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78화 (78/415)

# 78

78화 귀인으로 포장되다?(2)

조비의 점집.

조비는 지그시 눈을 감고 점괘를 확인하고 있었고 그녀의 앞에는 카랑카랑한 눈빛을 가진 노파가 조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수라발발타……!”

조비가 주문 비슷한 것을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아수라발발타는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주문이다. 그 기원은 아수라에서 나왔고 무속신앙의 주문이었는데 훗날 어느 영화감독이 영화의 대사로 썼다.

아수라발발타?

지금 조비가 외우고 있는 이 주문은 아마도 백범을 위한 주문일 것이다.

“점괘가 나왔어?”

“금산을 등에 짊어지고 올 상생의 귀인이 할매께 곧 저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올 겁니다.”

조비의 말에 노파는 피식 웃었다.

“그 귀인을 네가 소개해 주는 거지?”

“제가 아니라 장군님께서 소개해 드리는 겁니다.”

“말이 그렇게 되는 거냐?”

“예, 그렇습니다. 윽!”

순간 조비는 폐부를 찌르는 이유 없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내야 했다.

[내가 준 힘을 헛되게 쓰면 살을 맞게 될 것이다.]

조비는 이 순간 신내림을 받을 때 신령인 장군님의 혼이 자기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왜 그래?”

“아니네요. 아무것도……!”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러.”

“괘를 불 때면 이럽니다.”

“정말 금산을 짊어지고 오는 귀인이야?”

“만나보시죠. 분명한 것은 할매와 상생의 사주입니다.”

“비야, 너 요즘 이상해.”

노파가 요상한 눈빛으로 조비에게 말했다.

“예?”

“너랑 나랑 알고 지낸 지 10년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이런 적이 없었어.”

“할매와 상생의 사주를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애인 생겼냐?”

이상한 눈빛으로 다시 묻는 노파였다.

“할매 괜한 말씀 마시고요.”

“괜한 짓에 명을 재촉하지 말라는 소리다. 내가 너랑 알고 지내도 장군님 핑계를 대고 나를 속이면, 조비 너라도 용서 없단 소리다.”

“일단 만나 보시죠.”

“그래, 그러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만나기는 해야지, 이것으로 빚은 갚은 것이야.”

“예, 물론이죠.”

“내 손녀를 대신해서 네가 무당이 됐던 그 빚은 갚았다.”

“예, 할매.”

“금산을 짊어지고 올 귀인이라? 호호호!”

이렇게 백범은 귀인으로 포장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조비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 * *

백범의 사업체 사장실.

“기존에 달러로 투자를 했을 때 40%의 이자율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20%라고 홍보하면 투자자들이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까요?”

황 부장이 내게 말했다.

“그럴 겁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원래 사람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기존대로 40%를 지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입니다. 기존 종합금융투자 회사가 8~10%의 이자율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식 투자나 채권 투자는 12~15%를 지급하고 있고요. 우리 태양은 그보다 2배를 지급하는 겁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장사꾼은 십 원을 보고 천 리를 간다고 했습니다. 서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1%도 이자율을 더 주는 곳에 돈을 신탁할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말에 황 부장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현재 예금자 보호법이 실행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1 금융에 적금을 넣어도 그것은 안정적인 투자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하여튼 예금자 보호법은 금융기관이 영업 정지나 파산하는 때를 대비하기 위해 국가나 공공기관이 예금 일부를 보험료로 적립 또는 예치하는 보험인데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그 어떤 곳에 돈을 맡겨도 100% 안전하지 않다는 소리다. 물론 그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없다.

은행이 망하겠어?

그런 생각으로 적금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은행도 망한다.

대한민국은 은행들이 망할 뻔했고 실제로 미국은 은행이 훗날 파산하게 된다.

“우린 투자자들의 원금을 100% 보호해 줄 겁니다.”

“그,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보험회사와 예금자 보호에 대한 보험을 계약할 생각입니다.”

이제부터는 재계의 망나니가 되어 볼 참이다.

내가 생각하는 망나니의 의미는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내가 먼저 하는 것이다.

“아……!”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할 겁니다. 보험은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이고 태양종합금융투자 회사가 투자받는 모든 투자금에 대해 보험에 가입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 위험부담은 회사가 50% 그리고 투자자가 부담하게 될 겁니다.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박태웅 이사.”

“획기적인 투자 유도 방법인 것 같습니다.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면 더욱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렇죠.”

“하지만 비용이 많이 발생할 겁니다.”

“좀 덜 벌면 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임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박태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홍보하십시오. 100% 원금 보장이 될 거라고 홍보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20%의 이자율이라도 서민들이 투자할 겁니다. 분명한 것은 서민들의 돈은 그들의 땀과 피눈물로 모아진 그들의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들의 인생을 제가 망가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김 비서님.”

“예, 대표님.”

“대형 보험회사와 보험 계약 미팅을 잡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태양종합금융투자는 최소 5000만 원까지 투자금을 보호하는 보험에 가입할 겁니다.”

나는 나를 믿고 투자하는 서민들의 5000만 원까지는 보호해 줄 결심을 했다.

“이것으로 회의를 끝내죠, 제가 선약이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박태웅 이사.”

“예, 대표님.”

“오늘은 야근입니다. 저랑 같이 가시죠.”

“예, 알겠습니다.”

내가 어떤 목적으로 선약을 잡았는지에 대해 짐작하는 눈빛이다.

“갑시다.”

* * *

달리는 자동차 안.

“박 이사.”

“예, 대표님.”

“아프리카나 태평양이 작은 섬나라는 독재국가가 많겠죠?”

“그렇습니다.”

“부정부패도 엄청날 거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내게 나우루공화국을 소개한 겁니까?”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들이 만약 리베이트를 요구한다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박 이사의 도덕책에는 이중 잣대가 존재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항상 박 이사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군요.”

“나우루공화국 대통령과 재정 장관에게 수익으로 증명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수익으로 증명해도 국가의 재정이 튼튼해지는 것이지 권력자의 금고가 쌓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요?”

“예, 나우루공화국에서 만들어질 국부 펀드의 30%는 나우루 대통령과 재정 장관이 부정 축재해 놓은 비밀자금입니다.”

“아, 그렇군요.”

“확실한 수익이 보장된다면 그들이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요구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우루공화국은 말씀을 드린 것처럼 절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새똥이 야금야금 사라지고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아마도 몇 년 안에 인광석 채굴이 급격하게 줄어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집권을 위해 나우루 대통령과 재정 장관은 다른 방법을 찾게 될 겁니다.”

다른 방법이라고 말하는 박태웅 이사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찾게 될 다른 방법에 대해서 짐작이 된다.

‘조세 회피처와……!’

범죄자들의 피신처를 제공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와 함께 마구잡이로 외국인들에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돈만 내놓으면 말이다.

그리고 나우루공화국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은 그 국적을 이용해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겠군요.”

“현재 대표님에게 투자해 줄 가능성이 있는 외국 자본은 나우루공화국밖에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대표님은 아무런 성과도 보이신 적이 없으니까요. 모든 것은 숫자로 결론이 납니다.”

맞는 말이다.

‘정부 지급 보증서만 있었어도!’

쉽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법을 걷어찼다. 그러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대표님.”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겁니까?”

“사채업자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정말 대표님 집안을 거덜 내실 생각입니까?”

사채를 잘못 쓰면 패가망신이라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제 아버지께서는 돈이 그렇게 중한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죄송한 일이기는 합니다. 사채를 빌려서 편법 대출을 받고 돌파구를 모색할 생각입니다.”

아직 1997년 3월이다.

‘내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되도록 합법적으로 죄짓지 말고 돈을 벌 생각이다.

* * *

청담동에 있는 조비의 점집.

“백범이라고 합니다.”

나는 조비의 점집으로 왔고 이미 조비에게서 나를 소개받은 사채업의 큰손으로 추측되는 노파가 앉아 있었고 조비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박태웅이 조비를 보고 넋이 나간 눈빛을 보이고 있다.

‘그림의 떡이다.’

남자의 마음이 다 이렇다.

경국지색에 가까운 미녀를 보면 넋이 나가는 법이다.

“금산은 어디에 지고 왔어?”

“예?”

“조비 저것이 장군님을 팔아서 너를 금산을 짊어지고 오는 귀인이라고 포장을 해서 묻는 것이야!”

노파의 말에 나는 조비를 봤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무속인이 신령을 팔아 거짓말을 하면 그만큼의 벌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 조비는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연에 대한 보답이군.’

조비에게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순간이다.

“제가 등에 금산을 지고 있으면 제 친구가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고 어르신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래?”

“그 대신에 금산을 지금부터 쌓아 올려 볼까 생각 중입니다.”

나는 노파에게 말하고 조비를 봤다.

“휴우……!”

그 순간 조비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마에 흐르던 식은땀도 멈춘 것 같다.

‘조비의 거짓말을 내가 희석했군.’

물론 나는 무속신앙을 온전히 믿지는 않지만, 장군님이라는 존재의 화가 사그라진 것 같다.

내 입으로 진실을 말했으니까.

하여튼 조비는 나를 위해 나를 귀인으로 포장한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법이면 어르신께서 만족하시겠습니까? 사채라는 것은 결국 지하경제이고 떳떳하지 못한 돈이지 않습니까?”

“풋내기군. 쯧쯧.”

“그리 보이십니까?”

“돈에는!”

“얼굴이 없죠.”

나는 노파를 뚫어지게 봤다.

“오호~”

“그렇습니다. 돈에는 얼굴이 없습니다. 돈을 쓰는 사람에 따라 그 얼굴이 달라지죠. 하지만 금융실명제가 자리 잡고 있는 이 상황에서 지금까지 탈세한 자금만 해도 엄청나실 겁니다. 그러니 어르신의 돈을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끌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하면 세금 폭탄을 맞아.”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으신 것에 대한 죗값이죠.”

“요놈 봐라~”

“예, 요놈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이 그리고 앞으로 기회가 참 좋습니다.”

“어떤 기회?”

“제게 돈을 빌려주실 마음은 있으십니까? 아니죠, 돈을 빌려주시는 것은 마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죠.”

나는 서류 가방에서 아버지의 땅문서들을 꺼내 노파에게 내밀었다.

“사채는 담보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 문서들을 담보로 잡히면 얼마나 돈을 빌릴 수 있습니까?”

일차적인 목표는 사채를 빌리러 왔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투자를 받고자 한다.

“손님이시네, 호호호!”

내가 내놓은 아버지의 땅문서를 보고 웃어 보이는 노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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