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86화 첫 번째 인수합병은?(2)
1997년 4월 17일, 태양 종합금융투자회사 사장실.
그 누군가(?)의 오랜 갈굼 끝에 박태웅 이사는 겨우 목발을 짚은 상태로 퇴원했고 조비는 내게 말한 것처럼 청담동에서 판교로 이사를 단행했다.
-나 점집 폐업했다.
-왜?
-놓아주셨어.
조비 때문에 안 믿게 된 것을 믿게 됐는데 조비가 점집을 폐업했단다.
-그럼 신빨은 사라진 거네.
-호호호, 아쉬워.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너 좋은 일 있을 거야.
-무슨 좋은 일?
-아수라발발타~
아수라발발타의 뜻은 원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주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빠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태양 종합투자금융이 백두 소주의 대주주가 되는 것이다.
‘아빠가 되고 싶은데……!’
우린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무한정 노력하고 있으니까.
[대법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무기징역과 2205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회의 직전이라 나는 TV를 틀어놨고 내 옆에는 목발을 짚고 업무에 복귀한 박태웅만 앉아 있다.
“드디어 정의가 승리하는 날입니다.”
박태웅이 TV 뉴스를 보고 도덕책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정의의 승리라고?”
“예, 그렇지 않습니까? 저 두 망할 놈들이 이제 끝난 겁니다. 비자금도 모두 회수될 겁니다.”
박태웅은 다 좋은데 너무 현실적이지 못하다.
“교도소에서 늙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국민 세금으로 콩밥을 먹이는 것도 아깝습니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입니다.”
“고향이?”
“광주입니다.”
광주 시민들에게 저 둘은 박태웅이 말한 것처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다는 것은 나는 알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알고 있다.
“이제야 대한민국이 조금은 정의로운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박 이사.”
“예, 대표님.”
“곧 실망하게 될 겁니다.”
“예?”
“대한민국은 특별사면제도가 있죠. 그리고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내 말에 박태웅이 인상을 찡그렸다.
“으음, 그래서 이번 대선에는 꼭……!”
“그래서 더 실망할 겁니다.”
“왜, 왜요?”
“국민 대통합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분이 내세워질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예측합니다. 그리고 추징금도 말이 추징금이지 배를 째면 방법이 없습니다.”
“대표님은 너무 부정적이신 것 같습니다.”
“저 둘 중에 누군가는 아마도 전 재산이 30만 원도 없다고 할 겁니다.”
물론 노 씨는 아닐 것이다. 노 씨의 사돈댁이 재벌가이니까.
-본인은 27만 원밖에는 없습니다. 내고 싶어도 낼 돈이 없어요.
초유의 개소리를 나는 내 전생에서 들었었다.
이게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한민국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말도 안 됩니다.”
내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태웅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여튼 대한민국의 법은 저 둘을 심판했군요. 그걸로 만족해야 할 겁니다.”
그게 전부가 될 것이다.
“아……. 대표님은 너무 부정적이십니다.”
“내기할까요?”
“됐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삐지기까지 하는 박태웅이다.
“됐고, 사업 이야기를 합시다.”
현재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의 보유금을 분석해 보면 할매에게 받은 400억과 조비가 내놓은 50억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200억을 포함해서 산업수출은행에서 투자를 받은 600억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다가!’
개인들에게 달러로 투자를 받은 금액이 놀랍게도 3억 달러에 육박한다.
‘달려 보유 측면에서만 따지면!’
내가 대한민국 20대 그룹에 속할 것 같다. 다시 말해 투자받은 달러를 환산하면 2700억이다.
한마디로 백두 그룹이 부도 처리 후 백두 소주를 매각 압박에 의해 매물로 내놓게 되면 인수·합병할 자금은 충분하다는 소리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미리 드린 계획서 3페이지를 아야……!”
박태웅이 자기 앞에 놓인 서류철을 넘기다가 A4용지에 손가락을 벴다.
‘저주가 덜 풀렸군.’
그 누군가는 뒤끝이 정말 엄청난 것 같다.
‘못된 놈 옆에 있으면 벼락을 맞는데……!’
그런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다.
“3페이지를 보시겠습니다.”
나는 박태웅의 말대로 백두 소주 인수 사업 계획서 3페이지를 넘겼다.
“백두 그룹이 백두 소주를 매각해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난다는 가정하에 백두 소주 매각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그룹과 기업 리스트를 뽑아 봤습니다.”
한마디로 우린 현재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 보고 준비하고 있다.
“해태제과, 빙그레, 롯대팔성 그리고 대성 음료로 좁혀질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해태제과?’
IMF가 터지면 바로 부도 처리가 된다. 빙그레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나나 맛 우유’를 만드는 회사로 유제품 전문 생산 업체다.
“빙그레가?”
“예, 해태제과와 빙그레가 주류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 정보를 제공한 곳은 태평양법무법인일 것이다.
“받은 정보로는 그렇습니다만 가능성이 희박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롯대팔성과 대성그룹 계열사인 대성 음료로 좁혀질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분명한 것은 둘 다 대기업이다.
롯대팔성은 사이다를 통해서 음료 시장을 석권하고 있고 대성 음료는 후발자지만 저돌적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거기에 우리가 다크호스로 등장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롯대팔성의 입장에서는 위스키 시장의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에서 소주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판단할 것이고, 대성그룹 계열사인 대성 음료는 음료 시장에서 롯대팔성에게 계속 밀리고 있기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라도 백두 소주가 매물로 나오면 뛰어들 것 같습니다.”
“롯대와 대성그룹이 사이가 서먹서먹하죠?”
“예, 그렇습니다. 자존심의 대결이 될 가능성도 큽니다.”
사업에 자존심이 붙으면 당연히 가격이 올라가는 법이다.
“요즘 대성그룹이 시끄럽던데?”
“예, 그렇습니다. 최강욱 회장의 친손자인 최백호가 젊은 나이에 경영일선에 참여했기에 그룹 내부에서 잡음이 많다고 합니다.”
재벌가의 상속자들은 이래서 골치가 아픈 것이다.
하여튼 대성그룹은 재결 서열 5위에서 10위로 밀려났다. 그런데 그렇게 재계 서열이 밀려난 이유 자체가 놀랍다.
‘어음 거래를 전혀 하지 않는 유일한 그룹이지.’
내가 확인한 것으로는 2년 전부터 외국 펀드의 투자를 받아서 하도급 업체들에 지급하던 어음 거래를 현금거래로 전환했다.
‘손자인 최백호가 미국 생활을 꽤 했지……!’
이것은 내 추측이지만 어쩌면 대성그룹에 투자했다는 그 펀드는 외국에서 투자에 성공한 최백호가 운영하는 펀드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에서도 대성은 IMF 외환 위기에서 재계 서열 10위에서 1위로 당당하게 우뚝 선다.
“하여튼 대기업과 경쟁을 하겠군요.”
“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확보된 3억 달러 일부도 투입이 될 가능성도 큽니다.”
“3억 달러는 해외 투자 자금입니다.”
나우루공화국에 보여줄 성과가 있어야 한다. 물론 백두 소주 인수도 그 성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달러 시세 차익은 겨우 3배지.’
현재 미국은 닷컴 버블이 시작됐고 내가 미래의 기억이 있기에 투자할 회사는 많다. 사실 처음에는 IMF 외환 위기를 통해 달러의 시세 차익을 노리고 그 이후에 급락한 부동산에 투자해 IMF 종료 후에 다시 급등할 강남 지역 건물들을 보유하면서 부를 축적하려고 했다. 그리고 투자 전문회사로 거듭나면서 해외 투자를 시작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엄청난 자금을 확보한 상태고 중간 과정을 생략해도 될 정도로 성장해 있는 상태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예, 박 이사님.”
“지금 현재 추진하는 백두 소주 인수 계획은 백두 그룹이 부도가 날 거라는 가능성과 그렇게 되면 백두 그룹이 백두 소주 기업을 판매해 자금을 확보할 거라는 과정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과정은 과정에 불과합니다.”
“안 될 거라고 봅니까?”
“저도 백두 그룹이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은 확인을 끝냈습니다.”
“그러니까요. 2주 전에 골프 쳤습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박태웅 이사다.
“이런저런 이야기만 듣고 왔는데 산업수출은행이 요즘 은행 부실화 가능성에 대한 뉴스에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산업수출은행이 총대를 메는 거군요.”
“그렇게 될 공산이 큽니다. 요즘 워낙 언론에서 은행 부실화에 대한 뉴스를 동네북처럼 두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사업은 가능성을 확인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두 소주 인수전도 제가 추진하는 투자 사업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여튼 두 그룹의 자존심 싸움이 된다면 추가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도 있겠군요.”
“예.”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고 황 부장이 들어와서 내게 머리를 숙였다.
“회의실에서 회의 준비 끝났습니다.”
“갑시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진행할 회의의 핵심 내용은 3억 달러에 대한 해외 투자 방안이다.
‘IMF에 편승하지 않는다.’
내 아내 은혜를 위해서라도 나는 확보된 3억 달러로 해외 투자에 나설 생각이다. 물론 외국계 사모 펀드로부터 국내 기업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도 외면하지 않을 참이다.
‘할아버지께서 이름 없는 의병이라고 하셨듯!’
나는 대한민국의 국부를 지키는 의병이 될 참이다.
이제부터 돈도 정승처럼 벌어볼 참이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딸깍!
“지금까지 이런 투자는 없었다. 적금인가 투자인가,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 대표 백범입니다.”
-호호호, 들을 때마다 재미있어요.
은혜가 웃으라고 한 것이다.
‘오늘이구나.’
나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달력을 봤고 오늘이 은혜가 속해 있는 결손 가정 후원 및 지원 사업 행사에 참여하는 날이다.
이런 행사도 사법연수원 과정 중에 하나란다.
-식사는 하셨어요?
시계를 보니 오후 두 시다.
“먹었습니다. 오늘이죠?”
-예, 오늘이에요.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제가 괜히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저 기부에 관심 많습니다.”
후원 행사라는 것이 그렇다. 후원자들이 후원하는 사람들 앞줄에 새워놓고 사진 찍는 일이 전부라고 해도 전부일 것이다. 물론 그러리라는 것을 내 아내 은혜에게도 말해 줬었다.
[그렇다고 해도 고마울 때가 많죠.]
서푼 가난한 사람은 자존심을 찾지만 절박한 사람들에게는 자존심은 사치라는 투로 내게 말했던 은혜였다. 그래서 내가 그 장학금 지원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