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80화 전쟁이 시작되다?(1)
할매는 돌아갔고 이제 조비와 나 그리고 박태웅만 남았다.
“박 이사님.”
“예, 예, 대표님.”
박태웅은 여전히 조비의 미모에 넋이 나가 있다.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
나가기 싫다는 눈빛이다.
“금방 나가겠습니다.”
조비에게 군침 흘리지 말고 그냥 나가라는 눈빛을 보였고 내 강요에 박태웅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세요.”
“저기, 신녀님.”
내게는 나가겠다고 말한 박태웅은 조비에게 말을 걸었다.
‘신녀?’
조비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거짓말쟁이가 박태웅의 신녀가 되는 순간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지만!’
조비와 박태웅의 사이에는 장군님이라는 존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짐작도 못 하는 박태웅일 것이다.
“예?”
“예약하면 사주를 볼 수 있나요?”
“예약하면 가능하죠.”
“그럼 언제 예약을 잡을 수 있을까요?”
박태웅은 제대로 직진(?)을 할 모양이다.
“아, 죄송합니다.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요?”
목소리가 커지는 박태웅이다.
“제가 신빨이 떨어져서 사주와 관상을 봐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거짓말을 제대로 했으니 신빨은 당연히 떨어질 것이다.
‘800억?’
네가?
없을 것 같다. 할매에게 자신이 800억을 내놓겠다고 말할 때부터 흘리지 않던 식은땀을 다시 흘렸던 조비니까.
“아…….”
“제가 탐이 나시나요?”
조비만큼 직설적인 여자도 없을 것이다.
“예?”
딸꾹!
정곡을 찔리니 놀라 딸꾹질까지 하는 박태웅이다.
“아, 아니, 아니 그렇습니다.”
“무녀의 남편은 쉬운 삶이 아닙니다. 예쁘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저, 저는 그냥…….”
“사주나 두고 가세요.”
“예?”
“생년월일이나 적어 놓고 가시라고요.”
“아, 예……!”
박태웅은 여전히 아쉽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자기 생년월일을 적어 조비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놓고 가세요. 만나 봬서 즐거웠습니다.”
조비의 한마디에 다시 넋이 나가는 박태웅이다. 사람이 갑자기 좋아지는 이유를 찾으라면 100만 가지쯤 될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갑자기 여자가 좋아지는 이유는 100만 가지의 이유는 필요 없을 것이다.
‘예쁘기는 하지.’
그거 하나면 된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에 꼭 또 뵙겠습니다.”
박태웅은 조비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기 싫은 발걸음을 겨우 돌리고 사당에서 나갔다.
“할 말이 뭔데?”
다시 나를 백범으로 대하는 조비다.
“800억 없지?”
“내가 그 돈이 있으면 점을 치고 살겠어.”
“그런데 왜 거짓말을 했지?”
“어쩌겠어,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목숨 거는 일이지 않나?”
“이제 믿기 시작한 거야?”
“됐고, 정말 할매한테 일산 땅을 찍어 준 거야?”
“찍어서는 줬지.”
“왜 그럼 너는 왜 안 샀어?”
“너 그 말 들어 봤어?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다는 말.”
식은땀을 여전히 흘리고 있는 조비다. 나는 바로 손수건을 꺼내 조비에게 내밀었다.
“땀 좀 닦아.”
“고맙네. 신력으로 재물을 쌓으면 급살을 맞아. 그저 내가 점을 봐주는 것은 허락된 호구지책이야.”
“그런 욕심을 포기할 수 있다는 거야?”
“급살 맞아서 죽을 수는 없잖아. 하여튼 제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꼬치꼬치 캐물을 것 있나?”
“얼마 있는데?”
이게 내 본론이다.
“그게 왜 궁금해?”
“얼마쯤 있냐고?”
“한 50억쯤 있을지 모르겠네.”
“그거라도 내놔.”
“왜?”
“나를 못 믿는 거야?”
“그건 아니지.”
“몇 배로 불려줄게. 너는 나를 할매에게 귀인으로 포장을 했지만 나는 원래 그 할매에게 귀인이야.”
“지랄하신다.”
“돈 버는 것은 자신이 있거든.”
나는 조비를 보며 웃었다.
“계좌를 놓고 가.”
“우리 박 이사 어때?”
“박 이사? 아, 저분?”
“응, 어때?”
“내가 어떻게 알겠어.”
조비가 내게 말하고 박태웅이 놓고 간 사주를 봤다.
“호호호, 어쩌지……?”
조비는 웃다가 나를 봤다.
“왜?”
“상사병 걸리실 사주네.”
“너랑 안 된다는 소리야?”
“나는 인연이 따로 있어.”
갑자기 이 순간 김찬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너 설마?”
“판교로 이사하기로 했어.”
“그거 안 되는 건데!”
“사랑에는 국경이 없듯 나이도 없네요.”
20대 후반의 조비다. 그리고 김찬 할아버지는 60대 후반이다.
“미쳤구나.”
“세상은 원래 다 미친 거야.”
“그러지 말고 우리 박 이사 어때?”
내 말에 조비가 정색을 하고 나를 봤다.
“나랑 살면 저 사람 죽어.”
조비가 내게 말했고 나도 모르게 사당 위에 놓인 장군상을 봤다.
“너는 못 믿겠지만 결혼하면 저 사람 급살 맞아서 죽어.”
“정말?”
“나 용한 무당이야. 그리고 장군님께서 허락한 것만 할 수 있는 여자야.”
-배꼽을 맞췄나 보지?
순간 나는 할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백범이 아니라 저로 묻습니다.”
내 말투가 변하자 조비가 정색을 하고 나를 봤다.
“왜 그러시죠?”
“진짜 백범이 사고를 당한 것은 당신과 백범이 잠자리를 했기 때문입니까?”
궁금한 것은 확인해 봐야 한다.
교통사고를 당한 진짜 백범이다. 의식불명 상태였고 그런 상태에서 내 영혼이 이입되어 융합까지 됐다.
“으음……!”
“아닙니까?”
“말씀드릴 수 없네요.”
“그렇군요.”
꼭 말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비, 저는 접니다. 저는 백범이 아닙니다.”
“그러니까요.”
“그래도 백범처럼 살겠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됩니다. 전생의 인연을 다시 맞추는 것보다 끊어내는 것이 행복하실 겁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과 말하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제 친구 백범이 좋아요.”
“그렇게 해야겠군요.”
싫다는 것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하여튼 미친년 소리 들을 거야.”
내 말에 조비가 웃었다.
“그분이랑 며칠만 떨어져 있어.”
“왜?”
“장군님께서 괘씸해하시거든.”
조비가 의미심장하게 나왔다.
* * *
박태웅은 어쩔 수 없이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조비가 자꾸 생각이 났다.
“아……!”
남자에게 미녀는 항상 눈에 밟히는 법이다.
슈우웅
쨍그랑!
그때 건물 위에서 화분이 박태웅 바로 옆에 떨어졌다.
“와!”
순간 박태웅은 기겁해 엉덩방아를 찍었다.
“아……!”
박살이 난 화분을 보며 멍해지는 박태웅이다.
그때 백범이 건물 밖으로 나왔고 쓰러져 있는 박태웅과 그의 앞에 깨어져 있는 화분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 * *
“박 이사, 괜찮습니까?”
나는 놀랄 수밖에 없다.
-그분이랑 며칠만 떨어져 있어.
조비가 내게 해준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괜, 괜찮습니다.”
“정말 놀라신 것 같습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습니다.”
나는 박태웅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박태웅이 일어났다.
“정말 십년감수 했네요.”
“그러게요. 저게 건물 위에서 떨어졌죠?”
“예…….”
“액땜하셨네요.”
말이라도 이렇게 해주고 있는 나다.
‘며칠 휴가를 줘야겠다.’
태양종합투자금융이 사업을 개시할 때까지는 며칠 더 있어야 하니까.
“하하하, 그래야겠습니다. 가시죠, 대표님.”
“예, 그럽시다.”
내 말을 듣고 박태웅이 먼저 차 쪽으로 걸어갔고 아무렇지 않게 맨홀 뚜껑을 밟았다.
슈우웅!
“으악!”
정말 놀랍게도 박태웅이 맨홀 뚜껑을 밟자 맨홀 뚜껑이 내려앉아 버렸고 박태웅이 바로 맨홀로 빠졌다가 급히 달려든 내 손을 겨우 잡았다.
‘아, 이런 거구나……!’
미신, 무섭다.
안 믿는 사람은 안 믿으면 그만이지만 믿기 시작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믿게 되는 것이 무속신앙인 모양이다.
하여튼 박태웅은 맨홀에 빠질 뻔했다가 겨우 내 손을 잡고 몸이 낀 맨홀에서 빠져나왔지만, 발목이 부러졌다.
“으으윽……!”
통증에 신음을 토해내는 박태웅이였다.
분명한 것은 이 순간은 내게도 박태웅에게도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와 박태웅의 미래가 내가 아는 나와 박태웅의 미래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비서님.”
“구급차 불렀습니다.”
차를 태워서 병원으로 가기 찜찜했는데 김 비서가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삐뽀, 삐뽀
119구급차가 왔고 박태웅이 119구급차를 탔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은데 몇 주는 병가를 내셔야겠군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괜히 내게 미안해하는 박태웅이다.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푹 쉬세요. 결국, 나우루에 간다고 해도 5월 중순에서나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박태웅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 * *
달리는 자동차 안.
“어디로 모실까요?”
김 비서가 내게 물었다.
“피곤해서 오늘은 집에서 쉬어야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참, 지시하신 스피커는 자택에 배달시켜서 이모님이라는 분이 받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의 집에 가보니 위층이 제법 시끄럽던데 괜찮으십니까?”
“시끄러웠어요?”
아침에 과일 바구니까지 선물하며 부탁을 했는데 잠시 들린 김 비서가 시끄럽다고 할 정도면 내 부탁을 무시했다는 소리다.
“예, 그렇습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그냥 일부러 발뒤꿈치로 걷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 윗집도 애들이 셋이나 있어서 제법 시끄럽지만 어쩔 수가 없죠, 애들이야 뛰면서 크니까요.”
“제 위층은 애가 없습니다.”
“예?”
“이상한 아가씨가 있죠.”
“아……!”
* * *
집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다. 이모님의 출퇴근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이기에 파출부 이모님이 문을 열어 주셨다.
“사장님 오셨어요.”
“좀 일찍 퇴근했습니다.”
“식사 차릴까요?”
쿵쿵, 쿵쿵! 위이이잉! 쿵쿵!
위층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다.
‘이것 봐라.’
욱하는 순간이다.
“아닙니다. 제 아내가 오면 같이 먹겠습니다.”
“오늘은 더 저러네요.”
“그러게요.”
딩동, 딩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은혜인가?’
은혜는 아직 퇴근할 때가 아니다.
“제 아들일 거예요.”
“아, 아드님이 오셨군요. 그런데 오늘은 평일 아닌가요?”
쿵쿵, 쿵쿵!
위층에서는 난리다.
“학교 개교기념일이라서 학교 쉰대요. 그리고 오늘 대청소를 해야 하는 날이라서…….”
내 눈치를 보시는 이모님이다.
“괜찮습니다. 문 열어 주세요.”
대충 짐작이 된다.
‘집에 음식이 썩어나니…….’
버리기 아까워서 불렀을 것이다. 사실 먹는 음식보다 버리는 음식이 우리 집에는 더 많다. 문제로 삼으려면 충분히 삼아도 될 일이다. 하지만 문제로 삼고 싶지 않다.
철컥!
파출부 이모님은 문을 열어줬고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녀석이 들어와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너 뺨은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녀석의 뺨에는 손자국이 나 있고 저런 손자국은 뺨을 맞을 때 생긴다.
“말해.”
나는 녀석을 처음 본다. 하지만 우리 집 일을 해주시는 파출부 이모님의 아들이다.
“너무 시끄러워서 윗집에 올라갔다가…….”
말꼬리를 흐르는 녀석이다.
“그 여자한테 맞았어?”
“……예…….”
욱하는 순간이다.
쿵쿵, 쿵쿵!
딱딱딱딱! 딱딱딱딱!
끼이익, 끼이익!
그리고 더 큰 지랄이 시작됐다.
‘이거 해보자는 거지.’
전쟁이 선포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