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75화 (75/415)

# 75

75화 아우님, 성질 좀 죽이세요(1)

성북동 고택.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신의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이신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황당한 일을 많이 당하셨다고?”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 이 실장에게 보고를 받으셨듯 괘씸한 놈입니다. 어르신께서 신경 쓰시지 않도록 제 선에서 처리 중입니다.”

“경제수석의 선에서?”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

한없이 공손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수석.”

“예, 어르신.”

“대선 직전입니다.”

“아, 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석께서는 큰일 하실 사람인데 구설에 오르면 되겠습니까?”

“예?”

되묻고 있지만, 경제수석의 눈동자는 욕망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우리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맙시다. 망나니라면서요? 내 모처럼 크게 웃었습니다. 뇌물을 주고 그것을 증여 신고 하는 천둥벌거숭이를 보다니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기는 합니다. 하하하!”

이신이 웃으니 경제수석도 따라 웃었다.

“여당 의원이나 야당 의원이나 결국은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합니다. 톱니바퀴가 닳고 빠지면 교체하면 그만입니다. 수석께서는 큰일을 하셔야죠. 괜히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 아닙니다.”

이신은 지금 경제수석의 심장이 뛸 수밖에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 같이 큰일 해 봅시다. 앞으로 5년 후의 일은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아……!”

“대선은 5년마다 있습니다. 총선은 4년마다 밥 먹듯 하고요.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수석께서는 이제 선출직에 나가실 때입니다.”

“선출직이라고 하셨습니까?”

놀랄 수밖에 없는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예, 그래요. 누가 뭐라고 해도 임명직보다는 선출직이 훗날을 준비하기 좋지 않겠습니까?”

사실 여당 대표는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경제부총리를 약속했었다.

-보는 눈이 있으니까, 2년 후에 경제부총리가 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청와대 심기 파악 잘 부탁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신은 자신에게 국회의원의 길을 열어주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이신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훗날의 준비? 으흐흐!’

경제수석은 온갖 탐욕과 야망이 꿈틀거렸다.

“제 생각이 어떻습니까?”

“따르겠습니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허리를 숙여 납작 엎드리는 경제수석이었다.

“하하하, 내가 낙점하고 국회의원 안 되기도 어렵습니다. 하하하!”

“예, 감사합니다.”

“국회의원이 되시면 미래를 위해 스타가 되셔야 합니다.”

“예?”

“국민적 스타가 되셔야 미래가 밝지 않겠습니까?”

“아……!”

“제 말씀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사소한 일은 그냥 웃어넘깁시다. 지금은 대선 직전이고 괜한 문제를 만들면 안 좋습니다. 큰 그림을 그려야죠. 망나니 하나 버릇을 고친다고 구설에 휘말리실 것 없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렇게 이신은 백범을 보호해 줬다. 분명한 것은 백범은 인복 하나는 타고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백범 조부의 후광 아닌 후광이지만 말이다.

‘녀석, 괘씸하지만 마음에 드는군. 하하하!’

경제수석을 보며 백범을 떠올리는 이신이었다.

“이만 돌아가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경제수석은 다시 한번 납작 엎드려서 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지도 못하고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서 나갔다.

“대부님.”

이 실장은 경제수석이 밖으로 나가자 이신을 불렀다.

“왜, 내가 저것을 쓸 것 같아 그러는 거냐? ”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탐욕스럽지, 탐욕에 빠진 놈은 어리석어지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으흐흐, 내일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출마를 권유했지, 당선을 약속한 적은 없다.”

“예, 알겠습니다.”

“준비해 놓은 것이 많지?”

“예, 그렇습니다.”

“네가 때가 됐다고 생각을 하면 그때 공개해라.”

“예, 알겠습니다.”

지금 이신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딱 하나일 것이다.

흑막!

이신은 그런 존재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흑막이 망나니처럼 행동하고 있는 백범을 비호하고 있다.

* * *

백범의 침실.

우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잠을 잔다. 그리고 항상 내 아내 은혜는 내 팔을 베개 삼아 잠이 든다.

‘그래서!’

팔에 쥐가 나서 침을 코에 찍어 바를 때가 많다.

드르릉, 드르릉!

오늘 은혜는 코를 골고 있다. 나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과 연수생 수업 때문에 그리고 아기를 만들자는 목표 때문에 곤할 것이다.

“코를 고는 모습까지 예쁘네.”

살짝 은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은혜를 봤다. 그녀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저 변호사 사무실 개업하는 것은 어떨까요?

은혜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백영기 변호사에게 전화를 받은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은혜에게서 내 팔을 빼고 베개를 베어줬다.

‘깨지 말아야 할 건데?’

쿵쾅, 쾅쾅, 쾅쾅!

그때 위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가 잠든 은혜를 봤다.

‘이런 십장생 같은 새끼가?”

벌써 자정이다.

그런데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저녁부터 쾅쾅거렸다.

‘층간 소음 제대로군.’

쿵쿵, 삐걱, 삐걱!

또 들렸다.

위이이잉!

그때 청소기인지 헤어드라이어인지 분간되지 않는 요란한 소리도 들렸다.

‘미쳤구나!’

욱한다. 하지만 은혜는 다행히 깨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참아줄 참이다. 자정에 찾아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여튼 나는 침실에서 나와 베란다로 왔고 휴대전화로 백영기 변호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무십니까?]

이 시간에 이런 문자를 보내는 것도 실례일 것이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백범 씨, 우리 피임 안 하기로 했잖아요.

오늘 은혜가 내게 한 말이다.

-그렇죠.

-담배는 좋은 정자를 죽인대요.

-아……!

은혜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고 입에 물었던 담배를 베란다에 놔둔 재떨이에 버렸다.

“아빠가 되기 힘들군.”

물론 아직 은혜는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다.

“할머니 요즘 너무 일을 안 합니다.”

나는 하늘을 보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때 하늘에서 유성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내 눈에 보였고 나는 바로 눈을 감았다.

‘내 아내를 행복하게 지켜줄 힘을 주십시오.’

유성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참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평범함에서 행복을 찾는 것 같다.

딩동!

그때 백영기 변호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전화 드릴까요?]

백영기 변호사의 문자를 확인하고 나는 바로 백영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백범 대표님.

“형님.”

나는 사석에서 백영기 변호사를 형님으로 부르기로 했었다.

-예.

“혹시 오늘 제 아내와 통화를 하셨습니까?”

-내색하던가요?

“내색까지는 아니고 저를 위해 새로운 선택을 말하더군요. 미안했습니다.”

-대표님의 현재 행보는 너무 급작스럽고 돌발적이십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내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게 하는 것이 아내를 위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백영기 변호사는 이것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태평양법무법인에 문제가 제기됐습니까?”

-당연한 순서지 않겠습니까. 이번 일은 좀 과하셨습니다.

백영기 변호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그랬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저를 너무 쉽게 봤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게 보여준 겁니다. 앞으로는 크게 걱정시킬 일이……. 하나 더 남아 있군요.”

-예?

“제가 불법이라면 불법인 대출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며칠 안에 대출을 상환할 예정입니다.”

-그래요?

“너무 크게 걱정은 마십시오. 이번은 좋게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법무법인 대표님께서 아시면 또 놀라시겠군요.

“그렇게 되면 파트너십 계약이 파기되는 겁니까?”

-그런 행보이시면 대표님께서는 태평양법무법인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이제 나를 태평양법무법인이 정치인들에게 소개를 해줘도 그 정치인들이 손사래를 칠 테니까.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태평양법무법인이 필요합니다.”

-제가 막고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아우님, 성질 좀 죽이세요.

쿵쿵, 쿵쿵!

그때 윗집에서 또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력하겠습니다.”

-자기 성질대로 사는 사람 없습니다. 아내분께서 참 많이 걱정하십니다.

“예,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전화 끊겠습니다.

“예, 늦게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뚝!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쿵쿵!

‘이 망할 것이!’

성질 죽이고 살고자 하는데 층간소음이 내 아내의 단잠을 방해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올라가 따지고 싶지만, 오늘까지만 참아볼 참이다.

* * *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휴대전화로 김 비서님에게 문자를 보내 과일 바구니 하나를 사서 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은혜와 아침을 먹고 은혜를 출근시킨 후에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쿵쿵, 쿵쿵!

여전하다.

위층에서 다시 쿵쿵거린다.

철컥!

그때 문이 열렸고 파출부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머, 사장님 계셨어요?”

“일찍 오셨네요.”

나는 파출부 아줌마를 보며 말했다.

쿵쿵, 쿵쿵!

“또 위층에서 난리네요.”

파출부 아주머니의 말에 이런 층간 소음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요?”

“예, 사장님. 주무시기 불편하시죠?”

“저는 둔해서 괜찮은데 제 아내가 불편해할 것 같습니다.”

“몇 번이고 올라가서 말을 했는데 파출부라고 막 무시를 해서 말도 못 하고 내려왔어요.”

“아, 그렇습니까?”

“예, 뭐 맞는 말이죠.”

파출부 아주머니도 오지랖이 좀 넓으신 것 같다.

“무시하던가요?”

“당연한 거죠. 사모님이 저한테 워낙 잘해주셔서 제가 괜히 오지랖을 부린 거죠. 하여튼 위층 여편네 성질이 대단해요.”

“아주머니, 아니 이모님.”

“예?”

“앞으로는 누가 뭐라고 하면 제 이모님이라고 하세요.”

“에이, 어떻게 그래요.”

“아주머니보다는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부르기도 듣기도 좋잖아요. 참, 명성이 공부 잘하죠?”

“제 아들 이름을 아직 기억하세요?”

“저한테 그렇게 자랑을 하셨는데 어떻게 잊겠습니까.”

“호호호, 그랬나요. 우리 아들 공부 엄청나게 잘해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정도의 실력인데 지방에 있는 의대에 가겠다네요. 우리 아들 효자죠?”

아들 자랑에 표정이 밝아지는 아주머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의대에 원서 넣으라고 하세요.”

“예?”

“제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장학금 제도가 있습니다. 주최 측의 농간으로 아드님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 사장님…….”

아주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울지 마시고요.”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몇 번이고 어린 내게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주머니다.

‘돈은 이렇게 쓰자.’

돈을 아직 번 것은 없지만 돈을 벌면 이렇게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여튼 나는 파출부 아주머니에게 아들 장학금을 약속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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