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68화 미친 짓도 망나니처럼? (2)
나는 동교동 자택 밖으로 나왔다.
따르릉, 따르릉!
나는 휴대전화로 이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각!
-성북동입니다.
이 실장은 자신을 성북동이라고 말했다.
“백범입니다.”
-결정하셨습니까?
그저 담백한 어투로 내게 묻는 이 실장이다.
“예, 그렇습니다.”
-동교동이시죠?
이 실장의 말에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만날까요? 만나서 백범 대표의 결정을 듣겠습니다.
이 실장은 여전히 담담한 어투다.
“제가 마음 편히 가도 됩니까?”
-저를 친구라고 소개하셨죠?
“그랬습니다.”
-차 보내겠습니다. 편히 오십시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딱 내 앞에 검은색 자동차가 멈췄고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이 실장님이 보냈습니다. 모시겠습니다.”
그때 김 비서가 급하게 내 앞으로 나섰다.
“누구십니까?”
여전히 세월이 뒤숭숭한 시기다.
“누구신데 이러십니까?”
나를 보호하려는 김 비서다.
“김 비서님.”
“예, 대, 대표님.”
김 비서가 나를 볼 때 잔뜩 겁을 먹은 눈빛이다. 이러면서 나를 보호하겠다고 이러고 계신다.
“친구가 보낸 분이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입니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풍기는 뉘앙스가 존재하고 김 비서는 검은 자동차에서 내린 남자에게서 섬뜩함을 느껴서 이러는 것이다.
“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김 비서에게 웃어줬다.
“갑시다.”
“예, 모시겠습니다.”
남자는 내게 정중했다.
‘대충 어디로 가는지 안다.’
나는 백범이기 전에 이신이었으니까.
* * *
서울 외곽에 있는 조용한 식당.
규모가 그리 크지 않는 식당이다. 이 실장이 자주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원래 이신이 소개해 준 곳이다.
“오셨습니까?”
식당에는 아무도 없다. 이 실장이 나를 만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을 것이다.
“예.”
“어제 얻어먹은 저녁은 갚아야 하기에 모셨습니다.”
“그렇군요.”
“앉으시죠. 여기 부대찌개 잘합니다.”
이신은 부대찌개를 즐긴다. 그리고 그의 식성은 이 실장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식당 주인은 부대찌개 냄비를 가지고 나왔고 이 실장에게 인사를 하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아는 집이라서 편의를 많이 봐줍니다. 드시죠.”
“예,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끝냈다.
* * *
식사가 끝이 났다.
“미행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결정을 내리시지 않은 상태이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고 의외였습니다. 야당과 연결이 되어 있을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까?”
“권 의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 실장이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 백범 대표님의 결정을 들을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내 말에 이 실장은 나를 빤히 봤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감당해야죠.”
“쉽지 않으실 겁니다. 괘씸할 테니까요.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백범 대표이십니다.”
“예, 그래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쩌실 겁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감당해 나가야겠죠. 이런 결정에도 제가 대통령 각하를 접견해야 합니까?”
이제는 반드시 접견해야 한다.
“예, 이미 각하의 일정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내일 점심입니다. 칼국수를 참 좋아하십니다.”
“예, 알겠습니다.”
“참 어려운 결정 하셨습니다.”
“그러게요.”
“백범 대표.”
“예, 말씀하십시오.”
“제 이름이 이도입니다.”
이 실장이 내게 자기의 이름을 말했다.
‘친구 아니면 적이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알려 주셨습니다.”
나는 애써 이 실장을 보며 웃어 보였다.
“백범 대표님, 저는 아무에게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물론 그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를 친구라고 하셨죠?”
“예, 나이가 비슷해 보여서요.”
“예, 갑입니다. 앞으로는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저를 다시 많나지 않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그리고 저를 만났다는 것도 잊으십시오.”
“친구를 어떻게 잊습니까?”
“그런가요?”
“갑자기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밤이면 그냥 아무 때나 전화를 해서 소주 한잔하는 사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위험합니다. 그래서 백범 대표께 이롭지 않습니다.”
“빚이었습니까?”
내가 어제 대접한 저녁을 말하는 것이다.
“정말 모처럼 따뜻하게 먹은 저녁이었습니다.”
“저도 잘 먹었습니다.”
사실 나는 늘 저녁만 두 끼째다.
“친구, 다시 보지 맙시다.”
“이도 씨, 정말 오래 사귄 친구 같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내 영혼은 백범과 이신의 융합 때문에 새롭게 탄생한 영혼이지만 이 실장에게는 친숙할 것이다. 그래서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저는 소주가 생각이 나면 전화할 겁니다.”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 이 실장이다.
“그럴 겁니다.”
이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로 유지한다.’
우선은 그렇게 할 참이다.
* * *
성북동 저택.
“거부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 실장이 대답했고 이신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서운 놈이다.”
“예?”
“너라면 거부했을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욕심 없는 놈이 무서울 때가 있다.”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 아니겠습니까?”
“꼭두각시?”
“그렇습니다.”
“내가 그랬지, 그리고 모든 판을 뒤집었지. 녀석이 이제부터 제법 곤란해지겠구나.”
“그럴 것 같습니다. 수석은 탐욕스러운 자입니다.”
“도와주고 싶은 것이냐?”
“…….”
이 실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말이 없누?”
“저와 대부님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관심을 가질 것이 없지. 하지만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어. 지켜보자.”
이신이 미소를 머금었다.
“예, 대부님.”
* * *
서울 중부 세무서.
나는 김대준 총재에게 말한 것처럼 국세청 서울 중부 세무서가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권 의원과 여당 중진의원에게 증여한 5억을 각각 세무 신고를 했다. 그리고 내게 증여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 짐작하는 세무서 직원은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이, 이대로 증여 신고 합니까?”
그는 말까지 더듬었다.
“예, 증여했으니 신고를 해야죠.”
“아, 예……!”
그는 내게 대답을 하고 증여세 신고에 따른 세금 납세 용지를 내게 내밀었다.
“가까운 은행에 가셔서 내시면 됩니다.”
아마 여당중진의원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목덜미를 잡게 될 것이다.
‘바로 알려드려야겠지.’
오늘 나는 참 바쁘다. 각하와 점심때 칼국수를 먹어야 하니까. 아마 내가 태양기업 사무실로 출근하면 시간을 맞춰서 청와대 비서실에서 나올 것으로 판단된다.
* * *
달리는 자동차 안.
-하하하, 백범 대표, 무슨 일입니까?
나는 내게 5억을 받은 여당중진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의원님.”
-하하하, 오늘 백범 대표께 좋은 일 있을 겁니다. 어르신이 부르실 겁니다.
“예, 들었습니다.
-말씀을 잘 드리십시오. 어르신만 설득하시면 백범 대표의 사업은 승승장구를 할 겁니다. 참, 무슨 일로 전화를 거셨습니까?
“통보를 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하하하, 통보요? 우리 사이에 무슨 통보할 것이 있습니까?
우리 사이?
그래 우리는 뇌물 주고받은 사이다.
“저번에 드린 정치후원금 5억을 오늘 국세청에 증여 신고 했습니다.”
내 말에 여당중진의원은 아무 말도 없었다. 한 마디로 제대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의원님!”
-지, 지금, 지금 뭐라고 했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그는 이제 내게 반말을 하고 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제가 의원님을 존경해서 정치후원금을 제공했고 그것은 분명한 증여이기에 증여 신고를 했습니다.”
-너! 지금 나를 엿 먹이는 거야!
여당중진의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당에서 알아 버렸습니다.”
약간의 꼼수를 더했다.
-뭐, 뭐라고?
“야당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야당에도 5억의 정치후원금을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차후에라도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가 되면 대선 정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내린 조치입니다.”
-지금 박쥐처럼 이쪽, 저쪽에 다 줬다는 거야?
“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으음……!
여당중진의원은 내가 괘씸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세무 신고를 했으니 어느 쪽도 크게 문제로 삼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
“예.”
-네가 이러고도 대한민국에서 사업할 수 있다고 생각해?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가 너 가만히 두지 않겠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미친놈 같은 새끼!
뚝!
여당중진의원은 내게 욕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표님……!”
김 비서가 백미러로 나를 살피다가 나를 불렀다.
“예, 김 비서님.”
“괜찮으십니까?”
“아무 일 없습니다. 괜찮아 질 겁니다.”
여당중진의원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기에 다 들렸던 모양이다.
“어디로 모십니까?”
“회사로 갑시다.”
“예, 알겠습니다.”
* * *
태양기업 사무실.
내가 태양기업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나를 봤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김 비서가 황 부장에게 물었다.
“투자자들이 몰려와서 왜 투자를 철회하냐고 난리입니다.”
“대표님입니까?”
그때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께서 내 앞에 다가와서 내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이러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투자를 받아놓으시고 한 달도 안 돼서 계약을 끝내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계약 위반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내게 계약 위반이라고 소리쳤다.
-원금과 약속된 이자까지 지급 완료했습니다.
황 부장에 내게 했던 보고가 떠올랐다.
“우린 태양기업에 더 투자하고 싶습니다.”
“맞아요. 40%나 주는 곳은 없다고요.”
“대표님!”
그때 아기를 업고 내게 정말 안전하냐고 물었던 아줌마가 나를 봤다.
‘그때 그분이군.’
그녀는 투자할 때 절대 잃어서는 안 될 돈이라고 내게 말했었다.
“예…….”
“정말 더는 투자를 못 받으시나요?”
다시 투자하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였다.
‘아, 당황스럽군.’
서민들에게 40%의 이자를 지급해주는 곳은 지금까지 사기 말고는 없었다.
‘이래서 서민들이 다단계 금융 사기를 당하는군.’
의심이 확신이 서면 맹목적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제 말씀 좀 들어보십시오.”
내가 소리쳤고 사무실로 몰려온 사람들이 모두 나를 봤다.
“태양기업은 청산될 겁니다. 태양광 패널 사업은 보류가 됐습니다.”
“정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면서요?”
“예, 그것도 사실입니다.”
“이익도 없는데 왜 이자를 줬습니까?”
“계약이 체결됐기 때문입니다. 태양기업은 태양광 패널 사업을 접고 종합 금융 사업을 할 예정입니다.”
“그럼 투자를 받겠네요.”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그렇게는 될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럼 투자를 받아주세요.”
나는 천천히 사람들을 봤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요청을 깊이 고심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돌아가 주십시오.”
내 말에 사무실로 몰려온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고맙다는 눈빛으로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당황스럽군요.”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