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85화 첫 번째 인수합병은? (1)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의 집무실.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내가 백범 대표를 오해했어요.
“그러십니까?”
-한보그룹 불법 대출 사태가 계속 언론에 집중되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걱정을 많이 했고 백범 대표의 돌발행동에 시쳇말로 나도 휩쓸려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참, 사람이 진국입니다.
“백범 대표는 예측할 수 없는 청년이죠.”
-하하하, 그렇다니까요. 그제 나를 찾아와서 내 고민을 모두 시원하게 해결해 주고 갔습니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불법이나 편법 대출이 아니죠. 예치금 7800만 달러에 대한 담보 감정 끝냈고 400억의 대출이 결정됐습니다.
“잘된 일이군요.”
-완벽한 검증 과정을 거친 일이라 문제가 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다가 추가로 600억을 백범 대표의 태양 종합투자금융에 우리은행이 직접 투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대출 및 투자 심사 위원회를 개최했고 대출 적합성 판정을 받았소.
“잘된 일이군요.”
-그렇죠. 투자도 적합하다고 결론이 났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너무 과감한 투자이기에 위험부분이 많다고 말했지만 위원회 위원들이 가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중론을 모으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서명했습니다. 하하하!
백범의 꼼수는(?) 이렇게 불법 대출을 합법적인 대출로 전환했고 그와 함께 600억에 달하는 투자금도 확보하게 됐다. 정말 세상 그 누구보다 사기꾼 기질이 출중하지만 성공한 사기꾼은 결국 성공한 투자가가 되는 법이다.
하여튼 백범은 산업수출은행으로부터 1000억이라는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시군요.”
-하여튼 능력 있는 젊은 사업가를 우리 은행에 소개해 줘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리 날 잡아서 회동 한번 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끊습니다.
-살펴 들어가십시오.
뚝!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전화를 끊자마자 미소를 머금었고 그런 그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는 백영기의 입가에도 미소가 머금어졌다.
“산업수출은행장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백범 대표가 꼼수를 정수로 만들어 버렸군요. 하하하, 하여튼 대단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백범이 과대평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백변의 의견을 따른 것이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법률자문 파트너십 계약을 파기했다면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뻔했습니다.”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백범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백변.”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백영기 변호사를 불렀다.
“예, 대표님.”
“우리도 태양에 투자할까요?”
“예?”
“대담하고 과감한 사업가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상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백범에게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씀은……?”
“사람에게도 투자하고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에도 투자하자는 말입니다.”
“저는 이미 태양종합금융투자에 투자했습니다.”
“하하하, 벌써요?”
“예, 100만 달러 예치했습니다.”
“그렇군요, 백 변은 항상 빠르군요. 그럼 나도 개인적으로 투자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투자해야겠습니다.”
“사람에게……!”
백영기 변호사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백범 대표는 이제 30살입니다. 빠르면 20년 후가 늦어도 30년 후가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킹메이커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 대표님, 킹메이커라고 하셨습니까?”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백범 대표는 다 가졌습니다. 훌륭한 집안과 품성 그리고 능력까지. 딱 하나 없는 것이 인프라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제공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백 변이 킹메이커가 될 생각은 없습니까?”
“제가요? 대표님이 아닌 제가요?”
“나는 늙었습니다.”
“아……!”
“나는 결심했소, 태평양법무법인을 대한민국 법조계의 선두로 만들 방법은 백범 대표 킹메이커의 노릇을 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이제는 신중론이라?”
“20년, 30년 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요. 그래서 궁금해집니다. 하하하!”
하여튼 태평양법무법인은 백범의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에 투자하기로 했고 개인적으로도 백범이라는 인물에게 투자할 결심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졸부인 백범이 가지지 못한 인적 인프라를 제공 받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참 백범 대표가 어떤 요청을 해왔습니까?”
“아, 백두 그룹에 대한 전반적인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백두 그룹?”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백두 그룹에 법률 대리를 한 것이 있습니까?”
법무법인이 법률 자문이나 법정 대리를 통해서 확보된 정보나 받은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었다. 또한, 그룹컨설팅을 위해 제공한 회사의 재무제표를 이용하거나 제삼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없습니다.”
“그럼 됐군요. 모든 역량을 동원해 확인해서 정보를 확보하고 백범 대표에게 제공하십시오. 아마도 첫 시작이 백두 그룹에서 시작될 것 같군요.”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 * *
용인 인근의 골프장.
오늘은 골프 회동이 있는 날이다. 같이 필드에 나온 사람은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와 산업수출은행 은행장, 마지막으로 백영기 변호사다.
“나이스 샷!”
짝짝짝!
“사장님, 나이스 샷!”
캐디들이 은행장이 티샷을 날리자마자 공의 궤적도 보지 않고 나이스 샷을 난발했다.
‘비거리가 상당하네.’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와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은 밥 먹고 골프만 친 모양이다. 물론 나도 비거리에는 자신 있다. 거기다가 정확성까지 갖췄다. 물론 이것은 내가 이신이었을 때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백범 대표 차례입니다. 하하하!”
그날 이후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은 내 후원자라도 되는 듯 내게 무척이나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대출 400억에 투자금 600억을 했으니까.’
자기는 대출 심사와 투자 심사 위원회가 개최됐을 때 신중론을 펼쳤고 말렸단다. 그래도 심사 위원회 위원들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했기에 투자가 이루어졌단다. 한마디로 자기 빠져나갈 구멍까지 파놨기에 저렇게 여유로운 것이다.
“예, 은행장님.”
나는 멀리 있는 1번 홀을 바라봤다.
‘내기 골프지.’
그리고 내게 판단한 방향에 살짝 각도를 틀어 비거리만 엄청나게 샷을 날렸고 당연히 공이 날아갈 각도를 의도적으로 틀었기에 내가 친 골프공은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사장님 나이스……!”
캐디 하나가 벙커에 빠진 내 공을 보고 버릇처럼 나이스 샷을 외치려다가 옆에 있던 캐디가 옆구리를 꾹 찔렀는지 말꼬리를 흐렸다.
“아쉽습니다. 오버네요. 하하하, 거기다가 벙커에 빠지셨군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아쉽다는 듯 내게 말했다.
“제가 쓸데없이 힘만 좋은 것 같습니다.”
“백범 대표는 젊잖아요. 그래서 그런 겁니다. 티샷을 칠 때 비거리보다 방향을 잘 잡아야죠. 사업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다. 대표님.”
은행장이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에게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은행장님께서 백범 대표의 옆에 계셔 주셔야 합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는 겁니까.”
우리는 지금 걷고 있다. 골프는 걸어가며 생각하는 운동이고 그렇게 걸어갈 때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여기서 내가 할 말은 없지.’
모든 말은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산업수출은행장에게 다 할 것이다.
“은행장님.”
“예, 구 대표.”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의 이름은 구대성이다. 야구선수의 이름과 똑같다.
“백두 그룹의 최대 채권자가 산업수출은행 아닙니까?”
“그럴 겁니다. 왜요?”
“요즘 안 좋은 풍문이 도는 것 같습니다.”
“안 좋다고요?”
은행장도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백두 그룹은 현재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니 최대 채권자인 산업수출은행의 은행장이 그 사실을 모를 턱이 없다.
“모르십니까?”
“하하하, 아는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요.”
원래 이런 것이다.
“그렇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룹 전체가 위험하다는 소리가 파다합니다. 한보가 무너지고…….”
“으음……!”
다행스러운 것은 산업수출은행은 한보그룹에 크게 물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불법 대출의 여파가 없을 수는 없다.
“건질만 한 것은 백두 소주밖에는 없다는 소리가 파다합니다.”
구 대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백두 그룹은 방계 계열사만 25개를 가진 그룹이다. 그리고 백두 소주를 제외하고도 알짜들이 꽤 있다. 현재 과감한 투자와 매출 하락 때문에 자금 압박을 받고 있지만, 계열사 25개 중의 10개 이상이 알짜라면 알짜다.
“그렇기는 합니다.”
“백두 소주를 그룹에서 분리해 매각해야 백두 그룹이 회생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한,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에게 이렇게 말해 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다. 내가 요청한 것은 백두 그룹에 대해 정보 제공이었고, 그 한 마디로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내 의중을 간파하고 이러는 것이다.
“이런, 이런, 알짜를 매물로 내놓아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태평양법무법인 구 대표를 바라봤다. 이것은 서로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받겠다는 의도다. 물론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산업수출은행의 행동이지만 말이다.
“채권 회수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은행들이 부실화가 가속되고 있다는 말들이 청와대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백두 소주가 인수 합병 시장에 나온다면 군침을 흘릴 그룹들이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존재들과 첫 경쟁을 해야겠지.’
이제부터 본격적인 사업이다. 그리고 이 사업들을 통해 나는 실적을 쌓을 것이고 그 실적으로 나우루공화국의 국부 펀드 사업자로 선정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요?”
“예, 저번에는 각하께서 재계 총수들을 소집해서 어음 거래 자제를 촉구하셨답니다.”
각하께서는 내가 드린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대기업들은 어음 거래를 자제하지 않고 그 발행한 어음으로 은행에 대출을 받고 자신들이 추가 발행한 어음을 하도급 업체나 거래 대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정말 재계에 그 많은 사람이 닥쳐올 위기를 모를까?’
나도 모르게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요?”
“예,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요즘 부쩍 언론에서 터트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골프 회동은 사적인 자리지만 대부분 사적인 자리에서 많은 것들이 오간다는 사실이다.
* * *
마지막 홀까지 왔다. 이 골프 회동은 내기 골프다. 이겨서는 안 될 골프다.
“하하하, 내가 이겼습니다.”
은행장은 신이 난 표정으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예, 제가 꼴등입니다. 그럼 약속드린 것처럼 제가 은행장님의 이름으로 500만 원을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하겠습니다.”
캐디들이 듣고 있으니 이런 것들은 소문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문이 나도 특별하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불우이웃 돕기 기부금 내기 골프를 쳤다고 해서 언론이 난리를 칠 일은 없을 테니까.
“하하하, 정말 백범 대표는 별나다니까요.”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골프도 그렇지만 모든 것이 그냥 하면 재미가 없고 승부욕이 생기지 않죠. 내기 골프를 치고 이렇게 뿌듯해진 적도 처음입니다.”
“있는 분들께서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여튼 백범 대표는 참 특이합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골프 회동이다.
‘백두 소주를 가진다.’
이 목표의 핵심은 백두 그룹에서 계열사인 백두 소주를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고 최대 채권 은행인 산업수출은행이 그렇게 되게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4월이다.’
4월이 되면 백두 그룹은 부도 처리가 되고 그때가 되면 백두 그룹은 어떤 결정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