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76화 (76/415)

# 76

76화 아우님, 성질 좀 죽이세요(2)

딩동, 딩동!

여섯 번째로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나는 묵직한 과일 바구니를 손에 들고 초인종을 눌렀고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잠이 덜 깬 눈빛으로 귀찮다는 듯 문을 열었다.

“왜 자꾸 초인종을 누르세요?”

짜증스러운 말투로 퉁퉁거리는 여자다.

‘이 집 딸인가?’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내 촉은 다른 것을 더 떠올리게 했다.

“아래층입니다. 이것부터 받으세요.”

나는 젊은 여자에게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뭔데요?”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왜요?”

“밤에 조금만 조용히 걸어주시면 안 될까요? 잠을 자려는데 위층에서 쿵쿵거려서…….”

“예, 알았고요.”

대답은 알겠다고 했는데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이것 봐라!’

촉이 움직이고 있다.

“하여튼 알았고요. 아침부터 초인종을 그렇게 누르시는 것도 실례라는 거 아시죠?”

“예, 죄송합니다.”

우선은 성질을 죽일 참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요즘 과일 못 먹고 사는 사람 있나.”

과일 바구니를 들고 혼잣말로 나 들으라는 듯 말하고 쌩하니 문을 닫아 버리는 젊은 여자다.

‘느낌 안 좋아……!’

괜히 위층과 전쟁이 시작될 것 같다. 물론 이건 내 생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 * *

태양기업 사무실로 향하는 자동차 안.

“김 비서님.”

“예, 대표님.”

“음악 좋아하세요?”

“저는 별로입니다.”

“제가 음악 감상을 좋아하게 생겼네요.”

“예?”

“성능 좋은 스피커 좀 구입해 주십시오.”

“예, 회사에 모셔다드리고 바로 구입해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표님.”

“예, 김 비서님.”

“이제 어쩌실 겁니까?”

김 비서는 태양기업 창업 구성원이라면 창업 구성원이다.

“회의를 해봐야죠. 그래도 크게 걱정하실 것 없으십니다.”

“저야 대표님을 믿습니다.”

사실 김 비서로서는 내가 못 미더워도 상관없다. 이미 3년 치 연봉을 일시금으로 지급한 상태니까.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모양이군요.”

“태양기업은 폐업 상태이지 않습니까?”

태양기업은 어제 폐업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원들은 30명을 유지하고 있고 그중 25명은 텔레마케팅 전화 상담원이니까.

“심심해하는 모양이군요.”

“아,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또 그렇습니다. 그제부터 출근해도 할 일이 없으니까요.”

“제가 출근하면 할 일을 만들어 드릴 겁니다.”

“혹시 인원 감축을 생각하십니까?”

“그럴 생각 없습니다. 태양기업은 태양종합투자금융으로 전환할 겁니다. 인원 감축이 아니라 은행이나 다른 종합투자금융에서 스카우트해야 할 판입니다.”

“아……!”

김 비서는 탄성을 터트렸지만, 도대체 내가 왜 이런 행보를 걷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참, 쑥도 좀 구입해 주세요.”

“쑥은 왜요?”

“아파트가 너무 꿉꿉합니다.”

“그 좋은 아파트가요?”

“그러게요.”

내 촉은 윗집과의 전쟁(?)을 떠올렸다. 그러니 혹시 모를 준비는 해놔야겠다.

‘싹수도 없어.’

내가 과일 바구니까지 사 들고 가서 부탁했는데 자기 잘못한 것은 모르고 짜증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아침 9시 30분이 이른 아침이야?’

그 여자 도대체 뭐 하는 여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대표님께서 쑥을 태우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촌놈입니다.”

“서울 토박이잖습니까.”

“하하하, 그렇죠.”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이신의 기억이 촌놈의 기억이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조비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딸깍!

-여보세요. 태양기업 백범입니다.

-너 사업 접었더라.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네, 사람 써?”

-그걸 농담이라고 하니?

“왜 전화했어?”

-몰라서 묻니? 오늘 저녁 시간 어때? 오늘밖에는 시간이 없으시다네.

“당연히 되지.”

-다섯 시에 우리 집으로 와.

“그분께서 점을 보러 오신데?”

-눈치 하나는 빠르네. 겸사겸사 오신데.

“고맙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니, 쯧쯧.

“나도 점 볼 것이 있는데 예약되지?”

-공짜는 없어.

“물론이지.”

-끊어.

뚝!

조비가 나를 위해 사채업 큰손과 만남을 주선해 줬고 결국 내 뜻대로 진행이 되고 있다.

‘사채로 불법 대출부터 갚자.’

그런 후에 태양종합투자금융으로 전환할 참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조용할까?’

내 예상으로는 최소한 오늘이나 내일쯤엔 국세청 세무조사를 나와야 하는데 11시가 되도록 아무런 전화도 보고도 없다.

‘오후에 들이닥치려고 그러나?’

어제 본 경제수석의 눈깔은 절대 그냥 있지 않겠다는 눈깔이었다.

* * *

청와대 경제수석의 사무실.

-접으라고요?

국세청 직원인 경제수석의 동문 후배가 되물었다.

“접어, 대선 직전인데 망나니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을 것 같네.”

-딱 출발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화했잖아. 내가 곧 여의도에 입성할 것 같다. 괜히 일을 만들기 싫어지네.”

-정말입니까? 축하드립니다.

“하여튼 우선은 그냥 놔둬. 사업을 이제 막 시작했으니 털어도 별로 털릴 것도 없을 테니까 먼지가 좀 쌓이면 털어야겠어.

분명한 것은 경제수석은 앙갚음을 포기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검사 후배에게도 똑같이 전화해서 어제 내린 지시를 번복했다.

-예, 알겠습니다.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다.

“끊자고.”

-예, 선배님.”

뚝!

전화를 끊고 노크가 들린 문 쪽을 봤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자마자 경제수석은 한없이 인자한 눈빛으로 변했다.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하하하, 알았어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제수석이었다.

* * *

청와대 집무실.

“내일쯤에 전경련 총수 몇 분 모시고 칼국수 한 그릇 할 건데 수석 니는 어떻게 생각을 하노?”

“내일 말씀입니까?”

“내일. 부르면 오겠제?”

“당연히 오죠. 그런데 왜 갑자기 총수들을 호출하시는 겁니까?”

“그룹 총수들을 내가 안 본 지도 오래됐다.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있고 마무리를 할 것도 많고.”

각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경제수석이다.

“수석.”

각하가 덤덤한 눈빛으로 경제수석을 무심히 불렀다.

“예, 각하.”

“니는 대한민국 갱제가 지금 어떤 상태라고 생각을 하노?”

청와대 경제수석의 주된 임무는 경제 동향 파악과 재벌총수와의 협력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정보와 첩보를 분석해서 정확한 현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

“오늘 내가 두 시에 데이트라는 라디오를 들으니까, 임금 체납이 많다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될 부분입니다. 일부 부실기업이 노동자의 임금을 체납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경제는 원활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경제 주요 전문가들이 올해 대한민국 국가성장률이 7%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금융 실명제를 통해 지하 자금을 양성화한 각하의 공적이십니다.”

경제수석은 결국 마지막을 아부로 마무리했다.

“그래?”

“예, 그렇습니다. 수출이 근소하게 감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 달러 환율이 안정적이기에 발생하는 단기적인 문제입니다. 크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래, 알았다.”

“예, 각하.”

“수석.”

“예, 각하.”

“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니는 깨끗하제?”

“예?”

“아들 관리도 못 한 내가 측근 관리도 못 하면 얼굴에 두 번 똥칠하는 기다.”

“하하하, 각하, 저는 눈처럼 깨끗합니다.”

“내가 요즘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을 봐도 놀란다. 괜히 의심해서 미안타.”

“아닙니다. 각하, 얼마나 근심이 많으십니까.”

“알았다. 나가봐라.”

“예, 각하.”

경제수석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나갔다.

-대한민국은 국가 부도 위기까지 몰리게 될 겁니다. 경제 체질의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통령은 백범에 자기한테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 녀석은 망한다고 하고……. 저 녀석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고, 쯧쯧!’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고 조심히 문이 열렸고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민정수석이었다.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최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이었다.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민정수석이 90도로 각하에게 인사했다.

“지금이 유신이가 5공이가, 부르심은 무슨 얼어 죽을 부르심.”

“죄송합니다. 각하.”

“가까이 온나.”

“예, 각하.”

민정수석이 가까이 다가왔다.

“더 가까이.”

“예?”

“니랑 내랑만 알아야 하는 이야기 좀 하자.”

각하의 말에 민정수석이 각하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내는 니만 믿는다.”

“감사합니다. 각하.”

“경제수석 좀 살펴봐라.”

“예?”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제?”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이는 각하였다.

“예, 각하.”

“사람은 배신을 하지 않는데 돈이 배신한다. 내 아들놈 그리되고 의심이 늘었다.”

각하는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살피고자 했다. 이것은 백범이 만들어낸 하나의 변화가 분명했다.

“예, 당연하실 말씀이십니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예, 각하.”

* * *

태양기업 사장실.

태양기업 핵심 구성원들이 모두 모였다. 물론 그래 봐야 나를 중심으로 창립 구성원인 김 비서 그리고 황 부장과 마지막으로 중역으로 입사한 박태웅이 전부다.

“편법적인 대출을 조기 상환할 생각입니다.”

내 통보에 또 한 번 임원들이 넋이 나가는 순간이다. 물론 박태웅은 이미 알고 있기에 그저 담담했다.

“현재 보유한 현금이 없습니다.”

기업 재정을 담당하고 투자 분야를 담당했던 황 부장이 내게 말했다.

“돈을 빌려서 갚을 겁니다.”

“대표님, 말씀은 그렇게 쉽게 하시지만, 어디서요?”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버지께 가서 땅문서 받아왔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사채를 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황 부장은 내게 말은 공손히 하고 있지만, 회사를 거덜 내고 집안까지 말아먹을 망나니라는 눈빛이다.

“그럴 참입니다.”

“사채 이자는 엄청납니다.”

“어쩔 수가 없게 됐습니다.”

아마 저들에게 내가 어제 청와대에서 미친 짓을 하고 왔다는 것을 말해주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황 부장은 아마 겁을 먹고 바로 퇴사를 결심할 수도 있다.

“아……!”

“우선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종합투자금융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합시다.”

“대표님, 제가 드린 보고서는 읽어보셨습니까?”

아무 말도 없던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바빠서 못 읽어봤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핵심만 말해주십시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다.

-다섯 시에 와.

조비는 다섯 시에 오라고 했다.

“제가 드린 보고서에는 크게 두 가지로 투자를 할 곳에 대한 방향성과 태양종합투자금융이 투자를 받을 국가에 대해 정리해 놨습니다.”

“국가요?”

기업이나 개인도 아니고 박태웅은 국가란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한테 돈을 빌려줄 나라가 있을까요?”

박태웅의 말에 기가 찰 뿐이다.

“있습니다.”

”그게 어딥니까?”

우리에게 투자해 줄 나라가 있다면 이보다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