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84화 사기꾼 기질?(2)
조비의 점집 사당.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조비는 자신의 몸주인 장군님에게 빌고 또 빌었고 그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고통이 몰아쳐서 절을 하면서 쓰러지고 또 일어나면서 쓰러졌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함 그 자체였고 절을 할 때마다 떨리는 몸은 금방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장군님, 제발, 아수라발발타……!”
아수라발발타의 지문은 원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조비는 백범이 다녀간 후로 바로 이 사당에 들어와 자신의 몸주인 장군님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아수라발발타……. 으윽!”
또 한 번 심장이 멈추는 고통이 느껴졌고 조비는 바로 그 자리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난 조비는 벌벌 떨며 다시 빌고 빌기를 반복했다.
“아, 아수라발발타……!”
[독한 것!]
3일째가 되던 날 드디어 조비의 몸주인 장군 신령이 그녀의 기도에 답했다.
“아수라발발타!”
[그리 원하는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네가 죽어도 상관이 없느냐?]
“그렇사옵니다.”
이 순간에도 쓰러질 것 같은 조비였다.
[아수라발발타, 이제 나를 떠나가라.]
“아수라발발타……!”
푹!
조비는 마지막 주문을 외우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 *
“이게 사실입니까?”
내가 내민 사업 계획서를 보고 놀라는 은행장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그리고 투자하시는 투자자들에게는 사실이 될 겁니다.”
“그런가요?”
“예, 첫 투자처와 투자를 받을 곳은 나우루공화국입니다.”
“그렇겠군요. 새똥이라, 새똥으로 만들어진 섬이라, 신기하군요. 백범 대표.”
“예, 은행장님.”
“우리 은행이 백범 대표에게 투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예?”
“은행장님께서 단독으로 결정하지 마시고 회의를 여십시오. 그리고 제공된 담보에 대해 정확하게 감정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그 회의에서 판단이 됐을 때 그때 산업수출은행이 이름으로 투자해 주십시오.”
이미 은행장이 투자를 결정한 상태다. 그러니 회의에서 투자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없다. 상급자의 심기를 건드릴 은행원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은행원이 존재한다면 나는 바로 엄청난 연봉을 지급하고 스카우트를 할 것이다.
“아, 그렇군요.”
“가장 합법적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해 주십시오. 그리고 투자가 결정된다면 산업수출은행의 수익 창출을 위해 최선 아니 최고의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이 한마디로 태양종합투자금융회사의 품격을 산업수출은행의 파트너로 끌어올렸다.
“정말 자신만만하시군요.”
“감사합니다.”
“예, 백범 대표의 요청대로 공식적으로 투자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래도 대출은 진행하셔도 됩니다. 내가 힘을 실어드리는 것이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합리적으로 담보에 대해 책정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합법적인 대출도 받고 투자도 받을 수 있다면 최상의 경우의 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정말!’
사기꾼 기질이 출중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기꾼 기질도 성공하면 합리적인 투자자로 바뀌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정식적으로 사업자 대출을 신청하겠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하십시오. 내가 대출을 받아달라고 사업자에게 말할 때가 올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여튼 오늘 좋은 결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나도 한보 그룹 뉴스가 나올 때마다 찜찜했습니다.”
“그러실 겁니다.”
“백범 대표, 우리 오래 봅시다.”
“예, 은행장님.”
이것으로 골치 아픈 일은 모두 끝났다. 그러니 이제 투자사업만 진행하면 된다.
* * *
판교 본가 옆 전원주택.
“누가 이사를 왔나 봐요.”
선희가 백범의 모친에게 말했다.
“그러게, 얼마 전부터 빈집을 수리를 하더니 이사를 오나 보네.”
백범의 모친도 관심을 보였다.
“선희야, 이것 좀 먹어 봐.”
은철이 사과로 만든 천연 건조 과자를 가지고 와서 선희에게 내밀었다.
“벌써 만든 거야?”
“당연하지, 먹어 봐.”
“나도 있는데. 서운하네, 호호호!”
“아 죄송해요.”
“임자 것은 여기 있어.”
백범의 부친이 백범의 모친 뒤에서 말린 사과 과자를 내밀었다.
“호호호, 역시 우리 남편밖에는 없어요. 어……. 어……!”
그때 백범의 모친에 차에서 내린 조비를 보고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왜 그래?”
백범의 부친이 백범의 모친에게 물었다.
“처녀 보살님이세요.”
“뭐?”
“청담동 처녀 보살 그분이에요.”
백범의 모친이 엉덩이를 털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차에서 내린 조비에게 뛰어갔고 그때 건조가공 창고에서 김찬 할아버지가 말린 고구마와 사과 과자를 한 아름 가지고 나왔다.
“아우님아, 이거 엄청 맛있다.”
“하하하, 드시고 싶은 만큼 드십시오.”
“배부르게 먹었다. 우리 야야 주면 참 좋을 건데……!”
어느 순간부터 김찬 할아버지는 선희를 야야라고 부르지 않았다. 같이 살다 보니 선희가 선희인지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서글픈 눈으로 하늘을 볼 때가 많았고 보름달이 뜰 때면 달을 보며 야야를 부르며 울기까지 하는 김찬 할아버지였다.
“야야가 그리 좋습니까?”
백범 부친은 이미 백범에게 야야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어서 김찬 할아버지가 가엽기만 했다.
“야야가 보고 싶다. 흑흑흑……!”
“형님, 오늘은 달도 안 떴는데 우시네요.”
울 때면 더 아이 같은 김찬 할아버지다.
“아아아앙.”
정말 애처럼 우는 김찬 할아버지셨고 백범의 부친은 우시는 김찬 할아버지의 입에 말린 고구마말랭이를 넣어 줬고 입에 뭔가가 들어오니 우는 것을 멈추는 김찬 할아버지였다.
얌얌!
“맛있다. 훌쩍!”
“하하하, 형님은 정말 아이 같으십니다.”
“맛있다.”
맛있는 그것을 먹으니 울음을 멈추는 김찬 할아버지였고 그 모습에 백범의 부친은 속으로 김찬 할아버지가 너무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운 할머니라도 소개를 해 드려야 하나……!’
* * *
“선녀님, 선녀님.”
백범의 모친은 조비를 발견하고 달려가 그를 불렀고 조비는 자기에게 달려온 백범의 모친을 보다가 한참 뒤에서 환하게 웃는 김찬 할아버지를 보고 입에는 미소를 머금고 눈에는 눈물을 흘렸다.
‘아, 오라비……!’
조비이면서 꽃분이로 살고 싶은 그녀였다.
“선녀님……!”
자기 앞에서 갑자기 웃으면서 우는 조비를 보고 백범의 모친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잘 계셨습니까?”
흘린 눈물을 닦은 조비는 백범의 모친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자신에게 또 김찬에게는 또 다른 은인이 바로 백범의 모친이니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셨어요?”
“눈에 뭐가 들어갔나 보네요.”
“아,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여기서 살려고 왔어요.”
“여기서요?”
“예, 여기서 살려고 왔어요.”
조비는 백범의 모친에게 공손히 대답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백범의 모친을 지나 선희와 은철과 장난을 치며 서로 과자를 먹여주는 김찬 할아버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 백범의 모친이 돌아봤다.
“참 보기가 좋네요.”
“예, 저희 아주버님이세요.”
“아, 그렇군요.”
“아이 같이 참 좋은 분이세요.”
“그러네요.”
“그런데 정말 판교에 살려고 오셨어요?”
“예.”
“점집은 어쩌시고요?”
“장군님께서 저를 놓아주셨습니다.”
“엥? 그건 무슨 소리세요?”
“그런 것이 있어요.”
“아……!”
조비가 그런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이 있는 줄 아는 백범의 모친이었다.
* * *
실내 장식 공사를 시작하고 그 여자의 윗집을 산 지 일주일이 지났고 나는 끝내 그녀의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그녀의 손에는 내가 준 과일 바구니보다 더 큰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정말 죄송하고요……!”
이렇게 단순무식한 방법이 제일 효과적일 때가 많다.
“정말 죄송하기는 한가요?”
“예, 죄송해요. 제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 저도 모르게 그랬네요.”
여자들이 궁지에 몰리면 가끔 울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핑계를 댈 때가 많다. 물론 호르몬 변화 때문에 생리 전후에 급격하게 성격이 변하는 여자도 많다.
“혹시 병이시면 병원에 가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제가 정신병자처럼 보이시나요?”
눈빛이 변하는 여자다.
“그건 아니고요. 정신질환도 병이기는 합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혹시나 생리 전 증후군일 가능성도 있으니 산부인과에 가보시라고 권유하는 겁니다.”
“으음……!”
내가 막 나가는 망나니라는 것을 간파했기에 더는 짜증을 부리지 못하는 여자다.
“하여튼 저도 죄송한 것이 많았습니다.”
여자 쪽에서 먼저 항복 선언을 해왔으니 나는 그녀를 더는 자극하지 않을 생각이다.
“정말 대단하셨어요. 정말 캐릭터가 분명하신 것 같아요. 좋은 경험 했어요.”
“캐릭터요?”
“예, 참 저도 극성스러웠지만, 그쪽도 극상의 극성이신 것 같습니다.”
캐릭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니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일하는 여자 같다. 파출부 이모의 말에는 낮에도 출근하지 않는다고 하니 아마도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추측이 된다. 물론 이것은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렇기는 합니다. 그리고 이왕 제게 항복 선언을 하셨으니 제 조카 녀석에게도 사과해 주십시오.”
“아…….”
“가난한 집입니다. 평범한 집 아이보다 상처를 더 받았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과 너무 다른 여자의 표정이다.
“제가 미친년이었네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다시 눈을 흘기는 여자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서로 모르는군요. 저는 백범이라고 합니다.”
“백범이요?”
“훌륭하신 분의 호군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여자다.
“그렇죠.”
“참 제 이름은 김지은입니다. 드라마 작가고요. 그래서 밤에 글을 쓰다 보니 소란을 떨었네요. 죄송해요.”
역시 내가 짐작한 것처럼 드라마 쪽 직업을 가진 여자였다.
“우리 처음은 악연인데 이제부터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다 그렇다. 인연으로 만나서 악연이 되고 악연으로 만나서 인연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겠죠. 정말 대단한 적수를 만났으니까요.”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우리 집 화장실 새는 물 때문에 피해가 크시죠?”
“일부러 그러셨잖아요.”
“제가요?”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다.
“충분히 극강 캐릭터라 그럴 것 같으시네요.”
나를 흘겨보는 김지은이다.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 이거 받으세요. 도배비 일체와 바닥 마루 교체 비용입니다.”
“저 돈 많아요.”
“돈 많으세요?”
“예, 저 돈 많아요……!”
이제는 지쳤다는 듯 내게 말하는 김지은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녀가 말한 것처럼 돈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태양종합투자금융에 투자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
내 뜬금없는 말에 멍해지는 김지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태양종합투자금융 대표 백범이라고 합니다.”
나는 바로 김지은에게 웃어 보이며 내 명함을 내밀었다.
‘정말 나는 사기꾼 기질이 타고났다.’
또한, 영업력도 출중하다.
“아, 정말 최강 캐릭터시네요……!”
내 행동에 그저 멍해지는 김지은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