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81화 전쟁이 시작되다?(2)
쾅쾅, 쾅쾅!
초인종을 누를 것도 없이 요란하게 윗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직업이 의심스러운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왜요, 또?”
여자는 나를 보자마자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줌마가 제 조카에게 이랬습니까?”
아줌마라는 말에 눈에 불똥이 튀는 여자다. 원래 아줌마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아줌마다.
“예? 뭐가요?”
“뺨이요.”
“제가요? 제가 왜요?”
“아줌마가 때렸잖아요.”
“내가? 언제?”
딱 봐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여자다.
“발뺌입니까?”
“증거 있어요?”
뭐 이런 십팔 색깔 크레파스 같은 것이 다 있냐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증거 있냐고요! 별꼴이야 정말.”
“정말 이러실 겁니까? 제가 아침에도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세요?”
“정말 이러실 거냐고요?”
“아저씨는 도통 모를 소리만 하시네요. 괜히 생사람 잡지 마시고요. 저 바쁘거든요.”
“후회하실 겁니다.”
“아침부터 별꼴이야 정말.”
쾅!
바로 문을 닫아 버리는 여자다.
“이것 봐라.”
화가 치미는 순간이다.
“말이 안 통하는 여자라니까요.”
“됐다. 내려가자.”
“예, 사장님.”
“너 공부 엄청나게 잘한다면서?”
내 질문에 녀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돈이 없어서 지방에 있는 의대 갈 거라면서?”
“……예?”
“이 삼촌이 네 등록금 지원해 주면 너는 나한테 뭐 해줄래?”
“예?”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에 장학금 제도가 있거든, 서울에 있는 의대를 목표로 공부해라.”
“…….”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녀석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 가고 우리 집 주치의 해라. 어때?”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유가 궁금해?”
“예, 궁금해요. 이유 없는 적선은 없다고 엄마가 말했어요.”
“이유는 당연히 있지.”
“뭔데요?”
“네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너무 좋아. 행복해.”
나는 녀석을 보며 웃었다.
“최소한 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의대 졸업할 때까지는 우리 집에서 음식 만들어 주실 거잖아.”
“헐……!”
“뭐 그렇게 놀라?”
“부자는 정말 다르네요.”
“부자는 달라?”
“예, 다르네요. 정말.”
“부자라고 별거 없다. 맛있는 것을 마음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 부자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너는?”
“무시를 안 당하는 것이 부자라고 생각을 해요.”
“저 여자가 미쳤지?”
“……예.”
“걱정하지 마라. 이 삼촌이 저 여자 미치게 할 결심을 했다. 나랑 전쟁을 해보자네.”
“예?”
“나는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한 적이 없거든.”
정확하게 말하면 이신이었을 때 나는 그랬었다.
“하여튼 공부 열심히 해라. 오늘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고 또 이유를 알게 된 날이다. 네가 뺨을 맞아도 증거가 없어서 아무 소리도 못 해. 물론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겠지만 본 사람이 없어, CC 카메라도 없고 괜히 무고로 맞고소나 당하겠지, 그럼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사정해야겠지. 이게 현실이다.”
“예, 아저씨.”
“아줌마한테 아줌마라고 할 때 제일 기분이 잡치고 아저씨한테 아저씨라고 할 때 제일 기분이 더러운 거야.”
“그럼 뭐라고 불러요?”
“삼촌.”
“예, 삼촌.”
나를 보며 멋쩍게 웃는 녀석이다.
* * *
“설치 끝났습니다.”
나는 파출부 이모가 퇴근하자마자 에어컨 설치 업자를 불렀고 내 아파트 골방 천장에 스피커를 설치했다.
-이 스피커를 천장에 설치해 달라는 말씀입니까?
처음 에어컨 설치 기술자가 내 말을 듣고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었다.
-예, 에어컨 실외기 설치하려면 앵글 짜서 외부 벽에 부착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아무 앵글이나 가지고 오라고 하신 거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스피커를 천장에 딱 붙여서 설치하라는 겁니까?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빛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에어컨 설치 기술자에게 말했다.
“제가 살다 살다 이런 앵글을 천장에 달아보기도 처음입니다.”
물론 황당한 요구지만 에어컨 설치 기술자는 내 요구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일당 이상의 돈을 그에게 줬다.
“그러실 겁니다. 저도 살다 살다 이런 이웃은 처음이니까요.”
음향은 결국 진동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대형 스피커를 골방에 설치하고 스테레오를 튼다면 윗집은 꽝꽝 울리게 될 것이다.
“예?”
“하하하, 그런 것이 있습니다.”
“아, 예……!”
내게 대답한 에어컨 설치 기술자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이다.
‘너도 한번 당해 봐라!’
이게 끝일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돈 많은 졸부를 건드리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똑똑하게 보여줄 참이다.
그렇게 나는 대형 스피커를 천장에 바짝 붙여서 설치했고 바로 사놓은 유리 테이프를 이용해 이중 창문의 틈새를 꼼꼼히 막았다.
그리고 바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틀었다.
콰콰콰 쾅-! 콰콰콰쾅-!
골방에 쩌렁쩌렁 운명 교향곡이 울린다.
“됐다.”
귀가 아플 정도다.
그리고 나는 운명 교향곡이 무한 반복으로 울리게 스테레오를 설정해 놓고 골방에서 나왔다.
콰콰콰쾅!
크게 들리지는 않지만 제법 들리기에 나는 문에도 유리 테이프를 이용해 밀봉했다.
* * *
윗집.
우웅웅 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웅-!
갑자기 바닥에서 엄청난 진동이 울리자 도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여자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이거?”
여자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지 이거?”
발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여자였고 인상을 찡그리며 바닥에 엎드려서 귀를 댔다.
콰콰쾅-! 콰콰콰쾅-!
“운명?”
여자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씨-!”
바로 아래층의 보복이 시작됐다는 것을 감지한 여자였다. 그리고 바로 베란다에 넣어둔 골프채를 꺼내 바닥을 찍기 시작했다.
“그래, 썅, 해보자!”
제대로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 * *
내 아내 은혜는 아직 퇴근 전이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 인근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을 찾았고 여기에 오기 전에 김 비서에게 말해 아침보다 더 큰 과일 바구니를 사 오라고 지시했다.
“102동 1호 라인에 매매 매물이 있냐고요?”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내게 되물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20층짜리다. 그러니 13층부터 17층이 로열층이다. 그리고 나는 15층에 살고 그 미친 여자는 16층에 산다.
“그렇습니다.”
“있습니다.”
“얼마에 내놨습니까?”
이 아파트의 평균 시세는 3억 후반대다.
“3억 7천에 내놨습니다.”
“몇 층입니까?”
“18층입니다.”
“집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다행히 같은 동에 매매 매물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밖으로 나오자 김 비서가 부동산 사무실 앞에 아주 큰 과일 바구니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과일 바구니는 왜 또?”
아침에도 과일 바구니를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를 내렸기에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말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예?”
“이제 퇴근하십시오.”
“…….예.”
김 비서는 내게 과일 바구니를 넘기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김 비서님.”
“예, 대표님.”
“아르바이트생 몇 명 고용해 놓으세요.”
“예?”
“집에서 시킬 일이 좀 있습니다.”
“아, 예……?”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이런 지시를 내리는 눈빛을 보이는 김 비서다.
* * *
나는 지금 백화점에서 구입한 정말 큰 과일 바구니를 들고 102동 1117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천천히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잘 차려입고 왔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사람 좋게 보이는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내게 물었다.
“1115호입니다.”
“그런데요?”
“이사를 왔는데 제가 바빠서 떡도 못 돌렸습니다. 그래서 소소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받으세요.”
아주머니는 뭔가 싶은 표정으로 나를 봤다.
“누구야?”
남편도 있는 모양이다.
“아래아래 층이라네요. 이사 왔을 때 이사 떡도 못 돌렸다고 과일 바구니를 사서…….”
“이웃이 인사를 오셨으면 안으로 모셔야지.”
“예, 알았어요.”
남편 되는 분이 출입문까지 나왔고 자기 아내가 들고 있는 과일 바구니를 보고 살짝 놀란 눈빛을 보였다.
“들어오셔서 커피나 한잔하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1차 작전은 성공이다.
* * *
“이 아파트 정말 잘 지어진 아파트죠?”
나는 커피를 얻어먹고 있다.
“정말 그렇죠.”
남편 되시는 분은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탁 트인 것이 전망도 좋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경치가 좋은 아파트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십니까?”
남편 되시는 분이 내게 물었다.
“하하하, 작은 종합투자금융 회사를 준비 중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고급 아파트 축에 든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소소하게 장사를 합니다.”
“그러시군요.”
나는 남편 되시는 분을 보며 웃었다.
“제가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예?”
“이 아파트 3억 2천 주고 사셨죠?”
“예?”
내 뜬금없는 질문에 남편 되시는 분은 황당한 눈빛으로 내게 되물었다.
“바로 위층이 매매 매물로 나왔답니다. 부동산에 가서 물어보니 위층이 3억 5천에 나왔답니다. 그 집으로 이사하시죠.”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이 집 사고 싶습니다. 4억 드리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사연이 좀 있어서요. 이 집 제게 팔면서 3천 버시고요. 똑같은 아파트이니 이사만 한 번 하시면 또 5천 버시는 겁니다. 이 집 제게 파시죠.”
내 말에 남편과 아내는 멍해졌다.
“정, 정말 그 값으로 제집을 사겠다는 겁니까?”
“예, 오늘이라도 당장 계약하시면 4억 드리겠습니다.”
7천만 원이면 대기업 부장급 연봉이다.
“위층으로 이사하시기 번거로우실 겁니다. 그래도 이사를 한 번 하시면 7천 버시는 일입니다.”
“왜, 왜요?”
남편이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내게 다시 물었다.
“사연이 있습니다. 더는 묻지 마시고 제게 이 집 파시죠.”
내 말에 남편이 자기 아내를 봤다.
“뭐해, 가서 과일 좀 깎아오지 않고.”
승낙이다.
누가 본다면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영화에서 차용했다.’
나는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내 전생 때 봤었다. 본 것 그대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예, 알았어요. 호호호!”
아내는 횡재했다는 눈빛이다.
“내일 계약하고 잔금 치르고 이사까지 가능하시죠?”
“그렇게 급하십니까?”
“예, 제가 좀 급해서요.”
“1115호에 사신다면서요?”
“내부공사 중이라서요.”
“아, 그러시군요.”
“파시죠.”
“예, 팔겠습니다. 내일 계약하고 잔금까지 입금이 되는 것을 확인하면 바로 이사하겠습니다.”
거금 7천을 버는 일이다. 남편으로서는 절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일이고 한마디로 어느 미친 여자 때문에 이 집이 횡재를 하는 순간이다.
‘이래서 망나니 졸부는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내 모든 준비는 끝났다. 위아래로 제대로 한번 당해 봐라.
나는 그렇게 1117호에 가서 그 집을 사겠다고 말하고 승낙까지 받고 아파트 밖으로 나와 은혜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다.
“담배를 끊으니 입이 심심하네. 쯥!”
그때 은혜가 내 쪽으로 걸어왔고 내가 밖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며 웃어줬다.
“왜 밖에서 기다려요?”
“우리 오늘 외박합시다.”
집에 들어가면 아예 난리가 나 있을 것이다. 아마 보복 때문에 윗집에서 지랄 발광을 하고 있을 테니까.
“외박이요?”
“예, 며칠 전 잤던 호텔이 너무 좋았네요. 하하하!”
“옷이라도 챙겨 가야죠.”
“제가 챙겨 놨어요.”
“아……!”
“가요.”
“예.”
내가 부탁하면 한 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는 은혜다.
하여튼 그렇게 우린 오늘 불가피하게(?) 외박을 하게 됐고 이 외박은 위층이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나를 건드려?’
제대로 돌려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