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98화 (98/415)

# 98

98화 3개의 계약을 체결하다.(1)

1997년 8월 19일,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의 저택.

바다낚시를 할 때 모든 계약에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재정 장관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 물론 나를 환영하는 파티다.

“브라더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더군, 하하하!”

고급 포도주가 오고 가니 분위기는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고 재정 장관이 잡은 블루마린은 마치 트로피처럼 저택 정원에 설치되어 있다.

‘박제라도 시킬 참인가?’

나우루공화국 사람들은 참치를 날것으로 먹지 않는다. 그러니 참치의 진 맛을 모르는 것이다. 뭐 그래도 상관이 없다. 저기 트로피처럼 걸려 있는 블루마린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줬으니까.

‘원래 이렇게……!’

좀 비굴하면 인생 살아가는데 편한 법이다. 그리고 막대한 투자금도 유치할 수 있다.

“그랬습니까?”

“맹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하더군. 나 아니었으면 브라더는 죽었어.”

재정 장관의 돈이 박태웅을 살린 것이고 자기가 박태웅을 살렸으니 브라더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때는 정말 죽을 뻔했다니까. 하하하!’

“나 아니면 너 죽었어.”

“그래서 은혜를 갚으려고 뛰어난 투자가를 모시고 왔잖아.”

“또 파티하는데 사업 이야기를 하는군. 즐길 때는 즐겨, 브라더~”

“알았다고, 마시자.”

박태웅이 재정 장관에게 말했다.

“백범.”

“예, 각하.”

“같이 마십시오.”

지금 흥청망청 마시고 있는 포도주의 가격은 병당 1000만 원이 넘는 명품 포도주다. 저렇게 비싼 것을 물처럼 마시고 있다.

‘나도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졸부인데……!’

재정 장관 쟤는 정말 졸부 중에 최고 졸부 망나니인 것 같다. 그래도 예일대를 졸업해서 자기 나라의 위기를 느꼈으니 아예 망나니는 아닐 것이다.

“이거 비싼 거야.”

“압니다.”

“그러니까 많이 마셔. 하하하!”

마지막에는 생색까지 꼭 내는 재정 장관이다.

‘취한 것 같지는 않군.’

나는 재정 장관을 살피며 속으로 생각했다.

“백범.”

그때 재정 장관이 나를 불렀다.

“우리 술이 더 오르기 전에 이제는 사업 이야기 좀 할까?”

“그러시겠습니까?”

“안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나와 박태웅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 * *

‘와……!’

실내 장식을 보고 그냥 입이 쩍 벌어진다.

‘몇 마리의 표범을 잡으면?’

저런 대형 가죽 카펫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내 말에 재정 장관이 고개를 돌렸다.

“집사.”

“예, 주인님.”

“모셔, 괜히 혼자 갔다가는 길 잃어버릴 테니까. 하하하!”

지랄하고 자빠졌다. 하지만 저택이 정말 넓기는 하다. 하여튼 그렇게 안내를 받아 화장실을 갔고 정말 돈 지랄의 향연을 확인했다.

“변기가 황금이다……!”

그냥 제대로 돈 지랄을 하는 재정 장관이다. 뭐 이해는 된다. 9,000명의 국민에게도 매년 몇 억씩 생활비를 지급하는 국가의 재정 장관이니 이 정도의 돈 지랄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다.

‘진짜 나쁜 것들은 따로 있지……!’

예를 든다면 필리핀 구두 여왕 정도는 나쁜 것이다. 필리핀 국민은 쌀값이 없어서 굶는데 그 망할 여편네는 구두만 수천 켤레나 됐다고 하니까. 그에 반해 나우루공화국 권력자들은 그래도 국민에게 돈을 쓴다.

단지 자립하지 못하는 돼지로 만들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앞으로 내가 대신하고자 여기로 왔다.

‘나는 악마인가? 천사인가?’

나도 헷갈리는 순간이다.

* * *

화려한 응접실.

“대통령 각하께서는 리베이트를 받는 것에 익숙하시네.”

재정 장관은 여전히 거만하게 반말 찍찍거리는 뉘앙스의 영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달가울 뿐이다.

나우루공화국의 대통령이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인산염 개발 사업권을 획득한 외국계 기업들이 제공한 리베이트만큼 수익을 빼돌렸을 거라는 이야기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 많이 당하셨겠군요.”

내 대답에 재정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 맛을 못 버리시지.”

한 마디로 재정 장관이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있다.

“리베이트를 원하십니까?”

“나는 지속적이고 완전한 수익 실현을 원하네.”

“그렇다면 제가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4마리의 용 중에 한 마리로 성장했다는 것은 각하의 브라더를 통해서 들으셨을 겁니다.”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그런 경제 규모가 큰 국가의 중견 제약 회사를 제가 인수했습니다.”

“그래?”

“사람은 아프면 약을 먹어야죠. 신약을 개발하면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제가 개발하려는 신약은 정력제입니다.”

내 말에 눈이 커지는 재정 장관이다.

‘휘두르고 다닐 곳이 많지.’

돈 많은 사람에게 여자는 붙기 마련이다. 그리고 여자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전부 그렇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돈을 가졌기에 그 어떤 것에든 욕심을 내기 마련이고 그 처음이 여자고 두 번째가 권력이고 그 마지막이 명예다. 아마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은 아직 젊기에 여자를 밝힐 확률이 높다.

“정력제? 그런 약이 개발 가능한가?”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발기부전 치료제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발기부전 치료제가 말 그대로 발기 상태를 지속시켜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정력제입니다.”

“아, 그렇기도 하군……!”

“국제 제약 업계 종사자들은 정력제나 발모제를 개발할 수 있다면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발모제라는 말에 눈이 더 빛나는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다.

‘벌써 시작이 됐네.’

이미 M자 머리로 변하고 있는 재정 장관이다.

“발모제를 개발할 수 있어?”

“개발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물론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경제 규모가 큰 대한민국에서 제약회사를 사모펀드 형식을 통해 인수했다는 겁니다.”

나는 사모펀드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렇군.”

“그리고 종합투자금융회사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금융이 세상을 주도할 겁니다. 그리고 종자를 개발하는 국가가 부를 손에 쥐게 될 겁니다.”

나는 나눔 종자 회사에 대해서도 재정 장관에게 설명해줬다.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영국은 이미 종자 전쟁에 착수했습니다. 농부들이 밭에 씨를 뿌릴 때마다 다국적 종자 회사들이 로열티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나우루공화국이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지?”

“나우루공화국은 영토 면적이 작지 않습니까? 그러니 산업을 육성하기 힘듭니다. 그러니 당연히 금융 산업과 특허 구입 사업에 몰두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 좀 보십시오.”

이제는 내가 콜옵션으로 수익을 낸 자료를 재정 장관에게 보여줬다.

“한 달 만에 30%의 수익을 발생시켰군.”

“이런 것으로 저를 판단해 달라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표본이 적습니다. 하지만 제가 딱 1년 전까지만 해도 제 수중에는 겨우 6천 7백만 달러밖에는 없었습니다.”

한화로 따지면 600억이다. 아버지가 주신 돈이고 내 사업 밑천이었다.

“그런데?”

“이 서류는 대한민국 국적의 산업수출은행이라는 곳에서 확인해 준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의 투자 유치금은 5억 달러입니다. 딱 1년 만에 일곱 배가 증가했습니다. 이게 금융 사업입니다. 투자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투자금을 확보해서 안전한 방식으로 투자를 한다면 현 국제 경제 흐름이 나쁘지 않기에 연 10%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으음……!”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숫자로 말해야 한다.

‘30억 달러에 대한 수익을 계산하고 있겠지.’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최대 24%의 연이자를 제공하고 30억 달러를 장기 대출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냥 20%만 잡아도 6억 달러다.’

이 정도의 수익이면 숨이 턱하고 막히는 수익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여전히 돈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지 않습니까?”

한 번 지급한 무상 복지와 현금 지원은 결국 마약처럼 변해 끊을 수가 없다.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파.”

“대통령 각하와 장관 각하께서는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나는 30억 달러를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으음…….”

“제게 말씀하시기 어려우십니까?”

“30억 달러, 그리고 70억 달러의 국부 펀드를 조성 중이네, 물론 그 이야기는 내 브라더에게 들었겠지?”

“그렇습니다. 우선 두 분의 개인 자금이신 30억 달러로 연 10%의 수익을 3년 동안 약속드립니다. 그럼 9억 달러의 수익이 발생하십니다. 아마 그 돈만 해도 세계 100대 부호에 속하시게 될 겁니다.”

“3억 달러의 수익을 3년간 보장하겠다는 소리지?”

“예,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돈 빌려달라는 소리다.

“대한민국에는 좀 특별한 대출 이자 상환 방식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먼저 이자를 떼고 돈을 빌리는 겁니다.”

내 말에 재정 장관의 눈빛이 변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리베이트를 좋아하신다면서요.”

한 마디로 나는 지금 국제 사채를 쓰겠다는 소리다.

“으음……!”

재정 장관의 눈빛이 변한 상태다. 탐욕으로 이글거리고 있다.

“제가 30억 달러를 대여해 주신다면 저는 27억 달러만 받아가겠습니다. 그럼 바로 3억 달러의 수익이 두 분께 발생하는 겁니다.”

“엄청나군.”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조성이 될 국부 펀드는?”

역시 탐욕에 눈이 멀면 욕심은 끝도 없이 커지는 괴물로 변하는 법이다.

“제가 70억 달러의 펀드를 다 운영할 수는 없을 겁니다. 모든 투자는 최악의 순간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만약 두 분 각하께서는…….”

“아버지는 빼고 말해.”

재정 장관이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재정 장관이 한 말의 의도를 정확하게 가늠해야 한다.

‘딴 주머니를 차시겠다는 소리군.’

역시 돈 앞에서는 부모·자식도 없는 법이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여튼 나는 저자세로 나가고 있다.

“각하께서 저를 믿고 조성될 국부펀드의 1/7인 10억 달러를 맡겨 주신다면 10%의 수익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묘한 미소를 보이는 재정 장관이다.

“나쁜 조건은 아니군. 하지만 30억 달러를 다 맡기기는 위험 부담이 커.”

“투자하시는 것이 아니라 대출을 해주시는 겁니다.”

“대출 역시 위험하지.”

“그럼 이걸 보시면 안심하실 겁니다.”

나는 비장의 카드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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