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83화 (83/415)

# 83

83화 사기꾼 기질?(1)

삼정생명 본사 영업부장 사무실.

그를 만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요청했던 예금자 보호를 위한 보험이 삼정생명 보험사 사장의 최종 결정이 떨어졌다는 의미고 이제 남은 것은 최종 조율만이 남았다는 소리다.

“본사의 위험부담이 크지만, 결재가 떨어졌습니다.”

영업부장이 앓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계약된 보험의 보험금을 올리겠다는 얄팍한 수다.

“만기 보장형 보험도 아닌데 뭐 그렇게 부담이 될까요?”

“귀사가 파산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투자자들에게 개인당 5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저희 쪽에서 지급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을 드는 것 아닙니까?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지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렇기는 하지만 왜 투자를 받는 회사에서 이런 보험까지 보험사에 직접 요청하시는지 물음표를 던지셨습니다.”

사실 작금의 보험사 영업은 돈도 안 내놓고 돈 먹는 노나는 사업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딱 변액보험이 태동한 때고 생명보험이라는 것이 서민들에게 인기를 끌 때다. 거기다가 연금보험도 구성이 되어서 서민들에게 팔리고 있다.

‘현재 수익률이!’

7~10% 정도고 이 상태라면 20년 만기 보험이면 서민들이 생각하는 노후는 안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곧 IMF가 닥쳐오고 보험사의 수익률은 1~2%로 하락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보험사들은 깨알 같은 변액보험 약정을 들먹이며 서민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게 될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보험 안 든다.

물론 실손보험은 든다. 하지만 나머지 보험들은 보험사 좋으라고 드는 경우가 많아서 안 든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어쨌거나 보험은 오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안한 미래를 그리고 재앙을 대비하기 위해 들어두는 것이니까.

“대표님께서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투자유치의 한 방법이죠.”

설마 삼정보험 대표가 몰라서 물음표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시키려고 그럽니다.”

“안전합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태양종합투자금융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할까요?”

어처구니가 없는 순간이 발생했다. 한 마디로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이다.

“아. 하하하!”

“많이들 투자하고 있죠? 제 후배 몇도 투자를 했습니다.”

영업부장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김 비서님.”

“현재 4000만 달러까지 투자를 받은 상태입니다. 1년 보장 수익이 투자금의 20%를 지급하기로 약정이 되어 있기에 투자 목표액인 1억 달러를 곧 돌파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1차 투자유치 목표가 달성되면 태양 펀드 2호가 발족할 예정이며 그때는 이자율을 15% 지급하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김 비서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다.

사업체가 돈이 급할 때 높은 이자를 주고 은행이나 사채를 빌려 쓴다. 하지만 자금이 여유로워지면 그런 이자를 주고 돈을 쓸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투자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답니다.”

“아직 1차 펀드의 구좌가 남아 있다는 거군요.”

“예, 그럴 겁니다.”

정말 주객이 전도된 상태다.

‘삼정보험에 와서 투자유치 홍보를 하게 될 줄은 몰랐군.’

이만큼 금융계나 보험계 그리고 종금사까지 내 투자유치 방법에 대해 무척이나 관심을 보이고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도 관심을 보이겠지.’

이 실장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사업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자꾸 경제수석이 떠오른다.

그냥 있을 놈이 아니니까.

그리고 내 투자유치 방법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면 이것은 한마디로 다단계 금융 사기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니 꼬투리를 잡으려면 잡을 것이 너무 많다.

“그럼 저도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여기서 나한테 하는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그러시면 투자설명을 받으십시오. 태양종합투자금융 본사에 가시면 펀드 홍보 매니저들이 자세하게 설명해 줄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부장님.”

“예, 대표님.”

“저 여기 단체보험 가입하려고 왔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계속 말씀하시죠.”

“계약 1건당 1년 만기 50만 원의 보험금이 책정됐습니다. 12개월 분할 납부도 가능하고 일시금도 가능합니다.”

나는 삼정보험사에 5000만 원에 대한 투자자 보호 관련 보험을 계약해 줄 수 있냐고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나온 답이 1%의 보험금을 내라는 것이다.

“1%군요.”

“예, 그렇습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나는 내가 받은 투자금에서 투자자에게 돌려줄 20%와 보험으로 지급될 0.5%를 제하고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자신이 받을 20%의 수익에서 50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 중 0.5%의 금액을 보험금으로 미리 차감하고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12개월 분납으로 계약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라에서도 보호해 주지 않는 예금자, 아니, 투자자 보호를 위해 보험까지 가입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여러 가지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참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삼정보험 본사 영업부장이 궁금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보험사에서도 대출이 되죠?”

“예, 대출되기는 합니다.”

“아, 그렇군요. 일반 기업에 투자도 하시죠?”

보험사는 보험회원들에게 보험금을 납부받아서 다른 곳에 투자해서 이익을 거둔다. 주식과 채권 그리고 부동산과 해외 투자를 통해서 수익을 내는 것이 보통이고 때로는 우량 기업에 대출을 해주며 높은 이자를 받아 챙기며 수익을 낸다.

“그렇기는 합니다.”

나를 빤히 보는 영업부장이다.

“제가 혹시 저희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의 비전을 말씀드릴 수 있게 대표님이나 이사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아……!”

놀라는 영업부장이다. 보험을 가입하러 와놓고서는 투자유치를 하고 있으니 저런 눈빛인 것이다.

“어렵습니까?”

“제가 보고는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앞으로 부탁드릴 일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비전이 있기는 합니까?”

영업부장이 다시 내게 조용하게 물었다.

“제가 청와대에 다녀온 것은 아십니까?”

나도 아주 나직이 말했다.

“정, 정말입니까?”

“예. 청와대에 다녀왔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꼼수지만 말이다.

“이건 비밀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이나 이사님께서 저를 찾으시면, 하하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비서님.”

내 말에 김 비서가 박태웅이 계획해 놓은 향후 투자 설명서에서 핵심 분야만 쏙 빼놓고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은 사업 계획서를 영업부장에게 내밀었다.

“보고를 드릴 때 같이 제출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보험 가입하려고 왔다가 투자유치도 하고 가는 순간이다.

* * *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실.

“하하하, 참 오랜만입니다. 백 대표, 내 백 대표의 엄청난 행보는 풍문으로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 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5억 증여 신고는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다. 그런데도 은행장이 나를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 준 것은 여전히 태평양법무법인이 나를 돕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하하, 제가 좀 과했습니다.”

“맞습니다. 과하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것이 재계의 공론입니다.”

뜯어갔던 놈들은 내 행동에 치를 떨 것이다. 하지만 뜯기기만 했던 놈들은 속이 다 시원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제는 누구라도 함부로 정치 후원금을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정치 기부금 풍토를 바꾼 거지.’

물론 망나니짓은 분명하다.

‘은행도 뜯기지.’

사실 대선 때나 총선 때가 되면 안 뜯기는 기업체가 없다. 그래서 대리만족이 되나 보다.

“은행장님, 그래서 제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요?”

은행장은 한없이 궁금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예, 7800만 달러를 은행에 예치하고 그 자금을 이용해 100% 대출을 받았잖습니까.”

“그렇죠. 사실 그 일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제가 받은 대출이 한보 그룹 불법 대출과 같이 묶이면 은행장님께서 곤란해지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보 그룹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특검이 열린다는 소리도 왕왕 들립니다.”

나는 무슨 특급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특, 특검.”

이 시대에는 특검이라는 말만 나와도 벌벌 떤다. 두 전직 대통령이 특검 조사를 받았고 청문회에 끌려 나왔고 그런 과정에서 스타 의원이 만들어졌고…….

“그렇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제가 은행장님의 근심을 덜어드리기 위해 조기 상환을 결심했습니다.”

이래서 한국말은 어가 다르고 아가 다른 법이다.

“아……!”

“600억 전액을 조기 상환하겠습니다. 물론 전액을 조기에 상환해도 대출 기록은 남겠지만 상환 수수료까지 받았으니 누구라도 크게 문제로 삼지는 못할 겁니다.”

“백 대표가 그렇게 해주시면 나야 고맙지만…….”

대출을 다 갚고 회사를 운영할 돈이 있냐고 묻는 눈빛이다.

“하하하, 종합금융투자회사를 설립해서 그런지 빠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본금이 확 줄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 7800만 달러가 있죠.”

“그 돈은 계속 산업수출은행에 예치해 놓을 겁니다.”

“아!”

다시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는 은행장이다.

“은행장님.”

“예, 말하세요. 백범 대표.”

“은행도 결국 대출을 해주고 직접 투자를 하면서 수익을 창출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은행장님,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에 은행에서 투자하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투자요?”

“예, 그렇습니다. 은행도 이제 직접 투자에 나설 때입니다.”

“으음……!”

“7800만 달러의 예치금이 이 은행에 예치가 되어 있습니다. 아파트를 담보로 하면 70퍼센트까지 대출이 된다면서요?”

“그렇기는 하죠.”

“7800만 달러에 60퍼센트까지만 투자하시거나 재대출을 진행해 주시면 어떨까요? 그럼 누구도 불법 대출이라고 하지 못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한 담보가 떡하니 은행 안에 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내 말에 한없이 고민스러운 눈빛으로 변하는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이다.

“김 비서.”

“예, 대표님.”

김 비서는 서류 가방에서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의 향후 사업 계획서를 내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나가서 대기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김 비서가 내게 인사를 하고 또 은행장에게 나보다 더 낮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은행장님. 이 사업 계획서 좀 한번 살펴 주십시오.”

“허허허……!”

“혹시 나우루라는 작은 섬나라를 아십니까?”

이제는 시쳇말로 뽕을 넣을 때다. 정말 나는 다른 것을 몰라도 사기꾼 기질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 그런데 절대 사기꾼이 되어서는 안 될 인생이다.

내 아내를 위해서라도 또 내 삶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제는 진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군.’

참 멀리도 돌아왔다.

“나우루라고요?”

“예,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입니다. 국부 펀드만 100억 달러를 유치하려는 부자 나라입니다.”

“100억 달러라고 했소?”

“사업 계획서를 살펴 주십시오. 17페이지에 있습니다.”

내 말에 산업수출 은행장이 17페이지를 넘기고 사업 계획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