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95화 나는 어쩔 수 없이 미래를 알고 있다.(3)
1997년 8월 6일, 종합병원 VIP 특실.
나는 본의 아니게 꾀병을 부려야 했다. 아무렇지 않게 괌으로 출발하는 한국항공 모든 항공기 발권을 취소하면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꾀병도 나쁘지 않지.’
공항으로 가다가 배가 아프다고 생쇼를 해서 서울종합병원으로 김 비서가 차를 돌렸고 박태웅 이사도 나를 따라 종합병원으로 와야 했다. 물론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전 직원들도 괌으로 가지 못했다.
“전세기 발권은 어떻게 할까요?”
복통이 진정된 척을 내가 하자 김 비서가 조심히 물었다.
“취소하지 마세요.”
“예?”
“남의 사업 방해할 수는 없잖습니까. 제가 개인 사정으로 탑승하지 못한 겁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비행기도 뜨지 못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까지 막으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냥 우연의 일치로 두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좋다. 하여튼 나는 입원한 김에 종합검진도 받았고 2~3일 이곳에서 푹 쉴 참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 테니까.
“꾀병이시랍니다.”
기본적인 검사가 끝났고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박태웅은 이때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아팠어요.”
“검사 결과로는 아플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답니다.”
“아팠다니까요.”
“예, 예, 그러시겠죠. 정말 대표님은 돈이 많으십니다. 발권을 취소하면 될 것을 그냥 날리셨네요.”
“남의 사업 방해하는 것 아니니까요.”
“예, 예, 그러십니다. 누우신 김에 며칠 푹 쉬신다면서요?”
“그럴 참입니다.”
나는 박태웅에게 대답하며 야릇한 상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김 비서에게 아주 개인적인 일에 대해 부탁을 해놓은 상태다.
-아……!
내 부탁을 들었던 김 비서는 황당함 그 이상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 좋으실 때입니다.
-이렇게 입원한 김에 며칠 쉬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너무 일을 안 하셨는데 요즘에는 계속 일만 하셨습니다.
그 예전은 처가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뒤치다꺼리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내일이면!’
대후증권 한호성은 휘청거리게 될 것이다.
콜옵션 만기가 돌아왔을 때 나는 100억에 대한 투자로 30억 이상의 이익을 챙기게 될 것으로 판단한다. 최소가 30억이다.
아마도 한호성 과장 역시 그 지랄 같은 사악함 때문에 반대 투자를 했을 것이니 어느 정도 이상의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박 이사님.”
“예, 대표님.”
“이제 우리 어느 정도 성과도 냈으니까, 나우루 가야죠.”
내 눈빛이 변했고 이죽거리기만 하던 박태웅의 눈빛도 변했다.
“나우루공화국 측에서는 아직 발표가 없었습니다.”
“똥에 파리가 달라붙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웁시다.”
“그 말씀은?”
“100억 달러의 국부 펀드 조성 자금 중에 30억 달러 이상이 대통령과 재정 장관의 자금이라면서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서 그것부터 챙깁시다. 그러니 박 이사께서는 연락을 취해 놓으시고 일정을 조율해 보십시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저는 그리고 태양종합금융투자는 4억 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종금사입니다.”
이게 핵심이다. 그리고 나는 계열사를 3개나 가진 대표다.
퀸 화장품.
강동 제약.
나눔 종묘.
물론 나눔 종묘는 곧 우동국 석좌 교수가 대표이사직을 승계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나눔 종자와 강동 제약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고 퀸 화장품의 지분 85%를 가진 최대 주주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박태웅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일정 조율하고 출국 준비를 하시려면 바쁘겠군요.”
“예, 갑작스러운 지시라 바쁠 것 같습니다.”
“그럼 야근하세요.”
“아……!”
“싫으십니까?”
“아닙니다.”
“그럼 가셔서 일하십시오.”
내 말에 박태웅이 인상을 찡그렸다가 병원 특실을 나갔고 그때 마침 내가 응급환자로 특실에 입원했다는 통보를 뒤늦게 받은 은혜가 정말 놀란 눈빛으로 특실로 뛰어 들어왔다.
“백범 씨!”
여기 올 때까지 울었나 보다. 눈이 퉁퉁 부어 있다.
“김 비서님……!”
김 비서가 은혜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아무 이상 없으시다고 전화를 드렸는데 저리 놀라실 줄은 몰랐습니다.”
김 비서가 내게 머리를 숙였다.
“전 이만 나가 있겠습니다.”
김 비서가 내게 말하고 특실을 나가면서 잠금장치를 누른 후에 문을 닫았다.
‘괜히 이야기했네……!’
정말 개인적인 부탁을 했는데 그것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보는 것 같다.
“정말 괜찮은 거죠?”
“예, 괜찮아요. 배가 좀 아팠는데 김 비서님이 놀라서 차를 돌렸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저 정말 놀랐어요.”
나를 정말 걱정하는 은혜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은혜의 손을 잡아당겼다.
“왜, 왜요?”
은혜가 놀란 눈빛으로 내게 물었고 이제는 나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은혜였다.
“여기, 서……. 요……?”
이럴 때는 웃으면 된다.
* * *
1997년 8월 6일 오후 2시, 대후증권 한호성 차장의 사무실.
[오늘 현지시각 1시 43분경 서울김포국제공항발 한국항공 802편이 괌 앤토니오B.원팻국제공항 착륙 과정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한국항공은 이 사고로 항공기는 전소되었으나 사망자는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항공 802편은 오늘 254명의 승객이 태울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노쇼 사태로 항공기 안에는 승무원만 탑승 중이었으며 추락 직후 기적적으로 전원 탈출했다고 현지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우리 정부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파악하기 위해…….]
백범이 알고 있는 일이 결국 일어났다. 이것은 일어날 일은 꼭 일어난다는 상황을 증명하는 거였다.
“시발……. 이게 뭐, 뭐야?”
뉴스 보도를 본 한호성 차장의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잠시 넋을 놨다가 한국항공 주가를 확인했다.
“하, 하한가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백범이 한국항공 주식 하락에 콜옵션을 때린 것을 떠올렸고 자신이 반대 투자를 했다는 것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 시발……!”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한호성 과장이었다.
“이대로라면 10억을 날린다.”
참 못된 놈이 이제부터 벼락을 맞기 시작했다.
“백범, 이 멍청한 새끼는 왜,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
하지만 한호성 차장은 백범이 그냥 운이 좋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 * *
성북동 이신의 고택.
이신은 TV 뉴스를 보고 있었고 TV에서는 한국항공 항공기 사고를 보고하고 있었다.
“천운인가……!”
사실 이신은 8월 6일 자신이 데리고 있던 소대원들을 괌으로 관광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백범이 괌으로 출발하는 모든 항공기를 사전 예매를 했기에 하루를 앞당겨서 출발을 시켰다.
“천운이군……!”
이신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1997년 8월 6일, 종합병원 VIP 특실.
서울대 미생물을 전공한 생물학과 교수가 전화로 내 제안을 수락한다고 통보를 했고 은혜는 어제부터 여기서 나를 간호(?)하고 있다.
‘으흐흐!’
그리고 우리 부부는 밤이 되면 병원 놀이에 푹 빠진다.
하여튼 배수진 생물학과 교수는 강동 제약의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수락했고 이것은 내가 막대한 연봉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막걸리에 대한 충격적 진실이 큰 몫으로 작용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파전에 막걸리를 이제는 못 마시겠군요.
우리 민족은 핏속에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하여튼 내 접근 방식은 주요했다.
“대표님은 운은 타고 나신 분이십니다. 만약에 그 비행기를 탔다면……!”
박태웅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탔다면 자기도 탔을 것이고 태양종합금융투자 직원들도 모두 탔을 것이니 대참사가 일어났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거 막으려고 병원 놀이를 한 겁니다. 흐흐흐!’
나는 병원 생활이 대만족스럽다. 밤이 되면 문을 잠그고 내 아내 은혜가 나를 위해서 내 개인 간호사가 되어주니까.
‘변태야 변태!’
백범의 진짜 영혼과 내 영혼이 융합해서 새로운 영혼이 만들어진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런 야릇한 자극을 내가 여전히 갈망하고 있으니까.
“그러네요. 제가 운은 타고 난 것 같습니다. 태어나 보니 딱, 아버지가 졸부시네요. 그리고 사업을 하려고 하니 딱, 박태웅 이사가 제 편이 되어줬고요. 그리고 해외 투자를 하려고 딱 하니, 하하하, 나우루공화국이 국부 펀드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재정 장관 동문이 박 이사님이시네요. 하하하!”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요.”
하여튼 큰 사고를 방지했다. 그럼 된 것이고 부수적으로 나는 콜옵션 투자를 통해 30억 이상의 이익을 거둘 것 같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망할 놈은 최소 10억 정도는 날릴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리 언제 갑니까?”
나는 박태웅에게 말했다.
“8월 20일입니다. 모든 조율과 준비를 끝냈습니다.”
어제도 야근한 모양이다.
“그런데 대표님.”
“왜요? 또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강동 제약을 인수하신 진짜 목적이 뭡니까?”
“진짜 목적이라고요?”
“제가 여러 측면으로 분석을 해봤는데 이미 화이자라는 거대 제약회사에서 발기부전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끝냈다고 합니다. 곧 출시뵙니다. 그리고 제가 예일대 동문을 통해서 몇 가지를 알아봤는데 진짜 정력제나 발모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수 있다면 세계 최고의 자산가가 될 거라고 합니다.”
“당연한 것을 국제전화까지 하시면서 물어보고 그럽니까.”
내 말에 박태웅은 황당한 눈빛을 보였다.
“진짜 목적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까?”
“예, 대표님.”
“나우루공화국 대통령에게 말하기 정말 좋지 않겠습니까. 신약개발까지 추진하고 있는 사모펀드라는 간판이면 그 쪽에서 흥분할 겁니다.”
“으음……!”
“우리는 우선 4억 달러를 운영하는 자금력 충분한 종금사입니다. 홍콩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고 계열사도 3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화장품, 세상 모든 여자가 쓰죠. 강동 제약은 발기부전치료제를 개발에 착수했고요. 착수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아보신 것처럼 화이자 제약에서 만든 발기부전치료제가 오리지날처럼 불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기부전 치료제를 개발해 낼 수 있다면 또 모르죠, 오리지날을 넘어서는 의약품이 될지 말입니다.”
“아……!”
“나눔 종묘는 신품종 종자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나우루공화국 대통령에게 말하기 너무 좋지 않습니까. 사실 반도체에도 접근해 볼까 했는데 거긴 덩치가 너무 크더라고요.”
박태웅을 보며 웃었다.
“모든 것이……!”
“나우루공화국에 집중된 겁니다. 그리고 나우루공화국에서 30억 달러를 대출받을 수 있다면!”
“대출이라고 하셨습니까?”
지금까지는 투자라고 말했었다.
“예, 대출입니다. 그리고 그쪽에서는 투자입니다. 최단기 외환 이자가 몇 퍼센트입니까?”
“최단기라고 하시면 한 달이고 한 달 이자는 2~3%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최단기 외환을 2~3%의 이자를 주면서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만기 연장을 거부하면 바로 금융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요. 1년으로 따지면 24%죠.”
“그렇습니다.”
“저는 나우루공화국 대통령에게 연이자 15%를 지급하겠노라고 약속할 겁니다. 그리고 5년 장기로 나우루공화국 대통령과 재무장관이 가진 달러를 빌릴 생각입니다. 그러니 저는 대출이고 저들은 투자입니다.”
“그게 될까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박태웅이다.
“해 봐야죠.”
“그렇기는 합니다.”
“그런 후에 나우루공화국 국부 펀드의 운영자도 될 참입니다.”
“꿈이 너무 크십니다.”
“커야죠, 꿈이라도 크게 꿔야죠. 하하하!”
내 손에 30억 달러가 들어오면 나는 그때 반도체를 씹어 삼켜볼 참이다.
‘이제 내가 간다, 나우루!’
또 한 번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성공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