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62화 (62/415)

# 62

62화 이 실장이 와 버렸다!

강북 백범의 고급 아파트 앞.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김 비서님은 내게 항상 이렇게 공손하시다.

“운전하시느라 김 비서님께서 고생하셨습니다.”

“궁금하실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까지 투자받은 금액은 2,000만 달러입니다.”

하루 만에 1,000만 달러의 투자를 더 받았다.

“놀랍군요.”

또한, 겁난다. 이러다가는 투자받는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고 1억 달러 돌파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서민들이 투자할 곳이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투자를 받아서 이자를 주면서 버티면?’

그게 다단계다. 물론 나는 미래에서 일어날 일을 알고 있기에 버티면 된다. 그럼 모든 투자자에게 내가 약속한 이익금을 배당하고도 2.4배가 남는다.

“곧 종금사로 전환해야겠군요.”

합법적으로 개인들에게 투자를 받을 방법은 종합 금융 투자 회사 설립밖에는 없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보신 박태웅 투자 부서 이사님의 개인 비서 및 운전기사로 이동시켰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예.”

내가 말했고 김 비서는 내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싸할까?’

투자받은 달러가 2,000만 달러가 됐기에 이런 것 같다. 이대로 가면 정말 1억 달러는 금방이고 또 2억 달러, 4억 달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 투자금은 올 12월이 되면 3.4배의 환율 차액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 못 버티냐가 관건일 것이다.

“백범 대표님.”

그때 누군가 내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내 뒤라면 아파트 건물 쪽이다.

‘누구지?’

싸한 기분과 함께 돌아섰고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이 실장……!’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너무 빨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실장은 내가 전생에서 부리던 수족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제는 이신, 그가 부리고 있는 수족이다.

“누, 누구시죠?”

나도 모르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지 못하고 말까지 더듬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도라고 합니다.”

이 실장의 이름은 내가 아니 이신이 지어준 이름이다.

‘이신 너는 얼마나 오만했던가!’

이신은 고아인 이 실장을 데리고 와서 이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도가 누구인가?

세종대왕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신은 다른 수하들도 각각 왕이었던 자들의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고 그런 수하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그는 그런 인간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를 그라고 다시 생각하고 있다.

“누구시죠? 저를 아십니까?”

“태양광 자가발전 사업 관련 문제 때문에 조율할 것이 몇 가지 있어서 찾아뵀습니다. 저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이도, 아니 이 실장은 항상 타인을 대할 때 정중하다.

하지만 적에게는 한없이 잔인하고 모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완벽하게 관철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신이 총애하는 수족이다.

“누가 보냈습니까?”

이 순간 떠오르는 인물은 이신과 내게 뇌물을 받은 여당 중진의원이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백범 대표님께서 먼저 제안하신 사업이지 않습니까.”

부정하고 싶지만 그렇다.

‘나는 너무 사업적인 측면으로 행동했다.’

그리고 불법 대출 뇌물증여까지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렇게 항상 찜찜한 것은 현실이 되는 법이다.

“그렇군요.”

그저 착잡할 뿐이다.

“모시겠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이 실장에게 말했다.

“그렇기는 합니다. 그러니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그렇다면 제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여기가 저의 집입니다.”

이 실장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기 위해 이러는 것이다.

‘이신이 불렀다면?’

나는 성북동 고택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제가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실장이 내게 말했고 최소한 이신이 나를 부른 것이 아니기에 안도하는 순간이다.

‘물론 이신에게 나에 대해 보고했겠지.’

그렇다면 내가 내 할아버지의 손자라는 사실도 보고 받았을 것이다.

‘숨이 막히겠지.’

왜 내 영혼이 그분 손자의 몸에 이입이 됐을까?

애써 외면하고 있던 기억에 사로잡힌다.

* * *

판교 본가 응접실.

선희의 부친은 바리바리 싸 들고 판교를 찾았다.

“사돈댁 어르신 제 철없는 딸내미를 돌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희 부친은 딸이 보고 싶어서 영광굴비에 한우 갈비 세트를 비롯해 엄청난 선물을 사가지고 여기로 왔다.

“따님께서는 총명하십니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사돈의 사돈지간이기에 서로에게 조심할 수밖에 없는 세 사람이었다. 그리고 선희 부친은 궁금한 것이 많은 눈빛이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제 사위는 어떻습니까?”

“부지런합니다. 그리고 책임감도 뛰어나고요. 거기다가 생각들이 기발합니다. 그래서 건조 공장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사과를 급속 건조시켜 과자처럼 포장해서 판다는 생각은 사과를 재배하면서도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장을 시킬까 합니다.”

“사장이라고요?”

“예, 제가 다 늙어서 사장해서 뭐 하겠습니까. 저는 천성이 농부입니다.”

“아……!”

백범의 부친이 물욕이 이렇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선희의 부친은 그저 탄성을 터트릴 뿐이다.

“궁금한 것이 풀리셨습니까.”

“예, 감사합니다.”

“따님 보시기 위해서 오셨으면 따님을 보십시오. 얼마나 보고 싶으셨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때 안채로 선희와 은철 그리고 김찬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엄마, 어…… 아빠!”

선희가 백범의 모친을 보고 엄마라고 부르자 선희 부친이 왜 선희가 이곳에 있고 싶어 하는지 알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아버님.”

처음과 다르게 은철도 자기 장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일하고 오나?”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전화도 없이 왜 오셨어요?”

“전화가 있어야 전화를 하지.”

은철과 선희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아, 호호호, 그러네요.”

“심 서방, 이거 받게, 선희 너도 이거 받고.”

선희의 부친은 휴대전화 두 대를 꺼내 둘에게 내밀었다.

“비싼 휴대전화를 왜 사셨어요.”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기를 사셨겠지.”

백범의 모친이 선희 아버지를 대신해서 말해 줬다.

“아, 그러네요. 호호호, 아빠 잘 쓸게요.”

표정이 밝아지는 선희다. 그리고 선희의 아버지는 선희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뿌듯해졌다.

“아버님, 제가 나중에 월급을 받으면 분할로 갚겠습니다.”

“남도 아닌데 왜 갚아.”

“저희한테는 과분해서요.”

“내가 필요해서 주는 거야. 그렇게만 알고 있어. 일은 힘들지 않아?”

“호호호, 나는 놀고 먹고 오빠만 할아버지와 일해요.”

“그래, 좋아 보여서 됐다.”

“야야, 야야, 소대장 동무 아니 범이한테 전화해 봐라.”

그때 김찬 할아버지가 선희에게 재촉했다.

“시매부님한테요?”

“그래, 전화해 봐라. 얼른.”

김찬 할아버지의 표정이 미묘했다. 사실 김찬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도 보챈 적이 없었다. 그런데 휴대전화기를 보고 바로 전화를 해보라고 보채고 있었다.

“왜 그럽니까? 형님.”

백범의 부친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김찬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손님 왔다. 손님.”

“예?”

“배고파요. 나 일했어요. 배고파요.”

그런데 엉뚱한 소리를 시작하는 김찬 할아버지였고 김찬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선희 아버지는 당황하며 백범의 부친을 봤다.

“아이 같은 분이십니다.”

“예……!”

사돈의 사돈이기에 그저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선희의 부친이었다.

“아빠, 아래채로 가요. 내가 된장찌개 끓여드릴게.”

“네가 된장찌개도 끓일 줄 알아?”

“호호호, 배웠어요. 엄마…….”

선희는 백범의 모친을 보고 엄마라고 부르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하하하, 알았다. 우리 딸이 난생처음 끓여주는 된장찌개 한번 먹어보자.”

“건너가십시오. 사돈 어르신.”

백범의 부친은 호칭이 애매하기에 선희의 아버지를 사돈 어르신이라고 말했다.

“예, 딸이나 저나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 * *

백범의 고급 아파트 거실.

이 실장을 데리고 내 아파트로 들어왔다.

‘내 아파트의 첫 방문객이 이 실장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식사 전이시죠?”

내가 이 실장에게 말했다.

“예?”

“바쁘신 분인 것 같아 보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밥심으로 일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

[밥은 챙겨 먹고 다녀라. 배곯지 않게 해주겠다고 너한테 약속했다. 원래 사람은 밥심으로 일한다.]

내가 이신이었을 때 이실장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 지금 이 실장은 이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말꼬리를 자신도 모르게 흘린 것이다.

“같이 식사하시죠.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파출부 아주머니가 저녁 식사를 차려놨을 것이다.

“백범 대표님…….”

“같이 식사하시죠. 좋은 관계로 발전할 사이 아닙니까.”

내 말에 이 실장이 시계를 봤다.

‘나에 대해서 판단이 서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이 실장에 대해서 잘 안다.

내가 이신이었으니까.

“예.”

이신의 적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이 실장이다. 만약 이 실장이 이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참 평온했을 것 같다.

* * *

“드실만하십니까?”

“대표님 덕분에 모처럼 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먹은 것 같습니다.”

“바쁘신 분이시겠지만 식사는 거르지 마십시오. 밥심으로 일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이신은 항상 수하들에게 밥심 이야기를 했었다.

“예, 감사합니다.”

“거실로 가 계십시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예.”

이신이 내게 대답했고 거실로 갔고 나는 찬장에서 내가 즐겨 마시는 국화차를 꺼내 다도 세트와 소반에 올려놓고 커피포트에 물을 담아 끓였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만든 상황이다.’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다.

정말 새롭게 시작한 인생이고 욕심 없이 탐욕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한 발 잘못 걸어서 이 실장을 불러들인 꼴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엄청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태양광 패널 사업이 정부 지원 사업으로도 선정될 것이고 정부지원금도 받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국가 지급 보증서도 받을 수 있다.

‘국가 지급 보증서를 확보하면?’

그 지급 보증서를 이용해서 일본이나 미국 또는 영국으로 나가서 단기 외환이지만 적게는 1억 달러 많게는 20억 달러 이상의 달러를 빌릴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IMF 상황에서 다 먹을 수 있다.

쿵쾅, 쿵쾅!

내 심장이 요동치는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탐욕이 꿈틀거리는 순간이다.

‘멈춰라. 심장아!’

마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것보다 내 탐욕부터 멈춰 세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순간 내 아내 은혜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신, 돈을 그렇게 많이 가졌을 때도 행복했었나?’

그에게 묻고 싶지만, 답은 내가 할 수 있다.

틱!

물이 다 끓여졌다. 나는 조심히 커피포트에 담겨 있는 물을 작은 다도 주전자에 담아 소반 위에 올리고 거실로 나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 실장은 여전히 나를 관찰하는 눈빛이다.

‘졸부 집 망나니라고 들었겠지.’

그는 지금 자신이 확보한 내 정보와 내가 아주 다르다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국화차입니다. 향이 좋습니다.”

“국화차를 좋아하십니까?”

이 실장이 저러는 것은 이신이 국화차를 가까이하고 즐기기 때문이다.

“예, 국화차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죠.”

나는 이신이 차를 우릴 때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국화차를 우려내어 이 실장에게 내밀었다.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실장이 향을 즐기며 국화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나는 지금 이 실장을 아주 귀한 손님처럼 대하고 있다.

“이제 제가 온 이유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각하께서 3일 후에 백범 대표님을 청와대에 부르실 겁니다. 그 전에 조율할 몇 가지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내가 먼저 태양광 발전 사업을 정부 지원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뇌물을 썼기에 이 실장은 조율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군요.”

속으로는 놀랐다. 하지만 놀란 내색을 할 필요는 없다.

‘청와대라…….!’

내게 이 실장을 보낸 그 누군가는 나를 제대로 대선자금 관리인으로 삼을 생각인 모양이다. 그리고 태양기업을 이용해 대선자금을 만들고 자금 세탁을 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

‘이게 다 내 잘못이다.’

내 잠깐의 탐욕 때문에 엄청난 악당을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에……. 전화 기다리겠소.

김대준 총재와 통화를 할 때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디를 선택해도 악수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생각보다 빨라진 순간이다.

‘어디를 선택해도 악수라면?’

답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답을 만들어야겠다.

내 아내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던져 주는 것을 받아먹으면?’

그들의 개로 살게 될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