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59화 (59/415)

# 59

59화 호구를 자처하다?

다음 날 아침, 국제호텔 승강기 안.

우린 아무렇지 않게 팔짱을 끼고 승강기를 타고 호텔 조식을 먹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부부니까.’

당연히 누구의 시선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호텔 룸에서 나오는 남녀 중에서 부부일 확률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딩동!

승강기가 멈췄고 승강기의 문이 열리며 남자 한 명과 여자가 승강기로 들어왔다. 그런데 승강기를 탄 여자가 내 아내 은혜를 빤히 보고 있다. 그리고 은혜도 그 여자를 봤다.

‘아는 사이다.’

아침에 호텔 승강기를 탔다는 것은 이 호텔에서 밤을 보냈다는 의미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하여튼 둘의 눈빛이 묘했다. 그런데 인상을 찡그리는 것은 나중에 승강기를 탄 여자였다.

“아는 사람이야?”

여자와 같이 승강기를 탄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의 옆에 선 남자는 나이가 좀 있어 보인다.

“아니에요.”

분명 아는 눈빛인데 아니라고 말하는 여자다. 그리고 내 아내 은혜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여보.”

그때 은혜가 처음으로 나를 여보라고 불렀다. 마치 우리의 법적 관계를 저 여자에게 자랑하듯 말하는 느낌을 나는 받았다.

“왜, 스위트룸에서 두고 온 것이 있어요?”

나는 의도적으로 나와 내 아내 은혜가 스위트룸에서 묵었다는 것을 저 두 사람이 들을 수 있게 말했다.

“그건 아니고요. 이렇게 내려가면 혹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요?”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은혜다.

‘라이벌이다.’

직감할 수 있다. 아마도 저 여자도 사법연수원생일 가능성이 크다. 그게 아니라면 대학 동기 동문이거나 고등학교 동창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여튼 은혜는 내게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저 여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상하게 볼까요? 부부가 가끔 이런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적절한 관계에서 호텔을 드나드는 사람이 있지만 말이죠.”

찰나의 순간 여자가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담담해졌다.

‘내 아내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저 여자에게 맺힌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졸부 집 망나니와 돈 때문에 결혼했다고 무시를 당했을 수도 있다.

“사법연수원에 가기 전에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갑시다.”

“알겠어요. 여보.”

내가 사법연수원이라고 말하자 아무 말도 없던 남자가 자기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봤다.

‘모른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여자는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딩동!

그때 승강기의 문이 열렸고 젊은 남자가 머리를 숙여 내게 인사를 했다.

“대표님.”

젊은 남자가 내가 들고 있는 서류 가방을 받아들었다.

“김 비서께서 대표님을 수행하라고 보냈습니다.”

나는 어제 김 비서에게 박태웅을 먼저 픽업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시군요.”

이 상황까지 은혜에게 좋은 상황일 것이다.

* * *

호텔 식당.

“은혜 씨, 누굽니까?”

나는 은혜에게 물었다.

“연수원 동기요.”

항상 내 눈을 보며 말하는 은혜다. 사실 모든 아내 중에 자기 남편의 눈을 보고 말하는 여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서로의 눈 맞춤은 예의이며 배려일 것이다.

“라이벌인 모양이군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팽팽함을 주고받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요. 백범 씨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게 됐네요.”

내게 미소를 보이는 은혜다.

“아······!”

“제 충고를 잘 받았을 것 같아요.”

대충 어떤 관계인지 짐작이 된다.

* * *

대후증권 빌딩 앞.

국제호텔에서 은혜와 조식을 끝내고 차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이미 김 비서와 함께 박태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어제보다는 한결 표정이 부드러워진 박태웅이다.

“박태웅 씨.”

“예, 대표님.”

“제가 어제 여기부터 시작한다고 말씀을 드렸죠?”

내가 박태웅에게 말했다.

“왜 여기서부터인지 사실 궁금합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는 박태웅이다.

“가지고 싶거든요.”

“명쾌한 답이시군요.”

개인적인 복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들어가시죠.”

나는 당당하게 대후증권 본사 빌딩으로 들어섰다.

‘여기까지 내가 왔노라!’

이제는 내 처가를 풍비박산을 내놓은 놈에게 복수를 시작할 때다.

* * *

대후증권 고객 상담실.

나는 바로 대후증권 계좌를 만들고 50억을 예치했고 한호성 과장을 매니저로 요구했기에 내 앞에 한호성 과장이 밝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너냐!’

내 처가를 풍비박산 내놓은 놈이 바로 저놈이다. 그런 놈이 내 앞에 앉아 있지만 나는 소리장도의 마음으로 그를 보고 웃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대후증권 한호성 과장입니다.”

50억을 예치했기에 그는 내게 공손할 수밖에 없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마치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그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도록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혹시 어떤 고객께서 저를······.”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는 묻지 말라는 투로 말했고 그도 내 의도를 알아차린 눈빛이다.

“하하하, 예 그렇습니다. 그게 중요하지는 않죠. 고객님께서 저를 선택하셨으니 멋진 수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한호성 과장은 자신 있다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고객님, 어떤 투자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 * *

“고객님······!”

복잡 미묘한 눈빛으로 한호성 과장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의 눈빛 속에는 뭐 이런 멍청이가 다 있냐는 의미도 살짝 담긴 것 같다.

“예.”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한호성이다.

“고객님, 옵션 투자라는 것이 제로섬 게임입니다.”

처음 내가 한호성에게 풋옵션 계약을 요구했을 때 살짝 놀란 눈빛을 보였다. 사실 이 시절에는 옵션 투자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풋옵션 투자에 대해 말하자 다시 놀랐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 제로섬 게임.’

누군가 수익을 얻으면 또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된다. 나는 그 간단한 개념을 이용해 처가의 복수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고객님, 아시는 것처럼 현재 환율은 안정적입니다. 현재 OECD 가입 때문에 환율은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 정부가 기를 쓰고 환율 방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기에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 IMF 외환 위기라는 특수성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멍청이일 것이다. 그리고 한호성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또 하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911테러 이전에 풋옵션에 투자한 투자자가 단기간에 500배의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때가 되면 또 한 번 내가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될 것이다.

옵션투자라는 것은 당연히 국제정세의 흐름에 따라 요동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못된 짓을 하는 인간들도 참 많다. 또한, 멍청한 짓을 하는 인간들도 많다. 풋옵션에 투자한 사람이 수익을 내기 위해 사제폭탄을 터트린 경우도 있다.

“그런가요?”

“예, 말씀을 드린 것처럼 환율이 더 상승할 가능성은 향후 1년 이내에는 없습니다. 아실 지는 모르겠지만 정부가 환율 방어에 적극적입니다. 또한, 주식도 안정적입니다. 그러니 환율 상승과 주식 하락에 투자하시면 큰 손해를 보실 수도 있습니다.”

증권사 매니저로 내게 고지해야 할 위험성을 사무적으로 고지하고 있는 한호성 과장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럼 계약 체결 안 됩니까?”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묘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한호성이다.

‘마치 나를!’

투자의 호구로 보는 눈빛이다. 나는 사실 이 눈빛을 기대하고 왔다.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옵션 계약 체결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걸려들었다. 아마 한호성은 이제부터 자신이 알고 지내는 투자자들에게 내가 체결한 반대의 계약을 체결하라고 제의할 것이다.

“고객님, 제가 다시 한번만 설명하겠습니다. 투자라는 것이 원래 저점에서 사고 고점에서 팔아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증권 투자 전문가의 입장에서 잘못된 투자 방향에 대한 의견을 말해 줬다고 차후에 말하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다.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이 옵션 투자가 성공하려면······.”

한호성이 말꼬리를 흐렸다.

“아, 아닙니다.”

내가 체결할 풋옵션 투자가 성공하려면 나라가 망할 정도로 휘청거려야 한다.

“제가 이 풋옵션 투자에 성공하려면 어떤 상황이 만들어져야 합니까?”

현재 한호성이 나를 보는 눈빛은 어디서 옵션 투자에 대해서 듣고 와서 허황한 꿈을 꾸고 있는 호구로 보는 눈빛이다.

“이 풋옵션 투자에 성공하려면 좀 놀라시겠지만, 대한민국이 망해야 합니다.”

“그 정도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무적으로 대답하는 한호성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망하면 대후증권도 망하지 않습니까?”

“예?”

내 뜬금없는 질문에 한호성은 살짝 당황한 듯 내게 되물었다.

“나라가 망하면 대후증권이라고 무사하겠습니까?”

“대후증권은 대후그룹의 계열사로 대후그룹은 재계서열 4위의 그룹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기업이 꼭 망하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발생해도 대후는 망할 수가 없습니다.”

“왜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한호성을 보고 물었고 박태웅은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후는 글로벌 경영을 추구합니다. 세계로 뻗어가는 대후입니다.”

한호성 과장의 말에 나는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10대 그룹 중에서 제일 먼저 부도처리가 되지.’

내가 아는 대후그룹은 속빈 강정이다.

“전 세계에 대후그룹의 현지 법인이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는 경우는 전쟁밖에는 없습니다. 전쟁이 날 일도 없지만, 전쟁이 난다고 해도 대후그룹은 외국 현지 법인을 통해서 그룹 경영을 이어나갈 겁니다.”

사실 한보와 대후 때문에 IMF가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하지만 나는 미국과 거대한 투자자본의 탐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 그렇군요.”

“그리고 처음 말씀을 드린 것처럼 옵션투자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고객님과 다른 방향으로 투자를 생각하시는 투자자님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지급할 수 없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올가미를 씌울 생각이다.

‘그리고 나와 반대가 되는 옵션 투자를 강요할 생각이다.’

물론 한호성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이다.

-주가 조작에도 개입한 흔적이 농후합니다.

전두성 영업부장이 내게 보고했던 것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예?”

황당한 눈빛으로 되묻는 한호성 과장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