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82화 전쟁이 시작되다?(3)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당해 보니 알겠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 바로 구조변경 실내 장식 디자이너를 불렀고 신혼집을 싹 뜯어고쳤고 특히 방음과 바닥 층간 소음 공사에 제대로 신경을 썼다.
“아랫집을 이 정도까지 생각해 주시는 사장님도 처음입니다.”
실내 장식 디자이너가 내게 말했다.
“이 정도면 될까요?”
“아마 축구선수들이 뛰어도 아랫집에서는 모를 겁니다. 제가 간단하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벽면은 이탈리아산 고급 대리석으로 시공을 할 겁니다. 바닥은 1차 충격 완화제를 깔고 다시 이탈리아산 고급 대리석을 깔 겁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보일러 배관 공사를 다시 해야 합니다.”
“하세요.”
돈이야 많다. 그리고 돈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벽면에는 요청하신 방음 공사도 철저히 하겠습니다. 견적이 더 올라갈 것 같습니다.”
“하십시오.”
“예……!”
더 물어보지 않고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요구하신 그대로 침실 욕실은 사방과 천장에 전면 거울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하하하!”
자기가 말을 하고 묘하게 웃는다.
“왜 웃으시죠?”
“신혼이시죠?”
“예, 그렇습니다.”
“나중에는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신혼 기간이 끝나면 욕실 사방과 천장에 거울로 마무리한 것에 대해 후회할 거라고 말하는 실내 장식 디자이너다.
“저희는 신혼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 그러시겠죠.”
내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의 눈빛은 너도 좀만 더 살아봐라. 이런 눈빛이다.
‘나중에 사랑이 식을까?’
나와 은혜도 언젠가는 꿀 같은 신혼이 끝날 것이고 결혼생활이라는 현실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부부가 하기 나름일 것이다. 나는 항상 은혜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은혜도 내게 최선을 다할 거니까.
“그리고 요청하신 대형 원형 욕조는 프랑스에서 주문을 끝냈습니다.”
“얼마나 걸리죠?”
“짧게 잡아도 일주일 이상 걸릴 겁니다.”
“그렇군요. 전면적인 구조변경 공사이니 공사 기간이 한 달입니다. 그 전에 설치가 완료될 겁니다.”
“그래야죠. 그리고 안방에는 아늑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게 일본산 편백나무로 작업해 주세요.”
“일본산 편백나무라고 하셨습니까?”
“왜 그러시죠?”
“가격이 엄청날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편백은 피톤치드가 나와서 머리를 맑게 해주고 편백 자체적으로 살균 효과가 뛰어나단다. 거기다가 제습과 가습이 가능하니 공부하는 은혜에게 안락함을 선사해 줄 것이다.
“정말 규모가 엄청나십니다. 이렇게 되면 구조변경 단가가…….”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히 나올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방하고 3번째 방은 임시 벽이던데 틀 수 있죠?”
“물론입니다. 임시 벽 공사는 가능합니다.”
“그럼 터주시고요. 놀이동산처럼 꾸며 주십시오.”
2세 탄생도 준비할 참이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마다 단가가 쑥쑥 올라가고 있는 상태다.
“하여튼 잘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멋지게 꾸며놓겠습니다.”
나는 김 비서에게 지시해서 정말 제대로 된 실내 장식 디자이너를 섭외한 상태다.
“그리고 하나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내가 묘한 미소를 보이자 실내 장식 디자이너가 나를 빤히 봤다.
“예, 말씀하십시오.”
* * *
“예?”
내가 설명을 해줬는데 다시 묻는다.
윗집에서 아랫집으로 물이 똑똑 떨어지게 해주세요.”
나는 실내 장식 디자이너를 내가 구입해 놓은 1117호로 데리고 왔고 내가 들어오자 거실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내게 인사를 했다.
“하던 거 계속해.”
“예, 알겠습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의 손에는 몽둥이 하나씩이 들려 있고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의 손에는 쇠 구슬이 달려 있다. 물론 농구공을 튕기는 아르바이트생도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고 실내 장식 디자이너가 거의 공황에 가까운 상태로 나를 봤다.
“나중에 다시 공사해야 하니까, 정확하게 물이 새는 곳을 확인해 놓으시고요. 아랫집 거실, 욕실, 침실에 물이 똑똑 떨어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사장님……!”
실내 장식 디자이너가 나를 불렀다.
“예.”
“아랫집과 원수지셨습니까?”
“전쟁을 걸어오네요.”
내 말에 실내 장식 디자이너는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냐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가 혹시나 자기 속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깜빡이고 나를 봤다.
“며칠 안 걸릴 겁니다. 항복 선언을 받으면 되니까요.”
사실 쉽게 가는 방법도 있다. 내가 이미 구입한 이곳으로 이사를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신혼집은 나와 은혜와의 첫날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집이고 이런저런 추억들이 만들어진 집이다. 그러니 이렇게 미친 짓을 하고 있다.
‘걸어오는 싸움은 질 수 없지. 으흐흐!’
나도 모르게 이신의 본성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다.
“아……!”
“되죠?”
“예, 됩니다. 정말 저는 오늘…….”
“처음 해보시는 일이 많죠?”
“예,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당장 내일 아랫집이 물바다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기분이 나쁘실지는 모르시겠지만, 사장님은 정말…….”
“별종이죠?”
“죄송합니다.”
“하여튼 잘 부탁드립니다.”
“예……!”
역시 돈으로 하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쉽다.
* * *
“여기 있습니다.”
요즘 김 비서의 일은 과일 바구니를 백화점에서 사서 내게 전달하는 일이 전부라면 전부다.
“수고하셨습니다.”
“왜 또……?”
“저희 집이 실내 장식 공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랫집이 불편한 것이 많을 겁니다.”
실내 장식 공사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안해서 아주 큰 과일 바구니를 사서 사과할 참이다.
‘이러다가 아파트에서 내 별명이 과일 바구니가 되겠군.’
벌써 과일 바구니를 전달한 곳이 10곳이 넘고 우리 집 사방에 있는 다른 집과 위층 아래층에 다 돌렸다.
“아, 그러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투자자들은 얼마나 모집이 됐습니까?”
할매를 만난 그다음 날 할매에게서 400억이 입금됐고, 물론 그 전에 할매가 나를 불러서 대출 계약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같은 날 조비에게서 50억이 입금이 됐다.
‘450억에!’
내가 가진 220억 중에 이런저런 일로 10억이나 써서 남은 돈은 210억 밖에는 없다. 하여튼 그 돈을 합치면 딱 편법으로 대출을 받은 600억을 갚고 이자까지 지급할 돈이 된다.
“현재까지 3천 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많군요.”
“기존에 투자했던 투자자님들이 다시 투자를 해주셨습니다.”
이 상태라면 2주 후면 1억 달러가 만들어질 것으로 판단이 된다.
“잘된 일입니다.”
나는 이미 종합투자금융 회사를 설립하고 인가까지 받아놨다. 한 마디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있고, 어느 정도 은행 업무를 병행해야 하기에 능력이 출중한 은행직원들을 스카우트까지 해놓은 상태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됩니까?”
“오늘은 삼정생명과 보험계약 미팅이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산업수출은행 은행장님 접견이 있죠?”
“예, 그렇습니다.”
편법으로 받은 대출이지만 그 대출을 조기에 상환할 필요가 있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김 비서다.
“꼭 갚고 싶습니다.”
“예, 그러실 것 같습니다. 정말 대표님은 다른 것은 몰라도 추진력 하나는 뛰어나십니다.”
“제가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하하하! 참, 박 이사는 어떻습니까?”
“요즘 박 이사님은 삼재인 모양입니다.”
“삼재요?”
“어제는 병원에서 화장실을 가시다가 미끄러지셔서 머리가 깨졌답니다.”
“아……!”
장군님이라는 존재의 시기 질투심이 인간을 넘어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조심 좀 하지. 쯧쯧!”
“그러게 말입니다.”
“하여튼 됐습니다. 차에서 기다리십시오.”
“예, 대표님.”
* * *
아래층.
“뭐 이런 것을 다……!”
인상을 찡그리던 아랫집 주인아줌마의 표정이 급 밝아졌다.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시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면 층간소음 방지 공사도 겸해서 했기에 발소리도 안 들릴 겁니다.”
“그래요?”
“예, 며칠만 참아 주시면 바닥 공사는 끝납니다.”
“호호호, 참아야죠. 이웃사촌끼리 참아야죠.”
백화점에서 산 과일 바구니 하나가 아랫집과 우리를 이웃사촌으로 연결해 줬다.
“그런데 이 과일은 뭐데요?”
“예?”
“이거 말이에요.”
“아, 이거요. 망고라는 과일입니다. 열대과일입니다.”
“열대과일요?”
다시 표정이 밝아지는 아랫집 집주인이다.
‘보통 열대과일이라고 해봐야.’
바나나가 전부다. 그리고 아직은 바나나가 그리 싸지 않은 시절이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각하는 그룹 총수들을 소집해 백범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그룹 총수들에게 말했고 그룹 총수들은 난색을 보였다.
“어렵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각하.”
“예, 죄송합니다. 어음 거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줄여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어음 거래를 중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을 시키고 하청을 줬으면 돈을 줘야지, 무슨 쪼가리를 줍니까!”
“관행이고 여신 거래입니다. 죄송합니다. 각하, 하지만 각하의 말씀대로 점차적으로 어음 거래는 줄여 나가겠습니다.”
그룹 총수들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을 각하는 짐작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내 분명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국세청과 감사원에서 그룹의 자기 자본 비율을 점검하라고 했습니다. 빚을 줄이세요. 자기 돈 가지고 사업해야지, 왜 은행 돈 가지고 사업하려고 합니까.”
각하의 말에 바로 표정이 굳어지는 그룹 총수들이었다.
“송구합니다, 각하.”
“건실한 그룹을 만듭시다. 은행에서 돈 빌려서 누구처럼 투기하지 말고!”
롯대그룹 회장을 째려보는 각하였다.
“아니무니다.”
“아닙니다. 입니다.”
“예, 알겠스므니다.”
“거긴 한국기업이 아니라 그냥 일본기업이군.”
“아니, 아닙니다.”
“신 회장.”
“예, 각하.”
“아드님들은 한국말을 할 줄은 압니까?”
“아, 압니다.”
진땀을 뺄 수밖에 없는 롯대 회장이었다.
“됐습니다. 바쁘시니 가서 일들 보십시오.”
그렇게 살벌했던 저녁 칼국수 만찬은 끝이 났다.
‘진짜 나라가 망하려고 이러나……!’
각하께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고 자기에게 나라가 망할 수가 있다고 말한 백범을 다시 떠올렸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각하이기도 했다.
“오나, 진짜 오나……!”
집무실에 혼자 남은 각하는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 * *
백범의 윗집.
쾅쾅, 쾅쾅, 쿵쿵!
우우우웅!
위에서는 쾅쾅거리고 있고 아래에서는 대형 스피커 때문에 우웅 거리는 진동이 발바닥에 느껴져서 미칠 것 같은 여자였다.
“정말 미치겠네.”
물론 여자의 손에도 막대기가 들려 있었고 짜증을 내는 이 순간에도 아래로 찍고 있지만 백범과 은혜는 이미 호텔 생활을 시작한 후였다.
똑, 똑, 또오옥!
그때 천장에서 물방울이 여자의 이마에 떨어졌다.
“앗, 차가워!”
손으로 이마를 만졌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여자는 기겁했다.
“아……!”
정말 제대로 멍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미친놈이 가지가지 한다.”
하지만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은 이 집 여자였다. 하여튼 여자는 딱 이틀 만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 됐다. 그러니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