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96화 나우루공화국으로 날아가다.
1997년 8월 15일, 김포국제공항으로 달리는 자동차.
내가 탄 차는 김포국제공항으로 달리고 있고 드디어 나우루공화국으로 날아갈 준비를 끝냈다. 나를 수행하기로 한 사람은 당연히 박태웅 이사고 또 혹시 몰라 전 부장도 동행을 시켰다.
“8월 19일에 재정 장관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야기가 잘 진행이 된다면 8월 20일에 비밀리에 나우루공화국 대통령을 접견하기로 했습니다.”
박태웅 이사가 내게 말했다.
“문지기부터 통과하라는 소리군요.”
“그렇습니다.”
“박 이사 동문은 어떤 사람입니까?”
“권력자의 아들답게 버릇이 없고 기고만장하며 자신감이 넘칩니다. 지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합니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기를 좋아하겠군요.”
지구에서 세 번째로 작은 공화국이라고는 하지만 그 공화국의 대통령의 아들이니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일상이 따분한 존재고 흥밋거리를 찾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나우루의 선구자처럼 돈을 벌어서 국민을 평안하게 살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우루공화국은 거의 씨족 국가라고 보면 됩니다.
나우루공화국을 분석할 때 박태웅 이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렇습니다. 도박이나 내기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던 녀석입니다.”
“좋아하는 것 중에 잘하는 것이 뭡니까?”
“낚시입니다.”
“하하하, 낚시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나우루공화국의 선조들은 인산염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어업 활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사실 독립이 되면서 인산염 때문에 축복받은 땅이 됐지만 저는 그게 축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태웅 이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된다.
“배부른 돼지가 됐다는 소리군요.”
“누구도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국민의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는 유일한 나라가 나우루공화국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우루공화국의 인구는 1만 명이 되지 않는다. 모든 노동자는 국가에서 고용한 외국인 근로자들이고 나우루공화국 국민은 모두 풍요롭게만 산다. 그래서 일하는 것을 잊어버렸고 인산염 때문에 자신들은 한없이 풍요롭게만 살 거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인산염이 고갈되면 절망 그 자체가 될 겁니다.”
“그래도 대비라는 것을 하려고 이러는 거겠죠?”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권력을 유지하려는 조치에 불과합니다.”
이 역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상관없습니다. 낚시를 좋아한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군요.”
“대표님, 낚시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낚시를 잘 아느냐고?
세월을 낚기 위해 나는 전생에서 낚시를 꽤 했었고 그 낚시의 입문은 도피 생활을 위한 것이었다.
“그럭저럭 압니다. 그나저나 오래 걸리겠군요.”
당연히 나우루공화국으로 가는 직항로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며칠 앞서서 출발을 하는 것이다.
“전 부장.”
“예, 대표님.”
“경호원들은 어떻게 준비됐습니까?”
“1차 경유지에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무장경호원까지 고용한 상태다. 그리고 총기를 다룰 줄 아는 특전사 출신들도 고용한 상태다.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하여튼 철저한 준비를 끝냈다.
“라디오 좀 틀어보세요. 2시의 데이트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벌써 8월인데 아직 금융기관이나 정부는 외환 위기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없다.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하지만 나는 분명 각하에게 내 의견과 분석을 충분히 피력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
‘대통령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각하께서 임기 말년이기에 자기 임기 때만 외환 위기가 닥치지 않고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내 지시에 김 비서가 대답하고 라디오를 켰다.
[오늘 저희 아버지의 어깨가 더욱 무겁네요. 몇 개월째 월급이 밀렸다고 하시네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접어들었다는데 서민들은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들까요? 하지만 오늘도 아버지께서는 웃으며 출근하셨어요. 아빠~ 힘내세요.]
2시의 데이트 DJ가 애청자 사연을 읽어내려가고 있다.
‘국가 부도의 날이 오고 있다······!’
몇 주째 나는 두 시의 데이트 라디오 방송을 청취 중이다. 대표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TV 뉴스에서는 저런 내용이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기에 라디오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지만, 다시 확인하고 있다.
[부천에서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네요. 은숙 씨 아버님도 힘내세요. 노래 듣고 가겠습니다.]
몇 주째 띄엄띄엄 저런 사연들이 뜨고 있다. 그리고 그 간격들이 더 짧아지고 있다.
‘올 것은 온다.’
비행기 추락 사고처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고 경험했었다.
“대표님, 곧 김포국제공항입니다.”
김 비서가 내게 말했다.
“그러네요.”
며칠 동안 참 오래 비행기를 타야 할 것 같다.
* * *
1997년 8월 17일, 나우루국제공항.
3일 동안 두 개의 나라의 나라와 두 개의 국제공항을 거쳐서 끝내 나우루국제공항에 도착했고, 이 작은 섬나라에 국제공항이 존재하고 또 다른 공항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게 고생했다고 말하는 박태웅 이사지만 그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전두성 부장 역시 피곤해 보였다.
“박 이사님도 전 부장님도 고생했습니다.”
결국, 나우루공화국까지 날아왔다.
“예, 정말 비행기만 탔는데도 지칩니다.”
“전 부장.”
“예, 대표님.”
“경호원들은?”
“총기 휴대 때문에 내일 선박으로 입국할 예정입니다.”
혹시 몰라 철저하게 준비해 놓은 상태다. 그리고 내 뒤에는 특전사 출신 경호원들이 지친 상태에서도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어떤 측면에서 보면 촌닭의 모습 그 자체다.
“호텔 예약 끝났죠?”
나는 박태웅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마중 나온 사람이 전혀 없군요.”
나는 그래도 나를 만나기로 한 재정 장관의 측근 중 하나가 마중을 나왔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좀 거만합니다.”
박태웅은 예일대 동문인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 떠올랐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박태웅 이사는 쉴 틈이 없겠군요.”
“예?”
“내일 낚시 한번 하자고 연락해 보세요.”
“낚시요?”
“예, 참치 한번 잡아봅시다. 재정 장관이 낚시를 좋아한다면서요?”
“그렇기는 하지만 내기 없는 낚시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돈이 걸리지 않은 내기라면 재미가 없겠죠.”
만약 누군가와 대한민국에서 낚시 내기를 했다면 그게 바다낚시든 민물낚시든 미리 여러 가지 준비를 했을 것이다.
‘잠수부를 고용했을 것이고······.’
미리 대물급 물고기를 잡아 때에 맞춰 내 바늘에 끼워 놨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태평양이다. 그리고 낚시 내기를 한다면 참치잡이 내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쓸 수 있는 트릭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고 좀 하세요. 그래도 예일대 동문을 만났으니 저쪽에서 만나서 반갑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예일대를 졸업했다는 것을 측근들에게 자랑할 기회가 될 것이니 미리 찾아온 박태웅 이사를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우선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박태웅 이사다.
* * *
나우루공화국 수도에 있는 호텔.
나우루공화국은 작은 섬나라이지만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모두 벤츠를 비롯한 유명 고급 스포츠카였다. 그리고 일반주택에는 몇 대씩이나 되는 고급 외제 차들이 서 있다.
‘제대로 풍요롭구나······!’
하지만 이 풍요는 오래 갈 수 없다. 이미 인산염이 고갈되고 있으니까.
“뭐랍니까?”
재정 장관을 만나러 갔던 박태웅 이사가 돌아왔다.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잘 됐군요. 친해질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어떤 것을 낚시 내기에 거실 생각입니까?”
“그 재정 장관이라는 사람 돈 많죠?”
나는 박태웅 이사에게 되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돈이야 썩어날 정도입니다.”
“그럼 돈을 걸고 내기하면 흥미가 없겠군요.”
“그렇다면?”
“돈도 많고 권력도 가졌으니 허세를 떨 수 있게 해줘야겠죠. 내가 다 생각해 놓은 것이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시고 쉬십시오. 운이 좋으면 제가 질 겁니다.”
“예?”
“저 낚시 좀 합니다.”
허풍을 떠는 것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운이 좋아야 진다고 하십니까?”
“이겨서는 안 될 낚시 아닙니까?”
내 말에 박태웅 이사는 당연한 것을 괜히 물었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렇기는 하군요.”
“운이 좋다면 내일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에게 블루마린을 낚겠죠. 우리 자면서 기도합시다. 하하하!”
블루마린?
청새치를 말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 등장해서 더욱 유명해진 어류다.
강하고 긴 창 모양의 턱이 특이하고 몸길이는 5미터, 몸무게는 1,000㎏까지 자라는 대물이다.
‘선명한 푸른색을 띠고 있기에 블루마린이지.’
분명한 것은 바다가 허락해줘야 잡을 수 있다는 말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하하.”
내가 웃으니 박태웅도 따라 웃었다.
하여튼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의 첫 만남은 내기 낚시로 시작이 된다.
* * *
나우루공화국 항구.
작은 항구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작은 항구에 고급 요트들이 즐비하다는 것이고 그것이 모두 나우루공화국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요트라는 사실이다.
하여튼 아직은 풍요로운 나우루공화국이다. 그리고 2시간 정도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의 롤스로이스가 나타났다. 그는 항구의 차에서 내려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든 후에 걸어왔다.
“나,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이오.”
다 아는 것을 자신이 직접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대우해 달라는 소리다.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대표 백범이라고 합니다.”
숙여야 할 때는 숙여야 한다. 그리고 내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우루공화국 재정 장관은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브라더가 모시는 사람이군.”
재정 장관은 박태웅 이사를 브라더라고 불렀다.
‘정말 친하군.’
하여튼 박태웅은 내게 보배 같은 존재다. 사실 박태웅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 나는 나우루공화국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 것이고 투자를 받아낼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물론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성과라도 거둬야 한다. 3일 동안 비행기만 타고 이곳에 온 것이 억울해서라도 투자를 받아야겠다.
“내 요트로 갑시다.”
재정 장관이 내게 말했고 나는 이 항구에 정박해 놓은 제일 비싸 보이는 요트를 찾았고 예상했던 것처럼 가장 크고 가장 비싸 보이는 요트가 재정 장관의 요트였다.
“그냥 낚시만 하면 재미가 없지?”
요트에 오르자마자 요트는 낚시를 위해 출항했고 빠르게 바다를 향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재정 장관이 내게 내기를 제안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재정 장관 각하.”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에게 각하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돈 줄 놈이 왕이다.’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진리이니까.
“백범, 가장 큰 녀석을 잡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물론이죠. 저는 나우루공화국까지 왔으니 블루마린을 낚아보고 싶습니다.”
“블루마린? 하하하, 쉽지 않지, 바다의 신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다.”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재정 장관이지만 그 뉘앙스가 나에 대한 하대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게요. 제게는 바다의 신이 허락할 겁니다. 행운의 신이 이미 제가 재정 장관 각하를 만나게 해주셨으니까요.”
이건 아부다.
다시 말해 행운의 신이 허락해야만 만날 수 있는 존재로 내가 재정 장관을 포장해 준 것이다. 한 마디로 아부의 달인이 되는 순간이다.
“하하하, 하하하!”
내 말의 뜻을 알아들은 재정 장관이 호탕하게 웃었다.
“백범, 어떤 것을 걸고 내기를 하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