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69화 미친 짓도 망나니처럼? (3)
서울 서부 세무서.
사람이라는 것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면 입이 간지러워서 말을 하게 되는 법이고 그래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도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백범의 증여 신고를 처리한 세무서 직원은 쉬는 시간에 이 사실을 동료 직원에게 말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장기복 씨죠.”
그때 이 실장이 세무서 직원 앞에 서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무엇을 도와 들까요?”
“기관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세무서 직원은 가관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예?”
“잠시면 됩니다. 담배 한 개비 피우시죠.”
“아……. 예……!”
* * *
“제가 드린 말씀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습니까?”
“예, 이해했습니다.”
“큰일에 휘말리지 마십시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남들이 알아서 좋을 일이 아니고 또 소문이 퍼지면 출처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무 공무원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 실장이 세무 공무원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고 세무 공무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가리 닥치고 있어야겠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세무 공무원이었다.
* * *
여당 대표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여당중진의원은 백범의 통보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여당 대표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동교동과 다른 것이 있다면 여당중진의원은 백범이 제공한 정치후원금 중 2억을 슬쩍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직은 보고하지 않았다.
“송구합니다.”
“정치후원금을 제공한 사람이 그것을 증여 신고한 일이 있었냐고 묻는 겁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조 의원.”
“예, 대표님.”
“혹시라도 강요했습니까?”
이희창 후보는 대쪽 같은 이미지였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먼저 접근해 와서 태양광 발전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정치후원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미친 짓을 하는 겁니까? 그 사람이 미쳤습니까?”
“백범 그 인간의 말로는 야당이 정치후원금이 제공된 것을 감지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이희창 후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 고정하십시오. 대표님.”
“지금 내가 고정할 때입니까?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우리 당의 미래가 달린 대선이 코앞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인간이 말하기를 여당, 야당 똑같이 줬답니다.”
중진의원의 말에 여당 대표는 멍해졌다.
“뭐라고요?”
“예, 똑같이 줬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화로 세무서에 확인해 봤는데 사실입니다.”
“확실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조치는 취했죠?”
“예, 그렇습니다. 입막음은 잘했습니다. 세무 공무원도 절대 어디 가서 말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으음……!”
신음을 토해내는 여당 대표였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요?”
“오늘 그 인간이 각하를 접견합니다.”
“오늘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 인간이 각하 앞에서 어떤 말을 할지…….”
“이런, 이런……!”
따르릉, 따르릉!
그때 여당 대표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누가 전화를?”
짜증을 부리는 여당 대표였다. 하지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몇 없고 그 사람들 모두가 권력층이기에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는 여당 대표였다.
“여보세요. 전화 받았습니다.”
-……에……. 나 동교동입니다.
전화를 건 사람이 김대준이라는 것에 여당 대표는 바로 인상을 찡그렸고 자신의 측근을 다시 한번 째려봤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상론할 것이 있어서 전화를 넣었습니다. 혹여 보고는 받으셨습니까?
“보고요?”
-예, 저는 제 사람에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5억을 증여받고 증여 신고가 됐다고 합니다.
“5억이요?”
5억이라는 말에 덜컥 겁을 먹은 여당중진의원이었다.
-그렇소. 보고 전이오?
“보고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서로의 흠이니 덮읍시다. 국민이 아셔봐야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예, 그래야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 끊소.
뚝!
김대준 총재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 사람, 안 될 사람이군.”
여당 대표가 매섭게 여당중진의원을 노려봤다.
“죽여주십시오. 대표님……!”
“됐습니다. 나가 보세요.”
“대표님……!”
“나가 보세요.”
축객령이 떨어지는 순간이었고 이 순간 여당중진의원은 백범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망할 놈, 두고 보자.’
백범에게 적이 한 명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태양기업 사장실.
“보신 것처럼 이것이 투자자들의 마음입니다.”
황 부장이 내게 말했다.
“그러게요, 저도 놀랐습니다.”
“서민들이야 사실 마땅하게 투자할 곳이 없습니다.”
“그렇죠.”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무 말도 없던 박태웅 이사가 내게 물었다.
“그러게요. 고민스럽군요.”
“대표님께서는 제게 종합 투자 금융으로 전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왕 유치해야 할 투자입니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앞으로는 40%의 수익을 약속할 수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이제는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다녀온 다음에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예?”
박태웅이 내게 되물었고 나는 시계를 봤다.
“벌써 11시군요.”
이 실장의 말로는 오늘 점심시간에 각하와 접견이 예정되어 있단다. 그런데 나는 아직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취소된 것인가?’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 * *
대후증권 한호성 과장 사무실.
“주가가 더 하락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이럴 때는 주가 하락에 투자하실 때입니다.”
“한 과장, 그게 뭔데?”
아직은 옵션 투자에 대해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종합 주가 지수에 투자하는 파생 상품입니다.”
“그래요?”
“예, 벌써 종합 주가 지수가 하락한다는 것에 150억을 투자하신 분도 계십니다.”
“150억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정말 누구보다 사악한 한호성 고장이었다.
“진짜 주가 지수가 하락할까요?”
“저를 못 믿으십니까?”
“나야 한 과장을 믿죠.”
“다시 오지 않을 기회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투자를 하시겠습니까?”
“5억을 투자하면 얼마나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까?”
“10배입니다.”
“10배라고요?”
“수익이 높은 상품이지만 위험한 상품입니다. 일명 제로섬 게임이라고도 하죠.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 종합 주가 지수가 하락한다고 확신합니다.”
“OECD에도 가입했는데……?”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알겠어요. 내가 한 과장 덕에 번 돈이 얼마인데, 하하하! 5억 투자하겠소.”
“예, 잘 생각하셨습니다.”
한 과장은 미소를 머금었다.
‘증권사 계속 다닐 필요 없지. 으흐흐!.’
* * *
태양기업 사장실.
똑똑!
11시 10분이 됐고 노크가 들렸다.
“예, 들어오십시오.”
내 말에 김 비서님이 조심스럽게 사장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그는 다시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다.
‘왔군.’
감이 딱 온다.
“예, 김 비서님.”
“저도 모르는 선약 있으십니까?”
“예, 있습니다.”
“대표님, 괜찮으신 거죠?”
김 비서님은 감을 잡으신 것 같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을 겁니다.”
이제는 청와대에서 제대로 칼을 뽑아야 할 때다.
‘망나니니까.’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다.
“밖에서 기다린답니다.”
“예, 알겠습니다.”
* * *
청와대 접견 대기실.
잘못된 행보에 나는 근대 정치의 두 거물을 하루 간격으로 만나게 됐다.
“백범 대표님이시죠?”
“예, 백범이라고 합니다.”
“저는 청와대 경제수석입니다.”
딱 봐도 기생오라비처럼 야비하게 생겼다.
‘저자일까?’
나를 꼭두각시로 삼으려는 자가 누군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내 촉이 움직이는 순간이다.
“안녕하십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경제수석에게 인사했다.
“각하께서 궁금한 것이 많으실 겁니다. 특히 태양광 발전 사업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십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니 태양광 발전이 대안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도 태양광 발전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백범 대표께서 태양광 발전 사업을 시작하셨다는 말에 제가 각하께 적극 추천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여당중진의원과 청와대 경제수석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인가?’
설마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이 대통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그렇게 됐는데?’
그건 아닐 것 같다.
“아 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요즘 각하께서 심기가 카랑카랑하십니다. 아시겠지만…….”
아들 때문일 것이다.
“예, 그러시겠죠.”
“각하께서 흡족하실 수 있게 잘 말씀을 올리세요. 상황에 따라서 백범 대표님의 사업이 승승장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예, 알겠습니다.”
“가시죠,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칼국수 좋아하십니까?”
“예, 좋아합니다.”
“보기보다 서민적이시군요. 나는 칼국수는 여어엉, 하하하!”
나를 보며 묘하게 웃는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참, 말씀은 잘 이해하셨습니까?”
“예? 무슨 말씀입니까?”
감이 딱 온다.
‘너구나.’
나를 꼭두각시로 불리려고 했던 놈을 찾은 것 같다. 문제는 청와대 경제수석이 핵심인지 그의 위에 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말씀 못 들으셨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이 실장을 만난 것을 모르쇠로 일관할 참이다.
“그래요?”
“예, 제가 좀 말귀가 어두운 편입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눈빛은 짜증 그 자체였다.
그리고 우리는 백악실까지 왔고,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렸다.
‘역시 성격 급하시구나.’
모든 대통령은 누군가를 초청해 놓고 대기시켜 놓은 상태에서 나중에 입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각하께서는 이미 식탁에 앉아계셨다.
“각하, 태양기업 백범 대표입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각하께 나를 소개했다.
“오셨으면 앉읍시다.”
“예, 각하.”
“칼국수 좋아합니까?”
“예, 좋아합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조부께서 백선우 선생이시라고?”
“예, 그렇습니다.”
“아, 그렇군요. 내가 독립유공자들을 잘 챙겨야 하는데 갱제를 살리느라 그동안 신경을 너무 못 썼어.”
어느 순간 슬쩍 말을 놓는 각하시다. 물론 그렇다고 기분이 나쁠 수는 없다.
“갱제 수석.”
“예, 각하.”
“니는 밀가루 두드레기 있다켔제?”
“예, 그렇습니다.”
“그럼 가서 밥 무라.”
“괜찮습니다. 각하.”
“됐다. 니가 그래 서 있으면 체할 것 같다아이가. 목구멍에 밥이 넘어 가것나? 퍼뜩 가서 밤 무라.”
“예, 각하…….”
마지못해 식당을 나가는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잘 됐다.’
독대를 신청하려고 했는데 각하가 알아서 치우셨다.
“내가 물어볼 것이 많아요. 하지만 부터 묵고 하십시다.”
“예, 각하.”
수많은 말들이 오가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경제 대통령이라고 자부하시는 각하께서 내 말을 얼마나 믿어주실지가 관건일 것이다.
물론 각하께서는 태양광 발전 사업에 관해서 물으시겠지만 말이다.
‘날뛰어 보자.’
망나니가 되어야 돌파구가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