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63화 이신?
국립 서울 현충원 국가 유공자 묘역 한구석에 있는 묘지.
해가 이미 졌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의 묘역 참배는 이미 훨씬 전에 끝났지만 이신은 아무렇지 않게 묘비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노구의 이신은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고 회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디가 좋겠소? 한 곳만 고르십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시니 당황스럽습니다. 각하.]
[내가 이래서 군바리라는 소리를 계속 듣는 모양이오. 내 성격 급한 것은 아실 테고, 고르시오.]
[일산이 좋겠습니다. 강남과도 가깝고 제1신도시 개발 사업에 적합합니다.]
[일산이오?]
[그렇습니다.]
[당신이 보유한 땅은 과천과 용인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일산입니까? 아하, 그렇군.]
마치 차명으로 토지를 매입해 놨구나 하는 투로 말하는 군인 출신 대통령이었다.
[입지적으로 일산이 제1신도시 예정지로 적합한 것 같습니다.]
[알겠소. 나는 받은 만큼 드렸소.]
[예, 각하.]
눈을 감고 있던 이신이 눈을 떴다.
“저도 받은 만큼 드렸습니다. 성님……. 으음…….”
[나도 쏘고 가라!]
[성님……!]
이신은 또 하나의 회상이 떠올랐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돌아섰다.
“꽃을 시들게 하지 마라.”
아무 말도 없이 자기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말하고 이신은 노구의 몸을 돌렸다.
“예, 대부님.”
-백선우 선생의 손자입니다.
-고얀 놈이구나.
-쉬운 길을 택한 것 같습니다.
이신은 처음부터 백범을 알고 있었다.
“가자.”
“예, 대부님.”
* * *
백범의 아파트 거실.
“그렇게만 하신다고 약속해 주신다면 백범 대표께서 원하시는 방향대로 사업이 진행될 겁니다. 아마 승승장구를 하시게 될 겁니다.”
이 실장은 내게 엄청난 이야기를 꺼내 놨다. 물론 모두 예상했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규모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컸다.
“으음……!”
이미 국화차는 내가 마음을 먹었던 탐욕과 함께 식어 버렸다.
“제게 결정권이 있습니까?”
이 실장의 입장에서는 내가 한 말은 의외의 질문일 것이다.
“의외의 질문이신 것 같습니다.”
이 실장이 내게 말했다.
나는 식어 버린 국화차를 다 마시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꽃송이까지 손가락으로 꺼내 입에 넣었고, 내 모습을 본 이 실장은 묘한 눈빛을 보였다.
‘이신이 이랬지.’
나는 지금 이신이 하는 그대로 하고 있다.
왜냐고?
이 실장은 누구보다 이신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신과 똑같은 행동을 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려는 것이다.
“우회 상장은 누구의 생각입니까?”
이 실장이 내게 말한 것은 태양기업을 우회 상장시키는 것이다.
‘주가 조작을 통해서?’
대선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태양광 패널을 수입할 때 정부 지급 보증서를 내주겠다는 소리다. 물론 일반 서민들이 태양기업의 태양광 자가발전을 설치하면 50%의 정부 보조금도 지급할 수 있다고 말한 상태다.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겠다고?’
분명한 것은 그들의 뜻대로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항상 그래왔습니다. 예전에는 땅을 개발했죠. 강북에서 강남으로 서울의 중심지를 옮기고 제1신도시 개발을 발표하며 자금을 확보했죠.”
나도 아는 사실이다. 내 머릿속에는 이신이 했던 짓이 다 기억되어 있으니까.
‘이신, 너라는 놈은……!’
권력의 꼭두각시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권력의 조율자로 자리 잡은 상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제가 그 제안을 거절을 하면 저는 어떻게 됩니까?”
다시 한번 의외라는 눈빛을 보이는 이 실장이다.
“왜 이러십니까? 그들에게 그 사업을 먼저 제안하신 분은 백범 대표이십니다.”
이 실장은 분명 그들이라고 말했다.
그들!
이신이 아니라는 소리다.
“저는 사업 이야기를 했지, 모략과 음모를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말에 눈빛이 변하는 이 실장이다.
“백범 대표님, 뇌물도 불법입니다. 어떠한 이익을 위해서 제공하지 않았습니까? 또 그때 태양광 발전 사업을 말하셨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돈이었습니다.”
내가 했던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소리다. 제대로 정곡이 찔린 순간이다.
‘그랬었지.’
평범하고 행복하게도 살고 싶었지만 돈도 벌고 싶었다. 정말 그날은 내가 아닌 이신이 되어 그들을 만났던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고 있다.
“젊은 혈기에 탐욕이 가득 찼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진심입니까?”
나를 또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 실장이다.
“사실 저는 그들의 제안이 여전히 고민스럽습니다. 그들이라는 분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엄청날 테니까요.”
솔직함만큼 무겁게 휘둘러지는 무기도 없을 것이다.
“솔직하시군요.”
이 실장이 내게 말했다.
‘이신이 가장 잘못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이 실장을 하수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꼽을 것이다.
“사실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내가 이 실장에게 말했다.
“그럼 제가 백범 대표님의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어떤 결정을 내리시더라도 각하는 만나셔야 합니다. 이미 계획이 되어 있는 일입니다. 번복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통령 접견은 번복할 수 없다는 소리다.
‘태양광 발전 사업을 물어보겠지.’
아마도 대통령은 거기까지만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원래 못된 짓은 밑에서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니까. 사실 그런 과정이 이신을 만들어냈고 어느 순간부터 통제 불능의 괴물로 만든 것이다.
“아, 그렇군요.”
“그리고 저를 백범 대표께 보낸 사람은 상상하시는 것보다 더 탐욕스럽습니다. 자기가 권력을 다 쥐고 있는 줄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들은 원래 위험합니다.”
이신이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도는 절대 이신을 욕하지 않는다.’
이도, 아니 이 실장에게 이신은 아버지 같은 존재이면서 영웅이니까.
‘누굴까?’
여당중진의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하지만 4년짜리 임시직은 이신을 움직일 정도의 힘이 없다.
‘당 대표자라면 모를까……!’
여당 당대표가 움직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의 선거이니까.
“그럼 이 실장님은 어떻습니까?”
“백범 대표님께서는 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죠.”
“예, 그렇습니다.”
“저는 백범 대표께서 그들의 제안을 거부하시면 물러서면 됩니다. 꼭 백범대표이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자신들이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제안을 거부하시면 괘씸하게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보복이라는 것을 하려고 할 겁니다.”
이 실장은 누구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서운 사람이다.
항상 진실을 말하고 그 진실을 감춰야 할 때는 칼이 된다. 그리고 그 칼은 항상 이신을 위해 휘둘러진다.
‘이신이 직접 개입한 것은 아니군.’
이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왜 이렇게 어렵게 가지?’
대선자금이 필요하다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대기업들에게 달라고 하면 그만인데 말이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는 대부분 하수인들의 욕심이 더해져서 만들어진다.
“모든 것은 제 탐욕이 뇌관이 된 것이군요.”
내 말에 이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범 대표님께서는 그들이 딱 필요한 타이밍에 움직이셨습니다. 거기다가 국민들을 현혹할 좋은 아이템을 그들에게 말하셨습니다.”
“그들이라? 그럼 이 당신은 누구를 모시고 계십니까?”
내 말에 처음으로 이 실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신, 그와 담판을 지을까?’
내가 그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 태양기업을 우회로 상장한다면 평생 발목이 잡힐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보복이 뒤따를 것이다. 내가 이 실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 어떤 피해도 입지 않으려면 이신에게 가야 한다.
‘하지만 승냥이를 피하려고 늙은 호랑이에게 갈 수는 없다.’
나는 그 누구보다 이신을 잘 안다.
내가 이신이었으니까.
“백범 대표님, 감당하실 수 없는 것은 모르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할 시간을 하루만 주십시오.”
바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거부하지 못하는 제안에 흔들리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들에게 기어들어 간다면!’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고 가장 단시간에 금전적으로는 거대해질 것이다. 하지만 발목이 잡히고 이신처럼 변할 가능성이 높다.
“예, 알겠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엄청난 것을 얻게 되면 소소하게 많은 것들을 잃게 되니까요.”
지금의 이 실장이 그럴 것이다.
“이 실장님, 충고 감사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일은 한발 잘못 나간 내가 자초한 것이다.
딩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아!’
생각보다 내 아내 은혜가 빨리 왔다.
“누굽니까?”
이 실장의 표정이 변했다.
“제 아내일 겁니다.”
“사법연수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선택에 제 아내의 미래도 결정이 되는 겁니까?”
“그들이 결정할 겁니다.”
직접적인 협박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이 실장이다. 마치 방관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내가 아니라도 된다는 의미다.’
이게 정말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제안을 나는 지금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군요.”
“저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예.”
이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그와 함께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어줬고 내 아내가 들어오면서 이 실장을 봤다.
“손님이 계셨네요.”
은혜가 내게 말했다.
“친구입니다.”
나는 이 실장을 친구라고 소개했다. 마땅하게 달리 소개할 방법도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제수 씨. 제가 쓸데없이 바빠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실장은 저런 사람이다.
‘탐난다.’
하지만 이 실장은 신을 배반해도 절대 이신을 배반하지 않는 존재다.
“아, 그러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 아내인 은혜는 정중하게 이 실장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데 벌써 가시려고요?”
“예, 일어나려던 참이었습니다. 하하하, 밥 잘 얻어먹고 갑니다.”
이 실장의 말에 은혜가 나를 봤다.
“아, 그러시군요. 예, 조심히 가세요. 다음에 또 뵈었으면 좋겠어요.”
“예, 제수씨.”
그렇게 이 실장은 내 아파트에서 나갔고 나는 배웅을 하기 위해 그를 따라 나왔다.
“우리가 친구인가요?”
내게 작은 목소리로 이 실장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마땅하게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루를 기다려 드리겠습니다.”
이 실장이 내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고 나도 따라 머리를 숙였다.
‘그래도 이도 네가 와서 다행이다.’
나는 아파트 창문으로 아파트 건물을 빠져나가는 이 실장을 보며 속으로 뇌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