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64화 (64/415)

# 64

64화 너를 위해!

백범의 고급 아파트 주방.

나는 손수 은혜의 밥상을 차려줬다. 그리고 내 행동에 은혜는 감격한 눈빛을 보였다. 그저 파출부 아주머니가 만들어준 반찬과 찌개를 데우는 것이 전부인데도 저런 눈빛을 보이는 은혜다.

‘항상 당신은 이렇게 내게 감격을 하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현실을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남편을 꼽으라면 자기 아내에게 존경받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아내 은혜에게 존경받을 수 없는 짓을 했다. 그래서 미안하다. 내가 저지른 짓은 언젠가는 내 아내 은혜의 발목을 잡게 될 테니까.

‘나는 만족스럽지 않았나?’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을 만족하고 있다.

내 아내 은혜가 있기에 나는 만족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행복했다.

“백범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내가 자기를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은혜다. 이만큼 은혜는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은혜 씨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어요.”

“저한테요? 말해 보세요.”

지금도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내 아내 은혜다.

정말 고맙다.

“은혜 씨, 당신에게 나는 어떤 남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결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답을 은혜에게 얻고자 한다.

“무슨 일 있죠?”

바로 표정이 변하는 은혜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처음으로 살짝 불안해하는 눈빛을 보였다가 다시 나를 보며 웃어 보이는 은혜다.

‘처음이다.’

억지로 나를 위해서 가짜 웃음을 짓는 내 아내의 모습은 처음이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내가 은혜에게 말했고 은혜가 나를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내게 진짜 미소를 보여줬다.

“나는 백범 씨가 어떤 모습이든 저는 상관없어요. 어떤 모습을 제게 보여주셔도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이유도 상관없어요. 결정하실 일이 있으시면 마음 편하게 결정하시면 돼요. 당신이 내 사람이듯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요.”

“그렇군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다.

“지금 모습 이대로 더 나빠져도 괜찮고 더 좋아지면 심장이 떨려서 저 병나요.”

다시 나를 위해 웃어 보이는 은혜다.

은혜는 행복해 보인다.

돈이 더 많아진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돈은 우리의 행복을 깨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 너를 위해!’

나는 전생에서 이신으로 살았었다.

절대 행복하지 않았다. 돈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던 삶이다.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를 경계하며 의심과 불안감 속에서 살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살아 있는 아귀와 다를 것 없이 살았었다.

‘지금이 행복하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결자해지다.

그리고 지금의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하는 고만 남겨둔 상태다.

* * *

성북동 고택.

“만나 봤니?”

이신이 이실장에게 말했다.

“예, 대부님.”

이 실장은 여전히 담담하고 평온했다.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지?”

이 실장은 이신이 지금처럼 궁금한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하루?”

이신은 의외라는 눈빛을 보였다.

“예, 그렇습니다.”

“덥석 물지 않고?”

“예, 그렇습니다. 의외의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예, 고심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질렀던 짓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다 그렇다. 그런데 결국은 돈방석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홉 개를 가지면 열 개를 가지고 싶고 10개를 가지면 100개를 가지기 위해 움직이지.”

“예,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대부님.”

“이도야.”

“예, 대부님.”

“그런데 말이다. 이번에는 너무 어렵게 가는 것 같다.”

이신의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한 이 실장이었다.

“조치를 취할까요?”

“네 손에는 피 안 묻힌다. 그리고 나도 늙었다. 험한 일이 싫다. 이제까지도 지옥에 갈 일 너무 많이 했다. 그냥 지켜보자. 뭐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니까.”

“예, 알겠습니다. 내일 백범 대표가 결정을 내리면 보고 드리겠습니다.”

“돈방석 마다할 인간 없다.”

“지금까지 고민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랬나?”

“예, 대부님.”

-친구입니다.

이 순간 이 실장은 백범이 자기 아내에게 자신을 소개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라······!’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는 이 실장이었다.

“너도 마음에 드나 보군.”

“좀 다른 사람 같습니다.”

“이도야.”

“예, 대부님.”

“친구를 만들지 마라. 신경 쓰이고, 배신을 당하면 아프다.”

“예, 대부님.”

“나는 살 만큼 살았다.”

이신의 말에 이 실장의 눈빛이 변했다.

“됐다, 곤하다.”

“물러가겠습니다.”

-네 손에는 피 안 묻힌다.

이 실장은 밖으로 나오면서 이신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오래 사셔야 합니다. 대부님.”

고아인 이 실장에게 자신을 도구로 부리는 이신이 유일한 가족이고 친구였다.

* * *

새벽, 백범의 서재.

은혜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서재로 왔다.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인데 여전히 나는 그 결정을 의심하고 고민하고 있다. 인간은 이런 존재인 것이다.

포기해야 할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확보된 어마어마한 자금을 통해서 10년 안에 대한민국 경제를 다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신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나와 싸워야 한다.’

절대 자기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았던 이신이다. 또한, 탐욕의 단 꿀을 빨게 되면 훗날 내 아내 심은혜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아!’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나는 지금 은혜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내 아내의 인생을 재단하고 있었다.

‘왕의 남자······?’

그것을 그녀가 원할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순간이다. 이 새벽에 나는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 반대로 내가 결자해지를 하면!’

금전적으로 많은 손해를 봐야 할 것이다.

‘우선!’

태양광 발전 사업부터 그만둬야 하고 태양기업은 바로 폐업 처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투자를 받은 2,000만 달러를 투자자들에게 되돌려줘야 하고 한 달 이자도 지급해야 한다.

‘연 40%이니!’

대략 5억 4천만 원을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거기다가 불법 대출도 상환해야 한다.

‘400억!’

정말 젠장이다. 이 실장이 하루만 일찍 나를 찾아왔다면 나는 옵션 투자를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불법적으로 대출받은 600억을 조기 상환하기 위해서는 400억이 필요하고 그 자금은 당연히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

-수천억을 굴리는 할머니도 내가 부르면 와.

이 순간 나도 모르게 청담동 처녀 보살 조비가 진짜 백범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채를 써야겠지.’

다시 말해 나는 청담동 처녀 보살을 백범인 척 하면서 찾아가서 부탁해야 한다는 소리다.

‘최소 50억을 이자로 줘야겠지.’

사채니까. 그리고 조기 상환 때문에 물게 될 중도 상환 수수료와 은행 이자도 10억 이상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략 70억이다. 그리고 산업 수출 은행의 은행장과 쌓았던 신뢰도 모두 잃게 되고 또한 태평양법무법인과의 파트너 관계도 해지될 것이다.

‘거기다가 뇌물!’

한 마디로 시작했던 것을 100억 가까이의 손해를 보고 원점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100억을 포기한다?

미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청산한다면!’

뇌물수수는 남는다. 불법 대출도 남는다.

“한 달 만에 100억 가까이 날리는 망나니가 되겠군.”

결국 거창하게 시작한 첫 번째 사업은 금전적으로는 실패다. 물론 도덕적으로도 실패다.

-어떤 결정을 내리시더라도 각하는 만나셔야 합니다. 그렇게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각하를 만나면 또 뭐라고 하지?’

태양광 자가발전 사업은 처음부터 개소리라고 말하면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현 대통령은 성깔이 카랑카랑한 위인이다.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 지시만 해도 그렇다.

문민정부 때까지 조선 총독부 건물은 국립중앙방문관으로 쓰였다. 그 당시 일본 총리가 한국의 식민지 지배는 자신들의 자선 사업이라는 말을 했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발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에 대통령께서는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겠다는 명언은 남기셨다.

[뿌사라!]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일본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해 버리셨다.

[일본이 이번 망언까지 하면 30번째인데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놔야겠습니다.]

더 대단한 것은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인 방송 발표를 통해서 그 명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담으로 일본 관계자들은 버르장머리이라는 단어가 해석하기 어려워서 고심에 빠졌단다.

하여튼 그때 대통령의 지지율이 90퍼센트까지 육박했었다.

‘그런 대통령한테 뭐라고 말하지?’

답답해지는 순간이다.

“개소리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정말 대통령 앞에서 그 소리를 한다면 제대로 망나니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들의 보복이겠지.’

나는 그들이 해올 보복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보복이 내 아내 은혜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뼈저리게 후회한다.’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다.

* * *

100억의 손실을 보고 600억으로 다시 시작한다면 400억이 풋옵션에 묶여 있으니 200억밖에 운영할 수 없다.

‘태양기업을 청산하고 종합금융투자 회사로 전환하면?’

내 자본금은 200억이다. 그리고 많은 보복이 몰려오게 될 것이다. 그것을 막아줄 사람은 지금 이신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신을 만날 자신이 없다. 그리고 이신을 만나겠다고 이 실장에게 말할 수도 없다.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니까.’

항상 흑막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이신이다.

‘넌 왜 그렇게 살았을까?’

나이면서 내가 아니게 된 이신이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버지께는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이 역시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에······. 식사 한번 합시다.

김대준 총재와 통화했던 때가 떠올랐다.

-끝순 할매라고 수천억을 가진 사람도 내 말이면 설설 기어.

그런데 다시 청담동 처녀 보살인 조비가 진짜 백범에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조비!’

진짜 백범의 기억 속에 있는 여자다. 그녀의 기억이 떠올랐고 나는 서랍 속에 넣어둔 백범이 썼던 휴대전화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 어디를 선택해도 악수라면!”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내가 강요해야겠다.

‘이제 남은 것은 철저한 대비다.’

조비, 그녀를 만나야겠다. 물론 그 전에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다.

-지금 모습 이대로 더 나빠져도 저는 괜찮고 더 좋아지면 심장이 떨려서 저 병나요.

은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녀의 말이 천군 마마처럼 나를 든든하게 만들고 웃게 만든다.

‘너를 위해!’

지금이라도 저지른 죄를 최대한 청산하고 똑바로 살아야겠다.

‘나는 이미 부자다.’

내게 은혜가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결단은 10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다.

'지하경제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내자.'

조비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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