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58화 내가 나를 떠올리다.
1시간 후, 국제호텔 스위트룸 응접실 유리 창문 앞.
은혜는 피곤한 듯 깊이 잠들었다. 사실 내 아내 은혜는 공부하느라 나를 위해 패션쇼를 하느라 그리고 이어진 부부관계까지 피곤할 수밖에 없는 그녀다. 사실 나는 그녀를 위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참아야 하지만 혈기왕성하기에 참지 못했고 이 밤을 불태웠다.
‘늙었던 내가!’
환생해서 다시 젊어지니 이렇게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때의 나는 사실······!’
물질 만능에 사로잡힌 추한 늙은이였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젊음이었다.
-일본어 할 줄 알아요?
섹스할 때 은혜에게 나도 모르게 물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한 후에 내가 왜 그런 민망한 질문을 했을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이 시대로 환생을 하기 전까지 나는 90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젊은 남자의 야릇한 로망에 가까운 질문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일까?’
왜 그랬을까?
-아아~ 중학교 정도의 수준이네요. 아아~
나는 지금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을까에 대한 이유를 떠올려 보고 있다.
-그, 그런데 왜, 왜요?
이유를 묻는 은혜였고 나는 그 이유를 차마 말하지 못했었다.
‘설마 영혼이 융합된 것인가?’
그때 내 아내 은혜에게 던진 질문은 젊은 남자나 생각하는 그런 야릇함일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 몸의 진짜 주인공인 백범과 이 몸에 들어온 나 이신의 영혼이 하나로 뭉쳐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백범의 기억을 내가 가지고 있다.’
내 영혼이 백범의 영혼을 밀어내고 이 몸을 차지했다면 백범의 영혼은 소멸이 되거나 밀려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백범의 영혼이 가진 기억은 없어야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진짜 백범이 가졌던 기억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백범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의미고 나도 모르게 은혜에게 던진 질문 때문에 이신의 영혼과 백범의 영혼이 융합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융합된 영혼은?’
새로운 영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백범도 아니고 이신도 아니다. 또 하나의 인격체가 완벽하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중인격장애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신병에 의해 만들어진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으음······!”
절로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다.
“두 영혼이 융합되고 있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도 상당하다.’
물론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은 이신의 기억들이다. 그렇다면 진짜 백범의 기억 중 일부도 비슷하게 잊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여튼 나도 모르게 내 아내 은혜에게 던진 질문 때문에 현실의 나를 직시하게 됐었다.
-헉헉, 아, 아닙니다.
-와타시가 도오시테 니혼고가 데키타라 이이데스카?
은혜는 바로 일본어로 다시 내게 말했고 일본어가 능숙했다.
-헉헉헉!
그때의 나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아아······! 닛폰 고오 키쿠토 키분가 요쿠 나리마스카?
또 내게 일본어로 물어보는 은혜였었다.
그런 그녀가 특급 호텔 스위트룸의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고 나는 지금 40층 스위트룸에서 서울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유리를 통해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야경은 항상 저렇게 아름답지······!”
서울의 야경은 인생 같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는 명언처럼 말이다.
야경은 인생처럼 저렇게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 수많은 욕망과 탐욕이 꿈틀거리며 더러운 것을 만들고 있다.
‘이신!’
야경을 바라보는 내 모습 위에 이신이었을 때의 늙고 추악한 얼굴이 겹쳐진다. 그리고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존재할까?’
요즘 자꾸 이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사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원래 내가 살았던 대한민국과 살짝 다르다.
‘김대준, 이희창도 그렇고!’
옵션 투자 부분도 그렇다.
‘첫 시작이······?’
옵션 투자의 첫 시작이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다면 1997년 7월쯤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옵션 투자가 가능한 상태다. 이런 부분이 내가 살았던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 사이에 조금씩 다른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의문도 언젠가는 풀어내야 할 것 같다.
‘하여튼 내가 기억하는 그 늙은 모습이겠지.’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존재한다면 만나게 될까?’
아니 만날 수밖에 없다.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을 테니까.
올해가 1997년이니까 이신은 75세다.
‘밤이구나. 그의 밤이다.’
내가 아는 그는 밤의 대통령이고 권력의 하수인이니까. 아니 권력의 설계자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흑막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고 조종했었다.
‘아, 내가 나를 이제 너라고 부르게 되었군.’
내게 행운이 깃든다면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지금 유리창에 보이는 백범의 모습 속에서 너라고 부르고 싶은 내가 겹쳐져 보인다.
‘박태웅과 이신!’
만약에 그 둘을 내 밑에 둘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 앞에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젊은이의 호기심과 늙은 악당의 추악한 노련함!’
시너지 효과를 낼 테니까.
분명한 것은 그가 내게 온다면 늙은 망령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한 명의 얼굴이 더 떠오른다.
이신이 가장 아꼈던 자.
‘그 사람까지 내가 가진다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는 새로운 삶에서도 이신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고 결국 이신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이신이 되어가겠지.’
그렇게 되면 결국 이신은 적으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너도 깨끗했던 젊은 날이 있지 않았나······!’
내가 기억하는 그의 젊음은 깨끗했다. 또한, 정의로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섰고 그는 야경이 되어 버렸다.
‘너는 언제부터였을까?’
그 부분이 마치 봉인된 것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아!’
내가 이신을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 * *
강남 고급 룸살롱.
남자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할 때 룸살롱만큼 좋은 곳도 없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고급 룸살롱에서는 자신들이 나눈 대화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는다는 절대적 전제가 존재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여자들은 그것을 이용할 머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룸살롱은 권력과 힘을 가진 마초들의 공간인 것이다. 물론 돈만 가진 사람들도 이용하는 곳이 룸살롱이지만 말이다.
“이 실장님.”
청와대 경제수석이 다부지게 생긴 남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경제수석이 부른 남자는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려 보이지만 하대를 하지 않았다.
“예, 수석님.”
서로에게 존칭을 쓰고 있는 둘이다.
“태양광 사업을 주제로 잡으면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경제수석이다. 그는 이 순간 자신이 보스라도 된다는 듯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이 실장은 이미 백범에 대해 아는 듯 말했다.
“그렇기는 합니다. 하하하!”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 실장에게 말했다.
이 실장은 그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경제수석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먼저 질문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시는 것처럼 선거는 돈입니다. 국민이야 깨끗한 선거를 원하지만 돈 없이 되는 선거가 없습니다.”
이곳이 통제된 곳이기에 이런 말을 너무나 쉽게 하는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사실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선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선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왜 이렇게 이번 대선에 관심을 보이십니까?”
이 실장이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말했다.
-후배님, 경제부총리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의원공천이면 되시겠습니까?
-저는 그냥 대표님을 도울 뿐입니다. 동문 아닙니까? 동문.
-그렇지요. 동문이 좋은 거지요. 마음을 정하시면 말씀하십시오.
경제수석은 이희창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감투는 써야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 실장 말고는 아무도 없기에 노골적으로 자신의 야망을 들어내는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번 정권은 이제 곧 끝이다. 그러니 청와대 경제수석은 또 누군가의 뒤에서 줄을 서야 했고 이희창 대표가 동문이라는 이유 하나면 그의 뒤에 줄을 서기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내락을 받으셨군요.”
“내가 약속 하나 하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이 실장님 돈 걱정은 없을 겁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에 피식 웃어 버리는 이 실장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이 실장은 거만하게 구는 경제수석이 우스웠다.
“왜 웃으십니까?”
이 실장의 웃음에 살짝 빈정이 상한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 실장에게 물었다.
“저 돈 많아요.”
농담처럼 말하는 이 실장인데 그 말에 기가 질릴 수밖에 없는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하하하, 그렇죠. 제가 이런 말씀까지 드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가카께서 심기가 까랑까랑하십니다. 걱정이 참 많으십니다. 그러니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드님께서 구속이 되셨으니 그러시겠죠. 각하께는 오점이죠. 치명적인 오점.”
정권의 황태자로 불렸었다. 그리고 한보와 결탁해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끝내 부친이 대통령에 재임 중일 때 구속됐다.
“그러니까요. 이번 대선이 야당의 손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권력을 잡아보지 못한 것들이 권력을 잡으면 개혁이라는 미명과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정치보복을 합니다. 잡은 칼이니 휘두르느라 미쳐 돌아갈 겁니다.”
“그래서요?”
“며칠 이내에 그 사업가를 가카께서 접견하시게 될 겁니다. 그전에 모든 결론을 내주십시오.”
“각하께서 듣기 좋은 소리만 하게 만들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 어르신께서······.”
“수석님.”
이 실장이 경제수석의 말을 잘랐다.
“예?”
“선을 넘으셨습니다.”
“뭐라고요?”
경제수석이 인상을 찡그렸다.
“거론하는 자체가 선을 넘으신 겁니다.”
이 실장은 어르신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지켜왔던 것을 지켜야 하시지 않습니까? 항상 그래왔잖습니까.”
“그래서요?”
눈빛 자체가 변하는 이 실장이었다.
“하하하,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김대준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 사람이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번 선거 중요합니다. 승리해야죠.”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요즘 부쩍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니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지 여쭤 주십시오.”
“야망이 크시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실장은 경제수석에게 말했다.