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79화 귀인이 되다
“그 땅은 얼마의 가치가 있으실 것 같습니까?”
“판교 촌구석의 땅이군.”
“분당과 강남이 가깝죠.”
노파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세로 300억쯤 되겠군.”
“그렇습니다. 제 부친께서 얼마 전에 그쯤에 사셨습니다. 은행에 담보대출이 있습니다. 제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부친께서 200억을 농협에서 대출받았습니다.”
“그럼 사채업자로서는 80억의 가치밖에는 없군.”
“그러실 테죠. 그럼 제게 얼마나 융통해 주실 수 있습니까?”
“50억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돈이군요.”
“80억의 가치밖에 없는 땅을 가지고 와서 50억을 내가 내어주겠다는 것은 다 저것이 너를 귀인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다. 믿을 것도 없는데 또 못 믿어서는 안 되는 거거든.”
“그렇습니까? 사채업의 큰손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판교의 가치를 모르시는군요. 정보가 없으신 겁니까?”
“정보?”
나를 기가 찬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노파다.
“그렇습니다. 판교의 투자 가치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에 대한 정보가 없으십니까? 사채업계의 큰손이시면 미리 개발 정보 정도는 받지 않습니까?”
“판교가 개발된다?”
“예, 개발이 안 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5년 이내 판교의 땅은 10배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저는 판단합니다. 그렇게 되면 2700억의 가치죠. 이제 제게 얼마를 융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호호, 호호호, 이거 풋내기가 아니라 망나니구나.”
“그래 보이십니까?”
“5년 후의 이야기를 왜 지금 해? 내가 네 눈에는 핫바지로 보여?”
“투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투자?”
“예, 그렇습니다. 지금이야 300억의 가치고 농협에 대출이 있으니 말씀하신 것처럼 80억의 가치에 의해 50억밖에는 돈을 빌릴 수 없지만 5년 후에는 3000억이 될 땅입니다. 그 땅을 이용해 어르신께 1600억을 빌리고 싶습니다.”
후려칠 때는 제대로 후려쳐야 한다.
“미쳤구나.”
“사채업자로서는 제가 미친놈일 겁니다. 하지만 제가 금산을 짊어지고 올 사업가라면. 그 사업가에게 투자할 투자자시라면 다르실 겁니다.”
노파가 나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궤변은 됐다. 5년 후의 일은 5년 후에 이야기해라.”
“안 되는 거군요.”
“네놈의 그런 궤변을 듣고 돈 빌려줄 사채업자는 대한민국에 없다.”
“그럴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러실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필요한 자금이 1600억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그랬던 겁니다. 제가 왜 1600억이 필요한지는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왜 궁금해야지?”
“이 자리에 앉아계시니까요. 조비가 저를 귀인으로 포장을 했다면서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앉아계신 것 아닙니까? 온전히 믿을 것은 못 되지만 안 믿을 수도 없다고 하신 것은 조비의 덕을 꽤 보셨다는 말씀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래, 내가 덕 좀 보긴 했다.”
“일산 땅이라도 찍어 주던가요?”
“요놈 봐라, 조비와 배꼽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입을 맞춘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조비.”
나는 조비를 불렀다.
“왜 그러시죠?”
“식은땀은 왜 흘렸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괜한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는다지? 내가 당신이랑 입을 맞췄다고 하시는데 그런가?”
“할매 그런 적 없어요.”
“그럼 배꼽이라도 맞췄나 보지.”
피식 웃는 할매다.
‘그런데!’
조비가 그 말에 대답이 없기에 나도 모르게 살짝 인상이 찡그려졌다.
“할매라고 불리시네요. 조비가 대답을 하고 식은땀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입을 맞춘 것은 아닌 겁니다. 일산 땅으로 몇 배나 불리셨으니 판교 땅으로 더 불리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좋다. 왜 그 엄청난 돈이 필요하지?”
1600억이면 달러로 환산하면 2억 달러다.
“2억 달러가 필요합니다. 제가 할매에게 1600억을 융통하면 저는 그중 600억으로 산업수출은행의 대출을 조기에 상환하고자 합니다.”
내 말에 노파는 기가 찬다는 눈빛을 보였다.
“은행 대출을 조기에 상환하려고 사채를 쓴다고? 이 녀석이 집안을 거덜 낼 놈이구나.”
“그렇게 보이십니까? 계속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할매.”
나는 사채업의 큰손에 대한 호칭을 어르신에서 할매로 바꿨다.
‘할매, 정감 있군.’
조비와 연결된 저 할매와 나는 친하게 지내볼 참이다.
“또 할매란다. 우리 여기에 친목하려고 왔어?”
“그건 아니죠. 계속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할매, 혹시 나우루공화국이라는 나라를 들어는 보셨습니까?”
“갑자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어?”
“중요합니다. 새똥으로 흥한 나라입니다.”
“새똥?”
할매는 이제 나를 뭐 이런 것이 다 있냐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
“예, 인광석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태평양에 있는 섬나라입니다.”
“새똥이든 개똥이든 그 나라가 왜?”
“나우루공화국에서 국부 펀드 조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0억 달러 규모입니다. 그 펀드 관리 사업자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최소 1억 달러의 자금이 예치되어야 하고 어느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합니다.”
“100억 달러?”
100억 달러면 8조다.
“예,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100억 달러 규모의 펀드 사업자로 지정이 되어도 100억 달러를 다 운영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딱 10억 달러만 관리하는 펀드 관리자가 될까 합니다. 그래서 1600억이 필요합니다.”
호기심과 탐욕이 동시에 할매의 눈동자에 깃드는 순간이다.
“요놈 봐라~”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귀인이 아니라 액운을 짊어지고 온 놈이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는데 내가 욕심이 생기고 있으니까.”
“제 말을 반쯤은 믿으신다는 거군요.”
“믿을 것도 없지만 못 믿을 것도 없지.”
조비를 힐끗 보고 내게 말하는 할매다.
“박 이사.”
“예, 대표님.”
“준비된 서류.”
나우루공화국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 자료를 준비했을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나는 박태웅 이사에게 나우루공화국 관련 서류를 받아 할매께 넘겼다.
“보시죠. 보고 말씀하시죠.”
* * *
한 시간쯤 지났다. 할매는 꼼꼼히 서류를 살핀 후에 나를 봤다.
“이거 진짜야?”
“가짜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가짜야?”
나를 보며 일상을 찡그리는 할매다.
“진짜입니다. 가짜라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준비를 하면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투자를 받을 수 있겠죠?”
“그래서 내게 투자를 받아서 나우루공화국인가 나발인가한테 가서 펀드 사업자로 선정이 되겠다고?”
“그전에 성과를 내야죠.”
“무슨 성과?”
“서류에 적혀 있지 않습니까? 태국 밧트화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의 채권이 급락하고 있습니다. 그 채권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투자할 겁니다.”
“으음……!”
“이제는 제가 금산을 짊어지고 온 귀인으로 보이십니까?”
“사기꾼으로 보인다.”
돈 빌려줄 사람이 빌려주기 싫다면 말짱 꽝인 것이다.
“평안 감사도 자기 싫으면 그만이죠.”
할매에게 돈을 융통하지 못하면 텔레마케팅으로 투자금을 확보하면 된다. 물론 최대 2~3달은 걸릴 것이다.
“그렇지, 평안 감사도 자기 싫으면 그만이지. 비야.”
“예, 할매.”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제가 800억을 내놓겠습니다.”
순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조비가 다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네가?”
“예, 급살 맞아서 죽을 뻔하고 모은 그 돈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조비도 일산의 땅을 산 것이다.
“호호호, 너 이러다가 내일 눈은 뜨겠니?”
“모르죠. 할매도 800억을 내놓으세요.”
“조비, 네게는 저 망나니가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는 거구나.”
그저 놀랍다. 조비가 800억을 가진 졸부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그 돈을 내게 투자하겠다는 것에 또 놀랐다.
‘돈이 있었으면 그냥 빌려주지…….’
괜한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고 지금 내가 놀란 만큼 박태웅도 놀란 눈빛으로 조비를 다시 봤다.
“제가 본 점괘에는 금산을 짊어진 장군이니까요.”
“미신을 믿어라.”
“사당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천벌을 받으신다는 것을 모르세요?”
“안다. 장군님도 염치가 있으면 내가 차려 드린 상을 받아드시고 모른 척은 못 하시겠지. 사람이나 귀신이나 받아먹은 것이 있으면 성질 죽이는 법이니까. 호호호!”
“할매!”
“그렇다고.”
할매는 조비에게 말하고 나를 봤다.
“내 몫이 800억이다. 그럼 너는 언제 내게 얼마를 만들어 줄 거지?”
“1년 이내에 1600억으로 불려 드리겠습니다. 됐습니까?”
“자신만만하구나.”
“예, 완벽한 준비가 됐고 돈을 벌 방법을 알고 있는데 못 벌 것은 없죠.”
“쯧쯧, 내가 저런 천둥벌거숭이를 믿어야 한단 말이지? 내가 오늘 노망이 들었구나.”
“감사합니다.”
“됐고, 너를 어떻게 다 믿어, 내가 내놓을 돈은 200억이다. 150억 손해 본다고 치자.”
아버지의 땅을 담보로 잡겠다는 소리다.
“네 말대로라면 네가 쫄딱 망해도 5년 후라면 이 땅문서가 내게 횡재를 안겨주겠지.”
“그렇다면 200억을 더 내놓으시죠.”
“뭐라고?”
내 말에 할매가 황당한 눈빛을 보였다.
“농협 대출 갚고 할매가 근저당을 다시 설정하시죠.”
“호호호, 정말 미친놈이구나.”
“곧 미친 세상이 올 겁니다. 저는 그 미친 세상에 투자합니다. 하지만 미친 세상이 와도 나쁜 짓 하지 말고 돈만 벌 겁니다.”
“그게 돼?”
“지금까지는 안 됐던 것을 저는 되게 만들 겁니다. 제가 백범입니다. 백범.”
내 말에 할매가 나를 빤히 봤다.
“좋다. 400억을 네놈에게 내놓으마.”
“감사합니다.”
“내가 귀신에게 홀려서 네놈 따위가 한 말을 믿고 5년 장기 투자를 하게 됐구나.”
할매는 내 투자 계획을 온전히 믿는 눈빛은 아니다. 하지만 사채업자답게 판교 땅의 가치에 투자하려는 것 같다.
“이자는 얼마입니까?”
지금 현재는 투자가 아니라 사채를 빌리는 것이다.
“60%다.”
숨이 턱하고 막히는 이자율이다. 그리고 할매의 말을 듣고 박태웅도 인상을 찡그렸다.
‘이래서 사채가 무섭지.’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그래도 일부분이지만 투자를 했으니 20%로 해주마. 그 대신에 네가 말한 것처럼 1년 안에 두 배의 수익을 올려 준다면 그 이자도 받지 않으마.”
“제대로 선심을 쓰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어디를 가봐라, 나 같이 늙은 호구가 있는지.”
“호구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내가 오늘 낮도깨비에게 홀렸다.”
“그리 홀리신 분이 챙길 것은 다 챙기시고 대비까지 하시네요.”
“손해는 볼 수 없잖아.”
“예, 그렇습니다. 저도 제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쳐 드리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습니다.”
“네가 말한 그대로 되는지 한번 보자.”
“할매.”
“또 왜?”
“제가 며칠 안에 종합투자금융사를 설립하려고 합니다. 저랑 같이 사업 한번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내 말에 다시 멍해지는 할매다.
“안 되겠다.”
“예?”
“내가 여기 더 앉아 있다가는 깝질째 벗기겠다.”
할매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계좌.”
할매의 말에 바로 안도하는 순간이다.
“여기 있습니다.”
할매는 내가 내민 통장 사본을 받은 후 조비를 봤다.
“내일 또 오마.”
“예?”
조비가 되물었다.
“네년이 급살을 맞았는지 안 맞고 살아 있는지 확인한 후에 입금해야겠다.”
할매의 말에 조비가 인상을 찡그렸다.
“예, 할매.”
할매는 제대로 민간신앙을 믿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조비는 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어 사당에 모셔진 장군상을 뚫어지게 봤다.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조비에게 급살을 내릴 거면 저도 같이 죽이십시오.’
속으로 그렇게 말했고 기분 탓인지 장군상이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것 같다.
‘미신의 덕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군.’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순간이다. 하지만 내가 할매에게 내민 투자 설명서가 주요했고 판교의 땅이 내가 말한 미래 가치가 충분했기에 할매가 내게 돈을 빌려주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