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73화 조력자들?
지금까지 이런 놈은 없었다. 용자인가? 광자인가? 하여튼 나는 내 결심대로 망나니가 되어 큰 칼을 제대로 휘두르고, 성질까지 못 죽여 완벽한 적까지 만든 후에 청와대를 나왔다.
청와대 정문을 걸어서 나오니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고 살짝 겁이 나는 순간이다.
‘뭐지?’
아마 지금이 5공이었다면 나는 바로 남산으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내가 청와대 정문에서 걸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검은색 차에서 젊은 남자가 내렸다.
“백범 대표님이시죠?”
요즘 나를 찾는 사람이 정말 많다.
“누구······?”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되는 순간이다.
“이 실장님이 보내셨습니다.”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위험하실 수도 있으니 자택까지 모시라고 했습니다.”
이 순간 떠오르는 단어는 ‘친구’다.
“제가 위험하다고 했습니까?”
“예, 제게는 그렇게만 말씀하셨습니다. 모셔도 되겠습니까?”
“됐습니다. 지금은 유신 정권이나 5공 말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남자가 내게 묵례하고 몸을 돌렸다.
“저기요.”
“예, 백범 대표님.”
“고맙다고 전해주십시오.”
내 친구는 내 조력자가 되기를 자청한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할지 짐작한 모양이다.
“예, 전해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내게 말하고 차를 탔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효자동 대로를 걸어 내려가고 있는데 검은색 차가 나를 호위하듯 천천히 따르고 있다.
‘진짜 고맙네.’
사실 나는 청와대 정문을 통과하면서 겁을 먹었었다. 내가 저 젊은 남자에게 지금은 5공 말기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은 아는 만큼 무서운 세상이다. 그리고 나보다 더 미친놈은 많다.
‘제대로 열 받았겠지.’
놈은 아마도 내 앞길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세무조사부터 나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청산했다.’
오늘 오후면 태양기업은 폐업이다. 수익이 없으니 정산할 세금도 없다. 물론 다시 태양 종합 투자 금융이라는 간판을 달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지만 앞으로 진행이 될 일들을 지켜본 후에 추진할 참이다.
‘눈에 살기까지 번뜩였지.’
경제수석은 앞으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낼 것이다. 그리고 합법적이거나 편법적인 방법으로 나를 무너뜨리지 못할 때는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다.
하여튼 지금 이 실장이 내가 차려준 밥 한 끼에 내 조력자를 자청하고 있다.
‘이신이 지시했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냥 온전히 이 실장의 단독적으로 움직일 확률이 높다.
하여튼 검은색 자동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무사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까지 나왔고 그제야 검은색 자동차는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산다.’
이왕 이렇게 저질러놨으니 제대로 미쳐볼 참이다.
* * *
그날 저녁 북한산 인근 고급 한식집.
경제수석이 이 실장을 만나고 있다.
“그냥 둬서는 안 됩니다. 미친개가 날뛰면 일이 복잡하게 됩니다.”
“대선 직전입니다.”
이 실장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니까요, 대선 직전이라서 이러는 겁니다. 그리고 감히 제까짓 것이 저와 이 실장님을 속였습니다.”
“각하께 다른 소리를 했다는 겁니까?”
알면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 실장이다.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청와대에 와서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망할 놈이 늙어서 콩밥으로 건강을 챙기기 싫답니다.”
“그랬습니까?”
의도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이 실장이다.
‘친구 멋진데!’
이 실장은 백범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제가 제대로 밟아놓을 겁니다. 사업하는 놈이니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로 털고 검찰에서 털어보면 뭐라도 나올 겁니다.”
“대선 직전입니다.”
“그러니까 찍소리도 못 하게 만들어 놓을 겁니다.”
“이번 대선에 정말 의욕이 넘치시는군요.”
“뭐라도 이바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아시라고 모셨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말씀 올리겠습니다.”
“예. 지켜만 보십시오. 우리를 거역하고 이 대한민국에서 무사할 수 있는 놈은 없습니다.”
경제수석은 이 실장을 우리라는 단어로 묶으려 했다.
* * *
성북동 고택.
“대선 직전인데 그자가 괜한 구설수를 만들 것 같습니다.”
이 실장이 이신에게 말했다.
“괜한 구설수?”
“예, 그렇습니다. 거기다가 그자가 선을 넘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너도 백범이라는 녀석이 마음에 드나 보다.”
“대부님, 대부님께서는 지금 너도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랬나?”
묘한 미소를 보이는 이신이었다.
“하여튼 네 말도 옳다. 개가 너무 짖어댄다.”
이신은 경제수석을 개라고 말했다.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놈이 야망까지 큽니다.”
“물러라.”
“예, 대부님.”
“네가 말한 것처럼 대선 직전이다. 이럴 때는 조용히 아무 일 없듯 흘러가야 한다.”
“예, 그렇습니다.”
이 실장이 바로 이신에게 대답했다.
‘내가 이제 성님 손자까지 챙기게 생겼습니다.’
이신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가 백범을 떠올리며 피식 웃어버렸다.
“이도야.”
“예, 대부님.”
“그놈은 탐욕스러워서 쓸모가 많겠다.”
“예?”
“대선 직전이다. 또 경제수석이고. 일단 사탕발림이 좋겠다. 그러나서 나중에 처리하자.”
“예, 알겠습니다.”
* * *
고급 룸살롱 특실.
청와대 경제수석이 상석에 앉아 있고 딱 봐도 검사로 보이는 남자와 국세청 고위 공무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경제수석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제일 말석에 한호석 과장도 앉아 있다.
“백범 그 미친 새끼를 그냥 둘 수 없어.”
백범이 예상했던 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경제수석이다. 이것은 정권 말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권력에 취해 있는 아전(?)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수석님, 고정하십시오.”
검사로 보이는 남자가 수석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김 프로, 내가 고정하게 됐어?”
“죄송합니다.”
“김 프로가 내사 좀 해.”
검사를 보통은 프로라고 부를 때가 있다.
“예, 알겠습니다.”
“제대로 미친놈이야, 그러니 탈탈 털어봐, 대충 건드렸다가는 괜히 미친개한테 물리게 될 테니까. 바로 구속이 가능한 죄를 찾아.”
“털면 뭐든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후배.”
“예, 선배님.”
경제수석이 국세청 고위 공무원을 불렀다.
“태양기업 세무조사 바로 착수할 수 있죠?”
“뭐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선배님.”
“왜요? 안 됩니까? 내가 부탁을 하는데 안 되는 겁니까?”
“그게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태양기업 오늘 폐업 처리 됐습니다.”
“뭐, 뭐라고?”
경제수석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폐업 처리?”
“예, 그렇습니다.”
“이거 진짜 또라이네.”
기가 찰 수밖에 없는 경제수석이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그럼 개인 세무조사를 해보세요.”
“그랬다가······. 선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친개라면 여기저기 짖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풍문으로 들었는데 동교동 쪽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소리도 나돕니다.”
“동교동?”
더욱 기가 찰 수밖에 없는 경제수석이었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떠올랐는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친놈이 그 지랄을 한 것이 썩은 동아줄을 잡고 그런 거였군.”
“예?”
“청와대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때 검사가 경제수석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야.”
“수석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곡해하실 것 같기도 해서 망설여지지만 충언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뭔데?”
“대선 직전입니다.”
“그건 나도 알지.”
“괜히 미친 망나니를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풍문처럼 동교동과 연결이 되어 있으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됐어, 싹은 밟아야 더 자라지 않는 법이야.”
그때 룸살롱 특실 문이 열렸고 백범에게 제대로 엿을 먹은 여당중진의원이 들어섰고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리고 경제수석도 상석을 여당중진의원에게 양보했다.
“이제 오셨습니까, 선배님.”
이곳에 모인 것들의 특징은 동문이라는 것이다.
“경제수석.”
“예, 의원님.”
“말은 다 잘해 놨지?”
“예, 저도 당한 것이 있으니 털어보겠습니다. 낮에는 제가 너무 당황해서 먼저 전화를 끊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우리 사이에.”
하여튼 못된 놈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
“하여튼 그 망나니 새끼 때문에 내가 여당에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겠어. 그러니 그냥 둘 수가 없어.”
“그렇습니다. 미친개는 두들겨 팬 후에 삶아야죠.”
“그런데 저쪽은 누구야?”
여당중진의원이 말석에 앉아 있는 한호성 과장을 보고 경제수석에게 물었다.
“제 절친한 후배입니다. 대후증권에 다닙니다. 원래는 핸들링을 시키려고 했는데 그 망할 놈 때문에 일이 틀어졌습니다.”
“그래요?”
“예, 선배님.”
“그리고 동문입니다. 동문!”
경제수석이 여당중진의원을 보며 웃었다.
“아, 동문.”
그리고 바로 한호성 과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말씀 놓으십시오. 선배님, 모교를 빛내신 훌륭하신 선배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버지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 한 의원 자제분이시군.”
“예, 선배님.”
“앉읍시다. 그 망나니 때문에 모이기는 했지만, 동문을 만나니 반갑네.”
“그 망나니는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한호성 과장이 자리에 앉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할 게 없다고?”
“예, 선배님,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옵션에 ‘옵’ 자도 모르는 멍청이가 있다고. 그 멍청이가 바로 백범, 그 인간입니다.”
“그래?”
경제수석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 그렇습니다. 곧 알거지가 될 겁니다. 하하하!”
“확실합니까?”
여당중진의원이 한호성 과장에게 물었다.
“예, 선배님, 확실합니다. 대한민국이 망하기가 쉽겠습니까? 그 멍청이는 대한민국이 국가 부도 상태까지 휘청거릴 거라고 판단하고 종합 주가 지수 하락에 투자했습니다. 그래서 곧 알거지가 될 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한호석 과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왜요? 그래서 뭐요?”
“반대로 투자를 하시면 최소 5개월 이내에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제가 그 멍청이가 투자한 것을 이용해서 호구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
“증권사 계속 다닐 것도 아니거든요.”
“하하하, 하하하!”
“알겠소. 내 오늘 귀인을 만났네.”
여당중진의원은 한호성 과장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경제수석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고 경제수석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모두 조용히 좀.”
경제수석은 혹시나 각하의 호출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말했고 모두가 조용해졌다.
“전화 받았습니다.”
-저 이 실장입니다.
“아, 예.”
-성북동으로 모시겠습니다.
이 실장의 말에 경제수석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게 기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