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91화 부채출자전환(1)
판교 퀸 화장품 제조 공장으로 왔고 적자를 내는 회사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30%의 인원 감축이 적절하겠지.’
중요한 것은 어디서부터 해고를 하냐는 것이고 당장 해고가 되면 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것이다.
격려하려고 왔는데 폭탄선언을 하고 가게 생겼다.
“대표님, 직원들 모두 집합시켜 놨습니다.”
공장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노조가 아직 없다. 물론 나는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전생에 살 때도 그랬다.
‘내 전생의 삶은!’
따지고 본다면 타협이었고 조율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순응하는 존재들은 살아갈 수 있게 그냥 뒀다. 단지 그 과정에서 내가 정한 울타리를 넘어서는 존재들에게는 완벽한 응징을 가했다.
“예, 갑시다.”
“저, 저기 대표님……!”
공장장이 내 눈치를 보며 나를 불렀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인원 감축을 통보하시려는 겁니까?”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겁니다. 적자를 내는 회사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여기 와서 알게 됐습니다.”
물론 현장 직원들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관리직의 책임이다. 기존 주리아 화장품을 방만하게 운영한 전 대표의 책임일 것이다. 현장 직원들을 방만하게 관리를 했으니 나태해진 것이고 사무직 직원들 역시 일과 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개인 업무를 볼 정도였고 그것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상태까지 추락했다.
“죄송합니다. 전 대표님께서 워낙 사람이 좋으신 분이라서……!”
백두 그룹 일가 중 하나가 전 주리아 화장품의 대표였을 것이다. 백두 그룹 중에서 가장 규모가 적은 회사이니 대표가 됐을 때부터 실망했을 것이고 백두 그룹 회장이 복안인 주리아 화장품 본사 및 공장 용지 이전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그럼 제가 이제부터 나쁜 사람 하죠.”
“그,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3년째 적자 기업입니다. 제가 인수를 했습니다. 단기적으로 적자를 전환하기 위해 특단의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인원 감축이다. 하지만 그것은 특효약이 되지 못한다.
“예……!”
“전 주리아 화장품의 적자에 대해 공장장님도 책임이 큽니다.”
“죄송합니다.”
“가시죠. 여기서 말하면 제가 두 번 말해야 하니까요. 전체를 불러놓고 말하겠습니다.”
격려하려고 왔었는데 질책을 하게 생겼다.
* * *
100명 정도의 직원이 공장 밖에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해고가 익숙하지 않지.’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 대량 해고는 익숙해진다.
‘기업의 부실과 적자를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할까?’
이 부분이 내가 달라진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이대로 갈 수도 없다.
“모두 그 자리에 앉으시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직원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다가 그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앞에 섰다.
“저는 전 주리아 화장품을 인수한 백범이라고 합니다. 현재 전 주리아 화장품은 퀸 화장품으로 사명을 개명하고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올 때는 원래 말씀을 드리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해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50명이면 충분히 가능한 회사에 이 배수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왜 전 대표는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그대로 내버려 뒀을까요?”
내 말에 모두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솎아낸다.’
특별채용 비슷한 것이 존재했을 것이다. 낙하산이라면 낙하산 비슷한 것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모두 솎아낼 참이다.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고 생산 설비를 증설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누구죠?”
“생산 2라인 조장입니다.”
남자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습니까?”
“예, 원래는 립스틱을 주력으로 생산을 했었는데 추가로 영양 크림을 개발해 라인이 증설됐습니다.”
“그렇다면 립스틱을 담당하셨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준비 없는 사업 확장이 만든 결과라는 것이다.
‘중국 진출을 지시했겠지.’
신제품 개발 없이 의욕만 앞선 것이다.
“다 좋습니다. 현 퀸 화장품은 적자 회사고 이미 자본금인 150억을 넘어서는 부채가 250억이나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인원 감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희망퇴직을 신청하실 분이 있습니까?”
내 말에 공장 앞 공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영자의 잘못을 왜 노동자에게 전과시키려고 하시나요?”
그때 용기 있는 여자 직원 한 명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내게 소리쳤다.
“흑자일 때 보너스를 지급한 적도 없잖아요.”
“누굽니까?”
“연구개발팀 박은선이라고 합니다.”
“연구개발팀도 회사의 적자에 관해 책임이 있죠. 좋은 제품을 개발했다면 적자가 줄었을 테니까요.”
지금 나는 모두 내 입장에서만 의도적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전 주리아 화장품의 적자 경영에 책임이 없는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퀸 화장품의 적자를 개선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결국, 집단 해고인가요?”
박은선이 나를 째려보며 물었다.
‘저 여자 강성이군.’
젊은 여자다.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멘 것이다.
“저는 생산 3라인을 폐쇄하고 그만큼의 인원을 감축할 생각입니다.”
노동자들에게는 폭탄선언이다.
“아……!”
생산 3라인 현장 직원들이 모두 절망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파업하셔도 좋고 노동청에 신고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직원 여러분들의 권리이니까요.”
“말씀을 너무 쉽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박은선이 정말 제대로 총대를 메겠다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저는 투자가입니다. 빈껍데기만 남은 전 주리아 화장품을 500억에 인수했습니다. 자산을 제외한다면 최대 400억 이상의 손해를 보고 인수했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저희야 모르죠.”
“해고를 당하기 싫으십니까?”
“지금 저희를 놀리시는 건가요?”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전체 직원을 모두 고용 상태를 유지하려면 딱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현 시간부로 퀸 화장품의 최대 주주로서 또 대표로서 여러분들의 임금을 30% 삭감하는 것을 통보 드립니다. 제 제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는 30%의 인원을 감축할 겁니다.”
모두가 내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저는 젊은 직원부터 해고할 겁니다.”
마지막 말에 직원들은 황당한 눈빛으로 멍해졌다. 원래 이런 해고 사태가 발생하면 오래 근무한 사람부터 해고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성이 저조하지만, 호봉이 있기에 월급이 많다. 그러니 오래 근무한 사람부터 해고해야 제대로 해고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저는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과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추가로 제안합니다. 퀸 화장품을 우리 사주 제도를 시행할까 합니다. 또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이 됐을 때 삭감된 연봉을 지급하고 성과급을 지급하겠습니다. 고통은 분담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말에 공감합니다. 제가 500억을 날리기 위해 이 회사를 인수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이제 선택을 기다립니다. 30분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결론을 내십시오.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시면 해고 절차에 돌입합니다.”
그때 저 멀리서 박태웅 이사의 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참 너도 의지의 한국인이다.’
그리고 잠시 후 차가 멈추고 박태웅 이사가 차에서 내렸다.
“대표님!”
“끝내 오셨네요.”
“예, 대표님.”
“오셨으니 잘 오셨습니다.”
“예, 그런데 격려를 위해 오신 것이 아니시군요.”
직원들을 불러 모아 놓은 것을 보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짐작하는 눈빛이다.
‘원래 해고를 하려고 했다면?’
내가 이 자리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드렸으니 기다리면 됩니다.”
* * *
한 시간이 지났다. 2 생산 설비 과장과 공장장, 그리고 박은선 연구원이 내게로 왔다.
“결론을 냈습니까?”
“예, 대표님.”
“말씀하세요.”
“대표님의 감사한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박은선 연구원이 내게 말했다. 말에는 마음이 담기는 법이다. 나는 분명 뉴스에서 봤던 다른 사장들과는 다르다.
‘백두 소주만 해도!’
20%의 직원을 칼같이 해고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연봉도 30%나 삭감했다. 정말 지랄 같은 것은 백두 소주는 알짜 기업이고 흑자 기업이다.
‘최백호 독해……!’
오직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움직이는 범 같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좋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결론만 말하죠, 우리 사주는 5%를 배정합니다. 임금은 말씀을 드린 그대로 30% 삭감합니다. 바쁘니 연구개발실로 갑시다.”
주식을 가지면 그 회사의 주인이 된다. 그럼 오늘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바로 돌아섰다.
“예, 대, 대표님.”
모두가 나를 따라왔다.
* * *
퀸 화장품 연구개발실.
“인사 과장님.”
“예, 대표님.”
“직원 신상명세서 확인하시고 특채로 채용된 직원들 자세히 살피신 후에 해고 통지하세요.”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고용된 사람들은 해고할 생각이다.
“물론 모든 특채자를 해고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백두 그룹 관계자 사돈의 팔촌이 입사해 있을 거로 판단합니다. 그들을 해고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백두 그룹 계열사가 아니라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의 계열사로 거듭난 퀸 화장품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박태웅 이사.”
“예, 대표님.”
“교차 확인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이제는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얼굴에 크림을 바르듯 바르면 파우더를 찍어 바른 것처럼 칙칙한 피부 색조를 가려주는 휴대 가능한 튜브식 크림을 개발하십시오.”
내 말에 모두가 멍해졌다.
나는 지금 비비크림을 말하고 있다.
비비크림은 피부과 치료 후 피부 재생 및 보호 목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이나 잡티를 가려주고 피부톤을 정리해주는 제품이기도 하다.
“화장한 듯 안 한 듯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십시오.”
말은 정말 쉽게 하고 있다.
“대, 대표님, 그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혁신이 없고 획기적인 상품이 없다면 적자 기업이 흑자로 전환이 되겠습니까? 제가 말한 것처럼 말은 쉽게 합니다. 연구개발진들은 힘들겠죠, 저는 정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겁니다. 더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죠. 아니 개발진의 영역을 침범해 보겠습니다. 파우더와 영양 크림을 접목해 보십시오. 제가 이런 것까지 제시하면 연구개발진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아……!”
원래 혁신적인 제품은 간단한 조합과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법이다.
“A4용지와 가위를 좀 가져다주십시오.”
내 말에 직원 하나가 급히 책상에서 가위와 A4용지를 꺼내 내게 공손히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가위로 A4지를 잘라서 마스크 형태를 만들었고 눈과 코를 뚫어서 내 얼굴에 가져다 댔다.
“기능성 영양공급 마스크를 제작하십시오. 영양 크림을 연구했다고 하니 몹시 어렵진 않을 겁니다.”
모두가 입이 쩍 벌어졌다.
“이 두 제품의 개발에 성공한다면 여러분들은 우리 사주이기도 하시니 부자가 되실 겁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시계를 봤다.
“박 이사님은 남으실 거죠?”
내 물음에 멋쩍게 웃는 박태웅 이사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산업수출은행에 가야 합니다.”
“아, 그렇죠.”
가장 큰 것을 정리하러 가야 한다.
격려하려고 왔는데 격려 이상을 해줘 버린 상태다.
‘우리 사주?’
내가 미쳤다.
뷰티 강국으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 선두에 퀸 화장품이 있을 테고 백 명의 직원들에게 제공될 5센트의 우리 사주 주식은 직원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