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97화 (97/415)

# 97

97화 저는 두 가지를 걸겠습니다.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은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돈 많으시죠?”

“머니?”

“예, 그렇습니다.”

“그게 모래알처럼 많아서 문제지. 하하하!”

박태웅이 말한 것처럼 참 거만하다.

“그럼 돈을 걸고 내기를 해도 흥미가 없으시겠군요.”

내 말에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돈이 많으면 여기까지 날아오지 않았을 테니까.”

돈내기로는 자기를 흥분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다.

“그럼 제가 장관 각하께서 원하시는 두 가지를 걸어볼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이럴 때는 상대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호기심이 자극됐다고 생각을 했을 때 훅 들어가야 충격파를 느끼게 된다.

“저는 나우루공화국의 미래와 영국 축구 구단을 걸겠습니다.”

내 말에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 나를 빤히 봤다.

“나우루공화국의 미래?”

“그렇습니다. 제가 블루마린을 낚게 된다면 나우루공화국은 행운을 낚게 되실 겁니다.”

“왜지?”

“저는 완벽한 투자가이니까요.”

“으흐흐, 자신만만한 남자라고 하더니 브라더의 말이 틀리지 않는군. 그런데 그건 이기든 지든 백범 당신에게 이롭지 않나?”

“그래서 영국 축구 구단을 인수를 해서 재정 장관 각하께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영국 축구 구단?”

“예, 그렇습니다.

내가 이런 내기 조건을 거는 것은 나우루공화국의 근대 역사 때문이다.

이 작은 섬은 19세기 말에 독일 제국에 의해 합병되어 식민지가 되었다.

‘독일 축구 구단을 사준다고 할 것을 그랬나?’

하여튼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나우루공화국은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의 승인을 받아 국제 연맹 위임통치령이 됐고 영국이 거의 지배를 하다시피 했고 그때 인산염이 개발되어 오랫동안 착취 아닌 착취를 당했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우루공화국은 일본 군대에 의해 점령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나우루공화국은 다시 영국이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신탁통치령이 되었고 그 후 1968년에 독립했다.

“왜지?”

“영국에게 축구는 자존심입니다. 나우루공화국은 영국 회사에 많은 것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이건 왜곡에 가깝다. 사실 나우루공화국에서 인산염을 개발한 회사가 영국 국적의 회사고 그 회사 때문에 지금의 풍요를 얻게 된 나우루공화국이다. 하지만 수익 분배 과정에서 많이 빼앗긴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영국 국적의 회사가 난개발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인산염은 풍부했을 겁니다. 그러니 영국에게 착취를 당한 것이니 제가 나우루공화국의 자존심을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말은 ‘어’ 다르고 ‘아’ 다른 법이다.

그리고 사실 궤변이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그때 좀 더 계획적으로 인산염을 채굴하고 미래를 준비했다면 인산염은 여전히 풍부한 자원으로 남아 있었을 겁니다. 영국 국적 회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막무가내로 난개발을 일삼았고 결국 이렇게 인산염이 고갈되고 있는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30년 전만 해도 나우루공화국의 인구는 4천 명이 넘지 않았습니다. 좀 더 적게 인산염을 채굴했어도 지금처럼 풍요로웠을 겁니다.”

내 말에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의 인구는 9,000명입니다. 두 배 이상이 늘어났습니다. 현재 나우루공화국의 국민은 모두 풍요를 만끽하며 고기 잡는 방법을 잊었습니다. 만약 그때 축복인 인산염을 덜 채굴하고 국민이 고기잡이를 병행했다면 오늘의 나우루공화국은 오늘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으음······!”

“제가 나우루공화국에 왔을 때 몇 가지를 보고 놀랐습니다. 주택은 호화스럽고 그 주택의 앞에는 고급 외제 차가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항구에서도 300대가 넘는 요트가 정박하여 있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30명 당 고급 요트를 한 대씩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기잡이를 하지 않으니 굳이 배가 필요 없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나는 지금 말을 돌려 돌려서 나우루공화국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대한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정 장관 각하.”

“으음······.”

“여전히 국민에게 무상복지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여전히 생활비 전체를 지원하지 않습니까? 노동자의 90% 이상이 나우루공화국 정부가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이지 않습니까? 인산염이 바닥이 난다면 풍요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지원하시겠습니까?”

“아픈 곳을 정확하게 찌르는군.”

“그래서 저는 이번 낚시 내기에서 나우루공화국의 밝은 미래와 나우루공화국을 이렇게 만든 영국의 자존심을 꺾어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재정 장관 각하께서는 제가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이길 생각은 추호에도 없지만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재정 장관이야.’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문지기처럼 서 있기는 하지만 결국 문지기 노릇을 하는 재정 장관을 통과하면 90% 정도는 성공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백범 당신에게 내가 무엇을 내놓아야 할까?”

나를 빤히 보는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다.

“고민스러우십니까?”

“낚시 내기에 패배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러시다면 제가 말씀드리죠. 재정 장관 각하께서 그리고 대통령 각하께서 가장 많이 가지고 계시고 가장 하찮게 생각하지만 절대 없어서는 통치가 안 될 머니를 제게 빌려주십시오.”

“결국, 내기가 사업 이야기 쪽으로 흐르는군.”

“여기까지 오는 길이 정말 멀었습니다. 돌아가는 길도 멀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그 길이 더 멀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나는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을 보며 말했다.

“영국 때문에 우리 나우루공화국이 이렇게 됐다고 했소?”

괜히 영국은 내 궤변 때문에 욕을 먹고 있다.

“그렇습니다.”

“영국 축구 구단을 인수해서 영국의 자존심을 나 대신에 밟아준다?”

“제가 아닙니다. 재정 장관 각하께서 인수하시는 겁니다. 부친 다음을 준비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영국의 자존심을 밟은 청년 대통령이라면 그리고 풍요까지 이어주고 있는 분이시라면 나우루공화국 국민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치 영국을 정치에 이용하라는 소리처럼 들리는군.”

“그렇습니다.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다.

“그럼 내가 이번 낚시 내기에서 이겨야겠군. 하하하, 나우루공화국의 풍요로운 미래와 내가 가질 영국의 축구 구단을 위해서 하하하!”

내 궤변이 흡족한 밧줄이다.

‘거만한 자니까.’

그 부분을 맞춰주면 일이 이렇게 쉽다. 물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을 테니까.

아마 리베이트도 원할 것이고 스위스 비밀계좌에 대한 입금도 요구할 테니까.

“저도 지지는 않을 겁니다.”

결과는 똑같다. 하지만 모두가 흡족하게 될 것이다.

‘말빨은 타고났다. 하하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에게 웃어 보였다.

***

망망대해 요트 갑판 위.

내 낚싯대가 활처럼 휘었다.

“블루마린이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고 계속 허탕을 치고 있는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 힐끗 나를 봤다.

“어디야?”

재정 장관이 측근에게 소리쳤다.

“저기, 저기입니다. 푸른빛이 블루마린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재정 장관의 낚싯대에 걸리지 않고 내 낚싯대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애매하군……!’

이길 필요가 절대 없는 내기 낚시다. 그리고 재정 장관은 낚시에 자신이 있다고 내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지금 허탕만 치고 있다.

“진짜 블루마린입니다.”

내 낚싯대에 걸린 놈이 수면 위로 한 번 크게 튀어 올랐고 푸른빛이 선명했다.

‘젠장, 바다의 신이 내게 허락하셨구나……!’

하지만 나는 바다의 신의 허락을 거부할 참이다.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릴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재정 장관의 표정이 안 좋다.

“백범, 바다의 신이 허락하신 걸까?”

낚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투로 말하고 있는 재정 장관이다.

“행운의 여신께서 제게 재정 장관 각하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행운의 여신이 얼마나 더 행운을 줄지 궁금하군.”

이제부터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블루마린을 놓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잘 삐지네……!’

속으로는 재정 장관이 가소로울 뿐이다. 하지만 이 순간 분명한 것은 손맛이 정말 제대로 묵직하다는 것이고 내가 블루마린을 낚는다면 어마어마한 놈을 낚을 거라는 것이다.

‘오늘 제대로 재수가 없네.’

다른 사람들이 내 속마음을 들었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가하게 이 태평양까지 한가하게 참치 따위나 잡으려고 온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여긴 태평양이야!’

또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참치는 동원참치가 최고지.’

동원참치는 대한민국 참치 통조림의 선두 주자로 1982년에 처음으로 참치 통조림을 생산해 참치 열풍을 일으킨 기업이다. 그리고 나는 원양 어업에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참치 및 연어 생산 기업을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우루공화국이 허락해 주겠지.’

추가적으로 이것까지 요구해야겠다.

“으으윽……!”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놈의 강력한 힘이 느껴져서 신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사실 이 신음은 재정 장관이 보고 들으라고 내는 연극이다.

‘힘에 부친 척을 해야겠지.’

하여튼 괜히 블루마린 저 새끼가 눈치 없이 입질해서 나만 곤란하게 됐다.

“왜 힘들어?”

재정 장관이 내게 물었다.

“어깨가 뻐근할 정도입니다. 릴을 감는 것도 벅찹니다.”

나는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였다.

“원래 블루마린은 힘이 대단한 녀석이지, 바다의 신이 허락했다고 해도 비실비실하면 절대 못 잡아. 무슨 일이든 운으로 되는 것은 없으니까.”

“그런 것 같습……. 으윽……!”

나는 더는 릴을 감지 못하는 척을 하며 다시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였다.

“벅차면 도와달라고 내게 말해. 나는 관대하기에 누구든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거든.”

재정 장관이 내게 말하고 박태웅을 봤다.

‘박태웅이 돈을 빌렸구나.’

딱 감이 온다.

“도와주십시오. 저 혼자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놈입니다.”

“내 도움이 필요해?”

다시 거만해지는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다.

“예, 저, 저는 힘이 다, 으윽……. 다 빠졌습니다.”

“그럼 관대한 내가 도와주지.”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바로 낚싯대를 그에게 넘겼고 그가 다시 낚싯대를 잡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골프장의 캐디처럼 사장님 나이스 샷만 외치면 될 것이다.

“이야야얍-!”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 포효하듯 소리치며 릴을 감기 시작했다.

“감깁니다. 각하, 조금만 힘을 내십시오.”

내가 옆에서 촐랑거리며 재정 장관을 응원하자 내 옆에 서 있던 박태웅이 피식 웃었다.

“내가 이거 잡는다니까-!”

다시 한번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고 그렇게 1시간 동안 사투 끝에 재정 장관은 블루마린을 낚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정말 제대로 대물이군.’

거의 5m고 900㎏ 정도 되어 보인다.

“성공입니다. 성공입니다!”

나는 흥분한 척을 하며 소리쳤고 내 호들갑에 재정 장관은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99%로다.’

그가 나를 보며 웃으니 나도 그를 보며 웃어야 한다.

“축하드립니다. 재정 장관 각하. 바다의 신께서 재정 장관 각하께 풍요를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하하하!”

하여튼 나는 오늘 아부의 달인으로 변해 있다.

“이게 다, 백범 당신이 내게 왔기 때문이겠지. 우리가 이렇게 힘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겠지?”

“예, 그렇습니다.”

내가 의도한 그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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