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화 제가 미친놈처럼 보이십니까?(1)
참 급히도 빨리도 드신다.
‘인생을 저리 급히 사셨겠지.’
각하의 삶은 파란만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파란만장한 삶이 저렇게 식사 습관까지 바꿔 놨을 것이다. 사실 그는 서민 대통령, 경제 대통령이라고 자부하시지만, 그는 태어나실 때부터 흙수저가 아닌 금수저였다.
하여튼 보조를 맞추려니 체할 것 같다. 거기다가 나는 오늘 망나니짓을 위해 여기로 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마음으로는 큰 칼을 옆에 차고 왔는데 내가 찬 칼이 그분의 칼은 아닐 것이다. 그저 망나니의 칼로 휘둘러 볼 참이고 그 휘두름이 작은 파장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7개월 만이라도 대비를 할 것이다.
-마음먹은 그대로 휘둘러.
조비가 내게 해준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래 그러려고 왔다. 그래야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내가 휘두르는 칼이 나를 벨 수도 있다. 하지만 서푼 휘두른 칼이야말로 내게 치명적일 가능성이 크다.
“다 드셨습니까?”
각하께서는 자기가 국물까지 다 비운 후에 내게 물으셨다. 내가 다 먹지 못해도 이제는 젓가락을 내려놔야 할 때다. 시쳇말로 내가 여기 청와대에 칼국수 얻어먹으러 온 것은 아니니까.
“예, 다 먹었습니다. 각하.”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각하의 눈을 담담히 바라봤다. 이렇게 각하를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경제수석도 그렇고 여당 대표도 그렇고 백범 대표는 참 훌륭한 청년 사업가라고 합디다.”
그들은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내게 포장지를 씌웠을 것이다.
“과찬이십니다.”
“그래요? 내 듣기로는 백선우 선생의 손자라고?”
“예, 그렇습니다.”
“내 알기로는 백선우 선생께서 거제 출신이지?”
여기서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지연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할아버지가 거제 출신이셨나?'
나는 서울 토박이다.
“예?”
“그렇다는 겁니다.”
미소를 보이는 각하시다.
“아, 예, 알겠습니다.”
나는 그냥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그쪽하고 나밖이오. 이제 진짜로 이야기 좀 합시다.”
순간 각하의 눈빛이 변했다. 이제야 말고 제대로 본론에 들어가실 모양이다.
현 대한민국에는 정치 9단이 3명 있다. 그들을 3김이라고 부른다. 그 3김 중 제일 먼저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각하시고 다음에 대통령이 될 사람이 김대준 총재다. 물론 JP는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인자의 삶을 살아간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대하고 또 계획하고 모략하고 정치 입지를 다졌던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대하고, 또 계획하고 모략하며 정치 입지를 다져야 한다.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신 분이니 당연히 나를 꿰뚫어 보고 계실 것이고 가늠하기 위해 이런저런 잣대를 놓고 관찰하고 계실 것이다.
“예, 각하. 말씀하십시오.”
그저 담담히 내 마음먹은 그대로 말할 것이다.
-잘난 놈! 하하하!
아버지가 웃으셨을 때가 떠오른다. 그런 아들이 될 참이다. 또한, 은혜를 위해 멋진 남편이 될 것이다.
“수석이 태양열 발전 사업이 신생 에너지 개발 사업으로 적합하다고 하는데 그쪽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석유는 60년이면 바닥이 나고, 산업 전기 돌릴 발전소는 더 지어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원자력 발전소를 개발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들고. 그래서 국민이 알아서 전기를 자가에서 자체 생산하면 개인용 전기가 절약되니 그 전기를 산업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데 정말 그런 겁니까?”
“각하.”
“내가 각하라고 불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압니다. 각하라는 말, 사실 요즘에는 별로 달갑지도 않소. 이 자리에 앉아지니 이 자리가 참 골치 아픈 자리입니다.”
“예, 그러실 것 같습니다.”
시쳇말로 각하께서는 지금 머리통이 터질 것이다. 아들이 저지른 짓 때문에 대한민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으니 부끄러울 것이다. 거기다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90%에 육박했던 지지율이 현재 10%까지 하락한 상태다. 물론 IMF가 닥치면 그 지지율은 6%까지 하락한다.
“말해 봅시다.”
말해 보라는 것도 아니고 ‘봅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각하시다. 이것은 자신도 내게 할 말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각하께서 물으시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태양광 패널을 수입해 설치하면 서민들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게 진실이니까. 하지만 진실 뒤에 숨겨진 비경제성은 존재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태양광 발전 사업에 적합하지 않다.
‘영토가 좁고 인구가 도시에 밀집되어 있다.’
그러니 대량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하는 태양광 발전 사업은 대한민국에 적합하지 않다. 물론 서민들이 설치해서 전기 에너지를 절감할 수는 있지만, 국책사업으로 지정되기는 무리한 부분이 많다.
“그래요?”
“하지만 경제적이거나 실용성은 없습니다.”
진실을 말해야 할 때다.
“그렇기에 국가 시책 사업으로 추진할 정도의 경제성은 없습니다.”
“그래요?”
각하께서는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셨다. 경제수석에게 보고 받은 말과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다를 테니까.
거기다가 나는 태양광 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사업가로 이곳에 초청이 됐다. 그런데 그런 사업가의 입에서 태양광 발전 사업이 경제성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각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올 때 낮술 드셨소?”
뜬금없는 질문을 통해 나를 당황하게 하는 각하시다. 하지만 내가 먼저 진실을 말하면서 각하를 당황하게 했을 것이다.
“예? 무슨 말씀입니까?”
“백범 대표께서는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한다면서?”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시다.
보고 받은 내용과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다르기에 의심스러운 부분을 찾아내신 것 같다.
“예, 태양광 발전 사업을 추진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 사업은 보류 아니 청산할 예정입니다. 제가 여당 국회의원을 만나서 한 모든 이야기는 감언이설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전인수적 발상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업자가 자기 사업이 정부 지원 사업이 되기를 희망하고, 생산하거나 설치하는 제품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기를 희망하기에 저도 그랬습니다.”
폭탄선언이라면 폭탄선언이다.
“낮도깨비시군.”
각하께서는 복잡 미묘한 눈빛으로 변했다.
“죄송합니다. 각하.”
“나 좀 당황스럽소. 태양광 발전 산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쪽을 불렀는데, 그 사업을 추진했던 사업자가 다른 말을 하니 이해가 안 돼.”
“태양광 발전 사업은 대한민국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물론 서민들이 자신들의 주택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설치하는 비용에 비해 전기세 절약은 미미할 겁니다. 태양광 발전 사업은 개인이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진할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더 그럴 것입니다.”
내 말에 각하께서 나를 뚫어지게 보셨다. 나는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태양광 패널 발전 사업을 정부추진 사업으로 채택되게 해서 정부 보조금을 서민들이 받을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부 지급보증서를 확보하여 그 보증서로 일본이나 미국 또는 영국 은행에서 단기외환 대출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달러에 대한 시세차익을 남겨서 부를 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었고 이제는 진실을 밝혀야 할 때다.
“내한테 왜 이카는데?”
어느 순간 내게 말을 놓는 각하시다.
“각하께 진심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진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진심과 진실?”
“예, 그렇습니다.”
“그기 뭔데?”
여전히 불편한 표정이다. 마치 자신이 내게 농락을 당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자신의 보좌관들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눈빛처럼 느껴졌다.
‘촉이 엄청 좋으시지.’
그러니 내가 직접 경제수석이 누군가와 공모해서 태양광 발전 사업을 추진했던 태양기업을 우회 상장을 하고 주가를 조작하면서 대선자금과 비자금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적은 많이 만들어놨다.’
여당중진의원부터 적이 됐으니까.
“각하 어린놈이 드리는 말씀이라고 무시하지 마시고 한 번만 깊게 생각해 주십시오.”
“들어보고 결정해야지.”
각하께서 내게 말씀을 하셨고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뛴다.
'미쳤다.'
나는 미쳤고 누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하.”
“말하라카이.”
자꾸 내가 뜸을 들이고 자기를 부르니 짜증이 나시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에 놓였습니다.”
“뭐라꼬?”
매섭게 나를 노려보시는 각하시다. 정말 나는 이제부터 제대로 폭탄 발언을 해볼 참이다.
“노여워 마시고 제 말씀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말하라카이. 말을 해야 듣고 말고를 할 거 아이가.”
“예, 각하. 대한민국은 곧 외환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니 지금 뭐라캐쌌노?”
“동남아시아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7월부터는 국내에서 달러를 구하기가 힘들어질 것이고 수출 기업들은 달러 때문에 진땀을 흘리게 될 겁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는 내도 들었다.”
“대한민국은 끄떡없다고 보고를 받으셨을 겁니다.”
“하모, 대한민국 갱재는 동남아랑 다르다. 우리는 튼튼하다.”
“아닐 겁니다. 그렇게 보이지만 폭탄이 터지는 순간 단기 외환들은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연장해준 만기를 연기해 주지 않을 겁니다.”
“무슨 근거로?”
“대한민국 경제는 현재 돈 없이 거래되는 상황입니다.”
“무슨 소리꼬?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라?”
“모든 기업 활동이 어음거래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어음을 발행하고 그 어음으로 중견기업에 결재하고 중견기업은 대기업에 받은 어음을 다시 아래 도급을 준 중소기업에 또 내려보냅니다. 그리고 중소기업은 그 어음을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은행에서 돈으로 바꿉니다.”
“그기 신용사회인기라. 그게 뭐?”
“갱제에 갱자도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내가 내 입으로 말해 놓고 숨이 턱하고 막히는 순간이다.
“니 뭐라캤노?”
“죄송합니다.”
“갱제에 갱자도 모른다고? 내가, 내가 갱제 대통령이다. 내가 금융실명제도 했고 이런저런 갱제 살리기도 많이 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각하께서 아주 훌륭하신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란데 와, 갱제도 모른다고 말을 하노? 내가 살다 살다 니만큼 간 큰 놈은 못 봤다.”
“간이 큰 것이 아니라 각하께 진실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러는 겁니다. 계속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들어보자. 니 말이 틀리면 니는 내한테 혼난다.”
“예, 각하. 계속 말씀 올리겠습니다. 또한, 대기업은 자신들이 발행한 어음을 이용해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습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여신거래는 많은 문제를 발생했습니다.”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증거를 말해 봐라.”
“증거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증거.”
“직접 경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뭐라꼬?”
“아드님께서 한보그룹 사태에 개입되어 있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