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67화 미친 짓도 망나니처럼? (1)
김대준의 자택 응접실.
저녁 식사 시간 한 시간 전에 김대준의 자택을 방문했다.
나는 김대준 총재를 바라보고 있고 김대준 총재의 옆에는 권 의원이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저들은 내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눈빛이다.
'태양광 발전 산업을 신생 에너지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아마도 대선 공약에도 포함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엄청난 이익을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살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수습하고 다시 시작할 참이다.
“백범입니다. 총재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김대준 총재의 눈빛은 자애롭다. 그에 반해 권 의원의 눈빛은 나를 이용해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찾아올 이유가 있기에 찾아왔을 거라고 묻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처음 김대준 총재의 초청을 거절했었다. 그러니 저렇게 묻는 것이다.
“말씀을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럴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한다.
“백범 대표가 추진하는 사업 이야기요?”
“아닙니다. 총재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권 의원에게 드린 뇌물공여에 대해 바로 잡기 위해 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받았다고 보고를 받았지 못 받았는지일 것이다.
“나 때문에 오욕을 뒤집어쓸 때가 많지요.”
절대적으로 권 의원을 믿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내 말에 여전히 김대준 대표는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고 권 의원은 살짝 놀린 눈빛을 보였다. 사실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사람은 누구도 그것이 뇌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뇌물공여라고 말했고 또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왔다고 말하니 권 의원은 저리 놀라는 것이다.
"총재님, 놀라셨습니까?"
나는 김대준 총재에게 말했다.
"놀랐다기보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소."
김대준 총재가 내게 말하고 권 의원을 봤다. 그리고 권 의원의 눈빛은 내게 물어볼 것이 있다는 의미를 담은 상태로 김대준 총재를 바라보고 있다.
“총재님, 제가 백범 대표에게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권 의원이 김대준 총재에게 말했다.
“그러세요. 당사자이시니."
그와 동시에 권 의원이 나를 봤다.
“백범 대표, 왜 갑자기 이러시는 겁니까?"
이제 이 실장이 찾아왔었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제가 젊은 혈기 때문에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간 것 같습니다. 박쥐처럼 여당에도 야당에도 똑같이 정치기부금을 냈습니다.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제 조부께 부끄럽습니다.”
처음에는 뇌물공여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정치기부금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어감이 부드러우니까.
사실 처음에는 충격 요법적인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담백하게 풀어나가야 할 때다.
“그래요?"
권 의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이다. 사실 뇌물 아니 정치기부금을 은밀하게 제공했다가 후환이 두려워 다시 돌려받는다고 해도 그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 입방아에 오를 일이고 내 예상대로 김대준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내게 아무런 특혜를 제공하지 않아도 내가 사업적으로 승승장구를 할 때마다 특혜 논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숨기려는 것은 항상 후환을 만든다. 그래서 오늘 깔끔하게 망나니답게 정리하고자 한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갑자기 했습니까? 내가 처음 백범 대표를 봤을 때는 야심만만한 젊은 사업가였습니다. 사실 그때 태양광 발전 사업을 이야기하면서 정치기부금이 어떤 목적도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목적이 없는 돈은 없다는 것을 내게 말하고 있는 권 의원이다.
“예, 제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 아내는 판사가 될 사람입니다. 법을 심판해야 할 사람인데 그녀의 남편이 죄를 범한다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한순간 잘못된 길을 걸었습니다. 정치기부금이야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그 돈은 분명한 목적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이 멍해졌다.
‘이런 일도 또 처음이겠지.’
정치자금을 지원해놓고 다시 토해내라는 투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는 없을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 중견기업 이상의 사업가들은 총선이나 대선 때가 되면 암묵적으로 정치기부금을 요구당한다. 그리고 제공하는 사람들로서는 안 주기도 그래서 찜찜해서 대부분 여당과 야당에 정치기부금을 제공한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참 의외입니다."
김대준 총재가 내게 말했다.
“예, 총재님. 죄송합니다. 번거롭고 번잡하게 해드려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대준 총재다. 그런데 처음 나를 봤을 때보다 지금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더욱 자애롭다. 마치 자신의 믿음에 배신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눈빛을 보인다.
"백범 대표."
그때 권의원이 나를 다시 불렀다.
"예, 의원님."
"혹시 여당에서 압박을 받으셨습니까?"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 권 의원이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의 경우의 수 중 하나일 것이다.
"저 스스로 결정한 선택입니다."
물론 그 결정에 이 실장의 방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사실 눈만 질끈 감고 그들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나는 엄청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또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승승장구하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지름길을 포기한 것이다. 그래도 후회 없다.
"정말 나는 이해가 안 됩니다. 돌려받는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맞는 말이다. 나중에도 내가 했던 일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크게 성공할 것이고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나를 알게 만들 테니까.
“백범 대표, 돌려드리겠소.”
한참을 생각하던 권 의원이 잠시 김대준 총재를 봤고 김대준 총재는 고개를 끄덕였고 권 의원이 결정을 내렸다는 듯 내게 말했다.
“의원님 그러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뭐라고요?"
뇌물공여를 바로잡기 위해서 왔다고 내가 말했으니 저런 반응인 것이다. 무슨 도깨비 장난을 하냐는 눈빛이다.
“제가 드린 5억은 법대로 권 의원님께 증여하겠습니다. 내일 바로 증여세를 내겠습니다.”
내 말에 다시 멍해지는 두 사람이다. 그러다가 권 의원의 눈빛이 사납게 보였다.
"백범 대표!"
권 의원의 목소리가 변했다.
"예, 의원님."
"여당과 협잡해서 이러는 겁니까? 여당이 백범 대표에게 무엇을 주겠다고 말한 겁니까? 대전 직전입니다. 백범 대표가 하겠다고 하는 일이 대선에 또 총재님께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모릅니까?"
대선 직전이니 내 행보는 큰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압니다. 그런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뭐라고요?"
"증여자가 증여했으니 증여세를 내겠다는데 뭐라고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여당에 속해 있는 그 의원께 제공한 5억, 역시 증여신고를 똑같이 할 생각입니다."
다시 멍해지는 권 의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김대준 총재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대로 또라이 짓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은 이미 먹었으니 마음먹은 그대로 바꾸지 말고 단칼에 휘두르라고,
조비가 내게 해줬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것이 망나니의 칼이다.’
마음먹은 그대로 휘두를 참이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저는 똑바로 살기로 했습니다. 물론 증여를 하고 제가 증여세를 낸다면 국민에게 이번 일이 회자가 될 겁니다."
"백범 대표, 무엇을 생각하고 그러는 겁니까?"
내 다른 목적에 관해 묻는 김대준 총재다.
'역시 다르다.'
대선주자라서 그런지 생각하는 것이 권 의원과는 달랐다.
"모든 측면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제가 그렇게 한다면 앞으로는 누구도 제게 암묵적으로 뇌물을 요구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요?"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송구하지만, 정치계에서 저를 망나니처럼 볼 겁니다. 그 누구도 제게 암묵적으로 정치기부금을 요구하지 못할 겁니다. 달라고 하면 주고 증여신고를 하는 미친놈을 가까이할 정치인은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달라기 전에 줬다는 사실이다.
"후환이 두렵지 않소?"
"저는 선생님께서 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주실 거로 생각합니다."
"나 말고요. 여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누구도 거론하기 어려운 문제 아닙니까? 아마 여당에서 언론은 통제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쪽저쪽 누구도 이번 일을 대선에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제가 철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지켜만 보고 있다.
“허허허, 허허허!”
아무 말도 없던 김대준 총재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권 의원도 따라 웃었다. 물론 권 의원의 표정은 씁쓸함 그 자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망나니짓의 당사자이니까.
“하하하, 하하하!”
“백범 대표, 정말 그렇게 하시고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김대준 총재는 도리어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
"예, 대한민국의 민법은 누구에게도 증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증여된 돈에 증여신고까지 한다면 누구도 제 불손했던 마음을 의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말들이 많을 것이다. 또한, 여당에서 나를 미친놈으로 여기고 내가 계획했던 모든 일을 백지화할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미 태양광 발전 사업은 창산 중이니까.'
하여튼 제대로 또라이 짓을 하는 것이다.
“백범 대표, 그럽시다. 뉴스에 한 번 나겠군요.”
아무 말도 없던 권 의원이 내게 말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말씀을 드린 것처럼 저는 여당에도 줬으니 트집을 잡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대선 직전이지 않습니까? 여당 대선 후보는 대쪽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측근이 정치기부금을 받았다면 문제가 더 커질 겁니다."
내 말이 옳다는 듯 김대준 총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범 군.”
나를 부르는 호칭이 변했다.
“그건 그렇고 차세대 신생에너지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해서 내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오.”
김대준 총재가 내게 말했고 나는 김대준 총재를 빤히 봤다.
“선생님, 제가 권 의원님께 드린 말씀은······.”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김대준 총재를 빤히 봤다.
“태양광 발전 사업은 모두 개소리입니다.”
내 거친 말에 다시 멍해지는 두 사람이다. 김대준 총재 앞에서 이런 소리를 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전혀 현실성 없는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입니다.”
“정말이오?”
김대준 총재가 내게 되물었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아, 그렇군요."
"제가 권 의원께 말씀을 드린 사업은 보고 듣기에만 좋은 이야기입니다. 당분간은 사업성이 전혀 없는 분야입니다."
"백범 군은 반성할 줄 알고 바로 잡을 줄 아는 청년이군요.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이 순간 김대준 총재의 눈빛이 번뜩이고 있다.
'느낌 왔다.'
김대준 총재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된다.
“백범 군.”
김대준 총재가 내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마음먹은 그대로 단칼에 휘두르라고 했다.
“하하하, 하하하~”
“올바른 방법으로 사업하겠습니다.”
물론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을 이용하지 않겠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기억을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니까.
“그럽시다. 백범 군은 너무 솔직해서 정치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하나의 일을 수습하고 동교동에서 조촐하게 저녁을 얻어먹고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실장에게 전화하는 일이다. 그리고 카랑카랑한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