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화 반대 투자를 유도하다.
“고위험, 고수익 아닙니까? 저는 위험이 큰 쪽에 투자를 했습니다. 그러니 성공을 했을 때 수익도 상상 이상이지 않겠습니까?”
내가 한호성에게 말했고 한호성은 나를 빤히 봤다. 옵션의 만기는 매월 말이다.
‘50포인트만 하락해도!’
100배 이상의 수익이 발생한다. 내 계획대로 된다면 대후증권은 첫 타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한호성에게 호구처럼 보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반대 방향으로 옵션 투자를 할 테니까.’
그리고 나는 이미 내가 말도 안 되는 풋옵션에 투자한다고 했을 때부터 한호성의 탐욕을 읽어냈다. 그러니 놈은 내가 친 덫에 반드시 걸리게 될 것이다.
하여튼 한호성 저 인간을 개털부터 만들어 놓을 참이다. 아마 내 계획대로 된다면 한호성의 부친인 국회의원 그 인간도 개털이 될 것이고 주변 사람 모두 빈털터리가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옵션 투자 한 번 잘못해서 패가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돈만 많은 호구처럼 보여야 한다.
“옵션 계약서 작성에서 추가하고 싶은 조항이라도 있으십니까?”
“하하하, 그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고객님, 말씀해 보십시오.”
“대후증권이 만약의 사태에 의해 제가 낸 수익을 지급하지 못한다면 대후증권의 지분으로 대금을 지금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 권리의 행사는 제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체결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대로 멍청하다고 티를 내는 순간이다.
옵션 투자가 활발하지는 않지만 내가 수익을 내면 우선 증권사가 내 수익을 지불하고 반대 방향으로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 그러니 대후증권이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는 한 나는 돈을 벌게 된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이러고 있는 것은 돈만 많은 졸부로 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호성 과장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절대 아니다.
“직접 결정하실 수 없는 부분이겠죠?”
“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 특이 조항이 옵션 계약서에 삽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안심하고 추가로 투자를 고려해 볼까 합니다.”
내가 풋옵션 추가 투자를 한호성 과장에게 말하자 박태웅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럽시다.”
내가 한호성에게 말했다. 그리고 한호성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객 상담실에서 나갔다.
“대표님, 꼭 이러실 필요까지 있으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한호성 과장이 다른 고객들에게 반대 투자를 제의할 것 같습니다.”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바보처럼 보이고 싶습니다.”
내 말에 박태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지금도 충분히 돈만 많은 졸부처럼 보이십니다.”
“그러니까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대표님은 가장 허황한 투자를 하고 계십니다. 누가 생각을 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이 외환 때문에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 없습니다.”
그만큼 현 정부가 국민을 잘 속이고 있다는 증거다.
“안 좋은 증후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을 건데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네요.”
항상 대한민국 정부는 이렇게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서민들이 고통으로 감내한다.
“한보 사태로 뇌관은 터졌습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박태웅이다.
‘한보 그룹과 황태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도 구속이 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뇌물!’
나는 이 순간 여야 중진의원에게 뇌물을 준 것이 떠올랐다. 그것이 언젠가는 내 발목을 잡고 또 내 아내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의욕이 넘쳐서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서 가슴을 누르는 돌처럼 답답할 뿐이다.
“왜 그러십니까?”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 * *
대후증권 부장실.
“우리가 이런 풋옵션 투자에 지분으로 지급을 보증해 줄 필요까지 있을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요구야.”
“그래도 이사님께 보고를 드려주십시오.”
“이것은 이사님도 결정할 일이 아닐세.”
“50억입니다. 50억의 투자가 들어오는 일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걱정하시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서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지분으로 지급 보증을 한다는 보고를 드리기가 껄끄러울 뿐이야.”
“부장님.”
눈빛이 변하는 한호성이다.
“왜?”
“기회 아닙니까? 옵션에 ‘옵’ 자도 모르는 투자자가 왔습니다. 한 마디로 돈만 많은 졸부입니다. 어디서 옵션 투자에 대해서 주워듣고 와서 이러는 겁니다.”
“으음…….”
“반대로 투자하시면…….”
한호성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이사님께 보고 드려 주십시오.”
“보고를 드리겠네. 결론이 날 때까지 며칠 걸리겠지.”
“그 결론으로 제가 추가적인 투자를 유도하겠습니다.”
이미 백범은 추가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한호성 과장은 추가 투자를 받아내는 것도 자신의 공이라고 돌리려고 했다.
하여튼 한호성 과장은 백범을 떠올리며 호구를 잡았다는 투로 부장에게 말하고 있었다.
“한 과장, 너무 무리하지 말게.”
부장의 눈빛에도 탐욕이 담기기 시작했다.
“저는 당연히 적극적으로 만류했습니다.”
한호성 과장이 부장에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비열한 미소를 머금었고 부장도 따라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럼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한호성이 부장에게 말했다.
* * *
새우잡이 어선 위.
“이, 이게 뭡니까?”
전두성은 염전보다는 새우잡이 어선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선희의 두 오빠를 새우잡이 어선에 태웠다.
“부장님과 과장님이 일하실 곳입니다.”
“뭐, 뭐라고요?”
“말씀을 드렸습니다. 태양기업은 소금 생산과 젓갈 생산 사업을 실행할 것이라고. 그리고 지사장이시니 현장에서 일하셔야 합니다.”
전두성 부장의 말에 두 사람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개소리 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건달 출신 선희의 오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적응이 안 되나 봅니다.”
“뭐라고?”
“적응시켜 드리십시오.”
“알았지라.”
그와 동시에 새우잡이 배를 타고 있던 선원들이 모두 두 남자에게 달려들어 지근지근 밟기 시작했다.
퍽퍽, 퍽퍽!
“으악?”
“아아악!”
폭력이 행사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모질게 밟혔던 두 남자는 전두성 부장 앞에 세워졌다.
“퇴사하시겠습니까?”
“왜, 왜 이래……. 이럽니까?”
바로 겁을 먹는 두 사람이다.
“퇴사하시면 위약금을 지급하셔야 합니다. 대표님께 들었을 겁니다. 16억 2천입니다. 위약금을 바로 지급해 주시면 퇴사 조치를 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16억이 어디에 있어?”
“그럼 일하셔야죠. 이미 연봉은 지급이 됐습니다.”
멍해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전화 한 통만…….”
선희의 첫째 오빠가 전두성에게 부탁했다.
“휴대전화를 차에 두고 왔습니다. 16억이 입금되면 퇴사 조치 가능합니다.”
전두성 부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만 계속하고 있었다. 하여튼 선희의 철부지 두 오빠에 대한 강제 갱생에 돌입하는 순간이다.
* * *
대후증권 고객 상담실.
“고객님.”
밖으로 나갔던 한호성 과장이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예.”
“현재 옵션 투자 계약서에 특별조항을 삽입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저나 부장님이 결정하실 부분이 아닙니다.”
알고 있다. 호구처럼 보이려고 요구했던 것이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보고는 드렸습니다. 우선 부장님께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고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한 과장님을 믿고 100억을 더 투자하겠습니다.”
“아……!”
한호성 과장의 눈동자가 떨렸다. 마치 자기가 그 150억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눈빛이다.
“그런데 과장님.”
“예, 고객님.”
“만약에 제 투자가 성공하면 몇 배의 이익이 발생합니까?”
“옵션 투자에 성공하시면 한 달 만기 때 100배 이상 수익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하하하, 100배요? 좋네요. 좋아요.”
정말 오늘은 제대로 호구 노릇을 하고 있다.
‘너도 반드시 반대 투자를 하겠지.’
그 반대 투자가 한호성과 그의 아비를 거덜 낼 테니까.
하여튼 이렇게 해서 풋옵션 투자 계약서가 체결됐다.
‘시간은 내 편이다.’
IMF 외환 위기는 일어날 테니까.
‘한호성 너는 꼭 못된 짓 한다.’
내 노림수는 한호성, 저놈의 몰빵이다.
-옵션 투자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박태웅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으흐흐!’
하여튼 손위 처남의 복수를 위해 저 녀석의 집안의 돈부터 거덜을 내놔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돈의 위력을 발휘해 손위 처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두 사람에게 양심선언을 이끌어 내야겠다.
* * *
성북동에 있는 고택.
이 실장은 공손히 무릎을 꿇고 있고 그의 앞에는 70대 노인인 이신이 앉아 있었다.
“어떤 녀석이더냐?”
“백범이라는 젊은 사업가로 태양광 자가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 사업으로 채택이 되기 위해서 여당에 뇌물을 썼습니다.”
“젊은 놈이 벌써 뇌물?”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을 통해서 개인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특히 달러로 투자를 하면 투자금의 40%의 이자를 지급하는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러가 급한 모양이군.”
“태양광 발전 사업은 현재 수입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태양광 패널을 수입해 올 기업에 달러를 지급하기 위함일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사기지.”
이신이 말했다. 그리고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고 이 실장은 이신을 보며 저렇게 미소를 머금는 것에 살짝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사기라 하셨습니까?”
“내가 투자를 하고 싶어질 정도의 사기다. 그만큼 이자율이 높다는 거지. 하여튼 고얀 놈이구나.”
“예, 그렇습니다. 백범 대표는 쉬운 길을 택한 것 같습니다.”
“그런 놈을 여당이 점찍었다? 왜지?”
이신이 이 실장에게 물었다.
“정치자금 세탁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그게 전부일까?”
“다른 이유를 찾으라면 백범의 조부가 독립운동가 백선우이고 그걸 이용해 보수를 응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실장이 이신에게 말했다.
‘백선우라……!’
이신은 속으로 백범 조부의 이름을 되새겼지만,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답을 주고 왔느냐?”
“제가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이 실장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이신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께서 심기가 카랑카랑하시겠지.”
“그럴 것입니다. 경제수석이 괘씸하게 대부님께서 직접 나서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허허허, 그랬더냐?”
“예, 단단히 단속했습니다.”
“괜한 짓을 했다. 개가 크면 주인을 보고도 짖는 법이지.”
“예, 그렇습니다.”
“백범이라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직접 만나시겠습니까?”
“됐다. 네가 만나봐라. 요구를 해왔으니 숙여주는 때도 있어야겠지.”
“예, 알겠습니다. 오늘 제가 백범을 만나겠습니다.”
“그렇게 해. 그나저나 요즘 꿈자리가 자꾸 뒤숭숭해.”
“그러십니까?”
“자꾸 죽은 전우들이 보여…….”
“송구합니다. 찾고는 있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겠지, 그래도 살아 있다면 찾아야지.”
“예, 대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