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61화 완벽하게 덫에 걸리다.
달리는 자동차 안.
“김 비서님, 라디오 좀 켜주십시오.”
“예, 대표님.”
김 비서님이 라디오를 켰다.
[검찰은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을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구형했습니다. 또한,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정치인들과 전직 은행장 등을 비롯한 10명에게도 징역 20~5년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검찰은 한보그룹 사태에 개입되어 김영삼 대통령 각하의 아들인…….]
TV를 켜면 한보 사태 뉴스고 라디오를 켜도 똑같은 뉴스만 나온다.
‘대통령의 아들도!’
또 한 번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다.
‘돈을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양쪽에 똑같이 다 줬다. 그러니 어느 쪽에서도 문제로 삼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태웅이 나를 뚫어지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뭐가 또 그렇게 궁금한 눈빛입니까?”
나는 박태웅과 함께 2개의 증권사와 3개의 은행에서 풋옵션 투자를 제의했고 계약을 체결했다. 나를 응대한 옵션 관련 직원들은 모두 나를 호구로 보는 눈빛이다.
‘이렇게 되면 반대 투자가 늘어나지.’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 그들이 합리적인 옵션 투자고 내가 허황한 투자자일 것이다. 하지만 급변이 일어나는 순간 그 제로섬 게임에서 내가 승자가 된다.
“예상 투자금이 100억 증가했습니다. 계획성이 없는 즉흥적인 투자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대후증권 말고 또 노리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호기심이 제대로 발동하셨군요.”
“제가 보기에는 한호성 과장을 표적으로 두신 것 같습니다.”
박태웅의 호기심은 예리함까지 갖췄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거기까지입니다.”
“개인적인 일입니까?”
“거기까지.”
“한호성 과장은 아마도 대표님 때문에 다른 고객들에게 반대가 되는 투자를 유도할 겁니다. 그리고 자기도 투자를 할 겁니다. 결국, 대표님께서 옵션 투자에 성공하면 반대 투자를 한 사람들은 막대한 소실을 입게 될 겁니다. 그걸 노리셨습니까?”
이게 바로 박태웅이다. 자신의 호기심을 풀기 전까지는 끝까지 그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의문을 추측하고 파고든다.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래도 이유를 알고 싶습니까?”
내가 박태웅에게 말했다.
“으음…….”
“박태웅 씨.”
“예, 대표님.”
“우리 한배를 탔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박 이사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러십시오.”
“맞습니다. 내 목표가 한우성 과장입니다.”
내 말에 역시라는 눈빛을 보이는 박태웅이고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에 만족하는 눈빛이다.
“박 이사.”
“예, 대표님.”
“박 이사님의 최고의 장점은 그 무궁무진한 호기심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단점도 그 호기심입니다. 이건 내 충고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박태웅이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울렸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영업부장 전두성입니다.
“잘 모셔드렸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부장님과 과장을 여수지사에 잘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제 단독적인 판단으로 염전보다는 새우잡이 선박에 먼저 투입했습니다.
전두성은 선 조치 후 보고를 하고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이상입니다.
“그 녀석은 어떻습니까?”
박태수에 관해 묻는 것이다.
“공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녀석이 무엇이 될지 참 궁금합니다. 목표라도 생겼답니까?
-검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검사요?”
-예, 그렇습니다. 검사가 되어서 방황하는 녀석들을 자기처럼 되지 않게 만들겠답니다.
‘잘하면 죽 쒀서 개 주겠군.’
정확하게 말하면 죽 쒀서 나라에 줄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지 않군요.”
물론 검사가 되려면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상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전두성 부장을 격려하고 휴대전화를 끊었다.
* * *
사법연수원 야외 휴게실.
국제호텔 승강기에서 은혜를 만났던 강수연이 은혜의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은혜 씨…….”
“예, 수연 씨.”
“저기 아침에…….”
“아침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곳에서 봤던 것은…….”
“잊어드릴게요. 결혼할 분이시겠죠?”
은혜는 그저 담담한 어투로 말했고 강수연은 은혜에게 약점을 잡혔다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예, 그럴 예정이에요.”
“예정이시라고요?”
은혜는 놀란 척을 하며 되물었다.
“예, 결혼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에요. 어제는 제가 술을 너무 마셔서 그렇게 됐네요.”
“아, 예정이시구나.”
톡 하고 쏘는 은혜다. 이것만 보면 은혜도 뒤끝이 생각보다 남다른 부분이 있었다.
“비밀 좀 지켜주세요.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수연 씨 이야기를 하고 다닐 정도로 한가할 수가 없어요.”
“그러시죠.”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강수연이였다.
“수연 씨.”
“예, 은혜 씨.”
“우리 이러면 서로 계속 미워하겠죠?”
“예?”
“내가 너무 톡 쐈네요. 조금 괘씸했어요. 그래서 그랬네요. 미안해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외톨이라서 입이 무거워요.”
은혜가 먼저 사과를 하자 강수연의 눈빛이 변했다.
“아, 저도 미안해요. 사실 부러웠어요.”
“제가 부러울 것이 뭐가 있어요. 같이 커피 한잔하실래요?”
적이었던 강수연을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은혜였다.
“커피요?”
강수연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 커피요.”
“제가 뽑아올게요.”
“같이 가요. 그런데 남편 되실 분은 무슨 일을 하세요?”
“사업한다네요. 사실은 졸부에요.”
“호호호, 우리는 공통점이 있네요.”
먼저 웃는 은혜였다. 그렇게 은혜는 자신을 시기하던 강수연을 친구로 만들어 버렸다.
* * *
“결손가정 청소년 후원 행사에 참석하나요?”
은혜와 조금은 친해졌다는 생각이 드는 강수연이 은혜에게 물었다.
“참석해야죠. 연수원 이수 과정에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은혜가 강수연에게 말했다.
“저는 좀 그래요. 결손가정 청소년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단체 사진 찍고 그런 모습들이 저는 보기가 좀 그래요.”
“그래도 그게 참 고마울 때가 많아요.”
“아, 미안해요.”
“왜요? 제가 그렇게 살았었는데요, 그러니 수연 씨가 미안할 것 없어요.”
“이래서 질투가 났던 모양이네요. 너무 당당하세요.”
“지금이야 당당하죠. 사람들은 그러겠죠, 남편 잘 만나서 거만해졌다고.”
“하여튼 제가 미안했어요.”
“우리 친구 됐는데 자꾸 미안하다는 소리만 할 건가요.”
“그러네요. 이제 친구네요.”
강수연은 은혜를 보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안도하는 눈빛을 보였다.
“걱정 마요. 이제 친구잖아요.”
“예, 그럴게요.”
적을 친구로 만드는 심은혜다.
‘사업가라고 하니까.’
심은혜는 자기 남편인 백범이 사업가이면서 투자가이기에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강수연을 친구로 만들었다.
* * *
명동에 있는 어느 한정식집.
“아버지, 이번에 좋은 투자 상품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투자 좀 하세요.”
한호성이 그의 부친에게 말했다.
그리고 백범이 예상하는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한호성 과장이었다.
“좋은 상품?”
“예, 아버지.”
“뭔데?”
“옵션 투자입니다.”
“그게 뭔데?”
자기 부친에게 투자를 받기 위해 한호성 과장은 옵션 투자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고 백범에 관한 이야기도 해줬다.
“나라가 망하는 것에 투자한 망할 놈이 있다고?”
백범은 졸지에 망할 놈이 되어 있었다. 사실 한호성의 부친은 국회의원이고 그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혜를 누리고 살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망할 놈이 아니라 멍청이죠. 전쟁이 나서 서울이 불바다가 되지 않는 이상에는 절대 그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전쟁이 나는 것이 쉬워? 전쟁이 나려고 했으면 김일성 죽었을 때 났었겠지.”
“그러니까요. 그러니 투자를 하십시오. 투자하시면 최소 20배 이상입니다.”
“얼마나 투자를 하면 되는데?”
“다다익선입니다. 하하하!”
“정말이지?”
“전쟁이 나서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돈 버는 일입니다.”
“전쟁이 날까?”
한호성의 부친이 한호성에게 물었다.
“에이, 농담하세요.”
“그렇지.”
“예, 저는 이미 반대 옵션 투자를 했습니다.”
“얼마나?”
“우선 가지고 있던 현금 5억을 넣었고요. 아버지가 주신 아파트에서 대출을 받아서 추가로 넣을 생각입니다.”
“그렇게 많이?”
“돈이 없어서 더 못 넣고 있다니까요.”
“확실한 거지?”
“그렇다니까요. 우리 아버지 너무 소심하시네. 제가 철든 후에 아버지 실망하게 해드린 적 있습니까?”
“없지. 그래서 참 다행이지.”
한호성의 부친은 한호성의 과거가 떠올랐는지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니까요.”
“알았다. 10억 정도 투자하마.”
“더 없습니까? 인천 송도 땅 파십시오.”
“거기를 팔라고?”
인상을 찡그리는 한호성의 부친이었다.
“예, 그 땅을 팔아서 저한테 투자하세요.”
“내가 말했잖아, 거기에 국제공항 들어선다고.”
1990년 6월 14일 인천광역시 영종도 일대로 국제공항 입지가 확정되었고 그 이후 바다를 메우는 공항 부지 조성공사에 착공했고 1996년에 국제공항 건설공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거기 땅값은 오를 만큼 올랐습니다. 아버지는 한창 오르신 후에 사셨잖습니까. 송도 땅값이 오른다고는 하지만 몇 배나 더 오르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린 옵션 투자는 최소 10배 최대 100배입니다.”
“그래?”
“이제는 제대로 투자를 하실 때라니까요. 얻어들은 늦은 정보로 콩고물이나 잡수실 때가 아니라고요.”
“으음…….”
“아버지, 제 말씀을 잘 들어 보세요.”
“말해.”
눈빛부터 변해 버린 한호성의 부친이었다.
“150억을 투자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렇지.”
“우리는 반대 투자를 하고요. 그 150억의 투자된 사실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 비슷한 투자를 추천할 생각입니다.”
한호성의 눈빛이 사악하게 변해 있었다.
“네가 투자를 제의한다고 사람들이 멍청한 생각을 할까?”
“하죠. 100배, 200배 이러는데 현혹이 되죠. 옵션 투자는 제로섬 게임이거든요. 먹는 놈이 있으면 잃는 놈은 더 많죠.”
“그건 이해를 했어.”
“제가 계속 증권사를 다닐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께서 정계 은퇴를 하시면 제가 물려받아야죠.”
“허허허, 허허허!”
“아버지, 2대째 국회의원이 나오면 신분이 완벽하게 바뀌는 겁니다. 계급이 바뀐다고요. 아시겠어요?”
탐욕은 항상 파멸을 부르는 법이다.
“계급이 변한다?”
“돈이 계급입니다. 아버지께서도 원내대표 한 번 하셔야죠.”
아들의 말에 눈동자가 반짝였다.
“확실하지?”
몇 번이고 다시 묻는 한호성의 부친이다.
“확실합니다. 10억에 송도 땅만 팔아서 투자하시면 50억이고 위험부담을 감수하면 최소 300배입니다.”
“300배, 으흐흐! 알았다. 그래 알았다. 송도 땅 팔자.”
“잘 선택하셨습니다. 하하하.”
이 순간 분명한 것은 한호성은 투자자들에게도 사기를 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힘을 실어주는 정치인 몇 명 소개해 주십시오.”
“오~”
“원내대표 한 번 하셔야죠.”
“알았다.”
파멸로 향하고 있는 한호성과 그의 부친이었고 이것만으로도 백범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달성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래서 못된 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는 소리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