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93화 (93/415)

# 93

93화 나는 어쩔 수 없이 미래를 알고 있다.(1)

1997년 7월 7일, 백범의 서재.

산업수출은행에 부채출자전환을 요청한 이후 채무자들과의 1개월간의 협의 과정을 거쳐 퀸 화장품은 재무제표상으로 적자 기업을 탈피했다.

나는 바로 산업수출은행장에게 약속한 그대로 3자 유상 증자를 통해 퀸 화장품을 1000억의 자본금을 가진 기업으로 탈바꿈을 시켰다.

‘적자 기업은 탈피했군.’

물론 재무제표상이기에 보기만 딱 좋은 빈껍데기인 상태다. 그리고 다시 1개월이 지났고 산업수출은행에서 퀸 화장품에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내 지분이 85%……!’

우리 사주가 5% 그리고 채권자들이 가졌던 채무를 주식으로 전환했기에 10%의 지분을 가지게 됐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내 사업 때문이 아니다. 내 전생에서 똑똑하게 기억하는 사고 때문에 나는 지금 밤잠을 설치며 이 서재에 앉아 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괌에 가서 푹 쉬다가 와. 아들내미, 딸내미는 내가 아는 회사에 취업을 시켜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먹고 살게도 해주시고 애들 직장도 알아봐 주시고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소대장님 오해했습니다.

그때가 김 상사를 빼고 내 소대원들을 거의 다 찾았을 때였다.

‘이신 너는 왜 그렇게 소대원들에게 집착했을까?’

아마도 그때가 이신에게 가장 뜨거웠고 빛났으며 올바르던 때이기에 나는 아니 이신은 그렇게 자신의 빛났던 날들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 적선하듯 편히 살게 도움을 줬다. 그리고 생존 소대원들을 모두 괌으로 여행을 보냈었다.

‘그때가 8월 6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절규할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또렷하게 기억하는 순간이다. 그 기억들이 오늘 떠올랐기에 나는 이렇게 잠 못 이루고 있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은!”

범죄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풀어야 할지 고민스러울 뿐이다.

“정확하게 내가 아니……!”

막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다시 사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 *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사장실.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소집했다.

“8월 6일에 대한민국에서 괌으로 출발하는 한국항공 비행기 모두 예약하십시오.”

회의를 소집하자마자 내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고 또 왜 이러냐는 눈빛으로 임원들이 나를 봤다.

“예?”

“괌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괌은 미국령이다.

“홍콩 부동산에 대규모 투자를 실시한 지 한 달도 안 됐습니다.”

홍콩에 역외 법인을 설립해 우회 투자 방식을 선택해 부동산을 악어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사실 홍콩의 부동산값이 폭등하는 시기는 2001년부터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4년을 앞서 미리 투자해 놓는 것은 나우루공화국에 성과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펀드 규모는 충족시켰다.’

그러니 운영 규모의 성과만 쌓으면 된다.

“괌이라고 하셨습니까?”

박태웅 이사가 내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왜 갑자기 괌입니까?”

“괌만큼 아름다운 섬이 있습니까? 관광호텔에 투자해 볼 참입니다.”

괌은 미국의 해외 영토이다. 하와이가 미국의 정식 주로 등록된 이후 남아 있는 임시 지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괌은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며 또한 최남단에 있는 섬으로 괌의 경제는 대한민국, 일본, 홍콩, 타이완, 미국, 캐나다 등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괌에는 가보셨습니까?”

“TV에서 보니 아름답더라고요.”

“아……!”

박태웅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을 보이며 한탄을 하듯 탄성을 작게 터트렸다.

“그런데 한국항공 비행기를 다 예약해 두라는 겁니까?”

“시끄러워서요. 돈이 쌓이면 뭐합니까? 써야죠. 제 바탕이 졸부 아닙니까.”

이건 억지다. 하지만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고를 막지 않는다는 것은 죄악을 쌓는 일이고, 이신은 지금쯤이면 자기가 지휘하던 소대원들을 거의 다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괌 단체 여행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 부하들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이제 백범이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에게 사죄할 것이 정말 많다. 항상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들을 위험천만한 사지로 몰았다. 아마 이신도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신은 자신의 위안거리를 위해 생존 소대원들을 찾았었다.

‘오직 자신의 위안을 위해서지…….’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졸부시라고요……!”

“다들 저를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까? 하여튼 8월 6일에 출발할 겁니다. 그러니 그날 괌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표 다 구매해 놓으세요. 미리 판매된 표가 있다면 확인해서 취소시키세요. 저는 다른 사람이랑 비행기 같이 타는 거 싫습니다.”

“정말 이럴 때면 대표님이 이해가 안 됩니다.”

“박 이사님.”

“예, 대표님.”

“저를 이해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괜히 머리만 아프시니까. 그건 그렇고 강동 제약과 나눔 종묘 인수는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강동 제약과 나눔 종묘를 내가 선택했고 그 이후의 문제는 박태웅 이사가 처리해야 할 부분이다.

“강동 제약과는 기업 인수에 합의했습니다. 나눔 종묘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인수 금액은 얼마로 정해지고 있습니까?”

“강동 제약은 120억입니다. 나눔 종묘는 100억으로 조율 중입니다.”

두 회사 모두 비상장 회사다.

“저는 상장을 목표로 합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박태웅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핵심 사업인 나우루공화국은 아무런 발표가 없습니까?”

“아직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8월 안에 국부 펀드 설립을 마무리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8월에 나우루공화국에 가야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들에게 보여줄 숫자를 만들어야 하고 규모도 늘려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요즘 박태웅 이사에게 수많은 일을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박태웅 이사는 야근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여자는 일로 잊는다.’

쉴 틈이 없게 죄고 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냅니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이사님.”

“예.”

“같이 가시죠.”

“예?”

“투자할 일이 생겼습니다.”

일어날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 그 피해를 최소화할 뿐이고 나는 그것을 통해 이익을 거둘 참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옵션 추가 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내 말에 인상을 찡그리는 박태웅이다.

“대표님, 제게 지시한 투자 분석이 17건이나 있습니다.”

“그래서요?”

“제가 오늘도 대표님을 수행하면 저는 오늘도……!”

“야근하세요. 고액 연봉에 야근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박태웅에게 야근을 강요하고 있다. 몸이 지쳐야 딴생각이 안 날 테니까.

“모두 나가서 일 보세요.”

내 말에 다른 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 밖으로 나갔고 박태웅은 바로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남자가 저러면 꼴불견이다.’

요즘 박태웅 이사의 저런 모습 자주 본다.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항명이라도 하겠다는 눈빛이다.

“뭐가요? 일하라는 것 아닙니까? 8월은 금방입니다. 나우루공화국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투자 경험과 성과가 있어야 하지 한다고 제게 말한 사람은 박 이사입니다.”

“정말 너무 하십니다.”

“그러다가 눈 찢어지십니다. 그리고 남자가 그렇게 흘겨보는 것은 꼴불견입니다. 가시죠.”

“정말…….”

“갑시다.”

나는 박태웅을 보며 웃었다.

* * *

대후증권 한호성의 사무실.

그의 직함이 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고속 승진이네.’

은밀히 알아본 것으로는 내 옵션 투자를 이용해 철면피처럼 다른 투자자들에게 나와 똑같은 투자를 제의하고 있고 몇몇 투자자들과 한호성 차장은 반대 투자를 시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뒈질 준비 되셨습니까.’

곧 한호성 차장과 그의 아비는 경제적 파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국항공 주식에 대한 콜옵션 계약을 체결하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현재 한국항공의 주가는 얼마죠?”

“3만 원입니다.”

컴퓨터로 확인을 한 한호성 과장이 내게 말했다.

“한 달 후 2만에 구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계약할까 합니다.”

“한 달 만에 그렇게 하락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내 말에 한호성 차장은 나를 보며 옵션에 미친놈이라는 눈빛을 보였다가 다시 담담해졌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계약하시겠습니까?”

“100억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내가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알겠다고 말하는 한호성 과장이다.

‘사고도 막고, 돈도 벌고.’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그 이유에 대해 한국항공에 설명해야 하니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그게 참 우스운 일이고 사고 당일이 되면 모두가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지.’

이것은 정말 미래의 기억이 있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라고 말하면 될 것 같다. 아는데 막지 않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하여튼 그렇게 대후증권에 와서 콜옵션 계약을 끝냈고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에 한 달 후면 30%의 수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 * *

달리는 자동차 안.

“너무 엉뚱한 투자입니다. 한국항공이 한 달 만에 그 정도로 주가가 하락하려면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외신들은 연일 대한민국의 경제가 불안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곧 주가는 급락합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항공입니까?”

“그러게요.”

“너무 엉뚱하십니다.”

사실 한국항공에 투자한 것에 대해 박태웅에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내가 미래를 알기에 그런 조치를 지시했고 이렇게 옵션 투자를 했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진짜 이유가 궁금합니까?”

나는 박태웅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예.”

* * *

“헐……!”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데 믿는 사람은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신입니다.”

나는 조비가 한국항공에 투자하라고 했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저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게요, 그런데 자꾸 투자하고 싶어집니다.”

“대표님.”

박태웅의 표정이 변했다.

“예.”

“앞으로는 저와 투자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상의를 하신 후에 결정해 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대표님, 서울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김 비서가 구원 투수로 나섰다. 바로 차가 멈췄고 나는 오늘 서울대 농과 석좌 교수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나눔 종묘 산하 연구개발실 소장님으로 반드시 스카우트해야 합니다.”

나는 바로 딴소리를 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나를 보며 눈을 흘기고 있다.

“알겠다고요. 이제부터는 상의하겠습니다.”

* * *

성북동 이신의 고택.

“어떻게 됐냐?”

이신이 이 실장에게 물었다.

“8월 6일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8월 6일 괌으로 향하는 모든 비행기 표는 예약 판매가 종료되었습니다.”

백범의 태양종합금융투자의 장점은 모두가 발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임직원들이 백범을 믿고 따른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래?”

“예, 그렇습니다. 괌 여행 일정을 하루 앞당기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그래야겠군, 그런데 도야.”

“예, 대부님.”

“김 상사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알았다. 그리고 찾은 사람들은 잘 보살펴라. 그 사람들 아들내미, 딸내미들도 풍족하게 살길을 열어주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부님……!”

“왜 이러냐고?”

“송구합니다.”

“그날들이 내게는 유일한 위안거리가 되거든. 그때 나는 이러지 않았다.”

이신은 회한이 가득한 어투로 이 실장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 실장은 이신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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