당황스러웠고 지금은 자랑스러운 면이 많아.”

“그래서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뭔가?”

대법관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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