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94화 (94/415)

# 94

94화 나는 어쩔 수 없이 미래를 알고 있다.(2)

나는 서울 농대 종자학 박사의 교수실 앞에 서 있고 내 뒤로 김 비서가 묵직한 상자를 들고 서 있다. 물론 박태웅 이사도 묵직한 상자를 들고 있다.

똑똑!

나는 조심히 노크했다. 물론 이미 약속을 잡고 이곳에 왔고 나는 조심히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들어서자 백발이 지긋한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았다.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 만남을 위해서 나는 서울 농과대학에 10억을 기부했다. 내가 그런 기부자이기에 농대 석좌 교수는 나를 만나줄 수밖에는 없었다.

“아닙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께서는 상자를 내려놓고 밖에 나가 계십시오.”

내 말에 박태웅 이사가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마치 자기를 밖에서 대기시키려면 왜 데리고 왔냐는 눈빛이고 자신을 야근시키기 위한 꼼수라고 생각하는 눈빛이다.

“예, 대표님.”

“……예.”

“참, 김 비서님.”

“예, 대표님.”

“제가 따로 지시한 그것에 관해 확인해 보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내 말에 박태웅 이사가 자기도 모르게 또 무엇을 지시했냐는 눈빛으로 나와 김 비서를 번갈아 봤다.

하여튼 그렇게 박태웅 이사는 마지못해 대답하고 둘은 밖으로 나갔다.

“조교, 커피 좀 부탁해요.”

농과 석좌 교수가 참하게 생긴 조교에게 말했다.

“예, 교수님.”

* * *

조교가 내 앞에 커피를 내려놨고 석좌 교수에게도 커피를 내려놨다.

“정말 농대 발전을 위해 기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서울대에 10억의 장학금을 기부할 때 꼭 집어서 농대 장학금과 연구 발전을 위해 써달라고 조건을 달았기에 이러는 것이다. 사실 서울대에서도 따신 밥이 있고 찬밥이 있는데 농과는 철학과와 함께 찬밥 취급을 받을 때가 많다.

“아닙니다. 저는 식량 자립이야말로 진정한 주권 국가가 나갈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하하, 옳은 말씀이십니다.”

“교수님, 제가 교수님을 빈손으로 찾아오기 그래서 선물 몇 가지 준비했습니다.”

이미 석좌 교수에게는 10억이라는 선물을 준 상태다.

“이미 큰 도움 받았습니다. 이런저런 종자학 연구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지원이 쉽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공한 기부금은 서울대 농과에 기부한 금액입니다.”

서울대는 기부자들의 명단을 벽에 새긴다. 당연히 제일 위에 이름이 있는 것은 가장 많은 기부를 한 사람이나 단체고 최소 1억 이상을 기부한 사람은 별관 벽에 기록해 둔다.

사실 서울대만큼은 기부금이 부족함 없이 들어오는 상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서울대이니까.

“그런가요?”

“이것은 개인적으로 제가 교수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나는 두 상자를 보며 말했고 상자에서 제일 먼저 딸기를 꺼냈다. 그다음으로 양파를 꺼냈고 양배추를 꺼낸 후에 피망과 막걸리를 꺼내자 석좌 교수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이게 뭡니까?”

“대한민국에서 재배되는 외국 농산물입니다. 대한민국 금수강산이 외국의 씨받이도 아니고 외국에서 개발된 종자로 사용료를 지급해야 하는 농사를 지어야 합니까?”

내 말에 석좌 교수는 나를 빤히 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교수님, 정년까지 3개월 남으셨죠?”

나는 사실 석좌 교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석좌 교수의 제자들이 필요하다. 물론 그 제자들은 이미 대한민국 각지 대학에서 농과 교수를 하고 있고 또 외국계 종자 기업에 스카우트가 되어 일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3개월 후에 제가 교수님을 나눔 종묘 대표이사로 추대하고 싶습니다. 물론 종자연구소 소장직도 겸입니다.”

때가 좋다. 서울대 석좌 교수의 정년이 3개월밖에는 안 남았으니까.

“으음…….”

“교수님, 제가 교수님께 정말 무례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무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뭡니까?”

석좌 교수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고 나는 바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그에게 불을 붙여줬다.

“국산 신품종을 개발 안 하시는 겁니까? 못하시는 겁니까?”

“확실히 무례한 질문이군요.”

원래 나는 이렇게 충격 요법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확보한다.

“죄송합니다.”

“모든 연구에는 돈이 듭니다. 연구비가 필요하죠. 과거 정부는 주식인 쌀의 품종 개량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생산을 증가하는 품종을 개발했고요. 하지만 누구도 이런 딸기나 피망, 막걸리라…….”

피식 웃어 버리는 농과 석좌 교수다.

“이 막걸리는 나와 해당이 없는 것 같소.”

“잠시 후에 미생물학 배수진 교수님을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막걸리는 다시 넣겠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딱 술이 생각이 날 정도군요. 백범 대표께서는 나를 씁쓸하게 만드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신품종 개발 의지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비입니다. 신품종 개발이 1~2년 만에 성과가 나오는 연구가 아닙니다. 시간과 자금이 많이 투입되는 연구이기도 하고요. 현 정부와 기업들은 단기적인 실적을 요구합니다. 그러니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님, 제가 시간과 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또 교수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시는 시간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래요?”

“나라와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하는 일에 함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눔 종자라고 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일주일 이내에 태양종합금융투자에 인수가 됩니다.”

“연구소는 어디에 설립하실 겁니까?”

“판교입니다.”

아버지께는 땅이 정말 많다.

‘아버지도 연구원으로 채용할 생각이다.’

석좌 교수와 그의 제자들인 교수들과 연구원들은 농학과 종자학의 지식을 가졌다. 그리고 내 아버지께서는 농사에 대한 지혜를 가지고 계신다.

‘사과만 봐도 그렇지.’

씨알이 작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상품 가치를 만들어내신 분이시다. 물론 최상급의 사과를 판교에서 생산해 내시지는 못하셨지만 말이다.

“판교요?”

“예, 모든 준비는 3개월 안에 끝내 놓겠습니다. 저와 함께 종자 독립의 첫발을 내딛으시죠.”

“하하하, 독립군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제 조부께서 의병이셨습니다.”

“조부에 대해서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결정만 내려주신다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연구할 품종과 연구 진행에 대해서는 어떤 간섭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단호하게 말했다.

“백범 대표.”

“예, 교수님.”

“나보다 내 제자들이 탐이 나시는 모양이군요.”

핵심을 찍어내는 석좌 교수님이시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교수님 휘하에 종자 독립을 위한 의병들이 다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배고프지 않고 서럽지 않을 것입니다.”

상상 이상의 연봉도 지급하겠다는 뜻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우 조교.”

그때 석좌 교수께서 차분하게 앉아 있는 조교를 봤다.

“예, 교수님.”

“우리 우 조교도 사표 써야겠군.”

“예, 교수님.”

“교수 못 돼서 어떻게 하나?”

“괜찮습니다. 교수님 저는 지금 가슴이 마구 떨려요.”

“자네하고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 떨려?”

“예, 그렇습니다. 교수님.”

우 조교라는 여자가 대답했고 석좌 교수가 나를 봤다.

“백범 대표.”

“예 교수님, 감사합니다.”

“돈 많습니까?”

“하하하, 제가 졸부입니다. 졸부!”

“그럼 나중에 대학교 하나 세웁시다. 농과 전문 대학을 세웁시다. 그 대학에서 종자를 연구하고 나눔 종묘가 특허를 가진다면 백범 대표에게도 이로울 겁니다.”

내가 바라던 소리다.

“예,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바로요?”

“저 돈 많습니다.”

“하하하, 돈이 많아 좋군요.”

판교에 농과 전문 대학까지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 조교를 봤다.

‘나랑 같은 생각을 했단 말이지.’

놀랍다.

“누군지 궁금합니까?”

“하하하!”

이럴 때는 그냥 웃으면 된다.

“제 딸입니다. 낙하산이라고 말이 많았는데 결국 사표를 쓰게 되는군요.”

“아……!”

“낙하산이라고는 하지만 실력과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자기 딸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석좌 교수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수님.”

“말하세요.”

“제가 평생을 농사에 모든 걸 다 바친 연구원 한 명만 낙하산으로 연구소에 채용할까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내 허락이라, 정말 내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누굽니까?”

“제 부친입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셔서 평생 농사만 지으신 분이시지만 누구보다 농사에 대한 열정이 뜨거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요? 그렇군요. 사실 지식보다 지혜가 더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나눔 종자 연구원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석좌 교수는 열린 사고를 가진 분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제 막걸리 들고 일어나셔야죠.”

내게 미소를 보이며 말하는 석좌 교수다.

* * *

교수실 밖.

“뭡니까?”

박태웅 이사가 김 비서에게 물었다.

“예?”

“대표님이 따로 지시하신 것이 뭐냐고요?”

“아, 별거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가수 한 명을 섭외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수요?”

박태웅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백범이 또 무슨 엉뚱한 짓을 꾸미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예, 그렇습니다. 대표님께서 노래 한 곡을 작사·작곡하셨답니다.”

“정말 별걸 다 하는 대표님이시네요.”

박태웅 이사는 백범을 떠올리며 이죽거렸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대단하시고 섬세하신 것 같습니다.”

김 비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요?”

“노래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궁금합니다.”

“신토불이입니다.”

“예에?”

“종자 사업을 시작하시겠다고 결심하신 후에 차 뒷좌석에서 흥얼거리셨습니다.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

“그거 뽕짝이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가수 한 명을 섭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

박태웅 이사는 그저 탄성만 터트렸다.

“저는 전화를 해야 해서…….”

“그러셔야죠, 나만 할 일이 없네요.”

그때 백범이 밖으로 나왔고 그 뒤에 석좌 교수와 우 조교가 따라 나왔다.

* * *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석좌 교수에게 크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닙니다. 이 늙은 고목에 기대를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목은 결국 거목입니다. 교수님은 종자학계의 거목이시고요.”

“참 듣기 좋은 소리만 하십니다. 하하하!”

유비처럼 삼고초려까지 생각했었는데 한 방이 끝내서 시간을 아꼈다.

‘그런데……!’

석좌 교수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힐끗 우 조교를 봤는데 우 조교의 눈빛이 박태웅에게 꽂혀 있었다.

‘딱 느낌 오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을 때 저런 눈빛일 것이고, 박태웅이 조비를 봤을 때 딱 우 조교의 눈빛이었다. 사실 박태웅도 좀 생겼다.

‘잘된 일이지.’

그게 아니면 얄궂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우 조교님.”

나는 우 조교를 불렀다.

“예, 예?”

그제야 정신을 차린 우 조교가 나를 보며 대답했다.

“제가 이름도 모르네요.”

“우희입니다.”

우희 조교가 내게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다시 그녀의 시선이 박태웅으로 향했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감이 딱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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